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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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군 >
70 이호준 · 71 김경태 · 72 김민호 · 73 김일경
· 74 경헌호 · 77 이종범 · 80 박경완 · 81 김정준
· 85 염경엽 [[감독#s-1.1|

]] · 97 모창민'''
< 퓨처스/재활군 >
75 조인성 · 76 윤진호 · 78 양영동 · 79 황병일
· 82 윤요섭 · 83 임훈 · 84 박용근 · 86 신재웅
· 89 양원혁 · 93 장진용 · 99 김광삼

< 트레이닝 파트 >
87 안영태 · 88 김용일 · 91 이권엽 · 95 고정환
· 92 스티브 홍 · 96 배요한 · 98 박종곤 · 유현원
· 최재훈 · 김종욱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입대선수등록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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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창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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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NC_Dios_2020_KoreanSeries_Champions.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8
2020

파일:2023_Champion_LG.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23

SK 와이번스 등번호 13번
이성우
(2005~2007)

모창민
(2008~2010)


최윤석
(2011~2013)
SK 와이번스 등번호 3번
나주환
(2007.4.29.~2010)

모창민
(2012)


나주환
(2013~2019)
NC 다이노스 등번호 16번
송수
(2012)

모창민
(2013~2014)


김건태
(2018)
NC 다이노스 등번호 3번
이창섭
(2014)

모창민
(2015~2018)


유영준
(2019~2020)
NC 다이노스 등번호 16번
김건태
(2018)

모창민
(2019~2021)


정범모
(2022)
LG 트윈스 등번호 97번
김현욱
(2018~2020)

모창민
(2022~)


현역



파일:22모창민LG.png

LG 트윈스 No.97
모창민
牟昌民 | Mo Chang-Min

출생
1985년 5월 8일 (38세)
광주광역시 서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광주화정초 - 충장중 - 광주제일고 - 성균관대
신체
188cm, 89kg, A형[1]
포지션[2]
3루수, 1루수, 지명타자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8년 2차 1라운드 (전체 3번, SK)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8~2012)
NC 다이노스 (2013~2021)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1~2012)
지도자
LG 트윈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22~)
프런트
NC 다이노스 전력분석원 (2021)
등장곡
4minute - 이름이 뭐예요?[3]
응원가
[ 이전 응원가 보기 ]
SK 시절: 은방울 자매 - 《닐리리 맘보》[1][2]
NC 시절: Handel - Joy to the world[3]
클론 - 쿵따리 샤바라[4]
김학래 & 임철우 - 내가[4]
구단 자체 제작 - 작사/작곡 : M.H.[5][6]
소속사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종교
개신교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1. 개요
3. 지도자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4.1. 타격
4.2. 수비
4.3. 주루
5. 별명
6. 여담
7. 연도별 주요 성적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LG 트윈스 1군 타격보조코치이자 前 SK 와이번스, NC 다이노스 소속 선수로 주포지션은 3루수[7].

NC 다이노스 1군 1호 안타의 주인공으로 성실한 자세로 팀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하며 사실상의 프랜차이즈 선수 대우를 받았던 선수.


2. 선수 경력[편집]




3. 지도자 경력[편집]


2021 시즌 후, 이호준과 함께 LG 트윈스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보직은 1군 타격 보조코치로 결정되었다.

은퇴하자마자 갓 코치를 단 초보 지도자임에도 2022 시즌 이호준 메인 타격코치와 함께 LG 타선을 불방망이로 환골탈태시키는 데 적지 않게 공헌하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4.1. 타격[편집]



모창민의 타격 폼
큰 키와 빠른 발, 단단한 체격, 준수한 컨택과 장타력을 고루 갖춘 툴가이. 주전으로 3할 내외의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컨택과 매시즌 홈런 10개를 넘기는 펀치력[8], 두 자릿수의 도루는 능히 해낼 수 있는 빠른 발을 가졌다.

