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목록/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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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재 기준[편집]


1. 한간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포함할 것
1. 정상참작이 가능한 경우, 애매한 경우나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표시


2. 목록[편집]



2.1. 전국시대[편집]


  • 곽개: 전국시대를 끝냈다고 볼 수 있는 조나라(趙)의 매국노. 진나라가 벌벌 떠는 염파, 이목이라는 전국시대 4대 장군중 2명이나 있었지만 곽개의 반간계에 조나라가 힘도 못쓰고 멸망하며 이후 전국시대의 종말이 일어났다. 과언이 아닌 게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며 상대하던 조나라, 한나라, 송나라가 진나라로부터 다른 나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공격당할 때 제나라가 도움을 주었다면 그나마 시간을 벌었겠지만 제나라 왕이 진시황의 "내가 이쪽 먹을테니 동쪽은 너님 왕 먹으셈.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는 사탕발림에 넘어가 구원하지 않았고 결국 진시황은 제나라에게 통수를…진나라 장군인 왕전염파이목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조나라를 치기 위해 곽개를 매수했고 염파가 조나라 군대를 이끌고 연나라로 쳐들어가자 염파를 모함해 이에 빡친 염파가 위나라로 도망가게 만든다. 진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염파를 다시 불러오라는 조나라 왕의 어명을 듣고 염파를 찾아간다. 이때 염파는 자신이 아직도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밥한말, 고기 열근을 먹고 말을 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우리의 곽개가 이를 아니꼽게 보아서 "염파는 워낙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거짓 보고를 올렸다. 이후 진나라가 쳐들어갔으나 이목이 지키고 있던 조나라를 쉽게 공략하지 못해 또다시 곽개에게 도움을 요청. 반간계로 이목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석 달 후 조나라가 멸망하게 되었다. 임팩트 면에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사악한 간신배. 제나라를 멸망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재상 후승(后勝)과 견줄 만하며 황호도 곽개에 비하면 중국역사에 끼친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다.


2.2. 전한[편집]


  • 중항열☆: 흉노의 영토에 가기 싫다고 생떼를 부리다가 결국 강제로 끌려가자 '내 반드시 한의 재앙이 되겠다'고 선언, 흉노에 가서는 선우에 붙어서 여러가지 유용한 것들을 컨설팅 해 주었는데, 그 중 핵심이 한나라의 흉노에 대한 한화정책을 파악해 철저히 분쇄해 버렸던 것이고, 전한의 자존심과 국력에 심각한 손실을 입혔다.[1] 한문제 같은 내치 명군이 아니었으면 나라가 휘청거렸을 정도. 하지만, 중항열의 행보도 이해는 갈 만한 것이, 흉노가 어디에[2] 있는 나라인지를 생각하면 그가 이토록 모국인 한나라를 증오했던 것도 당연하다. 온화한 지역에 살던 농경민족 출신자에게 춥고 황량한 유목민들의 나라로 가라는 건 사실상 거기서 죽으라는 소리나 다를 바 없고, 때문에 중항열 입장에서는 자기더러 매국노 운운하기 전에 나라가 먼저 자기를 버렸다고 볼 수 있다.


2.3. 후한[편집]


  • 곽도: 당대 최강의 세력이었던 원소의 세력을 혼자서 전부 와해시켰다. 일단 곽도의 말은 단 하나도 올바른 것이 없었고, 이것이 관도대전에서의 원소군 패배로 이어진다. 이후 곽도는 근신하기는 커녕, 원소가 급사하자 원소의 장남 원담을 충동질하여 원가의 내분을 불러왔다. 심지어는 실권을 모두 장악하고 주군인 원담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원담이 원상에게 패배하자, 조조에게 항복해서 원상을 죽이고 다시 조조를 도모하자.는 희대의 망언을 하였고, 이에 원담은 아버지의 원수에게 자신의 근거지를 알아서 가져다 바친다. 원담이 다시 반란하자, 곽도 역시 그와 함께 죽었다.
  • 봉서
  • 서봉


2.4. 삼국시대[편집]


