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배/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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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김성배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3. 두산 베어스 1기 시절
4.3. 2014 시즌
4.4. 2015 시즌
4.5. 2016 시즌
5. 두산 베어스 2기 시절
5.1. 2016 시즌
5.2. 2017 시즌
6.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편집]


김성배의 선수 경력을 기록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편집]


야구를 시작한 계기는 "배가 고파서". 장안초등학교 시절 야구부 아이들이 먹는 단팥빵과 우유가 먹고 싶어서 쳐다보고 있다가 스카웃됐다고 한다. 그 후 중학교 때부터는 유격수를 보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실책이 너무 많아서 불려가 혼나던 중 감독님의 "너 이 따위로 할거면 투수해!"라는 불호령에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해 버려서 투수로 전향했다고.

1998년, 배명고 3학년때 OB 베어스의 2차 8순위(전체 6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낮은 지명순위를 받은 탓에 대학 진학을 선택, 건국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해[1] 활약하다 건국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한 후 2003년에 입단하였다.[2]


3. 두산 베어스 1기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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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후 별다른 활약 없이 2군에 있다가 2005년 시즌 72경기 82이닝 동안 8승 3패 2세이브를 거두며 마무리인 정재훈의 앞에서 필승계투로 활약했고, 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었다. 재미있게도 이 당시 올린 8승 중 4승이 롯데전에서 올린 승이다. 롯데전에 첫 선발 등판해서 승리를 챙기기도 하는 등 로나쌩 클럽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전해 무리한 대가인지 팔꿈치 안쪽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2006년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다가 2007년에 상무에 입대한 뒤 2009년 전역해 뒤늦게 팀에 합류했으나 재활 훈련을 마친 뒤 1군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 발가락 골절상을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지못미. 복귀 후 첫경기에서 무척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선발기회를 잡게 되지만 6월 25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4.1이닝 4실점으로 패전을 기록했다.

2010년 9월 7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5⅔이닝 동안 1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해 1,805일만에 승리 투수가 되는 감격을 누렸다!

롯데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이두환을 대신하여 삼성과의 2010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합류했다.

김성배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2⅔이닝 2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2K 1실점 비자책점, 1승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한국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2011년 4월 20일 넥센전에서 6이닝 4피안타 1피홈런 2볼넷 5K 1실점 1자책점으로 첫 QS 승리를 땄다. 이날은 지병이 있는 어머니가 오셔 관람하셨기 때문에 더욱 값진 승리였다. 그러나 그 이후 번번이 팀의 상승세를 끊으면서 까였다.

쭉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달감독이 자꾸 선발로 쓰고 싶어했다. 그리고 매년 선발로 한 경기 잘 던지고 나면 다음 경기에 털려서 불펜으로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이는 두산에서 리오스-랜들 말고는 선발감을 별로 찾아내지 못하고 불펜에만 의존하던 달감의 투수 운용 탓도 있다.


4.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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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롯데로 이적하였다. 약간 뜬금없이 40인 보호에서 빠졌기 때문에 이적 직후 김성배를 보내도 되느냐 안 되느냐에 대해서 두산 팬들의 논쟁이 있다가 "뺄 만하니 뺐겠지"하는 식으로 결론이 지어졌었다. 정작 이적팀인 롯데팬들은 이대호의 FA등 스토브리그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리고 이적하자마자 팔꿈치 인대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3] 이후 오진으로 밝혀져 스프링캠프에 뒤늦게 합류했다.


4.1. 2012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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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성배/201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시작 전 정대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뒤늦게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을 때 "정대현이 돌아올 때 양승호 감독이 누굴 골라야 할지 고민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롯데의 새로운 불펜에이스로 활약하며 그 말을 그대로 지켰다.

