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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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사우디 네즈드.png

1. 개요
2. 역사
2.1. 고대 : 킨다 왕국
2.2. 중세 이슬람 시대
2.3. 근대 : 사우드 왕가의 본거지


1. 개요[편집]


아랍어 نَجْدٌ
영어 Najd

사우디아라비아 내륙 지역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지명. 표준 아랍어 발음은 나즈드이고 그외에 네즈드, 나즈드, 나지드 등으로도 표기된다. 서부인 히자즈와 함께 사우디의 양대 지역 중 하나다. 현재의 행정 구역으로는 리야드주와 알카심, 하일주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 상으로는 그저 황무지로 보일 수 있으나 중동 지역답게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아랍어로 네지드는 고지대란 의미로, 해발 700 ~ 1500m의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권인 리야드-디리야-카르지를 포함하여 부라이다-우나이자, 하일, 와디 앗 다와시르 등의 오아시스 지대에 주요 도시들이 자리한다.

2. 역사[편집]


파일:사우디아라비아 조각.jpg
파일:사우디 아랍어.jpg
파일:사우디 파우 1.jpg
네지드 남부 카리야트 알 파우 유적의 유물들. 헬레니즘 영향이 보인다. 중간의 석판은 사우디 최고(最古)의 아랍어 유물이다[1]

2.1. 고대 : 킨다 왕국[편집]


네지드 지역의 문명은 아랍인의 확산을 따라 예멘에서 전해졌다. 남부에 해당하는 현재의 나즈란 동북쪽 200km 지점의 와디 앗 다와시르 일대가 중심지였다. 상고 시대에는 알 마가르를 중심으로 신석기 농경 문화가 발달했고, 고대에는 인근 카리야트 알 파우를 중심으로 한 킨다 왕국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키네다콜피타이라 불렀다. 5세기 들어 아라비아 반도 통일에 나선 킨다 군주 알 하리트 빈 아므르는 라흠 왕국의 수도 알 히라를 점령했으나 529년경 알 문디르 3세에게 패하고 붙잡혀 처형당하였다. 비슷한 시기 킨다 왕국의 종주죽이던 예멘의 힘야르 왕국이 무너지자 왕권이 약했던 킨다 왕국은 아사드, 타글리브, 카이스, 키나나 부족 등으로 분열되었고 그마저도 540년경 라흠 왕국의 보복 원정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2.2. 중세 이슬람 시대[편집]


이러한 자힐리야 시대에 네지드는 사막 횡단 교역이 있었고, 그러한 대상 중 하나였던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게 된다. 히즈라와 함께 개시된 이슬람 시대에 네지드는 릿다 전쟁에서 툴라이하와 무사일라마 등이 저항하기도 했으나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에 의해 진압된 후 확고한 이슬람 지역이 되었다. 네즈드 부족들 중에서도 바누 타밈은 이어진 이슬람 정복의 주축 중 하나로 이라크와 이란 전역에서 활약하였다. 7-9세기 네지드의 중심은 현 리야드 동남쪽 외곽에 해당하는 하즈르이었는데 866년 하산 빈 알리의 후손인 바누 우카이디르[2]가 보다 더 남쪽인 카르지 오아시스로 옮겼다. 10세기 들어 동쪽 알 하사에 이스마일파 근본주의 세력인 카르마트가 부상하자 바누 우카이디르는 그와 연합했으나, 928년 관계가 틀어져 에미르 이스마일 빈 유수프가 살해당하고 결국 카르마트에 복속되었다. 11세기 후반 카르마트가 쇠퇴하자 네지드는 바누 킬라브가 주도권을 쥐었다.

2.3. 근대 : 사우드 왕가의 본거지[편집]


7세기 중반 이슬람 제국의 주도권이 이집트-시리아-이라크 일대로 옮겨간 후 기존 아라비아 반도는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되었다. 특히 사막이 대부분인 네지드는 그 정도가 더 심했고, 셀주크 제국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일대의 부족들은 별 간섭을 받지 않고 유목 생활을 하며 자치를 유지하였다. 간혹 이라크와 히자즈를 잇는 성지 순례 (핫즈) 길을 따라 세워진 성채가 보수될 뿐이었다. 그러던 18세기 네지드의 사막화가 심해지며 여러 부족들이 걸프 해안으로 이주하였는데, 그중 바니 우투브는 쿠웨이트 (알 사바흐) / 바레인 (알 칼리파) / 카타르 (알 타니) 왕가의 기원이 되었고 바니 야스는 아부다비 (알 나흐얀) / 두바이 (알 막툼) 왕가의 기원이 되었다. 남은 네즈드 부족들은 1744년 디리야를 기반으로 세워진 무함마드 빈 사우드와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의 1차 사우디 국가 하에 통합되어 일시적으로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장악하는 정복 전쟁을 벌이게 된다.

비록 1818년 오스만 제국 휘하 이집트 총독 메흐메트 알리 파샤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6년 후 디리야 부근 리야드를 중심으로 네지드 토후국이 세워져 다시 네지드 ~ 걸프 해안을 통합한다. 비록 1891년 친오스만 세력인 라시드 가문의 자발 샴마르가 네지드 왕국을 멸하고 네지드를 일시 정복하지만 10년 후 사우드 왕가가 돌아와 3차 사우디 국가, 즉 리야드 토후국이 세워진다. 그 군주인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이크완 부대를 앞세워 1913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동쪽의 알 하사를 정복하고, 1차 대전기 영국의 아랍 대봉기 참여 제안을 거부한 채 힘을 키워 1921년 숙적인 자발 샴마르를 멸하였다. 이로써 네지드를 통일한 압둘 아지즈는 술탄을 칭하였고, 1925년에는 서쪽의 헤자즈 왕국을 정복하며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강역을 확보하였다. 1926년 히자즈, 1927년 네지드의 왕을 칭한 압둘아지즈는 마침내 1932년 두 왕위를 통합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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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 말하면 남부 아랍어 계열인 미네아어가 적혀 있는 기원전후 무렵 석판이다. 현대 아랍 문자의 직접 조상인 북부 아랍어 계열의 나바테아어가 적힌 유물로는 시리아에서 발견된 4세기 무렵의 나마라 석판이 유명하다.[2] 시아파였다. 따라서 10세기 초엽 사우디 대부분 지역이 쉬아였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