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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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비황족 추존 황제
岳聖帝君 | 악성제군


남송 추봉 왕작
岳忠武王 | 악충무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Yue_Fei_temple_12.jpg

출생
1103년 3월 24일
북송 상주 탕음현[1]
(現 허난성 안양시(安阳市) 탕음현)
사망
1142년 1월 27일 (향년 38세)
남송 임안부
(現 항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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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악(岳)

비(飛)
부친
수국공(隋國公) 악화(岳和)
모후
주국부인(周國夫人) 요씨(姚氏)
능묘
악비묘(岳飛墓)
형제자매
동생 악번(岳翻)
배우자
불명
자녀
5남
신장
170cm[1]

붕거(鵬挙)
작호
진왕(晉王)
묘호
없음
관직
선무사(宣撫使)
작호
악왕(鄂王)[2]
시호
악무목왕(岳武穆王)
충무왕(岳忠武王)
삼계정마대제
(三界靖魔大帝)
충효묘법천존악성제군
(忠孝妙法天尊岳聖帝君)


1. 개요
2. 생애
3. 악비의 무덤
4. 재평가
4.1. 정치적 재평가
4.2. 군사적 재평가
5. 기타
6. 대중문화에서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怒髮衝冠憑欄處 瀟瀟雨歇

성난 머리칼은 관을 뚫을 지경인데,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니 쓸쓸히 내리던 비가 그치네.

抬望眼仰天長嘯 壯懷激烈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 지르니, 장사의 감회가 끓어오른다.

三十功名塵與土 八千里路雲和月

삼십년의 공명이 한낯 먼지에 불과하고, 팔천리 내달렸던 길도 그저 구름과 달빛처럼 흔적없구나.

莫等閒 白了少年頭 空悲切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 젊었던 머리칼은 어느새 희어졌으니 비감한 마음만 애절할 뿐.

靖康恥猶未雪 臣子恨何時滅

정강의 치욕은 아직 설욕하지 못했으니 신하로서의 한을 어느 때나 풀 수 있을 것인가.

駕長車 踏破賀蘭山缺

전차를 몰아 하란산[2]

을 짓밟아 무너뜨리리라.

壯志饑餐胡虜肉 笑談渴飮匈奴血

배 고프면 오랑캐의 살로 배를 채우며, 목 마르면 흉노의 피를 마시리라.

待從頭 收拾舊山河 朝天闕

옛 산하를 다시 되찾은 후에야 천자를 만나 뵈러 가리라.

만강홍(滿江紅)

중국 북송 말기 ~ 남송 초기의 무장으로, 금나라에 대항해 싸웠던 남송명장이자 서예가, 명나라 시기의 비황족 추존 신황(神皇)이다.

는 붕거(鵬挙). 시호는 충무(忠武).[3] 남송의 영종이 1204년에 악왕(鄂王)에 봉했기 때문에 흔히 악왕이라고도 부른다. 중국[4]의 대중들 사이에서는 거의 이순신급 명장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5] 국가를 지키려다가 마지막에 간신의 억울한 모함으로 죽었기 때문에 명나라의 명장인 원숭환과도 이미지가 겹치는 편이다.[6]

명나라 만력제 시기 제호(帝號)인 삼계정마대제(三界靖魔大帝)[7]로 추존되었고, 곧 천존(天尊) 악성제군(岳聖帝君)의 신호가 추시되어 황제와 군신(軍神)을 겸하는 신황(神皇)의 반열에 등극했다.

다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중국 정부의 변화한 역사관으로 교과서에서는 구국의 영웅이라는 평가를 지양하고 있으며 이와 별개로 불분명한 기록과 과장된 전공으로 학계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2. 생애[편집]


1103년 하남성 상주[8]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송사 <악비전>에 따르면 그가 태어날 때 고니처럼 큰 새가 지붕 위에 앉아서 이름이 비(飛)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자도 비슷한 의미인 붕거(鵬擧)라고 지었다. 한편 악비가 태어난 직후 황하가 범람해 고향 마을은 박살났고, 그 과정에서 부친인 악화(岳和)가 홍수에 휘말려 익사하여 어머니인 요씨와 함께 하북으로 옮겨간다.[9] 또 전술한 황하가 범람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악비를 안은 채 커다란 바구니를 타고 홍수에서 살아남았다는 야사가 있다.

악비는 어려서부터 용맹하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매우 셌다고 한다. 그의 무술 스승 진광(陳廣)[10]으로부터 창술과 검술을 배우고 주동(周同)이라는 명궁으로부터 궁술을 배워 300척 밖까지 화살을 쏘고, 쇠뇌를 8석까지 감당할 정도로 뛰어난 활 솜씨를 갖추었다고 한다. 또한 학문 공부 역시 게을리하지 않아 손자, 오자 등을 밤낮으로 탐독했으며 역사서를 많이 읽었다고 전해진다.

1122년 송나라 군에 의용병으로 입대하여 개봉을 수비했다. 정강의 변으로 송나라 조정이 피난하자 우한과 양양을 중심으로 후베이 성의 군벌이 되었다. 1126년에는 화북 지방을 침공한 금나라 군에 맞서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후퇴하였으며 수도 카이펑이 함락되자 고종을 따라 남하한다. 악비가 이끄는 군대는 반드시 승리하며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아 악비가 지나는 마을의 백성들은 앞다투어 술과 고기를 바쳤으며, 악비군은 악비가 이끄는 군대라는 의미로 '악가군(岳家軍)'이라고 불렀다. 악가군이 얼마나 강했는지 금나라 병사들은 '태산을 흔드는 건 쉽지만 악비의 군사를 흔드는 건 어렵다.'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악비는 한세충, 장준, 유광세 등의 군벌들과 합세하여 금나라 군을 회하 이북과 진령산맥에서 저지시키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구릉지대가 많은 강남 지방의 지형의 이점을 살려 금나라의 철기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하였다.