그런 덕분에 못하는 날에는 이대호마저 까였던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2012 시즌 들어 이명우와 함께 안 까였다. 팔꿈치가 좋지 않다는 기사가 났었고 그 때문에 스프링캠프 합류도 뒤늦어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이승호정대현이 부진과 부상으로 없는 동안 불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활약한 데다 오심 피해자에 김태균의 반말 사건 등으로 모아둔 까방권이 엄청났던 듯. 가끔 김성배가 실점하면 까는 게 아니라 걱정을 할 정도였다. 5, 6월 들어 박빙승부가 많아지면서 출장 횟수와 연투가 급격히 늘어나자 부상 경력 있는 선수를 노예로 쓴다고 양승호 감독을 깠다.그리고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꼴빠들이 얼마나 안정적인 불펜에 목말랐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4.2. 2013 시즌[편집]



파일:13김성배.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성배/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2013시즌때) 조금, 선수생명을 그때 많이 깎아먹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 때 욕심에 계속 나가고 싶었던 제 욕심도 있었지만, 그걸 제가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다면....사실 저 13시즌 끝나고 어깨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거든요. 어깨는 한 번도 아팟던 적이 없었어요. 두산 옮기고는 거의 어깨에 주사 맞으면서 던졌으니까. 저때...좀 아쉽죠. 좀 더 좋은 모습을 오래 보여 드릴 수 있었을 텐데...(김시진)감독님 탓도 아닌 거고 제 욕심에 제가 했던 거죠. 후회하죠. [4]

김성배. 스톡킹에 출연했을 때 2013시즌을 회상하며.



4.3. 2014 시즌[편집]


2013년의 활약을 인정받아 연봉이 대폭 상승하였다. 1억 9,000만 원으로 81%의 상승률이다. # 시즌 전에 롯데 클로저 후보 1순위로 거론됐으며 나오는 기사도 김성배의 마무리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당히 좌타가 줄줄히 나올때 옵션으로 최대성을 고려하는 정도로 보였다. 2013년에 임시에 중도에 바뀐 초보 마무리라는 악조건 하에서도 세이브 3위를 따낼 정도의 괜찮은 실력을 보였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를 받은 것이며, 김성배 본인도 마무리 투수 자리를 원하는 듯했다. # 만약 다시 클로저를 하게 된다면 블론 세이브를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결국 2014 시즌을 마무리 투수로 시작하게 되었다. 최대성은 좌타가 많이 나올 경우에 마무리 투수로 나오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4월 15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2:3로 앞선 9회초에 강영식에 이어 네 번째 투수로 등판했는데, 1사 후 5번 타자 모창민의 대타로 나온 에릭 테임즈에게 동점 솔로포를 맞으며 시즌 두 번째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날 김성배는 1⅓이닝 19투구수 2피안타 1피홈런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 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NC와 서로 투수를 7명씩 투입한 끝에 12회초에 나성범에게 적시 1타점 2루타와 이호준에게 희생플라이를 맞고 스코어 5:3으로 패했다.

4월 16일까지를 기준으로 블론세이브 2개로 작년인 2013년의 7블론세이브를 경신할 페이스였다. 그리고 블론세이브가 모두 좌타자에게 맞은 홈런으로 인해 저지른 것으로[5], 팬들은 좌타에게 바보인 좌상바 아니냐고 우려하였다. 이 때문에 코칭스태프에서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김성배를 마무리에서 제외하고 집단 마무리 체제로 전환하였다.

4월 1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강영식에 이어 스코어 5:5인 9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등판했다. 그리고 아웃카운트를 잡기는커녕, 공 10개를 던지는 동안 첫 타자이자 5번 타자인 홍성흔, 다음 타자 양의지에게 연속 안타자를 맞고 스코어 5:6으로 경기를 끝내고 강영식을 패전 투수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김시진 감독은 김성배를 편한 상태에서 올리겠다고 말하면서 1년만에 다시 중간계투 포지션으로 돌아와서는 나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중. 김승회가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한다.

중간계투 전환 후 첫 등판이였던 4월 22일 목동 넥센전에서 6회 2사부터 올라와 1이닝동안 2피안타 3K를 기록했다. 투구 내용은 나쁘지 않았으나 7회 2사 잘잡고 유한준의 1루땅볼 타구 때 베이스를 찾지 못하면서 출루를 허용하고 이후에 비니 로티노에게 실점을 내줬다. 이 실점은 자책점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4월 27일 사직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는 8회에 등판했다. 1.1이닝을 20개의 공을 던지며 깔끔하게 막아줬다.

그 뒤로는 2012년처럼 셋업맨으로 등판하고 있다. 7월 7일 기준 32경기 31이닝 4세이브 10홀드 방어율 3.77로 자기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7월 27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시즌 첫 승을 거뒀는데, 당시엔 트윈스 타선을 나름 잘 요리했다는 평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그 소리는 쏙 들어갔는데...