  • 마막☆: 강유관을 지키고 있었지만 당시 촉나라 정벌군을 이끄는 등애가 나타나자 바로 항복했으며 훌륭한 촉나라 가이드가 되어 촉한 멸망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연의의 영향으로 잘못 전해진 것으로 정사의 기록을 보면 정황상 전투를 치룬 것을 보인다.
  • 마무: 자신의 자리를 잃게 했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다른 나라에 투항했으며, 투항한 곳에서도 반란을 일으키다가 죽었다.
  • 맹달: 이쪽이야말로 진정한 매국노의 본좌. 유장을 배신해 유비에게 나라를 바쳤고, 유비를 섬길 때는 유봉과 더불어 상용을 지키고 있다가 형주 공방전 당시 관우의 구원 요청을 거절해 관우를 죽음으로 내몬 후 유비의 보복이 두려워 홀로 위로 도망가 유봉을 내쫓고 상용을 위에게 바친 뒤 눌러앉아 사실상 독립된 세력으로 군림한다. 하지만 위나라의 신하로 있어도 자기는 촉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해 제갈량이 북벌을 개시하자 제갈량과 내통해 위를 배반, 제갈량의 촉군이 장안을 공격하면 자신은 낙양을 공격하려 했으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사마의에게 죽음을 당한다. 사실 유장을 배반한 것은 도저히 지도자로서 가망이 없으니 더 훌륭한 지도자에게 익주의 미래를 이끌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가 있고, 유비를 배반한 것은 군악대 문제로 반목하면서 유봉이 사적인 불화로 일을 그르친데다가 맹달은 뒤늦게 관우의 구원을 시도한 정황이 있어서 참작의 여지가 있으나, 위나라를 배반한 것은 조비의 총애를 잃어 불안해졌다는 이유로 배반했으며, 촉나라에 배반을 시도하면서도 언행이 늘 이랬다저랬다 자꾸 고치는 행위를 보였다.
  • 문흠: 공을 세우긴 했지만 전공을 부풀리거나 전리품, 포로를 독식하는 일이 많았고, 덕망이 없고 오만한 성격 탓에 주변에 수많은 미움을 받아 스스로 신변을 어렵게 했는데, 조방이 폐위되어 신변의 위협을 느껴 사마씨에 반발한 관구검과 이해가 일치해 반란을 일으켰다. 패배하면서 곽회에게 편지를 보내 촉에 귀부해 같이 위나라를 치자고 하는 등 외세의 힘을 빌려 위나라를 치게 하려는 행위까지 했는데, 여러 정황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 제갈탄과 달리 본인의 욕심으로 인한 행실 문제라 참작의 여지가 없다.
  • 미방: 촉한의 군인으로써 자신들이 지켜야 할 군대와 영토를 들어다 오나라에 바친 매국노로 자기 죄(군수물자를 태워먹은 것)에 대한 문책을 들은 일로 관우에게 앙심을 품고 오에 적극적으로 항복했다. 이 일로 인해 미방의 형인 미축이 부끄러워 분사할 정도였다.
  • 보천: 제2의 한종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인☆: 영토를 오나라에 바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고 하지만, 이는 연의의 영향으로 잘못 전해진 것이고 정사의 기록을 보면 참작의 여지가 있다. 정사의 기록에 따르면 오나라의 내응을 이용한 계략에 속아 하는 수 없이 항복해 울면서 투항했다. 심지어 사인이 투항한 후에 우번이 휼병(기만)이라며 공안을 지킬 사람을 정한 후 그를 데려가 남군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 양의: "위씨[3]를 따랐을걸!"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천하의 매국노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제갈량이 죽은 후 양의는 자신이 승상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는데 오직 자기 혼자만의 관점에서 봤을 때만 뜬금없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지극히 당연하게도 장완이 승상이 되자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조정에 강력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대역죄인은 참수해야 하지만 유선이 워낙 사람이 착했던지라 그냥 어떻게든 양의의 죽음만은 모면시켜 보려고 서민 강등 선에서 일단락 지었으나 주변 사람들에게 또다시 조정을 욕하며 모반을 꾀하는 등 매국노 짓거리를 일삼자 국문을 위해 압송 조치되었는데 압송당하는 도중 자살했다. 다만 여기서 좀 더 자비롭게(…) 해석하자면 양의는 실제 반란을 계획했거나 진행하진 않았고 단순한 후회의 의사를 보였을 뿐이다. 또한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되돌릴 수 없습니다."라고 덧붙이가도 했는데 이는 양의가 진짜로 촉한을 배신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앙숙 위연 역시 반란에 실패하고 토벌당했다.
  • 유봉: 유비의 양자 겸 상용태수. 맹달과의 사적인 불화만을 이유로 군사를 지원하지 않아 중요한 영토와 한 지역을 총괄하는 인재를 잃게 했다. 신탐과 신의를 온전히 복속시켜야 하는 자신의 일도 소홀히 하고 오히려 이들과 반목했으며, 관우의 사망은 맹달보다는 유봉의 지분이 더 크다.
  • 장서: 촉나라의 장수이며 263년에 부첨(부융의 아들)과 같이 양평관을 지키고 있었지만. 당시 촉나라 정벌군을 이끄는 종회가 오자 장서가 부첨에게 직접 싸우겠다고 하고 장서는 종회를 유격하러 가지만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다. 그덕에 양평관은 함락되었고 그것이 촉한 멸망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양인관구가 무너졌음에도 오히려 종회는 강유에게 발목을 잡힌다. 이에 등애가 무모한 짓을 해서 마막의 도움으로 촉을 멸망시킨 것이다. 종회의 무능을 엿볼 수 있다.
  • 제갈탄☆: 사마씨와의 권력 투쟁에서 소외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국인 동오에 투항하여 회남을 들어 반란을 일으켰다. 조위에 대한 충성에서 일어났던 관구검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앞장서고, 이후에도 사마씨에게 붙어 있었으며, 심지어는 고귀향공을 협박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겉으로는 기회주의자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치통감에서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하는데, 그는 원래부터 위나라 황실을 수호하고자한 근왕주의자였으나, 단지 본인이 사마씨 가문의 인척이자 사적으로 아들 제갈정사마염의 친구였고, 한편으로는 하후현 등의 반 사마씨 중신들과도 친분이 있어서 양쪽의 관계를 관망하면서 사마씨의 세도 정치를 타도하고자 가치부전했을 뿐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하면 언뜻 기회주의적으로 보이던 제갈탄의 행적이 명쾌하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주류 역사학계도 자치통감에서의 평가를 긍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어찌됐든, 이와 별개로 능력은 있던 인물이다.
  • 진지☆: 비의가 암살당하자 유선에게 아부해서 고위직을 꿰차고는 시시건건 강유의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황호가 조정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장본인으로, 간접적으로 촉의 멸망에 기여했다. 그러나 진지 본인은 어느 정도 능력이 있었고, 성향이 그릇되어 인선을 잘못했지만 그 사람이 나라를 말아먹게 했을 거라 짐작할 수 없었다는 점만은 참작의 여지가 있다.
  • 한종: 그의 아버지 한당은 3대에 걸쳐 오나라의 손가를 모셔온 충신이었지만 그는 위나라에 투항해 오나라와의 싸움에 앞장섰다. 그리고 정봉에게 사살당했다.
  • 황호: 유비의 아들 유선을 타락하게 만들고 장완, 비의, 동윤 등 제갈량 사후 촉을 이끌던 이들이 사망하자 권력을 잡고 후계자 강유를 배척하는 등의 일을 했고, 위나라가 촉을 공략한다는 소식에 무당을 통해 공격 안한다고 유선을 안심시켜 나라를 지키는 일에 대해 유선이 안일하게 대처하게 만들어 촉한을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2.5. 서진[편집]