고종과 함께 남쪽으로 피신한 악비는 정원장군(靖遠將軍), 1134년 임명된 청원군절도사(淸遠軍節度使)를 거쳐 1136년 선무부사(宣撫副使), 1137년에는 선무사(宣撫使)로 임명되어 장강과 회하 사이의 일부 지역을 수복했다.

이후 중원 수복을 위해 악주[11][12]에 군대를 주둔시킨다.

이후 악비는 강하게 북벌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금나라와 싸워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자는 주장으로 인해 주화론을 밀던 재상 진회와 매우 심한 갈등을 빚게 된다. 진회는 매번 승전을 거듭하는 악비를 극도로 경계하였으며 악비를 비롯한 주전파 군벌들은 주화파 관료들과 지속적으로 충돌한다.

기록에 따르면 악비는 4번에 걸쳐서 북벌을 했는데 4번째 북벌에서는 악가군을 이끌고 금나라 군대를 여러 번 쳐부수고 낙양과 정주 등을 회복했으며, 북송의 수도였던 개봉에서 불과 40여 리 떨어진 주선진까지 점령했다. 이때 금나라 대장 올출은 여러번 패전하자 개봉을 버리고 퇴각하려고 했으나, 한 문관의 만류로 개봉을 끝까지 수비한다. 그 문관은 올출의 말고삐를 잡으며 "예로부터 간신이 조정에서 전횡하면 외지에서 아무리 능력 있는 장군도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곧 송나라 내부에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올출은 문관의 말을 들었다.[13]

악비는 원래 을 좋아했지만 전쟁 시에는 이를 금했다. 그러나 금나라 수도 근처의 황룡부까지 진격하면 병사들에게 거나하게 먹자고 약속하고 다음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이러한 악비의 주전론으로 인해 금과 화친해야한다는 주화파 재상 진회와의 마찰은 심화된다. 진회는 1141년 군제개편을 명목으로 기습적으로 당시 군벌들의 지휘권을 모두 박탈하고 모든 병사들을 중앙군 휘하로 전속시킨다.

당시 남송의 황제 고종의 마음도 진회 쪽에 더 기울어져 있던 터라 그를 12번이나 불러 소환시키고, 악비는 양자인 악운, 악가군 간부였던 장헌과 함께 투옥되었다. 악비는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로 감옥에서 살해당하고 만다. 죽기 전에 유언으로 "나의 결백한 마음은 하늘의 태양처럼 밝을 것이다."라 하였다 한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는데, 일설에는 살가죽을 벗겨 죽였다고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사약을 받아 사사당했을 것으로 본다.

이때 악비의 전우이자 또다른 주전파인 한세충이 "악비의 죄상이 무엇입니까?"라며 따지자 진회"아마 있을지도 모르오"(막수유, 莫須有)라는 궁색한 대답을 했고, 이에 기가 막힌 한세충은 "고작 그 세 글자로 천하가 납득하겠소이까?!"라며 한탄했다 한다.

이후 진회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적극적으로 매국을 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라에 충성을 한 신하였지만 지금도 진회를 까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후대 중국인들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 중 하나다. 사실 당대에도 진회의 평은 좋지 않았던 것이 진회는 재상이 되었을 때 안하무인으로 매우 오만했으며 문자의 옥을 일으켜 자신의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할정도로 잔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싫어했다고 알려진다. 특히 진회의 권력은 진회를 발탁한 황제인 고종 본인조차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커져서, 진회 사후에는 악비를 사랑하고 진회를 증오하던 효종에 의해 진씨 일족이 멸족당한다. 악비는 미천한 신분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죽어서는 최고의 시호와 으로 추존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진회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평가는 허구한날 오물을 뒤집어 쓰는 4인방 동상이 잘 보여준다.

악비 사후에는 금나라에 대한 굴욕적인 화친 협정을 치욕으로 봤던 당대 인사들의 여론으로 인해 복권 여론이 조성되었으며, 1155년 진회가 죽고 누명이 풀려 혐의가 무효화되고 신원되었다. 1178년에는 효종에 의해 시호무목(武穆)을 받아 구국의 영웅으로 평가되었다.[14] 1204년에는 영종으로 추존하여 항저우의 악왕묘(岳王廟)에 배향되었고, 시호를 충무로 개정하였다. 악비 사랑이 지극하였던 효종은 악비가 살아있었다면 모든 것을 해주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3. 악비의 무덤[편집]


악비의 무덤인 악왕묘(鄂王墓)는 항저우시 시후구에 조성되어 있다.