다만 지나치게 빠른 승부를 좋아해서 경기 흐름을 깨뜨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도 한다. 배트 적극성이 굉장히 높은 타자[9]이며 초구 적극성도 40%를 넘나들어, 40% 중반을 꾸준히 기록하는 나성범 정도는 아니지만 타석에서 초구를 노리는 경향이 강하다. 스트라이크 존 내 공에 대한 배트가 나올 확률인 I-swing이 71.9%로 굉장히 높고, 존 밖 공에 대한 배트가 나올 확률인 O-swing 역시 34.4%로 높아 헛스윙도 많다.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낮고, 통산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고작 5푼에 불과한 것은 이 때문.

4.2. 수비[편집]



파일:몿다이빙캐치.gif

모창민의 다이빙 캐치[10]
수비 면에서는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모창민의 3루수 도전기가 NC 3루수 경쟁의 역사라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창단 이후 2014년까지 주전 3루수로 출장하면서 수비이닝을 그럭저럭 소화하다 2015 시즌에는 개막 직후부터 처참한 실책갯수를 적립하며 주전 3루수 경쟁에서 지석훈에게 밀려났다. 그 지석훈도 타격면에서 부침을 겪자, 팀이 2016 시즌 시작 전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석민을 영입하면서 주전 3루수 자리를 또다시 위협받았다. 그러나 모창민의 타격능력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은 김경문 감독에 의해 좌익수로 포지션 변경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훈련 과정에서 무릎 부상이 생겨 포지션 변경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2016년 6월 말 부상에서 회복해 1군에 뒤늦게 합류한 이후에는 박석민에 이은 백업 3루수로 출장했다. 2017 시즌부터는 박석민이 잦은 부상으로 드러눕기 시작하면서 3루수 백업인 지석훈과 비슷하게 200이닝 남짓한 3루수 수비이닝을 소화했으나, 이때부터 1루수 출장이 283이닝으로 대폭 늘어나기 시작한다. 송구 부담이 없어지면서 주전 1루수 스크럭스의 백업으로서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으며, 2018 시즌에는 박석민이 완전히 드러누움과 동시에 3루수로 거의 나서지를 못하면서 노진혁에 이은 백업 3루수로 더 자주 출장했다. 허나 필딩율은 2017년 9할을 살짝 넘겼고 2018년에도 0.931으로 주전 내야수로서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2019년에는 3루 수비에서 완전히 빠지며[11] 주전 1루수로서 545이닝을 소화[12]했는데, 필딩율 0.991로 3루수 시절보다는 확실히 나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따금씩 호수비를 보여주었다.

4.3. 주루[편집]



모창민의 도루[13]
주루 면에서는 2015 시즌까지 도루 시도도 많이 했고 두자릿수 도루를 기록하며 주루 RAA도 리그 3루수 중 가장 높았다. 허나 은근히 부상을 자주 당해 2016 ~ 2020 시즌 동안 2017 시즌을 제외하면면 부상으로 재활군에 한번씩 내려가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다 보니[14] 훌륭한 주루 툴을 못 써먹었다. 이는 부상 재발을 막기 위해 공격적인 주루를 자제했기 때문이다.


5. 별명[편집]


  •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 못하는 선수는 일희일비하며 모두 까이는 분위기이지만 유독 자주 까이는 편이었는데, 모창민은 야구를 잘 한다고 몿으로 통하며[15] 팀에 창민이 또 한명 있어 헷갈리기도 하기 때문에 더더욱 몿으로 부른다. 이렇게만 불리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본명을 말하면 어색해하는 팬들도 있는 편. 그래서 모창민과 딱히 상관없는 곳에서도 '못'을 '몿'으로 치환하는 것이 NC 팬들 사이의 공식이다.

  • 매년 정규시즌이 개막한 후 봄에 유독 인상적인 활약을 많이 남겨서 NC 팬들은 봄몿으로 부르곤 했다.

