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라트

덤프버전 :





명사(明史)

[ 본기(本紀) ]
1·2·3권 「태조기(高祖紀)」
4권 「공민제기(恭閔帝紀)」
5·6·7권 「성조기(成祖紀)」
주원장
주윤문
주체
8권 「인종기(仁宗紀)」
9권 「선종기(宣宗紀)」
10·11·12권 「영종·경제기(英宗景帝紀)」
주고치
주첨기
주기진 · 주기옥
13·14권 「헌종기(憲宗紀)」
15권 「효종기(孝宗紀)」
16권 「무종기(武宗紀)」
주견심
주우탱
주후조
17·18권 「세종기(世宗紀)」
19권 「목종기(穆宗紀)」
20·21권 「신종·광종기(神宗光宗紀)」
주후총
주재후
주익균 · 주상락
22권 「희종기(熹宗紀)」
23·24권 「장렬제기(莊烈帝紀)」
주유교
주유검
113·114권 「후비전(后妃傳)」
효자고황후 · 손귀비 · 이숙비 · 곽영비 · 효민양황후 · 인효문황후 · 소헌귀비 · 공헌현비 · 성효소황후 · 선묘현비 · 곽애 · 선묘현비 · 공양장황후 · 효장예황후
효숙황후 · 정혜경황후 · 오폐후 · 효정순황후 · 효목황후 기씨 · 효혜황후 · 공숙귀비 · 효강경황후 · 효정의황후 · 효결숙황후 · 장폐후 · 효열황후 · 효각황태후
효의장황후 · 효안황후 · 효정황후 · 효단현황후 · 효정황황후 · 공각귀비 · 효원정황후 · 효화황태후 · 효순황태후 · 이강비 · 효안황후 · 장유비 · 장열민황후
공숙귀비
※ 25권 ~ 99권은 志에 해당. 100권 ~ 112권은 表에 해당. 명사 문서 참고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 열전(列傳) ]
115권 「종실전(宗室傳)」
주표 · 주우원
116·117·118·119·120권 「제왕전(諸王傳)」
주상 · 주강 · 주숙 · 주정 · 주부 · 주재 · 주기 · 주단 · 주춘 · 주백 · 주계 · 주영(朱楧) · 주식 · 주전(朱㮵) · 주권 · 주폐 · 주혜 · 주모 · 주영(朱楹) · 주경(朱桱) · 주동 · 주이 · 주남 · 주웅영 · 주윤통 · 주윤견 · 주윤희 · 주문규(朱文奎) · 주문규(朱文圭) · 주고후 · 주고수 · 주첨용 · 주첨선 · 주첨점 · 주첨은 · 주첨오 · 주섬강 · 주첨개 · 주첨게 · 주첨연 · 주견린 · 주견순 · 주견주 · 주견택 · 주견준 · 주견치 · 주견패 · 주견제 · 주우극 · 주우륜 · 주우빈 · 주우휘 · 주우운 · 주우저 · 주우팽 · 주우순 · 주우추 · 주우해 · 주후위 · 주재기 · 주재수 · 주재로 · 주재려 · 주재궤 · 주재숙 · 주익익 · 주익령 · 주익류 · 주상서 · 주상순 · 주상치 · 주상호 · 주상윤 · 주상영 · 주상부 · 주유학 · 주유즙 · 주유모 · 주유허 · 주유전 · 주자연 · 주자육 · 주자경 · 주자랑 · 주자훤 · 주자형 · 주자소 · 주자환 · 주자찬
121권 「공주전(公主傳)」
태원장공주 · 조국장공주 · 임안공주 · 영국공주 · 숭녕공주 · 안경공주 · 여령공주 · 회경공주 · 대명공주 · 복청공주 · 수춘공주 · 남강공주 · 영가공주 · 함산공주 · 여양공주 · 보경공주 · 복성공주 · 경양공주 · 강도공주 · 남평군주 · 영안공주 · 영평공주 · 안성공주 · 함녕공주 · 상녕공주 · 가흥공주 · 경도공주 · 청하공주 · 진정공주 · 덕안공주 · 연평공주 · 덕경공주 · 순덕공주 · 상덕공주 · 중경공주 · 가선공주 · 순안공주 · 숭덕공주 · 광덕공주 · 의흥공주 · 융경공주 · 가상공주 · 고안공주 · 인화공주 · 영강공주 · 덕청공주 · 장태공주 · 선유공주 · 태강공주 · 영복공주 · 영순공주 · 장녕공주 · 선화공주 · 상안공주 · 사유공주 · 영안공주 · 귀선공주 · 가선공주 · 봉래공주 · 태화공주 · 수양공주 · 영령공주 · 서안공주 · 연경공주 · 영창공주 · 수녕공주 · 정락공주 · 운화공주 · 운몽공주 · 영구공주 · 선거공주 · 태순공주 · 향산공주 · 천대공주 · 회숙공주 · 영덕공주 · 수평공주 · 낙안공주 · 곤의공주 · 장평공주 · 소인공주
122권 「곽자흥등전(郭子興等傳)」
123권 「진우량등전(陳友諒等傳)」
124권 「확곽첩목아등전(擴廓帖木兒等傳)」
곽자흥 · 한림아
진우량 · 장사성 · 방국진 · 명옥진
확곽첩목아 · 진우정 · 파잡라와이밀
125권 「서달등전(徐達等傳)」
126권 「이문충등전(李文忠等傳)」
127권 「이선장등전(李善長等傳)」
서달 · 상우춘
이문충 · 등유 · 탕화 · 목영
이선장 · 왕광양
128권 「유기등전(劉基等傳)」
129권 「풍승등전(馮勝等傳)」
유기 · 송렴 · 엽침 · 장일
풍승 · 부우덕 · 요영충 · 양경 · 호미
130권 「오량등전(吳良等傳)」
오량 · 강무재 · 정덕흥 · 경병문 · 곽영 · 화운룡 · 한정 · 구성 · 장룡 · 오복 · 호해 · 장혁 · 화고 · 장전 · 하진
131권 「고시등전(顧時等傳)」
고시 · 오정 · 설현 · 곽흥 · 진덕 · 왕지 · 매사조 · 김조흥 · 당승종 · 육중형 · 비취 · 육취 · 정우춘 · 황빈 · 엽승
132권 「주량조등전(朱亮祖等傳)」
주량조 · 주덕흥 · 왕필 · 남옥 · 사성 · 이신
133권 「요영안등전(廖永安等傳)」