악비의 시체를 진회가 훼손할 것을 염려한 옥지기가 시신을 자신의 집에 있는 나무 밑에 묻었고, 자신이 죽을 무렵 아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후에 악비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져, 효종 때 악비의 묘는 크게 지어졌고 1204년 과거 고종 때 있던 일을 재평가하여 악비를 악왕(鄂王)으로 추봉하고 커다란 동상도 만들어지게 되어 무덤은 악왕묘(鄂王墓)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매국노 진회는 물론 그 부인 왕씨, 묵기설,[15] 장준[16]과 함께 무릎 꿇고 있는 동상이 만들어져 악비 동상 앞에 놓이게 된다. 참고로 아내의 동상까지 만들어진 것은, 진회가 악비를 죽일 죄명을 찾지 못해서 고민할 때, 아내의 조언으로 묻지마 처형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도 부부에게 침을 많이 뱉어서 지금 악왕묘를 가보면 동상에 침을 뱉지 말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근데 사람들이 아직도 싫어하는지 침이나 쓰레기 투척은 예사고 오물 투척도 툭하면 일어난다고 한다. 사실 침을 뱉지 않는 목적을 정말로 달성하고자 한다면 동상을 아예 치워버리면 되는데, 그러지는 않고 팻말을 걸어놓는 선에서 방치하고 있는 것은, 공산당 당국에서 어느 정도는 용인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다.

파일:external/yaplog.jp/dsc00076_p.jpg
침을 뱉지 마시오
진회와 그 일당의 동상

초기에는 이러한 사태로 오물이 넘치자 현장에서 관리할 수 있는 공안들을 배치했는데 정작 그 공안들이 더 적극적으로 오물을 투척하거나 심지어 경비용으로 준 총으로 내려치는 등의 문제가 있어(...) 현재는 상시로 공안을 배치하지 않고 있으며 적발되더라도 공안이 오물 투척을 한 사람을 폭력을 안 쓰고 팔짱 끼고 끌고 가는 수준에서 그친다고 한다. 하지만 악왕묘 역시 문화대혁명의 마수는 피해가지 못해서, 홍위병들이 악비의 묘를 파헤치고 유골을 불로 태워 재로 만들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4. 재평가[편집]



4.1. 정치적 재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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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비는 몽골족이 중원을 지배하던 원나라 시절에는 잊혔으나, 한족이 중원을 되찾은 명나라 시절에 대폭 고평가된다. 명나라의 창업자 홍무제 주원장 자신이 여진족과 다를 바 없는 북방 이민족인 몽골족을 물리치고 한족왕조를 재건했기 때문에 악비를 자신들의 선구로 본 것이다. 그리하여 주원장은 악비를 신격화 했고, 이렇게 신이기 때문에 "공"이나 "왕" 같은 작위를 추증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악비를 높였다. 만력제 시기가 되어서야 아예 황제급으로 높인 삼계정마대제충효묘법천존악성제군(三界靖魔大帝忠孝廟法天尊岳聖帝君) 이라는 시호를 붙여주었다.

한족 왕조였던 명나라 시기에는 호국 영웅으로 존경받았지만, 악비와 대립했던 여진족의 후신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시절부터 악비 숭배는 퇴색한 면이 있었고[17], 청나라 조정은 악비 대신 이전부터 군신으로 칭송되었던 관우를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 관우를 높여 성자이자 황제로 칭한 관성대제(關聖大帝)라는 시호를 붙여준 것도 바로 순치제였다.[18]

청나라는 망했지만, 악비숭배는 또다른 의미에서 다시 퇴색하게 된다. 중국 공산당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소수민족을 모두 아우르는 중화민족다민족국가 개념을 주장했고, 악비는 한족중심주의를 상징했기 때문에, 이런 중국 정부 방침과 잘 맞지 않아서 정부차원의 기념사업은 퇴색되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많은 봉건왕조의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전국에 있던 사당이나 목상이 홍위병에 의해 박살났다.[19] 항저우시에 있던 악왕묘도 당연히 홍위병에 의해 훼손되었다. 이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직후인 1979년 서둘러 복원되었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한국에서의 오해와는 달리 달리 당시 홍위병들은 중화민족주의나 팽창주의를 봉건주의의 잔재로 보고 맹비난했기 때문이다.[20] 그리고 악비는 농민반란 진압에 참여한 일이 있는데 아무래도 민중사관을 표방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성향에도 맞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악비를 폄훼하기 위해 악비와 대립했던 진회를 높이 평가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근거없는 주장으로 진회는 한간의 선구로 최근까지도 규탄되고 있다.[21] 즉 악비를 크게 높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회 같은 반역자까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22][23]

이렇게 만주족이 지배층이던 청나라 시절부터 악비 숭배는 퇴색하기 시작했으며, 다민족국가를 표방하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소수민족의 정서를 고려하면서 악비에 대한 찬양은 좀 사그라들었다. 이를테면 교과서 등에서 악비를 가리키는 '한족의 영웅' 등의 표현을, '중국의 영웅' 등으로 소수민족들을 고려한 표현으로 바꾸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초등학교의 어문 교재에는 악비의 행적이 실리고 있으며, 이는 악비가 평가의 강도는 있지만 체제를 뛰어넘어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협소설로 이름난 김용도 아주 세심하게 공을 들여 찬사를 바친 인물이기도 하다. 사조삼부곡은 모두 악비와 연관이 있으며, 그의 의지가 이어져 명나라 건국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4.2. 군사적 재평가[편집]


