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데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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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트 왕국 가톨릭 군주
Roderic | 로데리크
파일:로데리크.jpg
제호
한국어
로데리크
라틴어
Roderic
스페인어
Rodrigo
아랍어
لذريق
생몰 년도
미상 ~ 711년
재위 기간
710년 ~ 711년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서고트 왕국 가톨릭 18대 국왕.


2. 행적[편집]


'알폰소 3세의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친다수윈트 왕의 손자이자 테오도프레드의 아들이라고 한다. 에기카 왕은 테오도프레드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까 두려워하여 눈을 멀게 했다. 그 후 왕실에서 추방된 테오도프레드는 코르도바에서 살다가 리킬로와 결혼하여 아들 로데리크를 낳았다고 한다. 반면 알안달루스 시기 무명의 무슬림 역사가가 기술한 '754년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왕족이 아니었다고 한다.

710년경 위티자 왕이 사망했을 때, 귀족들은 위티자의 아들들을 제치고 그를 왕으로 내세웠다. 당시 로데리크는 베티카 또는 루시타니아의 공작을 맡았다. 그가 정변을 일으켜 위티자를 살해했다는 설과 위티자가 자연사한 뒤 왕위를 쟁취했다는 설이 제시되나, 어느 쪽이 사실과 부합한지는 분명하지 않다. 위티자의 아들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수도를 탈출해 스페인 북동부로 이동했다. 이후 레퀴잔드, 바야진드를 포함한 일부 고트 귀족들이 위티자의 장남 아길라 2세를 왕으로 추대했으며, 서고트 왕국의 유일한 갈리아 영토인 셉티마니아 역시 아길라 2세를 지지했다. 이리하여 서고트 왕국은 로데리크를 지지하는 남부 세력과 아길라 2세를 지지하는 북부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로데리크는 왕국의 북쪽 경계를 침범한 바스크인들을 토벌하고자 진군하여 팜플로냐를 포위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군대를 남쪽으로 돌려야 했다. 아랍군이 바다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아랍 세력은 북아프리카를 평정한 뒤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우타를 다스리던 동로마 총독 율리아누스가 돌연 아랍 세력에 귀순했다. 754년 연대기에 따르면, 율리아누스는 자기 딸인 플로린다 라 카바가 로데리크에게 강간당하자 복수하기 위해 귀순했다고 한다. 반면 알폰소 3세 연대기에 따르면, 플로린다는 로데리크를 현혹시킨 요부였다고 한다.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율리아누스는 바다를 건널 선박을 제공하고, 서고트 왕국의 지리, 정치, 군사 등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여기에 로데리크에게 반감을 품은 서고트 귀족들이 북아프리카 총독 무사 이븐 누사이르에게 밀사를 보내 로데리크를 타도하려 하니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무사는 가장 신뢰하는 장군인 타리크 이븐 자야드에게 7,000명을 맡겨서 이베리아 반도로 파견했다.

율리아누스의 도움을 받아 바다를 건넌 타리크는 병사들이 탈영하는 걸 막기 위해 상륙하자 마자 배를 불태웠다. 이후 지브롤터에서 출발하여 카르타헤나 해안 일대를 돌며 약탈을 자행했다. 뒤이어 무사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카디스 해협을 건너 15개월 동안 히스파니아에 머무르며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고 전해지지만, 그가 과달레테 전투에 참여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로데리크는 이에 맞서 남하하면서 왕국 전역의 귀족들에게 자신에게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타리크는 카르타헤나에서 코르도바로 진군하던 중 과달레테 강 인근에서 로데리쿠스의 군대와 마주쳤다. 이리하여 벌어진 과달레테 전투에서, 로데리크는 수많은 귀족들이 배신하는 바람에 근위병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전설에 따르면, 추종자들이 그의 시신을 비제우(포르투갈 북부)로 가져가 그곳에 묻었다고 한다. 754년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전투 이후 발견되지 않았으며, 오직 늪에 빠진 그의 백마만 발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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