요영안 · 유통해 · 호대해 · 경재성 · 장덕승 · 조덕승 · 상세걸 · 모성 · 호심 · 손흥조 · 조량신 · 복영
134권 「하문휘등전(何文輝等傳)」
하문휘 · 엽왕 · 무대형 · 채천 · 왕명 · 영정 · 김흥왕 · 화무 · 정옥 · 곽운
135권 「진우등전(陳遇等傳)」
136권 「도안등전(陶安等傳)」
진우 · 엽태 · 범상 · 송사안 · 곽경상 · 양원호 · 원홍도 · 공극인
도안 · 첨동 · 주승 · 최량 · 도개 · 증로 · 임앙 · 이원명 · 악소봉
137권 「유삼오등전(劉三吾等傳)」
유삼오 · 안연 · 오백종 · 오침 · 계언량 · 송눌 · 조숙 · 이숙정 · 유숭 · 나복인 · 손여경
138권 「진수등전(陳修等傳)」
진수(陳修) · 양사의 · 주정 · 양정(楊靖) · 단안인 · 설상 · 당탁 · 개제
139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전당 · 한의가 · 소기 · 풍견 · 여태소 · 이사로 · 엽백거 · 정사리 · 주경심 · 왕박 · 장형
140권 「전당등전(錢唐等傳)」
위관 · 도후중 · 유사훤 · 왕종현 · 여문수 · 왕관 · 도동 · 노희 · 청문승
141권 「제태등전(齊泰等傳)」
제태 · 황자징 · 방효유 · 연자녕 · 유대방 · 탁경 · 진적 · 경청 · 호윤 · 왕도(王度)
142권 「철현등전(鐵鉉等傳)」
철현 · 포소 · 진성선 · 장병 · 송충 · 마선 · 구능 · 장륜(張倫) · 안백위 · 왕성 · 요선 · 진언회
143권 「왕간등전(王艮等傳)」
왕간 · 요승 · 주시수 · 정본립 · 황관 · 왕숙영 · 황월 · 왕량 · 진사현 · 정통 · 고외 · 고현녕 · 왕진(王璡) · 주진 · 우경선
144권 「성용등전(盛庸等傳)」
145권 「요광효등전(姚廣孝等傳)」
성용 · 평안 · 하복 · 고성
요광효 · 장옥 · 주능 · 구복 · 담연 · 왕진(王真) · 진형
146권 「장무등전(張武等傳)」
장무(張武) · 진규 · 맹선 · 정형 · 서충 · 곽량 · 조이 · 장신 · 서상 · 이준 · 손암 · 진욱 · 진현 · 장흥 · 진지 · 왕우
147권 「해진등전(解縉等傳)」
148권 「양사기등전(楊士奇等傳)」
149권 「건의등전(蹇義等傳)」
해진 · 황회 · 호광 · 김유자 · 호엄
양사기 · 양영 · 양부
건의 · 하원길
150권 「욱신등전(郁新等傳)」
욱신 · 조공 · 김충 · 이경 · 사규 · 고박 · 진수(陳壽) · 유계호 · 유진 · 양지 · 우겸(虞謙) · 여승 · 탕종
151권 「여상등전(茹瑺等傳)」
여상 · 엄진직 · 장담 · 왕둔 · 정사 · 곽자 · 여진 · 이지강 · 방빈 · 오중 · 유관
152권 「동륜등전(董倫等傳)」
동륜 · 의지 · 추제 · 주술 · 진제 · 왕영 · 전습례 · 주서(周敍) · 가잠 · 공공순
153권 「송례전(宋禮等傳)」
154권 「장보등전(張輔等傳)」
송례 · 진선 · 주침
장보 · 황복 · 유준(劉儁) · 여의 · 진흡 · 이빈 · 유승 · 양명 · 왕통
155권 「송성등전(宋晟等傳)」
송성 · 설록 · 유영 · 주영(朱榮) · 비환 · 담광 · 진회(陳懷) · 장귀 · 임례 · 조안 · 조보 · 유취
156권 「오윤성등전(吳允誠等傳)」
오윤성 · 설빈 · 오성(吳成) · 김충 · 이영 · 모승 · 초례 · 모충 · 화용 · 나병충
157권 「김순등전(金純等傳)」
김순 · 장본 · 곽돈 · 곽진 · 정진 · 시차 · 유중부 · 장봉 · 주선 · 양정(楊鼎) · 황호 · 호공진 · 진준 · 임악 · 반영 · 하시정
158권 「황종재등전(黃宗載等傳)」
황종재 · 고좌 · 단민 · 장창(章敞) · 오눌 · 위기 · 노목 · 경구주 · 헌예 · 황공소
159권 「웅개등전(熊概等傳)」
웅개 · 진일 · 이의 · 진일 · 이당 · 가전 · 왕우 · 최공 · 유자(劉孜) · 이간 · 원걸 · 팽의 · 모봉 · 하훈 · 고명 · 양계종
160권 「왕창등전(王彰等傳)」
왕창 · 위원(魏源) · 김렴 · 석박 · 나통 · 나기 · 장선 · 장붕 · 이유
161권 「주신등전(周新等傳)」
주신 · 이창기 · 진사계 · 응이평 · 임석 · 황종 · 진본심 · 팽욱 · 하시 · 황윤옥 · 양찬 · 유실 · 진선 · 하인 · 진장 · 장병 · 송단의
162권 「윤창륭등전(尹昌隆等傳)」
윤창륭 · 경통 · 대륜 · 진조 · 유구 · 진감 · 종동 · 장륜 · 요장 · 예경 · 양선(楊瑄)
163권 「이시면등전(李時勉等傳)」
164권 「추집등전(鄒緝等傳)」
이시면 · 진경종 · 유현(劉鉉) · 형양 · 임한 · 사탁 · 노탁
추집 · 익겸 · 황택 · 범제 · 요양 · 좌정 · 조개 · 유위 · 단우 · 장소 · 고요
165권 「도성등전(陶成等傳)」
166권 「한관등전(韓觀等傳)」
도성 · 진민 · 정선 · 왕득인 · 엽정 · 오기 · 모길 · 임금 · 곽서 · 강앙
한관 · 산운 · 소수 · 방영 · 이진 · 왕신 · 팽륜 · 구반 · 장우
167권 「조내등전(曹鼐等傳)」
168권 「진순등전(陳循等傳)」
조내 · 광야 · 왕좌 · 손상 · 원빈
진순 · 왕문 · 강연 · 진문 · 만안 · 유후 · 유길 · 윤직
169권 「고곡등전(高穀等傳)」
170권 「우겸전(于謙傳)」