후반기 들어 계속 안 좋다. 나오기만 하면 얻어 맞아 팬들을 답답하게 하고 있다. 계투로 혹사 논란이 이어지다가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한 후 비교적 잘했으나 그 다음 해에 결국 무너지는 분위기. 즉 완벽한 김사율의 데자뷰다. 결국 8월 7일자로 강민호, 김문호와 함께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9월 5일 SK전에서 대량실점으로 평균자책 108.00점(...)을 찍고 1군에서 말소된 뒤 시즌을 마감했다.

결국 1승 4세이브 11홀드 방어율 5.98의 최악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성적, 연봉 등을 놓고 봤을 때 삭감이 유력한 상황이었고, 예상대로 2천만원 삭감된 1억 7천만원에 2015년 연봉 계약을 맺었다. 물론 2013 시즌 김시진노예질과 그 후유증으로 인해 어깨 통증이 발생하여 부진했던 것도 있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수준이라는 평이 더 많은 상황이다.


4.4. 2015 시즌[편집]


5월 31일 기준으로 2승 무패, 1세이브 5홀드로 팀 내 홀드 1위를 달리면서 겉보기엔 그럴대로 봐줄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만, 문제는 그놈의 방어율(5.71)과 WHIP(1.79). 원래 보직인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서 본다면 현저히 낙제급인 성적이다.

8월 2일 수원 kt전에서 9:9 동점 연장 10회말에 등판하였다. 2이닝을 잘 막아내고 12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라 선두타자 오정복을 범타로 처리했다. 그런데 다음 이대형 타석에서 문규현이 평범한 유격수 땅볼 타구를 뒤로 흘리며 이대형을 출루시켰다. 결국 2아웃 주자2루 상황에서 김상현에게 좌전 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타구도 좌익수의 송구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2루주자를 홈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었는데 안중열이 그 송구를 놓치는 바람에 그대로 경기 종료. 패전의 멍에를 썼지만 김성배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웠던 경기.

9월 20일 경기에서는 박석민에게 한경기 최다타점인 9타점째가 완성되는 만루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최종성적은 45경기 39 2/3이닝 2승 3패 1세이브 방어율 7.71 그야말로 파멸적인 투구를 보여주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X같지만,사실 김성배는 15시즌 못한게 아닌 운이 지나치게 없었다고 봐야한다.[6] 15시즌 ERA가 7.71인데 비해 FIP는 3.91..... 차이가 3.80이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이다. 거기에 BABIP는 지난 시즌(0.356)에 비해 오르고(0.377) 14시즌이야 FIP도 5점대라 바빕이 높은건 그렇다 치지만,당장 FIP가 3점대이면서 바빕까지 오른 15시즌은 운이 없었다는 말밖엔 설명이 안된다. 거기에 전체적인 스탯[7]이 14시즌에 비해 나아졌고, 한술 더 떠서 WAR도 나아졌다.

근데 투구할 때 밸런스가 맞지 않고 불안정한 게 몸에 이상이 있지만 숨기는 듯 하다.바로 14시즌에도 어깨 부상을 안고 뛰다가 부진했고.

최근 팀의 유망주 육성 방침에 따라 이정민과 더불어 사실상 전력 외 판정을 받은 그는 많은 롯데 팬들이 그를 이용을 해서 박종윤보다 조금이나마 잘하는 1루수를 얻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또 바라고 있다.


4.5. 2016 시즌[편집]


4월 말을 기준으로 ERA가 7점대를 기록하고 있다. 팬들 대부분은 정대현과 세트로 묶어 까이고 있으며 왜 안내리냐며 성토하는 중.

5월 5일 선발 이성민이 대차게 털린 뒤 2번째 투수로 나와서 2.1이닝 7피안타 6볼넷 6실점 투구수 86개를 기록했다. 안좋은 폼을 대변하듯이 투구수에 비해 소화한 이닝이 너무 적다. 무자비한 볼질 및 실점은 덤. 결국 다음날 강영식과 자리를 맞바꿔 말소되었다.

롯데 자이언츠 소속 선수로써 마지막 등판은 1군에서는 지난 6월 25일 대전 한화전[8], 2군에서는 7월 22일 화성 히어로즈전[9]이었다.


