박종철(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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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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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1994 KBO 퓨처스 남부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6번}}}
팀 창단

박종철
(1990~1992.5.6.)


최해명
(1992.5.7.~199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9번
이현택
(1987~1992.5.6.)

박종철
(1992.5.7.~1996)


안윤호
(1997)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70426003393_0_20170426192818708.jpg
이영재 심판(사진 좌측 인물)과 박종철 심판(사진 우측 인물)이 2017년 4월 26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3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김용의의 내야 땅볼 때 비디오판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KBO 리그 심판위원 No.11
박종철
朴鍾喆 | Park Jong-cheol

출생
1971년 10월 12일 (52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군산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0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0~1992)
삼성 라이온즈 (1992~1996)
경력
KBO 심판위원 (1998~)

WBSC 프리미어 12 심판위원 (2015)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심판위원 (2023)
가족
아들 박동혁

1. 개요
2. 선수 경력
3. 연도별 주요 성적
4. 심판 경력
5. 논란과 비판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쌍방울 레이더스, 삼성 라이온즈 소속 투수, 현 KBO 리그의 심판위원.


2. 선수 경력[편집]


군산상고 시절 투수와 야수를 넘나들며 큰 활약을 펼쳤다. 특히 2학년 때인 1988년, 청룡기에서 0.668의 타율로 타격상을 받으며 팀이 준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1]

투수로는 140km대의 직구와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을 던질 수 있었다. 4경기 정도를 혼자 거의 다 던지기도 했던 그는 1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이때의 활약상으로 일약 에이스의 호칭을 얻게 되었는데, 그해 8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한·미·일 고교야구대회에 구대성, 류지현 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또한 11월에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도 위재영, 강성우, 김정준, 홍현우, 박계원, 안경현, 류지현, 동봉철 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어 이탈리아전에서 완봉승을 거두었다. 당시 고교야구에서는 에이스로서의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 후 3학년 때 또다시 청소년대표팀에 선발, 미국전 완봉승을 하였고 대학과 프로 사이에서 갈등하던 박종철은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1989년에 쌍방울 레이더스로부터 연고 특별지명을 받아 1989년 11월 쌍방울 1호 계약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고교시절 세 차례 청소년 대표까지 활동했던 전력과는 다르게 프로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고교시절 거의 혼자 완투하는 경기가 많았고, 결국 프로에 들어와서 팔꿈치 부상을 당했다.

1990년 쌍방울이 창단 첫 해에 1군 리그에 참가하기에 앞서 신생팀 적응차원으로 2군리그를 참가하였는데 이때 마무리투수로 활약하였다.

다음해인 1991년, 1군 무대를 밟게 되었는데 주로 불펜투수로 22경기에 출전하여 39⅓이닝 44피안타 7피홈런 17사사구 12탈삼진 25실점(22자책) ERA 5.03을 기록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커리어 하이였다.

1992년에는 좀처럼 1군에 올라오지 못하다가, 5월에 내야수 최해명, 외야수 이현택을 상대로 투수 김기완, 외야수 이창원 등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 되었다. 1993년 방위병으로 군입대하여 홈경기에만 출장할 수 있었지만 1993년 0경기, 1994년에 겨우 2경기 나왔고, 군 제대후인 1995년에 2경기 출전하여 방어율 13.50을 기록하였다. 1994~1995년에 2군 방어율은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였다. 다음해인 1996년 현역 은퇴를 결정하며 현역 생활을 마감하였다.

그의 통산 성적은 4시즌 동안 27경기 출전, 44⅔이닝 28실점(3비자책) 47피안타 7피홈런 20사사구 13삼진 방어율 5.04.


3.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실점
피안타
피홈런
4사구
삼진
WHIP
FIP
sWAR
1990
쌍방울
1군 기록 없음 (쌍방울 1군 미참가)
1991
22
39⅓
5.03
0
0
0
25
44
7
17
12
1.48
5.61
0.3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실점
피안타
피홈런
4사구
삼진
WHIP
FIP
sWAR
1992
삼성
1
1⅓
0.00
0
0
0
0
1
0
0
1
0.75
1.28
0.07
1993
1군 기록 없음
1994
2
2
0.00
0
0
0
0
0
0
1
0
0.00
4.31
0.07
1995
2
2
13.50
0
0
0
3
2
0
2
0
1.50
5.81
-0.05
1996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4시즌)
27
44⅔
5.04
0
0
0
28
47
7
20
13
1.39
5.43
0.46


4. 심판 경력[편집]


1999년 4월부터 KBO 리그 심판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대회에 한국 대표 심판으로 참여하였다.

2022년부터 1군 팀장으로 승진했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박기택 심판과 같이 한국 대표 심판으로 참여하였다.

5. 논란과 비판[편집]


스트존 확대 방침이 적용되기 전인 2017년 이전에는 판정이 타이트하긴 해도 일관성은 어느 정도 유지하던 심판이었는데, 확대 방침 적용 이후엔 일관성이 무너져버렸다. 한 경기 내에서도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졌다 줄어들었다 바뀌며, 같은 코스에서의 판정도 오락가락 하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3년 6월 29일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7회초 김주찬 타석에서 중견수 배영섭의 포구시 당시 1루심이던 박종철 심판이 2루심보다 먼저 바운드 캐치로 안타 콜을 내리는 바람에 1루 주자 신종길이 득점을 했다. 이에 삼성 코치진이 항의해 4심합의로 다시 노바운드 외야포구로 아웃으로 판정번복이 되었다. 판정 바꾸기 있기 없기!

2017년 4월 29일 3루심으로 있을 때 롯데 자이언츠이대호퇴장을 당했는데 그 퇴장사유가 관중 선동이라고 한다. 이대호는 덕아웃에 있는 선수들더러 나온라고 손짓한 거라 어필했지만, 이대호는 그대로 퇴장당하고 말았다.

2018년 4월 3일 두산 베어스오재원이 9회말 무사 상황에서 진해수의 슬라이더에 루킹 삼진을 당했는데,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구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을 두고 높지 않았냐고 질문했다가 강제 퇴장당했다. 참고로, 2018년부터 심판에게 항의를 하면 퇴장이라는 조항이 생겼기 때문인데, 오재원은 "높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했다가 퇴장당했다고. 이것 때문에 김태형 감독까지 나와서 어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6. 기타[편집]


  • 아들인 박동혁은 외야수로 화순고 졸업후 202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키움 히어로즈의 2차 9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 2011년 경남고군산상고 간의 레전드 매치가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바 있는데, 이 경기에 우익수로 출전하였다. 한편, 이 날 맞붙은 경남고와 군산상고는 상술한 1978년 청룡기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그때는 경남고가 우승했었는데, 이 날 레전드 매치에서 군산상고가 7:5로 역전승을 거두었기에 인터넷 언론에서는 설욕했다고 표현하기도.

  • 2011년 기준으로 여전히 구속이 130km/h까지 나온다고 한다.참조

  • 2018, 2019년, 2020년 끝내기 보크가 일어났을 때 모두 심판으로 경기에 출장해 있었다.[2]

7. 관련 문서[편집]


[1] 광주일고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11회말 2사 1,3루 상황까지 군산상고가 4-3으로 앞서고 있었으며 타석에 들어선 이종범이 박종철을 상대로 극적으로 역전 끝내기 2루타를 때려내며 우승 트로피는 광주일고가 가져갔다. 이종범이 스톡킹에 출연해서 본인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은 투수가 박종철 심판이라고 말했다.[2] 2018년, 2019년은 주심, 2020년은 3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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