171권 「왕기등전(王驥等傳)」
고곡 · 호영 · 왕직
우겸
왕기(王驥) · 서유정 · 양선(楊善) · 왕월
172권 「나형신등전(羅亨信等傳)」
나형신 · 후진 · 양녕 · 왕래 · 손원정 · 주감 · 양신민 · 장기 · 마근 · 정신 · 백규 · 장찬 · 공용 · 등정찬 · 왕식 · 유병
173권 「양홍등전(楊洪等傳)」
양녕 · 석정 · 곽등 · 주겸 · 손당 · 범광
174권 「사소등전(史昭等傳)」
사소 · 무개 · 허귀 · 주현 · 구신 · 왕새 · 노감 · 유녕 · 팽청 · 강한 · 안국 · 항웅
175권 「위청등전(衞靑等傳)」
위청 · 동흥 · 하홍 · 유옥 · 구월 · 신영 · 조웅 · 풍정 · 장준 · 양예
176권 「이현등전(李賢等傳)」
177권 「왕고등전(王翱等傳)」
이현 · 여원 · 악정 · 팽시 · 상로 · 유정지
왕고(王翱) · 연부 · 왕횡 · 이병 · 요기(姚夔) · 왕복 · 임총 · 엽성
178권 「항충등전(項忠等傳)」
179권 「나륜등전(羅倫等傳)」
항충 · 한옹 · 여자준 · 주영(朱英) · 진굉
나륜 · 장무 · 황중소 · 장창(莊昶) · 추지 · 서분
180권 「장녕등전(張寧等傳)」
장녕 · 왕휘 · 모홍 · 구홍 · 이삼 · 위원(魏元) · 강진 · 왕서(王瑞) · 이준 · 왕규 · 탕내 · 강관 · 강홍 · 조린 · 팽정 · 방반 · 여헌 · 엽신 · 호헌 · 장홍지 · 굴신 · 왕헌신
181권 「서부등전(徐溥等傳)」
182권 「왕서등전(王恕等傳)」
서부 · 구준 · 유건 · 사천 · 이동양 · 왕오 · 유충
왕서(王恕) · 마문승 · 유대하
183권 「하교신등전(何喬新等傳)」
하교신 · 팽소 · 주경(周經) · 경유 · 예악 · 민규 · 대산
184권 「주홍모등전(周洪謨等傳)」
주홍모 · 양수진 · 장원정 · 부한 · 장승 · 완성 · 부규 · 유춘 · 오엄 · 고청 · 유서
185권 「이민등전(李敏等傳)」
이민 · 가준 · 황불 · 장열 · 사종 · 증감 · 양경 · 서각 · 이개 · 황가 · 왕홍유 · 총란 · 오세충
186권 「한문등전(韓文等傳)」
한문 · 장부화 · 양수수 · 허진 · 옹태 · 진수(陳壽) · 번형 · 웅수 · 반번 · 호부 · 장태 · 장내 · 왕경(王璟) · 주흠
187권 「하감등전(何鑒等傳)」
하감 · 마중석 · 육완 · 홍종 · 진금(陳金) · 유간 · 주남 · 마호
188권 「유천등전(劉蒨等傳)」
유천 · 여충 · 조우 · 대선 · 육곤 · 장흠(蔣欽) · 주새 · 탕예경 · 허천석 · 장사륭 · 장문명 · 범로 · 장흠(張欽) · 주광 · 석천주
189권 「이문상등전(李文祥等傳)」
이문상 · 손반 · 호관 · 나교 · 엽쇠 · 대관 · 황공 · 육진 · 하양승 · 하준
190권 「양정화등전(楊廷和等傳)」
191권 「모징등전(毛澄等傳)」
양정화 · 양저 · 장면 · 모기 · 정이
모징 · 왕준(汪俊) · 오일붕 · 주희주 · 하맹춘 · 풍희 · 서문화 · 설혜
192권 「양신등전(楊愼等傳)」
양신 · 왕사 · 장충 · 유제 · 안반 · 장한경 · 장원 · 모옥 · 왕시가 · 정본공 · 장왈도 · 양회 · 장찬 · 곽남
193권 「비굉등전(費宏等傳)」
비굉 · 적란 · 이시 · 고정신 · 엄눌 · 이춘방 · 진이근 · 조정길 · 고의
194권 「교우등전(喬宇等傳)」
교우 · 손교 · 임준 · 김헌민 · 진금(秦金) · 조황 · 추문성 · 양재 · 유린 · 장요(蔣瑤) · 왕정상
195권 「왕수인전(王守仁傳)」
196권 「장총등전(張璁等傳)」
왕수인
장총 · 계악 · 방헌부 · 하언
197권 「석서등전(席書等傳)」
198권 「양일청등전(楊一淸等傳)」
석서 · 곽도 · 웅협 · 황종명 · 황관
양일청 · 왕경(王瓊) · 팽택 · 모백온 · 옹만달
199권 「이월등전(李鉞等傳)」
이월 · 왕헌 · 호세녕 · 이승훈 · 왕이기 · 범총 · 왕방서 · 정효
200권 「요막등전(姚鏌等傳)」
요막 · 장정 · 오문정 · 채천우 · 첨영 · 유천화 · 양수례 · 장악 · 곽종고 · 조시춘
201권 「도염등전(陶琰等傳)」
도염 · 왕진(王縝) · 이충사 · 오정거 · 방양영 · 왕광 · 왕월 · 서문 · 장방기 · 한방기 · 주금 · 오악
202권 「요기등전(廖紀等傳)」
요기(廖紀) · 왕시중 · 주기옹 · 당룡 · 왕고(王杲) · 주용 · 문연 · 유인 · 손응규 · 섭표 · 이묵 · 주연 · 가응춘 · 장영명 · 호송 · 조병연
203권 「정악등전(鄭岳等傳)」
정악 · 유옥 · 왕원석 · 구천서 · 당주 · 반진 · 이중 · 구양탁 · 도해 · 반훈 · 여경 · 구양중 · 주상(朱裳) · 진찰 · 손무 · 왕의(王儀) · 증균
204권 「진구주등전(陳九疇等傳)」
205권 「주환등전(朱紈等傳)」
진구주 · 적붕 · 손계로 · 증선 · 정여기 · 양수겸 · 상대절 · 해일귀 · 양선(楊選)
주환 · 장경 · 호종헌 · 조방보 · 이수 · 당순지
206권 「마록등전(馬錄等傳)」
마록 · 정계충 · 장규 · 정일붕 · 당추 · 두란 · 엽응총 · 해일귀 · 육찬 · 소경방 · 유세양 · 위양필
207권 「등계증등전(鄧繼曾等傳)」
등계증 · 주제 · 양언 · 유안 · 설간 · 양명(楊名) · 곽홍화 · 유세룡 · 장선 · 포절 · 사정천 · 왕여령 · 양사충