  • 엔갤에서는 모창민을 갤주로도 불렀다. 디시에서 갤주의 특징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타격 포텐이 있었지만 성장하지 못하는 모창민을 까는 별명이었다. 베테랑으로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2017 시즌 부터는 지명타자로 전환, 좋은 타격을 보이자 갤에서는 애증을 담아서 더욱 갤주[16]로 부르면서 찬양하곤 했다.[17] 그리하여 은퇴 전까지 갤주자리는 모창민의 자리였고, 2021년 4월 전격 은퇴를 선언하자 팬들은 그를 추억하는 글을 올리며[18] 재빠르게 차기 갤주를 찾기 시작했다. 이후 비슷한 속성을 가진 김찬형이 모창민의 빈자리를 대신할 듯 했으나# 트레이드를 통해 SSG 랜더스로 이적하면서 갤주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 2020 시즌 강진성이 부상당한 모창민의 백업으로 들어와 시즌 초반 타율 4할 중반대의 미친 활약을 펼치자 그동안 보여준 모창민의 행보가 또한번 재평가되며 "역시 갤주님", "엔씨밖에 모르는 사람" 등으로 불리며 찬양받았다.[19] 강진성이 맹활약할 당시에는 미래의 프런트, 미래의 단장님이 되어달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찬양 일색이었다.

  • 상기한 강진성의 맹활약으로 주전 1루수 자리를 위협받자 이호준 코치가 "모창민이 애기가 된 거 같다"고 얘기를 해서 모애기라는 별명도 생성되었다. 애기란 '어린 선수'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모처럼 경기에 스타팅으로 출장하면 의욕이 넘치다보니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20] 마침 아가는 아가야 밈이 디시에서 흥하고 있던 차라 엔갤에서도 관련 드립이 나왔다.#

  • 2018 시즌 왕웨이중의 선발 경기에서 중요한 타점을 뽑아주고, 두 번째 경기에선 홈런까지 치며 왕웨이중 경기에서 활약한 덕에 대만 현지에서 대만의 친구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 왕년에 한국에서 게리 셰필드라울 몬데시박찬호 도우미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것과 비슷한 뉘앙스의 별명. 한국에도 가생이닷컴 등 해외반응 번역 사이트를 통해 이 별명이 역수입되었고, 이름에서 유래한 '몿' 정도를 제외하면 특별히 인상 깊은 별명이 있던 선수가 아니다 보니 한국에서도 가끔 이 별명이 쓰이곤 했다. 왕웨이중이 1년만에 팀을 떠나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별명.

  • SK 와이번스 시절 별명은 모리아노[21], 에너자이저[22], 모잉여, 모레기, MCM, 몿칠놈 등. 비슷한 포지션의 툴플레이어였고 모창민보다 후순위로 지명된 롯데 전준우의 포텐이 먼저 터져버리면서 2008년 SK의 신인지명은 전거몿으로도 불렸다.


6. 여담[편집]


  • 팀 동료들의 인터뷰를 보면 한결같이 평이 좋다. 성실하고 재미있다는 듯. 안경현 해설이 중계에서 말하길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굉장히 성실한 선수였고, 지금도 하루에 공 1000개정도는 쉬지도 않고 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문 NC 감독도 2016년 모창민이 왼쪽 무릎 수술을 받을 당시 "너무 열심히 하고, 운동밖에 모르는 선수"라며 안타까워 했을 정도이다. 달리 말하면, 악독하기로 유명한 김성근김경문의 훈련을 다 견뎌내고 그들에게 성실함으로 어필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안치용도 스톡킹에서 밝히길 김성근 감독의 그 혹독한 훈련을 묵묵히 다 버텨낸 선수로 모창민을 첫손에 꼽았다.

  • 가장 자신있는 신체 부위는 허벅지, 학창시절 별명은 모기였다는 것이 2019년 플레이어데이 때 밝혀졌다. 엄청난 훈련량만큼 몸이 엄청 탄탄한데, 팀 동료 이명기엔튜브 인터뷰에서 밝히길 몸이 "진짜" 좋다고 한다.[23] 조동화 등 동료들에게는 잘생겼다는 얘기도 듣는다(?)#

  • 상당한 대식가라고 한다. SK 시절 채병용이 "학창 시절에는 밥 12공기 정도 먹어서 자신의 별명이 밥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모창민을 따라갈 수 없다. 내 별명이 밥통이면 모창민 별명은 식신이다"란 말을 한 걸 보면 맘먹고 먹으면 그 이상을 먹는 듯 하다.