정치적인 문제와 별개로 학계에서는 이전부터 악비의 전공을 재평가하는 중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악비의 전공은 악비 후손들이 쓴 행장을 바탕으로 한다. 정사인 송사 악비전 역시 행장을 바탕으로 저술한 데다 보병 몇백 명으로 기병 몇만을 몰살시켰다는 식의 황당한 전과가 많아 신뢰하기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금사(金史)에는 악비가 패한 기록 역시 여럿 나오거니와, 악비의 전공은 다른 기록과 교차검증이 안 되거나 하다못해 공신력 있는 사서에 채택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사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악비의 최대 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선진 전투만 봐도 동시대 남송의 사서 건염이래계년요록(建炎以來繫年要錄)[24]이나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25]에는 아예 주선진 전투가 나오지도 않는다. 괜히 송사 악비전의 내용을 신괴할 수 없다고 학자들이 비판하는 게 아니다. 악비전 기록만 보면 8천으로 조성의 10만 대군을 이기고 불과 5백 명으로 주선진에서 올출의 10만 대군을 털었다는 얘기나 8백 명으로 왕선등의 도적 50만 명 이상을 남훈문에서 격파했다는 얘기가 줄줄이 나오니... 물론 악비급으로 소수의 군세로 다수의 군대를 턴 명장들이 없지는 않았으니, 악비도 그 급이라고 한다면 아예 말이 안 되지는 않지만.

또한 현대에는 그간 악비의 명성에 묻혀 당시 전공을 세운 종택[26], 충사도[27], 한세충, 맹공 등 그동안 악비에 가려 상대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다른 인물들이 다시 재조명받고 있다. 특히 정통 사서를 기준으로도 초인적인 업적을 이루어냈음에도 후배인 악비의 대중적 인기에 묻혀 부각되지 못했던 한세충이 진정한 인간흉기로서 인정받는 추세이다.

악비의 처세술 또한 좋지 않다고 지적받는다. 그는 평소 우직한 성격답게 송고종의 어그로를 끄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금군에게 함락 직전이었던 임안과 송고종을 구한 후 악비는 송고종에게 황태자 책봉을 건의한 것이다. 악비 입장에선 국가의 후계 구도를 든든히 하자는 의도였을지 모르나, 송고종 입장에선 그야말로 위세등등해진 군벌 세력이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어그로로 보였을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이후 송고종은 악비를 견제하고자 주화론을 주장한 진회를 지지하였다.[28]

말 그대로 정치에는 까막눈이었던 악비는 재상 이강을 비난하는 실수도 저질렀다. 이강은 금나라가 북송을 침공할 때 일개 문관의 신분으로 개봉 수성전을 지휘하여 격퇴시켰던 구국의 영웅으로, 그 능력과 명성 때문에 고종은 그의 정치적 성향을 싫어하면서도 민심 수습 차원에서 재상으로 기용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인물을 황잠선, 왕백언 같은 주화파[29]와 동일하게 취급하며 비난했으니 큰 실수였다.

현대 들어선 많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악비의 시《만강홍》(滿江紅)이 명나라 시대의 위작이라는 판정도 받았으나 지금까지도 진위 여부에 대해 많은 견해가 있으며 위작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악비라는 인물이 보통 장수를 뛰어넘는 명장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악비가 충무의 시호를 받고 왕으로 추숭된 후 대대로 칭송받는 이유는 악비가 생전에 공적이 뛰어난 무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사 기록이라고 하여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어떤 장수의 전공을 조작하거나 과장할 수는 있어도 졸장명장으로 띄우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공적이 과장됨이 있고 없고 차이이다.


5. 기타[편집]


  •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이지란/퉁두란, 청나라의 시조 누르하치가 그의 먼 직계후손이라는 주장이 있다. 족보상으로 따지면 악비 쪽이 한참 조상님이 된다고. 청해 이씨 족보에서는 남송의 명장 악비가 간신 진회의 참소로 죽게 되자 악비의 다섯째 아들인 악정(岳霆)이 화를 피해 북쪽으로 올라가 여진족 행세를 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주장을 따르면 이지란은 악비의 7대손이 된다.

또한 그 이지란의 여진족 사촌의 후손이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을 건국한 누르하치라고 한다. 정확히는 이지란의 출신이 여진족 중에서도 건주여진 출신인데, 종형제 중 하나가 같은 부족의 아이신기오로 먼터무이고, 그의 6대손이 누르하치. 하지만 머나먼 직계 후손 누르하치가 세운 나라가 금나라의 명목상 후신인 후금, 즉 청나라가 되고 말았다. 실제 청나라에서는 알게 모르게 악비 신앙을 탄압하고 그 대신 충의대제 관성제군을 밀어줬다고 한다.
물론 청나라 황실이나 청해 이씨가 정말 악비의 후손인지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당시 사람들은 온갖 영웅들의 후손을 자처하기도 했으므로 일방적인 주장일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원숭환이 역적으로 몰린 후, 원숭환의 아들 원문필이 청나라에 귀순하여 원가(袁佳)씨의 성을 받고 만주족으로 민족을 바꾸어 팔기군 장수로 활약한 바 있으므로 개연성이 없는일은 아니다.
물론 이씨와 악씨 후손들의 하플로그룹을 검사해서 정말 악비 후손인지 검사해본다면 모르겠으나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의 만행으로 그의 유해가 재가 되었으므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악씨와 이씨간의 문중 차원의 공식적인 교류도 하는 등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 등 뒤에는 젊었을 때 새긴 정충보국(精忠報國: 진심으로 충성해 나라에 보답한다)이라는 문신이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 문신을 어머니가 새겼다고도 하나, 진위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래도 후대 기록에서 선비나 장수들이 정충보국 하면 악비부터 언급하는 걸 보면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후대인들에게는 사실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 이름이 같아서인지 야사에서는 장의 환생이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 훗날 세월이 흘러 명나라 시대에 원숭환이 악비와 똑같은 최후를 맞았다. 한편 청나라 때는 악비의 후손인 악종기가 조정에 출사하여 군인으로 복무했는데, 이 사람이 악비의 후손이라는 말을 듣고 증정이라는 시골 선비가 조상님을 본받아 멸만흥한을 하자며 꼬셨지만 정작 당사자한테부터 이상한 놈 취급을 받고 악종기에 의해 직접 옹정제에게 보고가 들어가며 일대 파란이 일었다.