208권 「장근등전(張芹等傳)」
장근 · 왕응진 · 소명봉 · 제지란 · 원종유 · 허상경 · 고제 · 장교 · 여산 · 위상신 · 여관 · 팽여실 · 정자벽 · 척현 · 유회 · 전미 · 홍원 · 주사겸 · 안경
209권 「양최등전(楊最等傳)」
양최 · 풍은 · 양작 · 주이 · 유괴 · 심속 · 심연 · 양계성 · 양윤승
210권 「상교등전(桑喬等傳)」
상교 · 사유 · 하유백 · 서학시 · 여여진 · 왕종무 · 주면 · 조금 · 오시래 · 장충 · 동전책 · 추응룡 · 임윤
211권 「마영등전(馬永等傳)」
212권 「유대유등전(俞大猷等傳)」
마영 · 양진 · 왕효 · 주상문 · 마방 · 하경 · 심희의 · 석방헌
유대유 · 척계광 · 유현(劉顯) · 이석 · 장원훈
213권 「서개등전(徐階等傳)」
214권 「양박등전(楊博等傳)」
서계 · 고공 · 장거정
양박 · 마림 · 유례건 · 왕정(王廷) · 갈수례 · 근학안
215권 「왕치등전(王治等傳)」
왕치 · 구양일경 · 주홍조 · 첨앙비 · 낙문례 · 정이순 · 진오덕 · 왕문휘 · 유분용
216권 「오산등전(吳山等傳)」
오산 · 육수성 · 구경순 · 전일준 · 황봉상 · 여계등 · 풍기 · 왕도(王圖) · 옹정춘 · 유응추 · 당문헌 · 이등방 · 채의중 · 공내 · 나유의 · 요희맹 · 허사유 · 고석주
217권 「왕가병등전(王家屏等傳)」
218권 「신시행등전(申時行等傳)」
219권 「장사유등전(張四維等傳)」
왕가병 · 진우폐 · 심리 · 우신행 · 이정기 · 오도남
신시행 · 왕석작 · 심일관 · 방종철 · 심확
장사유 · 마자강 · 허국 · 조지고 · 장위 · 주갱
220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1권 「원홍유등전(袁洪愈等傳)」
원홍유 · 왕정첨 · 곽응빙 · 경정향 · 왕초 · 위시양 · 학걸 · 조참로 · 장맹남 · 이정 · 정빈
222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3권 「성응기등전(盛應期等傳)」
224권 「엄청등전(嚴清等傳)」
성응기 · 주형 · 반계순 · 만공 · 오계방 · 왕종목 · 유동성 · 서정명
엄청 · 송훈 · 육광조 · 손농 · 진유년 · 손비양 · 채국진 · 양시교
225권 「장한등전(張瀚等傳)」
226권 「해서등전(海瑞等傳)」
장한 · 왕국광 · 양몽룡 · 양외· 이재(李戴) · 조환 · 정계지
해서 · 구순 · 여곤 · 곽정역
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노학고 · 진만책 · 허문기 · 곽이중 · 최문영 · 서학안 · 풍로운 · 채도헌 · 장붕익 · 유희조 · 왕손란 · 정양주 · 황세청 · 양훤 · 당시명 · 단복흥 · 간인서 · 사오교 · 도임 · 축만령 · 진빈 · 왕징준 · 정태운 · 하복 · 장나준 · 김육동 · 탕문경 · 허담 · 왕교동 · 장계맹 · 유사두 · 왕여정 · 윤신 · 고기훈 · 장요(張耀) · 미수도 · 경정록 · 석상진 · 서도흥 · 유정표
296·297권 「효의전(孝義傳)」
정렴 · 서윤양 · 전영 · 요비 · 구탁 · 최민 · 주완 · 오홍 · 주후 · 유근(劉謹) · 이덕성 · 심덕사 · 사정가 · 권근 · 조신 · 국상 · 왕준(王俊) · 석내 · 사오상 · 주오 · 정영 · 부즙 · 양성장 · 사용 · 하경 · 왕원(王原) · 황새 · 귀월 · 하린 · 손청 · 유헌 · 용사언 · 유자(兪孜) · 최감 · 당엄 · 구서 · 장균 · 왕재복 · 하자효 · 아기 · 조중화 · 왕세명 · 이문영 · 공금 · 양통조 · 장청아
298권 「은일전(隱逸傳)」
장개복 · 예찬 · 서방 · 양항 · 진회(陳洄) · 양인(楊引) · 오해 · 유민 · 양보 · 손일원 · 심주 · 진계유
299권 「방기전(方伎傳)」
활수 · 갈건손 · 여복 · 예유덕 · 주한경 · 왕리 · 주전(周顚) · 장중 · 장삼봉 · 원공 · 대사공 · 성인 · 황보중화 · 동인 · 오걸 · 능운 · 이시진 · 주술학 · 장정상 ,유연연,
300권 「외척전(外戚傳)」
진공 · 마공 · 여본 · 마전 · 장기(張麒) · 호영(胡榮) · 손충 · 오안 · 전귀 · 왕천 · 주능 · 왕진(王鎭) · 만귀 · 소희 · 하유 · 진만언 · 방예 · 진경행 · 이위 · 왕위(王偉) · 정승헌 · 왕승 · 유문병 · 장국기 · 주규
301·302·303권 「열녀전(列女傳)」
정월아 · 제아 · 정금노 · 노가랑 · 탕혜신 · 묘총 · 만의전 · 왕묘봉 · 당귀매 · 양태노 · 정은아 · 두묘선 · 초낭맹 · 호귀정 · 오길고 · 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기강 · 문달 · 이매성 · 계요 · 강빈 · 육병 · 소원절 · 도중문 · 단조용 · 공가패 · 호대순 · 전옥 · 왕금 · 고가학 · 성단명 · 주융희
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호유용 · 진녕 · 진영 · 엄숭 · 주연유 · 온체인 · 마사영
이자성 · 장헌충
310권 「호광토사전(湖廣土司傳)」