파일:/image/109/2013/07/30/201307301955778510_51f79ca521a2d_59_20130730200101.jpg
  •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그래서 홈런을 치면 티보잉 세레머니를 한다. 본인 말로는 상무에서 복무하던 시절 교회에서 티보잉 영상을 보고 따라하게 됐다고. 사인에도 십자가가 들어간다. 2020 시즌에는 보호대에 John 3:16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 2017 시즌 NC가 가을야구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모창민의 응원가도 지상파 중계방송에 여러번 나왔는데, 한 네티즌이 네이버 지식in에 "환타를 쳐드세요 곱창님"[24]이 어느 선수의 응원가인지 물어보는 글을 남긴 것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

  • 광주광역시 출신이기 때문에 서남 방언을 쓴다. 원래 광주는 어휘나 단어는 그렇게 심하게 쓰지는 않고 억센트만 쎈데, 같은 광주 출신인 이호준 코치가 모창민의 말투를 듣고서 해남군 땅끝마을 할머니들이 쓰는 말투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호남 사람들이 들어봐도 사투리가 꽤 심한 듯 하다.[25] 들어보자.

  • 은근히 NC와 관련한 기록에 많은 이름을 올린 사나이로, 특히 NC 다이노스의 홈 구장에 관련된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마산 야구장의 첫 안타와 첫 볼넷[26], 마지막 끝내기 홈런과 마지막 아웃, 창원 NC 파크의 첫 도루와 첫 끝내기 홈런 등의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특히 NC 다이노스의 첫 홈구장 마산 야구장의 마지막 끝내기와 새로운 홈 구장 창원 NC 파크의 첫 끝내기를, 그것도 모두 끝내기 홈런으로 기록했다는 점도 특이한 부분. 어찌보면 NC 다이노스 역사의 산 증인 중 하나다.

  • 선수생활 동안 팀의 우승을 경험한 게 두 번인데, 공교롭게도 SK에서 선수 생활을 막 시작한 2008년과 모창민 본인에게 있어 사실상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0년에 우승반지를 얻었다.[27]

  • 한때 SK 와이번스 팬들에게는 평이 좋지 않았다. SK에서 주어진 기회에 비해 부진한 플레이를 보였었고, 이적 후에는 SK에서 기회가 없었다고[28] 인터뷰한 것 때문에 곱게 보지 않았으나, 2019년 NC 다이노스 모창민 플레이어 데이 때 공식 원정응원단을 파견했고 모창민의 타석 때도 반응이 괜찮았던 것을 보면[29] 이제는 모창민을 옛날의 추억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 이호준과는 꽤나 인연이 길다. 둘 다 광주광역시 출신에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SK 와이번스에서 뛰었고, 같은 해인 2013년 NC 다이노스로 같이 이적하며[30] NC의 개국공신으로 활약했다. 또 이호준이 은퇴한 후 그의 지명타자 자리를 모창민이 이어받았으며, 이호준이 2019년부터 NC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선수-코치 관계가 됐다. 그리고 모창민이 은퇴한 뒤 2022년부터 이호준과 함께 LG 트윈스의 코치로 합류하면서 무려 세 팀에서 이호준과 한솥밥을 먹는 중이다. 심지어 이호준이 메인 타격코치, 모창민이 보조 타격코치로 이호준 코치를 보좌하고 있다.

  • 2019년 스토브리그 최대어 양의지를 NC로 영입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유인 즉슨 2018 시즌이 끝난 후 김택진 구단주와 선수단이 만난 자리에서 김택진 구단주가 팀에 필요한 것을 묻자, 모창민이 "양의지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택진 구단주가 그 자리에서 바로 옆에 있던 황순현 사장에게 영입 검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31][32]

  • 엔튜브를 통해 스프링캠프에서 모자에 카메라를 달고 내야 펑고를 하는 모습이 올라오기도 했고, 2020 스프링캠프때는 선배 지석훈과 토크쇼를 찍기도 했다.





  • 2019 시즌 종료 후 팬 감사 행사인 타운홀 미팅을 맞아 노진혁과 페어를 이루어 무엇이든 물어보살 컨셉으로 팬들에게 고민상담을 해 주었는데 무당으로 분해 행사에 참가한 팬들과 엔갤러들을 열광시켰다.[33] 모창민이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



  • 빠던이 호쾌하다. 2020 시즌 KBO 리그가 ESPN에 중계되자 개막전에서 모창민이 홈런을 때려내고 배트플립을 하는 모습이 해외 언론과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 이에 모창민은 "(ESPN 중계를) 딱히 의식하지 않았다. 항상 그런 배트플립을 해 왔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고 한다.