2.6. 남북조시대[편집]


  • 소찰: 후경의 반란으로 양나라가 무너지는 와중에 후경 토벌에 힘을 보태기는 커녕 개인의 원한을 앞세워[4] 선비족 정권의 서위에게 봉지 양양을 들어바쳤다. 원군에 힘입어 강릉을 함락, 원제를 살해하고 후량 정권을 세워 북주의 괴뢰 행세를 하였다.


2.7. 송나라[편집]


  • 유예: 북송의 판관으로 금나라에 의해 제나라라는 허수아비 황제가 되어 북송의 황릉을 도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 진회: 중국의 대표적인 매국노. 다만 동북공정 이후 중국 학계에서 재조명 움직임이 벌어지며 오히려 영웅의 대명사인 악비가 비판받기 시작했다. 다만 민간에서는 진회가 여전히 부정적인 매국노로 취급받는다.
  • 황잠선: 북송을 망하게 한 매국노.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진회와 맞먹는다.


2.8. 원나라[편집]


  • 장홍범☆ : 아버지가 원나라에 투항한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국가는 원나라이기에 매국노라 볼 수는 없으며, 그가 한족이면서 몽골족을 섬겨 한족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한간 취급을 받는다.

2.9. 명나라[편집]


  • 모문룡: 우호국인 조선을 상대로 약탈 행위를 하는 등 외교 관계에 큰 문제를 주는 행위를 많이 했으며, 군사적인 업적에 대해서는 평가가 많이 갈리는 점이 있으나, 적국보다도 우호국에게 더 피해를 준 것이 많았으며, 원숭환이 그에 대해 임금을 속이고 많은 관원을 자신의 사유물화했고 반역자라며 직접 죽일 정도였다.
  • 오삼계: 이자성이 북경을 점령하자 청나라에 투항하여 이자성을 물리친 후 청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남명 정권을 붕괴시켰다. 그런 주제에 강희제가 삼번을 철폐하고 자신의 영지를 회수하려 하자 명나라의 부흥을 내걸고 삼번의 난을 일으켜 청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삼번의 세력이 서로 화합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남명의 영력제를 직접 처형했다는 과거가 있었으므로 정통성과 명분이 심히 부족했다.


2.10. 청나라[편집]




2.11. 중화민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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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중화사상에 입각해서 주변의 우방국들로부터 조공을 받고 큰형님 대접받던 한나라더러 흉노에 조공하고 칭신하라고 시켰다. 이러니 전한 조정에서는 격분하여 흉노에 대한 공격을 주장했으나, 한무제 집권 이전까지는 뭘 어찌해볼 수도 없었다.[2] 몽골, 시베리아, 중앙아시아.[3] 여기서 말하는 위씨는 위나라다. 위연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제갈량 사망 직후까지 사사건건 대립했던 위연을 따른다는 건 자기모순일 뿐이다.[4] 실질적 후경 토벌을 주도했던 상동왕 소역이 지원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친형인 하동왕을 토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