311·312권 「사천토사전(四川土司傳)」

313·314·315권 「운남토사전(雲南土司傳)」

316권 「귀주토사전(貴州土司傳)」

317·318·319권 「광서토사전(廣西土司傳)」

320·321·322·323·324·325·326·327·328권 「외국전(外國傳)」
조선(← 고려) · 안남(대우후여조막조후여조) · 일본 · 유구(삼산유구) · 여송 · 합묘리 · 미락거 · 사요 · 계롱 · 파라 · 마엽옹 · 고마랄랑 · 풍가시란 · 문랑마신 · 점성 · 진랍 · 섬라 · 과왜 · 삼불제 · 발니 · 만랄가 · 소문답랄(팔석아제) · 수문달나 · 소록 · 서양쇄리 · 람방 · 담파 · 백화 · 팽형 · 나고아 · 여벌 · 남발리 · 아노 · 유불 · 정기의 · 파나서 · 불랑기 · 화란 · 고리리 · 가지 · 소갈란 · 대갈란 · 석란산 · 방갈랄 · 소납박아 · 조법인 · 목골도속 · 불랄왜 · 죽보 · 아단 · 알살 · 마림 · 홀로모사 · 유산 · 비날 · 남무리 · 가이륵 · 감파리 · 급란단 · 사리만니 · 저리 · 천리달 · 실랄비 · 고리반졸 · 알니 · 하랄비 · 기랄니 · 굴찰니 · 사랄제 · 팽가나 · 팔가의 · 오사랄척 · 감파 · 아왜 · 타회 · 백갈달 · 흑갈달 · 불름 · 의대리아 · 달단(북원) · 와랄 · 올량합
329·330·331·332권 「서역전(西域傳)」
합밀위 · 유성 · 화주 · 토로번 · 안정위 · 아단위 · 곡선위 · 적근몽고위 · 사주위 · 한동위 · 한동좌위 · 합매리 · 서번제위 · 오사장 · 아난공덕국 · 니팔랄국 · 타감오사장행도지휘사사 · 장하서어통영원산위사 · 동복한호선위사 · 살마아한 · 사록아해 · 달실간 · 새람 · 양이 · 갈석 · 질리미 · 복화아 · 별실리팔 · 합열 · 엄도회 · 팔답흑상 · 우전 · 실자사 · 엄적간 · 합실합아 · 역사불한 · 화랄차 · 걸력마아 · 백송호아 · 답아밀 · 납실자한 · 매진 · 일락 · 미석아 · 흑루 · 토래사 · 아속 · 사합로 · 천방 · 묵덕나 · 곤성 · 합삼등29부 · 노미


파일:북로(오이라트와 타타르)의 영역 지도.png
15세기경 오이라트의 판도
16세기경 몽골의 판도

1. 개요
2. 계통
3. 역사
3.1. 오이라트 연맹
3.3. 근대
4. 오이라트 민족의 기원
5. 매체



1. 개요[편집]


오이라트(Ойрад, Oirats) 또는 두르븡 오이라트(Дөрвөн Ойрад, Dörben Oirad)[1]몽골 북부의 훕스굴 호수(Хөвсгөл нуур) 일대에서 기원하여 서북 지역으로 세력을 넓힌 초로스, 도르베트, 토르구트, 호쇼트 부족의 연맹체를 말한다.

한자문화권에선 달달(達達)이나 달단(韃靼) 등으로 표기한 기록이 있다.[2]


2. 계통[편집]


본래 오이라트(Oirad)는 삼림을 중심으로 한 채집경제를 영위하던 부족들의 집단으로 그 이름 역시 몽골어숲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한자 병음은 와라와라부였다. 이들은 점차 규모가 커지며 채집경제에서 유목경제로 전환했으나, 그 시기는 칭기즈 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할 무렵이었으며, 오이라트는 이때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들은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하던 막바지에 칸에게 항복하면서 몽골 제국에 편입되었다.

오이라트를 몽골계라고 통칭하나 일 칸국의 재상이었던 라시드 앗 딘의 《집사》(集史)에서는 몽골화한 튀르크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언어학적으로 몽골어족이기에 엄밀히 말하면 튀르크화된 몽골족이라고 봐야 한다. 종족 계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이지만 문제는 《집사》에서 튀르크의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에 사는 튀르크인이었는지, 몽골 서부의 케레이트, 나이만, 메르키트를 위시한 튀르크계 유목민족이었는지는 현재 확정하기 어렵다. 오늘날의 언어는 몽골어의 방언에 속하는 오이라트어이다.

알타이 산맥 동쪽이라는 절묘한 위치 덕에 동아시아사에 중요한 변수가 된 유목민족들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넓은 의미에서는 몽골계 유목민 최후의 세력이면서도 역사적으로는 몽골 최대의 숙적이 되었다. 때문에 북원의 몽골인들은 이들을 카리 다이순(qari daisun)이라 불렀는데, 직역하면 외적(外敵)이었다. 즉, 몽골인들은 오이라트인들을 동족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여진족의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의 관계와 비슷하다.[3]

한편 세조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에 반기를 들어 몽골 고원에서 독자적인 반란 세력을 구축했던 오고타이 칸국카이두가 오이라트와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위치부터가 오고타이 칸국의 위치와 겹치기 때문이다.

