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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滿桂
(1594 ~ 1630)
1. 개요[편집]
명나라의 장수.
2. 행적[편집]
2.1. 초창기[편집]
본래는 몽골 출신으로 어릴 때 중국으로 들어와 선부에 살았고 자라서는 변경의 기사가 되어 매번 부름을 받아 적을 많이 베었으며, 군령에 따르면 적을 하나 베면 관직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다면 백금 50을 내리지만 만계는 돈만 받고 직책은 받지 못했다.
나이가 서른이 되어 처음 총기가 되었고 10여 년 동안 백호를 지냈으며, 여러 차례 옮겨 조하천을 수비했고 1619년에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을 상대로 명군이 패하자 추천을 받고 황토령으로 옮겼다.
2.2. 손승종에게 중용되다[편집]
총독인 왕상건의 인정을 받아 석당로유격, 희봉구참장을 지내고 1622년에 대학사 손승종이 변방으로 부임해서 만계를 보고 용모가 위풍당당하고 군사 이야기를 보고 칭찬했으며, 손승종이 나아가서 산해관을 지키자 부총병으로 발탁되어 중군을 맡았다.
손승종 막하에는 문무관료들이 많이 찾아왔지만 만계만 등용했으며, 만계는 성격이 거칠지만 충성스럽고 용감해 보통 사람 같지 않고 말주변은 좋지 않았지만 사졸들과 동고동락하고 지냈다. 다음 해에 손승종이 관을 나가서 영원성을 복구하기로 해서 마세룡이 손간, 이승선을 추천했지만, 손승종은 허락하지 않았고 원숭환, 모원의가 만계를 추천했고, 마세록은 만계의 능력을 의심했지만 손승종은 듣지 않고 술자리를 베풀어 송별했다.
2.3. 영원성 전투와 금주대첩[편집]
1623년에 원숭환과 함께 영원성을 견고하게 했고 당시 몽골 부족이 목녕 극동에 주둔했고 요민들이 와서 모조리 약탈을 당해 손승종이 근심했고 1624년에 파견되어 총병 우세록과 함께 대릉하를 습격해 몽고의 각 부들을 서쪽으로 달아나게 해 영원 동쪽은 평온했다. 본래 영원성 바깥은 온갖 폐허로 가득찼지만 만계가 부임한 후로는 5만여 명의 군민이 모여 50리까지 밭을 갈았으며, 손승종이 그의 공로를 보고하자 도독첨사로 발탁되었다가 벼슬을 올려 총병으로 삼았고 손승종은 만계에게 후부를 관장하도록 해서 전부를 관장한 조솔교와 협력하도록 했다.
독항낭중 양정수가 군량을 빼돌린 일로 부장 서연극이 반란을 일으켜 원숭환의 관서를 포위했다가 만계의 가병들이 용병해 원숭환을 포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동쪽으로 도망갔으며, 만계는 원숭환과 함께 뒤쫓아 변란의 주동자를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을 다독여 데려왔다.
1626년 정월에 후금이 군사를 이끌고 영원성을 공격하자 원숭환과 함께 후금의 군사들을 막자 그 공으로 도독동지로 승진시켜 총병관에 임명되었으며, 다시 공을 논해 우도독, 만계의 아들을 부천호로 임명해 세습하게 했고 이어서 좌도독으로 승진했다.
만계는 조솔교와 친했지만 이번 전투에서 조솔교가 직접 구하러 오지 않는 것을 원망해 서로 꾸짖었으며, 천계제가 이를 알고 조서를 내려 격려했다. 원숭환이 만계가 동료와 불화를 일으켜 변방의 일을 그르칠 것 같다고 옮겨달라면서 다른 병진과 관외의 일을 조솔교에게 맡길 것을 글로 올렸다. 조정 대신들은 만계가 능력이 있는 것을 알지만 혹시라도 성 안에서 일을 저지를까봐 그를 불러들이도록 했으며, 왕지신은 만계를 옮길 수 없다고 극구 만류했지만 그를 돌아오게 하려는 명령이 내려졌고, 왕지신이 만계를 산해관에 배치하려고 했지만 원숭환이 거부했다.
그 해 윤 6월에 만계에게 원래 직책으로 첨서중군부사의 일을 처리하게 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숭환이 후회해 왕지신의 의견을 채용할 것을 청하고 천계제가 동의해 만계를 산해관으로 옮기면서 관외의 4로를 옮겨 연하, 건창 등 여러 군사를 겸임하게 하고 상방보검을 하사받아 권한을 올려줬다.
1627년 5월에 후금의 군사들이 금주를 포위하고 병력을 나누어 영원으로 가자 만계는 군사를 보내 구원해 조리산을 포위했다. 만계는 총병 유세록과 함께 한 차례 싸웠고 영원성으로 들어가 원숭환과 계책을 논의했다. 후금군이 성으로 오자 부장 우세위를 거느리고 후금의 군사들을 공격해 여러 명을 죽였지만 부상을 입었다.
이 때의 공으로 태자태사로 승진하면서 금의첨사를 세습하도록 했으며, 숭정제가 즉위하고 원숭환이 해임되어 왕지신이 독사로 부임하면서 만계의 재주를 칭찬하자 조정에서는 만계를 보내 영원성을 지키게 했다.
2.4. 대동을 안정시키다[편집]
몽고에서 조릭투 등 부족이 무너지고 흩어지자 만계는 왕지신과 함께 많은 몽고인들을 불러들여 부하로 뒀고 숭정제가 즉위해 조서를 통해 만계와 왕지신에게 원응태, 왕화정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했고 만계는 병으로 휴가를 요청했지만 허가받지 못했다.
1628년 7월에 왕지신이 탄핵되면서 만계도 소환되었다가 마침 대동의 삽부가 서쪽을 침공해 대동으로 들어가 마구 노략질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대동총병 거가정, 순무 장익명이 사형 선고를 받자 만계가 대동총병으로 부임해 팔로의 72개의 성곽을 시찰하고 국경 수비에 힘을 쏟아 대동의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했다.
2.5. 북경 방어와 전사[편집]
1629년 10월에 홍타이지가 남하해 청나라의 군사들이 북경 부근까지 침입하자 11월에 5천의 기병을 이끌고 순의에 주둔했고 선부총병 후세록과 함께 패해 북경에 주둔했다. 만계는 철기를 이끌고 후금의 군사와 싸우다가 패해 철수하고 5개의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는다.
후금의 군대를 격퇴하고 군대를 주둔시켜 문 바깥을 안정시켰고 12월 1일에 숭정제가 원숭환을 불러들이면서 만계, 흑운룡과 함께 경사로 들어갔다가 원숭환이 처형되자 영원성의 부대를 이끌고 안정문을 지켰다. 1630년에 무경략이 되어 상방보검을 하사받아 각 부를 지원하고 지휘하도록 했다.
후금군의 공격을 받고 북경이 포위되자 숭정제가 출병해 싸울 것을 요구하자 적의 힘이 강하고 원군이 많지 않으니 쉽게 나가서 안된다고 했지만, 숭정제가 재촉하자 12월 15일에 흑운룡, 마등운, 손조수 등을 이끌고 영정문 바깥 2리로 옮겼고 16일에 후금군의 기병에 포위되어 대패해 전사했다.
숭정제가 서광계를 파견해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3급의 세습직을 하사하면서 사당을 세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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