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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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의 반신
韓綜 | 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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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석성후(石城侯)손오
→ 광양후(廣陽侯)조위

한(韓)
이름
종(綜)
부친
한당(韓當)
생몰기간
? ~ 252년
주군
오대제
위명제
위애제
국적
손오조위



1. 개요[편집]


삼국시대의 인물로 한당의 아들.


2. 정사[편집]


227년에 한당이 병에 걸려 죽자, 아버지의 작위 석성후(石城侯)를 세습하고 아버지의 병력을 휘하에 두었다. 그 해 7월, 손권(孫權)은 조비(曹丕)가 죽은 틈을 타 강하(江夏)와 석양(石陽)을 공격하러 가면서 부친상을 당한 한종에게 무창(武昌)을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한종은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도 달라지는 것이 없이, 근신하지 않고 음란한 행동을 벌이며 직무를 태만히 하였다. 손권은 죽은 한당을 생각하여 한종을 벌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으나, 한종은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해 항상 불안해하였다.

결국 한종은 그 해 12월에 한당의 시신이 든 관을 수레에 싣고 가족들과 휘하 병사들을 데리고 조위에 투항했다. 위나라에서는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광양후(廣陽侯)에 봉했다.

이후 한종은 25년간 위나라의 장수로 봉직하면서, 위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오나라의 변경 지역을 침략하여 백성들을 자주 살해했다. 손권은 이를 갈며 그를 증오했다고 한다.

252년 12월, 조위의 실권을 쥐고 있던 사마사(司馬師)가 대군을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호준(胡遵)은 제갈탄(諸葛誕)과 함께 동흥(東興)을 공격했는데, 한종은 호준의 부장으로 전부독(前部督)의 직책을 가지고 선봉을 맡았다.

이에 오나라의 태부(太傅) 제갈각(諸葛恪)은 정봉(丁奉), 당자(唐咨) 등을 선봉으로 삼고 위군에 맞서게 했다. 정봉은 병력 3000명을 거느리고 호준의 진영에 접근했는데, 호준과 한종은 적과 대치 중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원래 오나라에서도 음란한 행동을 하고 직무를 태만히 했는데 버릇을 버리지 못했던 듯.

정봉이 병사들을 고무하며 위군을 일제히 공격하자, 한종은 오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제갈각은 손권이 살아있을 때에 한종을 증오하였던 일을 생각하여, 한종의 머리를 베어 건업(建業)으로 보내 손권의 묘에 바쳤다.


3. 연의[편집]


한종이 창으로 정봉을 찌르려다가 도리어 정봉의 단도에 찔려 죽는 것으로 나오며, 한당의 아들이라는 말은 없다.


4. 평가[편집]


한종은 음란하고 반역자다.[1]


호부견자의 대표적인 사례로 취급된다. 아버지 한당이 비록 '삼국지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명장'까지는 아니지만 손견부터 시작해서 손책손권까지 3대에 걸쳐 보좌한 오나라의 충신 중 충신인데, 그 아들이라는 놈이 자기 아버지 시신까지 챙겨서 적국 위나라로 갔으니 욕을 먹어도 싸다. 시신을 챙긴 이유도 위나라에 잘 보이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적국에 투신한 이유도 자기가 음탕하고 태만하게 놀고먹다 그걸로 혼나는 게 두려워서였으니 정상참작의 여지도 없는 쓰레기 배신자다.


5. 미디어 믹스[편집]



5.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편집]


파일:한종.jpg
삼국지 14

삼국지 1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일러스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창을 든 채 어깨에 매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솔 68, 무력 75, 지력 28, 정치 21, 매력 15다. 개성은 동원, 공명, PK에서는 난폭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아도, 정책은 정사의 행적을 반영해서 침략황폐 Lv 3, 진형은 봉시, 전법은 교란, 구축, 강습,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5.2. 진삼국무쌍 시리즈[편집]


후반기 전투가 편입된 진삼국무쌍 6부터 클론 무장으로 나오며 진나라 시나리오인 동흥 전투에서 한종 옆에 있는 병졸에게 말을 걸면 한당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진삼국무쌍 7에서 무쌍무장으로 승급했는데 2P 컬러가 위나라의 푸른 색이다. 한종이 아버지의 관을 챙기고 위에 항복한 걸 반영한 것으로 추정.


5.3. 삼국전투기[편집]


아버지 한당의 옷을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전대물의 그린 유니폼을 입고 있다. 동흥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프로필에서는 음란한 놈, 싸이코패스라며 직설적으로 까였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무력은 정봉의 휘하 병사 몇 명 정도는 가볍게 쓸어낼 정도로 제법 괜찮게 묘사된다.

동흥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본래 한당 사후 그의 뒤를 이어 무창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한종은 수비는 제대로 안 하고 맨날 놀고먹기 바빴으며, 손권은 딱히 처벌할 마음이 없었음에도 한종은 제 발이 저려 그대로 위나라로 튀어버린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고 끝났으면 괜찮았겠지만 한종은 위나라로 넘어간 이후 툭하면 오나라 국경을 넘어와 백성들을 학살하고 다녔고, 그 때문에 오나라에서는 말 그대로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고 묘사된다.

동흥 전투에서는 호준의 부장으로서 환가와 함께 부교를 건너 제방에 올라 동흥제 공략을 시도했다. 한종은 동흥제의 서성을, 환가는 동성을 공략하기로 했는데 둘 다 적의 수비에 막혀 좀처럼 진도를 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위군 진영이 주연을 펼치던 동안 정봉이 기습을 시도했고, 한종은 나름대로 저항했지만 결국 정봉에게 간단히 사망했다.

여담으로 한종의 비중이 높았던 동흥 전투 2화에서 최훈이 음란한 짓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사서에 빠져있어 그리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내용의 드립을 친 덕에 배댓이 대부분 섹드립으로 가득차기도 했다. 이후 독발수기능의 난 7화에서 사서가 간략하게 묘사한 마륭의 편상거를 3세기의 탱크마냥 상상해서 묘사하자 베댓에는 한종을 단행본으로 그리자는 드립까지 나왔다.

[1] 삼국지 오서 한당전 부 자 종전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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