오이라트 가운데 일부는 훌라구페르시아(이란)에 세운 나라인 일 칸국의 군대에 용병으로 복무했는데, 1281년 10월 29일 시리아 서부 홈스에서 벌어진 제2차 홈스 전투에서 일 칸국 군대에 포함된 오이라트 부대가 이집트 맘루크 왕조 군대의 왼쪽 측면을 공격해 큰 피해를 입힌 일이 있었다.[4]

오늘날 러시아 칼미키야 공화국의 칼미크인, 몽골의 도르베트인,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토르구트인들이 오이라트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3. 역사[편집]



3.1. 오이라트 연맹[편집]


오이라트가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몽골보다 늦지만, 하필이면 몽골의 4칸국의 경계선에 진출했었기에 몽골 제국 시대에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고, 주로 원나라의 반대편에 서서 싸웠으며, 태조 홍무제명나라를 세우고 북진하면서 북원, 즉 몽골의 세력이 약해지자 몽골에 대항해 싸웠다. 성조 영락제의 5차에 걸친 북벌이 있었으나 오이라트는 도망쳐서 무사할 수 있었고, 영락제 사후 몽골 고원을 제패했다.

1449년 오이라트의 군주였던 에센 타이시토목의 변을 일으켜 영종 정통제를 부획하면서 악명을 떨쳤다. 자세한 점은 토목의 변 항목 참조. 이렇게 몽골과 맞서 싸우면서 오이라트는 몽골 고원 서쪽의 유목민족들을 흡수했다. 케레이트, 나이만, 메르키트를 위시해 칭기즈 칸의 몽골 통일 전쟁 당시 가장 거세게 카마그 몽골에 대항했던 부족들로, 이들은 워낙 덩치가 큰지라 말이 오이라트지, 실제로는 흡수된 부족 출신들이 원 오이라트계보다 훨신 많아졌다. 즉 이즈음에는 오이라트를 중심으로 서몽골의 유목부족들이 뭉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오이라트의 최대 부족 순위는 준가르와 토르구트부터 나이만, 케레이트 계열이 되었다. 오늘날 알타이인의 기원이 되는 원 오이라트계 부족은 쩌리로 전락했다.

이렇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에센 타이시는 당시 몽골의 카안(대칸)이자 매부였던 타이슨 카안에게 누이의 아들, 즉 외조카를 후계자로 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당시 에센의 오이라트 세력을 두려워한 타이슨 카안은 에센의 요구를 거절했다. 분노한 에센은 타이슨 카안과 싸워 그를 패사시키고, 오이라트 여자와 혼인한 자를 제외한 칭기즈 칸의 황금씨족 전부를 학살했다. 당장, 훗날 다얀 칸이 되는 보르지긴 바트뭉흐가 살아남은 이유가 오이라트의 혈통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이때 칭기즈 칸 후손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록과 문서 및 족보까지 소실되고 말았다. 그 다음 1453년, 에센은 직접 대칸(카안)의 지위에 올라 연호를 '첨원'이라고 선포했다. 하지만 칭기즈 칸의 후손인 황금씨족만이 카안이 될 수 있다는 정통성을 깬 무리수를 둔 데다가 몽골 출신의 보르지긴 오복 키야트 황족들을 학살한 것 때문에 몽골인들이 좋게 볼 리가 없는지라 카안에 오른 지 2년 만인 1455년에 그의 자리를 노리던 부하 족장인 지원(知院) 알라크(Alag, 阿剌)에게 살해당했다. 오이라트 역시 에센의 시해 이후 혼란에 빠지고 약화되어 몽골 부족들의 공격을 받아 서쪽 자신들의 본거지로 후퇴했다.

이 후유증으로 몽골 고원은 동쪽의 몽골과 서쪽의 오이라트로 분열했다. 몽골도 이후 차하르할하로 분열했다. 그 할하도 할하 좌익, 할하 우익으로 나누어졌다. 현재 외몽골은 할하부 중심이고, 중화인민공화국령 내몽골은 차하르부 거주지이다. 몽골과 중국의 기록에서는 몽골에게 수시로 털린다고 나와 있으나 오이라트는 16세기 초반 알탄 칸[5]의 시대까지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을 유지했고, 이슬람측 기록에서는 모굴리스탄 칸국과 카자흐족을 수시로 털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탓에 모굴리스탄 칸국은 북쪽의 준가르 분지를 상실했고, 준가르 분지는 오이라트족의 새로운 본거지가 되었지만, 알탄 칸의 등장으로 오이라트는 몽골 고원을 결국 상실하고 몽골에 복속되었다. 알탄 칸의 시대에는 티베트 불교가 오이라트를 포함한 전 몽골에 퍼져 오이라트도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였고, 이것은 몽골 고원 유목민들이 티베트의 내정에 개입하는 시초가 되었다. 오이라트나 몽골 양자에게 티베트 불교가 중요해져 달라이 라마의 상징성이 높아졌다. 오이라트는 그전에는 이슬람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실제로 14세기 말 오이라트 수령의 이름부터 마흐무드였다. 알탄 칸의 치세 이후 몽골이 티베트 불교를 밀자 오이라트계 준가르부도 이에 영향을 받아 결국 티베트를 드나들게 되었고, 티베트 불교로 집단 개종했다. 알탄 칸 치세 이전에 이슬람화했던 오이라트 부족의 무슬림들은 대개 텡그리 신앙 전통이 강한 무늬만 무슬림이었던 관계로 티베트 불교로 배교하거나 튀르크계인 위구르카자흐에 섞였으리라 추정된다.[6]


3.2. 준가르[편집]


1600년대 초반부터 중가리아에서 오이라트는 부활하기 시작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카자흐스탄 북쪽을 거의 점령하고, 트란스옥시아나 일대의 국가들을 수시로 털고 다녔으며, 심지어 카스피해 북쪽까지 원정했고, 1623년 몽골의 할하부를 격파하여 다시 완전한 독립에 성공했다. 그 직후 내분을 겪어 케레이트 칸국의 후예인 토르구트부가 서쪽으로 이주해 카스피해 북부의 노가이 칸국를 멸망시키고, 그곳을 중심으로 삼아 지금의 칼미크가 되었다. 이는 이웃 튀르크계 부족들이 부르던 호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본래 준가르 일대의 오이라트인은 경멸스럽다고 거부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남은 오이라트의 부족들 중 호쇼트부는 티베트 내전에 개입한 후 티베트 방면으로 남진해 떨어져 나갔다.