6. 대중문화에서[편집]


  • 김용무협 소설 중에서 남송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는 악비가 쓴 병법서인 무목유서가 등장한다. 사조영웅전 본편에서는 주로 무목유서 안에 수록된 무공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며 곽정이 이것을 익히게 되는데, 후일 신조협려에서 중년이 된 곽정이 양양성을 몽고군으로부터 수호할 때는 곽정이 왕년에 무목유서로 병법을 공부했다는 말이 나온다. 일개 무림인이었고 딱히 두뇌형 캐릭터도 아니었던 곽정을 의병 비슷한 신분이긴 하지만 국가수호의 명장으로 키워낸 것이 악비가 남긴 병법서라는 떡밥.

  • 악비를 섬기는 사당은 악왕묘라고 한다. 그런데 악비보다 약간 이전 시대를 다룬 수호전에서 악왕묘가 나온다. 후수호전에서 악비가 특별출연했다(덤으로 한세충도).[30]


  • 민중의 사랑을 받는 악비인 만큼 야사도 몇가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중 하나는 악비의 성품을 보여준다. 아직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청년 시절의 악비가 어느 부자집에 하룻밤 신세를 졌는데 그 집은 전염병으로 아리따운 딸과 하인들만 남고 가족들이 모두 죽은 상태였다. 딸이 울며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자신을 아내로 거둬달라 청했는데 올곧은 악비는 부모의 허락도 없는데 함부로 홀로 남은 여성을 아내로 거둘 수 없다며 거절하고 대신 시신만 수습하여 극진하게 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딸이 악비와 작별인사를 하며 말하길, "선비님은 죽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 시신을 거두고 제를 올려주셨으니 훗날 그 이름이 빛날 충신이 되실 것입니다. 하지만 산 사람인 저의 청을 거절하시고 거둬주시지 않으니 그 끝이 좋지 못하실 듯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악비가 떠나자 자결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과연 악비는 남송의 충신으로 길이 남았지만 결국 모함을 받아 죽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야사가 있다.[31]

  • 만화 소녀침경(화타위전)에서는 송고종에게 북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진회가 이를 반대하자 황궁에서 퇴청한 후에 진회와 신경전을 벌이는데, 진회가 금나라에게 이길 수 없고 금나라에 있는 송휘종, 송흠종을 죽일 것이라 하자 분노하고 다음날에 9족과 함께 처형된다. 목만 남은 채로 살아있다가 엔란(앵란)으로부터 죽은 자를 3일간 살릴 수 있는 금황구침을 맞고 좀비인 상태에서 살아나면서 엔란과 함께 나머지 금황구침 8개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며, 한세충과 함께 메이의 조부, 메이의 숙조부로부터 의학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의술, 명성을 흠모해 속가제자가 되었고 진회와도 동문이라고 한다.

  • 2013년에 청나라 시대 소설 설악전전(説岳全傳)을 각색하[32]여 만든 드라마 정충악비가 방영되었다.

  • 소설로는 위에서 언급한 설악전전이 제일 유명하지만 퀼리티는 기대하지 말자. 스토리 라인은 판타지급으로 아주 역사와는 거리가 멀고[33] 파워 밸런스도 엉망이라 전쟁의 승부는 우주급 맹장이 아니면 법술을 쓰는 종교인들이 좌우지한다.




  • 2023년 설날 개봉한 장예모 영화 만강홍에서는 악비가 죽은 이후를 다루는데,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양천새가 주연을 맡았다.


6.1. 삼국지 시리즈[편집]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062.jpg

삼국지 12, 13, 14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고대무장으로 나온다. 일러스트도 39세의 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미청년으로 나왔다. 물론 삼국지 한정으로 미래무장이다. 능력치는 정치력 빼고 삼국지 무장들과 고대무장들, 심지어 삼국지 시리즈에 잠시 등장했던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의 무장들보다 능력치가 매우 좋다. 상술되어있듯 악비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이 게임 속에선 대놓고 먼치킨형 능력치를 보여준다. 11편에서부터 지력이 78으로 내려가나 12편에서 80대 중반으로 늘어나며 거의 완전체가 되었다. 그리고 12편부터 미래무장(고숙, 양대안, 진경지, 위지공, 진경, 이세적, 진양옥, 정성공)이 대거 삭제가 되었는데 악비만 나온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95/무력 91/지력 87/정치력 56. 보병, 기병, 궁병 관련 전법은 각각 2개 이상에 궁기병, 지식, 모략, 책략 관련 병법은 1개인 완전체 무장이다. 의리와 지력이 높으니 이간지랄과 허보도 안 통한다.

삼국지 10에서는 지력 80, 정치력 37으로 내려가고 매력 97이 추가되었다. 특기 수는 14개이며 주로 장합조운과 비슷한 편이다.

삼국지11에서는 통솔력 95/무력 91/지력 78/정치력 31/매력 98의 능력치이다. 지력이 70대 후반으로 너프됐지만 특기가 통찰이기 때문에 계략이 먹히지 않는다. 말그대로 개사기 무장이다. 다만 병종적성은 창적성 S 외에는 병기 빼고 올A란 점으로 밸런스가 어느 정도 맞는 편이다. 아무리 창병적성이 S지만 창장이 아니면 거의 방어력이 약한 부대에 불과하고, 가능한다면 지도를 가진 무장과 조합하여 병과적성(극병, 노병, 기병)를 키워주는 게 좋다. 친애무장은 관우강유. 혐오무장은 초주이다.

