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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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중기의 관료.
자는 붕만(鵬萬)이며, 호는 따로 없고 이명으로 수격(秀格)이 전해지며, 본관은 행주이다.2. 생애[편집]
2.1. 생애 초기[편집]
1594년 한성부 성저십리 청파에서 태어났다. 청파 지역은 부친이 살던 마을이 있던 곳으로, 아들인 기준격도 여기서 태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1600년대와 1610년대 사이 부친 기자헌과 친한 허균의 제자가 되었다.
음력 1615년 3월 1일 진사 식년시에 급제했다.
음력 1616년 8월 10일 문과 중시에 장원 급제했다.
음력 1616년 9월 24일 조정에서 사서가 되면서 관직을 제수했다.#2.2. 스승 허균을 모함하다[편집]
계축옥사 이후 폐모론 논의가 조정에서 있을 때 부친 기자헌(반대파)과 스승 허균(찬성파)이 대립했는데, 대립하는 과정에서 기자헌은 홍원(洪原), 길주(吉州), 그리고 강릉에 유배되었다. 이를 본 기준격은 스승 허균에 앙심을 품었고, 음력 1617년 12월 24일 조정에 허균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밀리에 상소했다.# 음력 1618년 11월 14일 즉시 고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릉에 유배되었다.# 하지만 기준격은 유희분의 외종 조카사위였기 때문에 오래동안 유배되지는 않았고 음력 1621년 1월 19일 조정에 복귀해서 사서(司書)로 일했고 인조반정 직전 병조 좌랑으로 진급했다.
다만 이 상소 사건으로 기준격과 부친 기자헌과의 관계는 소원해졌는데, 기자헌은 "자기 아들의 상소가 대비를 심하게 침범한 것"을 혐오해서 기준격에게 화를 냈고, 만나지도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기준격의 상소에 대해 물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척했다고 한다.#2.3. 최후[편집]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서인들의 탄핵을 받았고, 문과 중시 장원급제를 "대리시험을 쳐서 함격했다"는 이유로 과거가 취소되었다.#[5] 이후 김제남과 심엄 부자를 모함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고 이유림(李有林)과 반역을 같이 논의했다는 혐의를 받고 역적이 되어서 다섯 차례 형문을 받고 군기시 앞에서 사형당했다.#[6]3. 평가[편집]
스승을 배신한 인물이다. 배신을 당한 스승 허균은 기준격의 상소에 변명하는 상소에서 "지어낸 말들 가운데 위를 핍박하고 임금을 욕되게 한 것들에 대해서는 모두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와 함께 없는 일을 날조하며 온갖 계책을 동원해서 신을 모함하려 한 사실이 비로소 전파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기준격을 "스스로 대역부도(大逆不道)의 죄에 떨어진 역당(逆黨)"이라고 비판했다.#
아버지 기자헌은 기준격을 "대비를 심하게 침범한" 사람으로 보고 기준격의 상소 이후 아들 기준격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한다.#
스승 허균이 속했던 북인에게 평이 좋지 않았고, 인조반정 이후 집권한 대북의 반대파인 서인에게도 평이 좋지 않았다. 북인은 기준격은 "...상소 안에는 신하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말이 많았고, 역적 허균과 대궐에 들어와 대질하여 따질 때에도 또 앞의 말을 들면서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었다. 그러니 그의 흉역(兇逆)은 허균보다 못하지 않은데 이것을 가지고 죄를 주지 않다가 지금에 와서 즉시 변고를 고발하지 않았다 하여 단지 도배(徒配)에만 처하였다. 그의 아비 자헌(自獻)도 역시 집에 있으면서 주모(主謀)한 죄를 면하였으니, 형벌을 잘못 적용한 것이 심하다."라고 평가했다.#[7]
서인은 기준격을 "본디 흉악하고 음흉한 사람으로 일찍이 정사년(1617년)에 상소하여 변란을 아뢰면서 국구(國舅) 김제남(金悌男)과 심엄(沈㤿) 부자를 무함하였으니, 지극히 흉칙하고 참혹합니다."라고 평가했다.#4. 기타[편집]
- 스승을 배신한 제자이며, 그래서인지 후대에 긍정적으로 묘사된 적이 거의 없다.
5. 대중매체에서[편집]
5.1. 드라마[편집]
5.2. 만화[편집]
- 한국위인전 홍길동전과 허균에서 허균이 역모를 준비하고 있다고 비밀리에 상소하는 장면이 나온다.마치 간신처럼 간신수염을 기르고 있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처럼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다만 상소 당시 기준격의 나이는 23세인데 영상에서는 늙은 것으로 잘못 묘사되었다.#
[1] 인조반정 이후 과거 급제가 취소되면서 최종 관등은 사실상 "진사"이다.[2] 부친과 스승 허균의 영향을 받아서 불교를 믿었을 것으로 보인다.[3] 본인이 저술한 작품은 사실상 스승 허균을 역적으로 만든 상소 밖에 없다.[4] 누나인지 여동생인지 알 수 없다.[5] 사촌 기수발(奇秀發)이 대신 쳐주었다 한다.[6] 어떻게 처형당했는지는 불명이다.[7] 물론 여기서 허균 등을 역적이라 까는 것은 반대파의 평가임을 유념해야 한다. 허균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허균은 실제로 역모를 꾀했다기보단 같은 편도 쉴드를 못 쳐줬을 정도로 돌출행동을 많이 하고 처세에 소질이 없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