1640년 만주족청나라가 성장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몽골과 화의한 후 준가르부를 중심으로 통합하여 최후의 유목제국이라고 불리는 준가르 칸국을 세웠다. 이후 준가르의 흥망성쇠에 관해서는 준가르 항목 참조. 예니세이 강에 살던 키르기즈족 중 일부가 현재의 키르기즈스탄에 거주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준가르와 러시아 사이의 협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은 키르기즈족은 하카스인이 되었다.

준가르가 청나라와 격렬한 공방전을 벌일 때, 서쪽으로 이주한 토르구트부는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코사크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고, 튀르크계 유목민들이 오이라트를 지칭하던 명칭을 받아들여 '칼미크'라고 칭했다. 그들은 유럽에 있었던 유일한 불교 민족으로서 러시아와 함께 이웃 이슬람계 국가들과 싸웠으나, 대제 예카테리나 2세가 이들을 토사구팽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칼미크인들이 거주하는 칼미크 칸국이 비옥한 토지에 자리잡은 것을 보고받은 후 독일계 이주민과 코사크들을 데려와 식민시켰고, 칼미크인들이 왜 자신들의 목초지를 남에게 주냐고 항의를 하면 목초지는 안 돌려주고, 대신 병역만 늘려 생계를 더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에 생존에 위협을 느낀 칼미크족은 준가르가 멸망하여 빈 땅이 된 준가르 분지로의 귀환을 결정하여 1771년 270,000여 명의 칼미크 중 170,000여 명이 볼가 강을 건너 귀환을 시작했다. 당연히 러시아 정부는 경악했고, 예카테리나 2세의 지시로 러시아, 카자흐, 키르기즈가 칼미크의 귀환을 막으면서 서로 충돌하여 칼미크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렇게 갖은 시련을 겪으며 6개월 만에 청나라의 서부 국경으로의 진입에 성공했으나 남은 인원은 귀환 시작시의 절반도 안 되는 80,000여 명에 불과했고, 그중 10,000여 명이 급격한 포식과 전염병으로 죽어 70,000여 명만이 생존에 성공했다. 그 이전 오이라트의 인구가 준가르 600,000명, 칼미크 270,000명이었으나 이후 청군에 의한 준가르 대학살과 토르구트, 즉 칼미크의 귀환 동안에 벌어진 전쟁과 기아로 인해 칼미크를 중심으로 고작 200,000명에서 250,000명만이 생존하게 되었다.


3.3. 근대[편집]


그 후 준가르 분지에서는 토르구트부(칼미크)를 중심으로 청나라에 순응하는 몽골계 민족으로서 살아가게 되었고, 러시아에서는 코사크에 편입되어 직접 통치의 대상이 되었으나 근대사의 소용돌이로 그 사람들은 또 다시 크나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1864년 신장의 무슬림 봉기를 시작으로 당시 친청파 주둔군 중 하나였던 오이라트인들은 후이족과 위구르인 무슬림 봉기군의 공격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신해혁명으로 인한 청나라의 멸망과 외몽골의 독립 당시, 몽골에 반발하여 일부는 싸우고 일부는 순응하는 등 시련을 겪은 결과, 몽골에 밀리지 않았던 오이라트의 인구는 몽골인들과 위구르인들에게 압도당하게 되었다.

그나마 신강이 반독립된 상태였을 때는 나름대로 군벌 세력 중 하나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제2차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고, 신강으로 진격하자 오이라트인들은 여타 신강의 세력과 함께 항복할 수밖에 없었으며, 공산주의식 개혁으로 사회는 또다시 해체되었다. 그 와중에 일부는 몽골로 도주했고, 몽골에서는 또 일부가 몽골인들에게 반발하여 신강으로 도주하는 등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상술했던 것처럼 칼미크인들에게 무리한 군역을 강요해서 유목을 방해한 후, 칼미크인의 영토에 코사크독일인 농부들을 정착시키는 방법으로 이들의 영토를 크게 축소시켰다. 푸가초프가 봉기하자 많은 칼미크인들이 참여했다가 수보로프 장군에게 진압당했고, 결국 칼미크인은 힘없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참고로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할머니가 칼미크인이었다고 한다.

로마노프 황조 제정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러시아 혁명으로 멸망하고, 격렬한 적백내전이 일어나자 칼미크인들은 또다시 시련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제정파인 백군의 편을 들려고 했었던 칼미크는 볼셰비키파 적군의 재빠른 진격으로 대다수가 적군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적군은 칼미크 자치구를 만들어 주면서 칼미크인들을 대우하려는 듯 했으나 실제로는 동화정책의 연속이었고,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자 이 사람들은 또다시 고난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7] 이후, 스탈린은 칼미크인을 강제로 이주시켜 그 과정 중에 칼미크인은 절반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솔제니친의 기록을 보면 칼미크인들은 여타 민족과 달리 적응에 실패하여 무력하게 죽어갈 뿐이었다. 이렇게 고난의 시기를 겪은 칼미크는 스탈린 사후 귀환이 허용되었으나 계속된 동화정책으로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가다가 1990년대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한 후에 몽골 및 티베트와 연락해 자신들의 문화를 복원하려고 했다. 이는 몽골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키르산 일륨지노프 초대 칼미키아 공화국 대통령의 영향으로, 덕분에 칼미키아의 불교세는 부랴트는 물론이고, 투바보다도 높다.