삼국지 12에서도 젊은 일러스트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전작보다 상승하여 통솔력 99/무력 91/지력 86/정치력 31이고 병종은 기병. 전법은 의용병으로 안 그래도 기병 자체가 완전체 병종이라 무시무시한 성능을 자랑한다. 또 내정 특기는 연병, 병심, 감시, 보수, 일기에 신무장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호걸과 귀모 특기를 동시에 가진 무장이다. 게다가 기병이라 신속도 있다. 매력 삭제로 인한 보상책인지 지력이 꽤 높아져서 군사 특기를 얻으면 군사로 사용해도 좋다.

삼국지 13에서도 등장한다. 능력치는 12편 시절과 마찬가지로 통솔력 99, 무력 91, 지력 86, 정치 31. 특기는 훈련 9, 순찰 9, 위풍 7, 신속 8, 분전 9, 연전 9, 공성 5, 수영 7, 일기 8, 호걸 8, 귀모 4에 병과적성은 창병이 S이며 기병과 궁병이 A다. 전법은 손견의 고유전법인 사자분신, 중신특성은 창술조련이다. PK 들어서는 이상위명으로 비장군을 부여받았는데, 악비와 어울리는 위명이지만 천하명장이 더욱 사기인 위명인 데다 악비와 더 잘 어울리는 듯하고, 단어의 뜻만으로는 충용의열 위명도 악비와 잘 어울리니 바꿔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삼국지 14에서는 통솔력 96/무력 92/지력 78/정치력 31/매력 95의 능력치로 11에 비해 매력이 3 떨어지고 통솔력과 무력이 1증가했다. 개성은 황금개성인 투장과 통찰 그리고 호걸, 불굴, 담력을 보유하고 있고 전법으론 단기구, 연노, 대갈, 교란, 구축을 보유하고 있는 매우 좋은 무장이다.


6.2. 영걸전 시리즈[편집]


파일:The Legend of Cao Cao Yue Fei.png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 무목악왕의 패라는 계보의 미등장 데이터로 남았다. 병과는 중기병. 능력치는 무력 94, 지력 79, 통솔 99, 민첩 88, 행운 77.


7. 둘러보기[편집]