5. 두산 베어스 2기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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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에 김동한과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팬들의 의견은 양 팀 모두 엇갈리는 편이지만 일단 롯데가 좀 더 이득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김동한은 그간 1군경기에 종종 나와서 괜찮은 모습을 보였고, 김성배는 혹사 이후 기량 회복이 되지 않고있는 상태이기 때문.


5.1. 2016 시즌[편집]


7월 27일 고척 넥센 히어로즈전에 등판해 1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베어스 복귀전을 치렀다.

7월 29일 한화 이글스와의 홈 경기에서 10회 초 연장전에서 등판해 2이닝간 1실점하면서 패전 투수가 됐다. 비록 김경언에게 홈런을 맞아 패전 투수가 됐어도, 앞에 나온 투수인 정재훈이현승보다 훨씬 좋은 구위와 변화구를 보여주어서 7회에 김성배를 올리지 않은 김태형에게 팬들이 분노하고 있다.

8월 5일 경기부터 17일까지 6경기 동안 6이닝 0자책점 2홀드로 두산 불펜의 숨통을 틔어주고 있다.

8월 19일 SK와의 경기에서 복귀 후 첫 세이브를 달성했다. 1과 3분의 2이닝동안 안타 3개를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했다.

8월 28일 KIA전 1이닝 등판, 30일 한화전에 3분의 1이닝 등판 모두 무실점을 기록했다.

9월 2일 KT보우덴의 선발 경기에서 8회초 윤명준에 이어서 세번째 투수로 등판하였다. 3타자 상대하는 동안 1안타 1볼넷 1실점을 기록 했다.

9월 6일 롯데와의 경기 4번째 투수로 6회말에 등판했다. 1이닝동안 4타자 상대 1실점했다. 1실점이 황재균의 솔로 홈런이다. 7일 롯데와의 경기 연속 등판했다. 니퍼트, 진야곱에 이은 3번째 투수로 등판하였다. 신본기에게 몸의 맞는볼 허용, 전준우에게 볼넷을 허용하였지만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9월 11일 넥센과의 경기에 나흘만에 등판하였다. 8회말 이현승에 이어 5번째 투수로 등판, 1타자만 범타로 처리하나 2연속안타를 허용했다. 후속 투수가 무실점으로 막아 최악의 사태를 면했다.

9월 14일 SK와의 경기에 등판, 1과 3분의 2이닝동안 2안타를 허용했지만 무실점을 기록했다.

9월 16일 NC와의 경기에 구원 등판, 3분의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17일 KT와의 경기에 구원 등판하였다. 2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았지만, 안타 2개와 볼넷 1개를 내줘 1자책점을 기록하였다.

9월 27일 한화와의 대전 경기에 9회말 2아웃 만루 상황에 등판하였다. 이전 투수 홍상삼이 9회 2사 이후에 등판하였으나, 1안타와 4연속 볼넷을 허용하고 2점을 실점해 8대 7의 스코어에 만루 상황에 등판하였다. 오선진을 상대로 2볼 2스트라이크를 잡고, 5구째 유격수 옆을 빠져나가는 중전 안타를 허용 3루 주자와 2루 주자가 득점. 경기는 8대9로 두산이 한화에 패배하였다. 관련 기사

이후 11년 만에 한국 시리즈의 엔트리에 포함됐다. 팀이 선발로 경기를 압도하면서 불펜을 이현승과 이용찬만 기용하는 바람에 등판 기록은 없지만 야구 인생 처음으로 우승반지를 손에 넣게 됐다. 두산 이적 후 24경기 22이닝 4홀드 1세이브 4.09를 기록했는데 특히 정재훈의 부상으로 위기에 빠졌던 8월 불펜진에서 11경기 11이닝 4홀드 1세이브 2.45로 호투했던 덕분에 팬들의 여론도 트레이드 당시보다 훨씬 호의적으로 변했다.


5.2. 2017 시즌[편집]


3월 31일 한화와의 개막전부터 등판, 1이닝 1K로 세이브를 올리며 더스틴 니퍼트의 8이닝 무실점 승리를 지켰다.