현재 남은 오이라트인의 수는 630,000명으로써 몽골과 러시아 칼미키아 등지에 200,000명과 180,000명씩, 중화인민공화국에 250,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몽골의 오이라트인들은 서부 호브드 주와 오브스 주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오브스 주의 경우 인구의 60%가 오이라트계로 집계되고 있다. 몽골의 독재자 욤자깅 체뎅발이 오브스 주에 거주하는 오이라트계 도르베트[8] 부족 출신이었다! 현재는 몽골 칭기스칸 대학교의 총장 카바수렌이 오이라트인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오이라트인들은 주로 간쑤성과 칭하이성에 거주하고 있다. 신장 지역 북부에도 오이라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4. 오이라트 민족의 기원[편집]


오이라트는 원나라의 멸망 이후 몽골 민족에서 분화한 서부의 몽골계 민족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소수설로는 튀르크계라는 설도 있다.[9]

원조비사》에서 오이라트인들을 숲의 민족(Oy-yin irgen)이라고 지칭하여 카마그 몽골인과 구별했으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오이라트의 조상인 케레이트, 나이만, 타타르, 잘라이르는 현재는 몽골인이라고 불리지만, 과거에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튀르크계 유목집단들이었다.[10]

17세기의 몽골 역사서인 《알탄 톱치》와 《몽골원류》에서도 오이라트를 몽골의 선조인 알란 코아의 후예로 보지 않고 있으며, 몽골 역사서 《알탄 칸전》(Erdeni Tunumal Neretü Sudur)에서도 몽골과 오이라트를 각각 '40투멘 몽골'(Döcin tümen Mongγol)과 '오이라드 민족'(Oyirad-un Irgen)으로 구별하고 있다.

1623년 몽골과 오이라트 간의 전투를 기록한 17세기의 오이라트 사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80,000명의 몽골군과 그 동맹군은 외인 4오이라드(Qari Dörbön Oyirad)를 공격했다..(중략)..이렇게 4오이라드는 몽골을 격파했다.


준가르의 통치자 갈단은 1691년 러시아의 차르에게

몽골은 러시아와 준가르의 적

이라는 식의 서신을 보냈으며, 그의 조카인 갈단 체렝은 할하 몽골에 보내는 서신에서

"오이라트와 할하는 원래 한 곳에 살았고, 같은 종교를 믿었다."

라고 언급하면서 청나라를 상대로 동맹을 맺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라는 동류의식은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

(출처 : 이주엽, 《몽골제국의 후예들》, 책과 함께, 2020, p.264-267.)

그러나 이는 계보도가 아닌 DNA에 따른 순수 오이라트인의 기원을 기준으로 삼은 연구였다. 위에 언급된 책의 저자도 추후 논문에서 그렇게 지적한 바 있다.

좀 더 복잡하게 들어가자면, 칭기스 칸과 그의 부인인 보르테 우진 사이에는 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툴루이의 네 아들이 있었는데 13세기 오이라트는 그들의 자손 모두와 혼인을 맺었다. 특히 툴루이의 네 아들인 몽케, 쿠빌라이, 훌레구, 아리크부카와 모두 인척이었다.

《집사》 <부족지>에 의하면 오이라트 연맹의 왕 중 한 명인 쿠투카 베키에게는 두 아들인 이날치와 토렐치, 그리고 딸 오굴 카이미슈가 있었다. 칭기스 칸은 보르테 푸진과의 사이에서 낳은 둘째 딸 보르지긴 치체겐을 토렐치에게 시집보냈고, 그녀는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또한 토렐치의 딸들은 모두 칭기스 칸의 황금씨족에게 시집갔다. 이렇게 13세기 내내 오이라트는 대대로 칭기스 칸 일족과 혼인관계를 맺었다.[11] 그렇기에 그들이 서몽골로 불리게 된 15세기에는 이미 몽골계와 오이라트계가 혼합되어 있었다고 봐도 된다.


5. 매체[편집]


무협작가 양우생의 작품인 《평종협영록》에 오이라트가 등장한다. 토목의 변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에센 타이시가 중요인물로 등장한다.

[1] 몽골어 'н'은 단어 앞에 나오면 'ㄴ'으로 발음되지만 뒤에 나오면 'ㅇ'에 가깝게 발음된다.[2] '타타르'의 음역어로 보인다.[3] 둘 다 광의로는 여진족에 속하지만, 해서여진은 여진 통일 전까지 건주여진 최대의 적이었다.[4] 출처: 《신의전쟁》/ 도현신 지음/ 이다북스/ 303쪽[5] 알탄 칸은 몽골의 영웅 다얀 칸의 손자였지만 몽골의 대칸은 아니었다. 알탄 칸은 몽골 6부 중 투메드부의 칸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명나라를 침공하고(북로남왜 중의 북로), 1550년에는 북경을 포위 공격하는 경술의 변을 일으키는 등 그 명성과 영향력이 몽골 전 부족에 퍼졌다. 그래서 당시 몽골의 대칸이었던 다라이손 구덴 칸은 알탄 칸에게 '게게엔 칸'이라는 직위를 주어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다라이손 구덴 칸은 차하르로 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으며, 대칸의 권력은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6] 카자흐인들 역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 이후 타타르인 상인들과 접촉하기 전에는 이슬람에 대해 매우 단편적인 지식만 가졌었으며, 제사와 결혼을 전부 토속신앙 관습대로 진행했었다.[7] 스탈린그라드부터가 과거 칼미크인들이 정복했던 노가이 칸국의 영역권에 있었던 도시였다. 근본적으론 유목민족들을 감시하고자 세워진 도시였지만 말이다.[8] 에센 타이시가 이끌었던 오이라트 4부족 연맹 중 하나였다.[9] 일부 역덕이나 튀르크권 네티즌들이 오이라트가 몽골계가 아닌 튀르크계라고 주장하나 이는 정설이 아니며, 학계에서는 대부분 몽골계 민족으로 본다. 즉, 위키피디아나 브리태니커 백과, 그리고 중앙아시아사의 권위자인 서울대 김호동 교수도 몽골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라시드 앗 딘이 쓴 《집사》<부족지>에 나오는 내용을 근거로 두고 있다. <부족지>에서는 오이라트를 '예전에는 몽골족이 아니었으나, 14세기인 지금은 몽골족이 된 부족'으로 서술하고 있다.[10] 나이만의 옛 영역에 사는 도르베트의 경우, 튀르크계 고대 위구르족와 동일한 기원 설화를 가지고 있다.[11] 가장 큰 이유는 그 거주지가 전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즉 오이라트는 툴루이, 오고타이, 차가타이, 주치의 봉지와 면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10:23:05에 나무위키 오이라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