송사(宋史)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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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상관정 · 노빈 · 주심옥 · 배제 · 이계선 · 장단 · 장후 · 장길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왕연덕 · 상연신 · 정덕현 · 우연덕 · 위진(魏震) · 장질 · 양윤공 · 진희 · 사덕권 · 염일신 · 근회덕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이적 · 왕증 · 장지백 · 두연
안수 · 방적 · 왕수(王隨) · 장득상 · 여이간 · 장사손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한기 · 증공량 · 진승지 · 오충 · 왕규
부필 · 문언박
범중엄 · 범순인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한억
포증 · 오규 · 조변 · 당개
소항 · 풍경 · 전유연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장방평 · 왕공진 · 장변 · 조개(趙槩) · 호숙
구양수 · 유창(劉敞) · 증공
채양 · 여진 · 왕소(王素) · 여정 · 팽사영 · 장존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정해 · 진양(陳襄) · 전공보 · 손수 · 풍직 · 여회 · 유술 · 유기(劉琦) · 전의 · 정협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하담(何郯) · 오중복 · 진천 · 왕렵 · 손사공 · 주맹양 · 제회 · 양회 · 유상 · 주경(朱京)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울소민 · 고화 · 주미 · 염수공 · 맹원 · 유겸 · 조진(趙振) · 장충 · 범각 · 마회덕 · 안준 · 상보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석보 · 장자 · 허회덕 · 이윤칙 · 장항 · 유문질 · 조자
유평 · 임복 · 왕규 · 무영 · 상역 · 경부 · 왕중보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경태 · 왕신(王信) · 장해 · 장충 · 곽은 · 장절(張岊) · 장군평 · 사방 · 노감 · 이위 · 왕과 · 곽자 · 전민 · 시기서 · 강덕여 · 장소원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왕안석 · 왕안례 · 왕안국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이청신 · 안도 · 장조(張璪) · 포종맹 · 황리 · 채정(蔡挺) · 왕소(王韶) · 설향 · 장절(章楶)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상질 · 등관 · 이정(李定) · 서단 · 건주보 · 서탁 · 왕광연 · 왕도 · 왕자소 · 하정신 · 진역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임전 · 이참 · 곽신창 · 부구 · 장경헌 · 두변 · 장괴 · 손유 · 허준 · 노사종 · 전상선 · 두순 · 두상 · 사린 · 왕종망 · 왕길보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손장경 · 주항 · 이중사 · 나증 · 마중보 · 왕거경 · 손구 · 장선 · 소심 · 마종선 · 심구 · 이대림 · 여하경 · 조무택 · 정사맹 · 장문 ,진순유 악경 유몽, · 묘시중 · 한지 · 초건중 · 장힐 · 노혁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등원발 · 이사중 · 육선 · 조설 · 손로 · 유사웅 · 목연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양좌 · 이태(李兌) · 심립 · 장섬 · 장도 · 유충 · 유근 · 염순 · 갈궁 · 장전 · 영인 · 이재 · 요환 · 주경(朱景) · 이종 · 주수륭 · 노사굉 · 단후 · 양중원 · 여양굉 · 반숙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서희 ,이직(李稷), · 고영능 · 심기(沈起) · 유이 · 웅본 · 소주 · 도필 · 임광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충세형
사마광 · 여공저
범진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소식
소철
여대방 · 유지 · 소송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왕존 · 손고(孫固) · 조첨 · 부요유
양도 · 왕암수 · 정옹 · 손영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원강 · 허장 · 등윤보 · 임희 · 장지기 · 육전 · 오거후 · 온익
손각 · 이상(李常) · 공문중 · 이주 · 선우신 · 고림 · 이지순 · 왕적 · 마묵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류약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류약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趙葵)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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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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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권 「효우전(孝友傳)」
이린 · 서승규 · 유효충 · 여승 · 나거통 · 제득일 · 이한징 · 형신류 · 허조 · 호중요 · 진긍 · 홍문무 · 역연경 · 동도명 · 곽종 · 고흔 · 주태 · 성상 · 진사도 · 방강 · 방천우 · 유빈 · 번경온 · 영서민 · 기위 · 하보지 · 이빈(李玭) · 후의 · 왕광제 · 강백 · 구승순 · 상진 · 두의(杜誼) · 요종명 · 등중화 · 모안여 · 이방(李訪) · 주수창 · 후가 · 신적중 · 학인 · 지점 · 등종고 · 심선 · 소경문 · 태형 · 앙흔 · 조백심 · 팽유 · 모순 · 양경(楊慶) · 진종 · 곽의 · 신세녕 · 구여령 · 왕주(王珠) · 안후 · 장백위 · 채정(蔡定) · 정기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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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권 「열녀전(列女傳)」
주아 · 학절아 · 진당전 · 여양자 · 동팔나 · 한희맹 · 모석석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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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相州 湯陰縣.[2] 닝샤 후이족 자치구에 위치한 산. 따라서 북방 야만족들을 격멸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3] 1178년 송효종이 무목(武穆)이란 시호를 내렸는데, 1225년 송이종이 시호를 충무(忠武)라고 바꾸었다. 참고로 중국 인물 중 충무(공/후)란 시호를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제갈량곽자의 등이 있다. 그리고 시법에 따르면 무목 역시 무관의 시호로는 충무, 충장과 함께 최고위급의 시호이다.[4] 특히 한족[5] 이순신 역시 난중일기에서 감찰을 명분삼아 수군 지휘관들을 갈구던 유몽인을 진회 같다고 깠는데, 악비 역시 역사에 남은 충신이다보니 제갈량처럼 이순신이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6] 원숭환을 죽인 건 숭정제지만 원숭환이 활동하는 동안 위충현의 방해를 끊임없이 받았다.[7] 출처[8] 현대의 허난 성 안양 탕음현[9] 악화가 살아남아 악비가 8살이었을 때에 재회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10] 악비의 외조부 요대옹(姚大翁)이 고용했다고 한다.[11] 오늘날 우한 시 우창 구[12] 악주는 양양과 함께 나중에 남송 정권의 또다른 요충지가 된다. 