4월 1일에도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2K로 막고 이용찬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4월 2일 11회초 등판해 신성현에게 역전 솔로 홈런을 허용했지만, 11회말 에반스가 다시 안영명을 상대로 동점 홈런을 때려 패전을 면했고, 12회도 잘 막은 뒤 민병헌의 12회말 1사 1,2루에서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4월 8일 9회초 3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 등판해 선두타자 김하성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다음타자 박동원에게 사구를 맞추며 흔들렸다. 이어 고종욱을 삼진 처리했으나 1사 1,2루 상황에서 이정후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고 이정후에게 데뷔 7경기 만에 멀티홈런, KBO 최초 부자 잠실구장 멀티 홈런 기록의 허용투수가 되었다.

6월 4일까지 20경기 22.1이닝 ERA 4.03 2승 1세이브로 나이와 기대치를 감안하면 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5월달엔 8경기를 등판해서 7.2이닝 무실점으로 ERA 0.00 WHIP 0.78을 기록하며 이현승, 김승회와 함께 두산 불펜진을 이끌어 줬다.

6월 7일 삼성전에 7회 2사에 등판해 다린 러프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김승회가 쌓아 놓은 주자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8회 1사까지 잡아내고 이현승에게 마운드를 넘겨 0.2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하나 얻어갔다.

8월 30일 롯데전에 8회에 이대호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했다. 결승 홈런은 아니었지만 3:1이었던 스코어가 5:1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롯데로 넘어가고 말았다.

9월 13일 이후 등판이 아예 없는데도 어째서인지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모두 들어갔다. 그러나 한 차례도 등판하지 못했고,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시즌 후 FA였으나 신청하지 않았고, 상호 합의 하에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본인은 현역 연장 의사를 밝혔다. 독립 리그라도 가서 뛰겠다는 듯. 하지만 결국 손을 내민 구단은 없었고, 한 기사를 통해 현역 은퇴 사실이 알려졌다. 진통제를 맞아 가며 던져서 아픈 걸 모르고 있었는데, 안 맞고 던지니 너무 아팠다는 후문이 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4사구
탈삼진
WHIP
2003
두산
1군 기록 없음
2004
2
5⅓
0
1
0
0
16.88
11
2
6
2.44
2005
72
(3위)
82⅓
8
3
2
8
3.17
71
29
60
1.15
2006
21
19⅔
0
0
0
1
4.58
20
12
10
1.58
2007
군 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8
2009
10
18
0
2
0
0
9.50
3
8
7
2.00
2010
9
19⅓
2
2
0
0
5.59
21
7
9
1.35
2011
31
52
1
5
2
4
5.88
66
21
29
1.6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12
롯데
69
53⅓
3
4
2
14
3.21
46
24
33
1.24
2013
58
59
2
4
31
(3위)
4
3.05
45
24
58
1.12
2014
46
40⅔
1
0
4
11
5.98
54
24
32
1.87
2015
45
39⅔
2
3
1
5
7.71
51
21
33
1.77
2016
15
15⅓
0
0
0
1
8.80
30
15
15
2.8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4사구
탈삼진
WHIP
2016
두산
24
22
0
1
1
1
4.09
29
6
12
1.55
2017
45
44
2
1
1
4
5.32
47
15
33
1.27
KBO 통산
(11시즌)
447
470⅔
21
26
44
56
5.07
520
208
337
1.49
[1] 참고로 동의대학교와 맞붙은 2002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추계리그 준결승 때 마운드에 나섰다가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했는데, 그 때 끝내기를 친 타자가 정보명이다.[2] 입단 당시엔 두산 베어스로 팀명 변경 후.[3] 오진으로 밝혀졌으나, 처음 팔꿈치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나는 아프지 않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기사가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시 팬들의 반응은 '그럼 그렇지 상동 식구가 한 명 늘었구나…'.[4] 스톸킹에 출연 하여 빙동님의 혹사를 언급 할 때 '투수의 팔은 소모품' 이라고 설명 하였다.[5] 조쉬 벨에릭 테임즈로,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외국인 타자용병이다.[6] 자료의 출처 [7] 피안타율, 피출루율, 삼진율, 심지어 볼넷 비율도 훨씬 나아졌고, 이닝은 지난 시즌과 1이닝밖에 차이가 안 난다.[8] 1/3이닝 1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9] 1/3이닝 4피안타 1볼넷 5실점(5자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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