  • 팀 선배 지석훈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팔랑귀라고 한다. 특히 몸에 좋은 거라면 닥치는 대로 시도해 보는 모양.#


7.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8
SK
91
130
.223
29
5
0
1
20
30
10
12
.287
.285
2009
92
114
.237
27
5
2
4
17
31
5
10
.298
.421
2010
65
60
.183
11
2
0
1
2
14
5
5
.246
.267
2011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2
15
32
.250
8
2
0
1
2
7
2
2
.294
.40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3
NC
108
395
.276
109
24
3
12
51
57
16
38
.339
.443
2014
122
419
.263
110
15
0
16
72
62
14
37
.320
.413
2015
103
214
.290
62
14
0
6
35
23
5
18
.340
.439
2016
63
133
.331
44
8
0
5
20
16
3
10
.370
.504
2017
136
474
.312
148
25
3
17
90
64
9
43
.361
.485
2018
81
287
.279
80
10
1
17
62
38
2
23
.328
.498
2019
101
341
.305
104
21
2
10
55
49
3
34
.358
.466
2020
62
136
.301
41
10
2
2
13
10
0
9
.340
.449
2021
3
5
.000
0
0
0
0
0
0
0
1
.167
.000
KBO 통산
(13시즌)
1042
2740
.282
773
141
13
92
439
401
74
240
.336
.444


8. 관련 문서[편집]