서쪽으로는 사천, 북쪽으로는 경호 방면, 동쪽으로는 양회 방면을 원조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13] 그러나 사실 이 악비의 북벌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악비의 후손이 쓴 일종의 행장인 금타졸편(金佗稡编)과 금타속편(金佗续编)에 기초하기 때문에 거의 믿을 수 없는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주선진 전투만 봐도 그 출처는 악비의 후손이 쓴 행장과 송사 악비열전 정도가 전부이며 앞의 기록들 외에는 과연 주선진 전투는 실제로 존재하는지, 정말로 존재했다면 그 규모는 어느 정도였는지조차 확실한 게 아무 것도 없다. 다른 기록들을 보면 금나라와 송나라는 이 당시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고, 주선진 전투는 설령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해도 단순히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전투 중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주선진 전투의 병력에 대해서도 악비군은 5백 명인데 금나라의 군사를 10만 명으로 잡아 엄청난 대첩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만약 이 묘사가 사실이라면 이런 대단한 전투를 치러 악비가 이겨 카이펑의 코앞에서 금나라의 주력을 박살내고도 송나라는 이후 수도를 수복하려는 아무 움직임도 없었고 다른 사가들은 하다못해 주선진 전투에서 이겼는데 송나라군이 카이펑으로 왜 진군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없고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송나라가 카이펑을 되찾을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을 그냥 무시해버렸다는 황당한 결론이 나온다.[14] 최고의 시법은 충(忠), 무(武), 장(壯), 목(穆) 네 글자 중에 구성된 '충무-충장-장목-무목'인데, 악비는 덕분에 무관의 최고급 시호인 충무(忠武)와 문관의 최고급 시호인 무목(武穆)을 모두 받게 되었다.[15] 万俟卨, 여기서 万俟는 만사가 아닌 墨棋(mo qi)와 같은 발음으로 묵기라 읽는다. 진회를 도와준 간신. 후에 일을 잘못해 쫓겨나 유배 생활을 했다가 진회 사후 재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고향에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묵기라는 성씨를 모두 개성(改姓)해버렸고 그 성씨는 현존하지 않는다.[16] 원래 항전파였으나 나중에 악비를 배신했다.[17] 옹정제 시절 엄청난 군공을 세운 한족 장수 악종기는 악비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만주족들의 의심을 받았고, 작은 실책에 관직을 잃고 장기간 투옥되었을 정도로 청나라는 악비에 알레르기를 보였다.[18] 그렇다고 청나라 황제들이 악비를 폄하한 것은 아니다. 강희제, 건륭제는 남행중에 항주에 있는 악비묘를 참배했고, 악비의 후손을 찾아내 상을 주었다.[19] 사실 악왕묘는 전란중에 여러번 파괴되었다가 1918년 중화민국 시절 다시 재건된 것으로 크게 역사적 가치는 없다. [20] 사실 공산주의자들은 대체로 국제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자국-자민족을 중심으로 두는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1920년 외몽골 독립은 중국 입장에서 영토상실이었지만 당시에 유명한 좌익문필가이자 고전학자였던 곽말약은 이를 찬양했을 정도. 사실 중국공산당 내에서도 장아이핑 같은 민족주의 성향의 당원들은 이를 상당히 아쉬워 했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주도한 일이라 대놓고 반대하기는 어려웠다. 공산당의 개국공신인 장아이핑 장군은 문화대혁명 기간에 참모들에게 "외몽골은 원래 중국땅이었어"라고 말했다가 홍위병들에게 "봉건주의 반동분자"으로 비판받아 두들겨 맞고 숙청이 되었고, 5년간 감방에서 지내다가 석방되었으나 구타당해서 다리를 저는 불구가 되었다. 다만 장제스중화민국은 끝까지 몽골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장제스가 죽을 때까지도 몽골 공화국의 영토를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21] 정부에 의해 검열되는 바이두 백과에서는 진회를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간신중의 하나로 기술하고 있다. "是中国历史上著名的奸臣之一" 중국언론의 한 기사에서는 진회를 민국시절에 일본에 붙은 한간왕징웨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22] 이러한 주장은 중국 정부의 사관에 반발을 품는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제기되었다. 소수민족사까지도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중국 정부의 입장상 소수민족사를 다룰 때 갈등 요소(이민족 정권의 침공으로 인한 학살 등)는 회피하려 하고 소수민족 정권에 우호적인 서술도 다소 넣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 불만을 품고, 여기에서 비약하여 '정부가 하다하다 이젠 진회같은 놈까지도 재평가한다'라는식으로 허수아비 공격을 하는 것이다.[23] 일부 중국의 역사학자들이 진회의 대금 유화책을 송나라의 한계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하며, 이것이 진회를 옹호하는 투로 읽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술적 연구를 정부의 공식입장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나간것이다.[24] 남송의 이심전(李心傳, 1166∼1243)이 남송 초기의 대요를 적은 역사책. 200권. 1127년부터 1166년까지 40년간을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하였다.[25] 휘종, 흠종, 고종 등 3조(朝)의 치세를 기록한 책으로 12세기 중 약 50년간 송나라와 금나라 양국간의 전쟁과 화평의 교섭관계를 기록하였다. 남송의 서몽신(徐夢莘)이 자료 200여 종에 입각하여 편년체로 편집한 250권짜리 저서이다. 1194년에 완성되었다.[26] 宗澤. 1059 ~ 1128. 북송 말의 장군으로, 일명 "강을 건너라!"("過河! 過河!")란 유언으로 유명하다. 남송군을 이끌며 금의 공격을 수없이 막아낸 장군이다. 북벌 의지를 죽을 때까지 버린 적이 없던 터라 틈만 나면 고종에게 북벌을 간언했으나, 고종과 문신들이 북벌은 무리임을 말하며 항상 묵살하였다. 다나카 요시키창룡전에서 해당 고사를 얘기하면서 "제갈량과 더불어 '한 사람의 죽음에 전군이 통곡한' 사례"라며 극찬한 바 있다. 악비 또한 종택에게 발탁받아 휘하에서 활동한 바 있다.[27] 할아버지 충세형, 아버지 충악과 함께 충가장의 일원이다.[28] 사실 애초에 고종 자신이 주화론자이기도 했다. 악비의 전공이 후대에 어느 정도 부풀려졌음을 감안하면, 고종 입장에선 송이 멸망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금과 전면전을 벌이긴 꺼림칙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는 고종의 선대였던 휘종이나 흠종이 금을 뒤통수 치다가 결국 포로로 끌려가는 정강의 변이 일어났고, 고종의 후계자였던 효종 역시 북벌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고종 자신도 황제가 되기 전 잠시지만 금에 포로로 갔던 적이 있었다.[29] 당시 송나라 사람 사이에서 영토를 빼앗고 굴욕을 준 철천지원수인 금과 화의하겠다는 주화파는 매국노와 거의 동등한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30] 단, 여기서 원문 언급은 악왕묘가 아닌 악묘로 악비가 아닌 오악(태산, 화산, 숭산, 형산, 항산)을 지칭할 가능성이 높다.[31] 임진왜란 초기 탄금대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신립과 관련해서도 이 비슷한 야사가 전한다.[32] ...였다고는 하나 소설 자체에 병맛스런 전개가 많은 편이라 오히려 정사를 뼈대로 하고 적당한 오리지널 요소와 소설의 요소들을 아주 약간 섞었다고 하는 게 다 타당하다.[33] 칭기즈 칸이 한세충과 대결을 벌리는데 신분 설정이 훗날 황제가 될 쿠빌라이 칸의 아버지라서 쉴드가 자동으로 쳐지는가 하면, 악비가 죽자 금나라가 침공하는데 악비의 아들의 반격으로 금나라 본토까지 쳐들어가서 항복을 받아낸다는 등등 초월적인 전개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