[1] 기사[2] SK 시절엔 주로 1루수로 나오며 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 출전했었다. NC 이적 후엔 주전 3루수로 자리 잡았고 2018시즌까지 주전으로든 백업으로든 주로 3루수로 출전하였다. 기본적으로 수비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고, 무릎 부상까지 겹치면서 2017시즌부터 1루수지명타자로 나서는 시간이 길어졌다.[3] 이름이 뭐예요? (모창민!) 전화번호 뭐예요? (모창민!) 이름이 뭐예요? (모창민!) 시간 좀 내줘요 (모창민!) '뭐'와 '모'가 비슷하게 들리는 것에서 착안한 듯. 그리고 What's your name할 때 잘 들어보면 모창민으로 들린다.[4] 최강 3루수 NC 모창민 모창민 안타 날려라~ 최강 3루수 NC 모창민 모창민 안타 날려라~ (x2)[5] 아 NC의 모창민 (모!창!민!) 힘차게 거침없이 홈런 (모!창!민!)(x2)[6] 현재는 팀 후배 윤형준이 물려받았다.[7] 그러나 하필 소속팀 동료 3루수가 모두 리그 정상급 선수인 최정박석민. SK 시절엔 팀의 간판으로 자리잡아 가던 최정에 밀려 출전 기회를 찾아 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 출전하기도 했으며, NC 이적 3년차엔 박석민이 영입되며 주전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2017시즌 지명타자로 자리잡고 다시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으며 이듬해엔 지명타자가 된 박석민 대신 주전 3루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2019시즌부턴 주로 1루수지명타자로 출전.[8] 특히 높은 코스의 빠른 볼을 공략해 장타로 연결해낼 정도로 힘 하나는 타고났다.[9] 2019 시즌 배트 적극성 50.4%로, 300타석 이상 선 1루수 중 1위의 기록이다.[10] 2019년 9월 23일 사직 롯데전영상[11] 박석민이 그나마 반등하며 3루수 자리에 일단 섰고, 노진혁, 지석훈, 이상호, 김태진이 3루를 번갈아 맡았다.[12] 2019 시즌 팀 내 1루 수비이닝 1위 모창민, 2위 이원재(369이닝), 3위 이상호(181⅓이닝).[13] 2017년 10월 8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영상[14] 2016년에는 무릎 수술을 했고, 2018년에는 족저근막 파열 부상을 겪었으며, 2019년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49일간 엔트리에서 빠졌다. 2020년에는 하체쪽 부상은 아니지만 수비 중에 어깨와 베이스가 충돌하면서 부상을 입어 32일간 전력에서 이탈했고 여름에 입은 허리 부상으로 10월 초까지 퓨처스리그에 머물렀다.[15] 도깨비불 현상에 의해 모창민의 이름을 치는 중에 자연스레 몿이 나오게 된다. "몿"으로만 검색해도 이 문서로 연결된다.[16] 그 전에도 그런 별명이 있었지만 2017년 들어서 그렇게 부르는 빈도가 증가했다. 그만큼 그동안 팀과 팬들에게 기대치는 높았던 대신 실망감도 컸었다는 뜻.[17] 한 방이 있는 선수다 보니, 2019 시즌 전반기에는 모창민이 잦은 뜬금포와 끝내기 홈런 등 연이어 좋은 활약을 펼치자 노성호, 강윤구, 김태진, 이민호 등의 갤주 후보군들에게 갤주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일부 있었으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 다음 날 귀신같이 공수에서 폭망하는 기복있는 패턴이 이어지고, 시즌 내내 고질적인 햄스트링 부상으로 제대로 주루를 하지 못함은 물론 수비에서도 사실상 그냥 세워놓은 듯한 활약을 보이자 "역시 갤주는 갤주다" 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18] 그래도 목표를 이루고 가는 갤주 야구팬 인생 최고의 홈런.gif 모창민 은퇴에 대한 생각 갤주 한국시리즈 우승근황 잊지 못할 새끼... 모창민 선생님의 위대한 기록[19] 반박불가... 지금의 엔씨를 빚어낸 선수...jpg[20] 2020년 6월 27일 잠실 두산전 영상의 1시간 10분경 언급.[21] 모창민의 롤 모델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대표적 호타준족이자 돌글러브의 소유자인 알폰소 소리아노다. 그런데 롤모델의 대표적 이미지 중에 하필이면 돌글러브 속성까지도 닮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22] 지칠 줄 모른다고 해서 당시 이광길 2군 코치가 지어준 별명. 문학구장 가로전광판의 선수별 닉네임에도 이 별명이 반영됐다.[23] 여러번 강조했다.[24] 응원가의 정확한 가사는 "안타를 쳐주세요 모창민"이다.[25] 이호준 왈, "저는 일반 전라도 사투리, 이종범 위원은 아재 사투리, 저기 있는 창민이는 저쪽 땅끝마을 해남쪽 할머님들이 쓰시는 사투리."[26] NC 다이노스의 1군 진입 후 기준.[27] 비슷한 케이스로 데뷔 시즌인 1994년과 마지막 시즌인 2010년에 우승반지를 차지한 김재현이 있다. 은퇴 시기도 30대 중반으로 비슷하다. 물론 김재현은 SK 와이번스에서 주전으로 크게 활약한 데다 2007년, 2008년에도 우승반지를 얻은 지라 상황이 많이 다르기는 하다.[28] SK의 철벽 내야진 속에서도 김성근 감독은 모창민을 믿고 당시 능력에 비해 많은 기회를 주었다. 물론 백업이나 대타, 대수비로 들어간 경기가 많긴 하더라도 군입대 전 3시즌 동안 SK에서 248경기에 출장했는데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검증되지 않은 저연차 선수 대신 검증된 베테랑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김성근 감독 특성상 모창민에게는 나름 기회를 많이 준 셈이다. 오히려 본인이 주어진 기회를 차버린 적이 많았다.[29] 직관러들에 따르면 우리 창민이다~ 하는 반응이 꽤 나왔다고.[30] 다만 이호준은 FA로 이적했고, 모창민은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선택받으며 NC 유니폼을 입었다.[31] 원래는 같이 FA로 나온 이재원도 고려해 보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양의지와 계약 이전에 SK가 최정과 함께 팀의 프랜차이즈라며 잽싸게 4년 69억으로 재계약을 했다. 결국 125억을 주고 양의지를 산 후 2019년의 결과는.... 이 소식이 알려지자 솩갤에서는 이젠 팀 나가서도 저러냐며 또 모창민을 깠다.[32] 2016년 박석민 영입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33] 사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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