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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안동(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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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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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희윤(喜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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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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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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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유교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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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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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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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부: 김성립 (金誠立, 1562 - 1592)) 모: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 -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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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자매
| 누나: 김씨 (金, ? - 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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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 {{{-1 -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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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조선 중기의 인물. == 가족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김성립과 허난설헌의 둘째 자식이자 장남이다. 누나가 있는데 1579년에 전염병으로 일찍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 생애 ===== 생애 초기 ===둘째 자식이므로 김성립과 허난설헌이 혼인한 1577년에서 임신 9개월 후인 1578년 즈음에 첫째 자식인 딸 김씨를 낳으면 둘째인 희윤은 1578년에서 최소 1년 후인 1579년이나 이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생전 외삼촌인 허봉이 귀여워했는데 단명한 후 무덤 앞 아래의 글을 새겼다. > 피어보지도 못하고 진 희윤아.>희윤의 아버지 성립은 나의 매부요.>할아버지 瞻(첨)이 나의 벗이로다. >눈물을 흘리면서 쓰는 비문.>맑고 맑은 얼굴에 반짝이던 그 눈!>만고의 슬픔을 이 한 곡(哭)에 부치노라.>>ㅡ 《희윤의 묘비》#=== 때 이른 사망 ===누나 김씨가 전염병으로 죽고 난후 1582년 마찬가지로 전염병으로 죽었다. 哭子 곡자[1] |
去年喪愛女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今年喪愛子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哀哀廣陵土 슬프디 슬픈 광릉 땅에 雙墳相對起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구나. 蕭蕭白楊風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鬼火明松楸 솔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紙錢招汝魄 지전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玄酒尊汝丘 네 무덤 앞에다 술잔을 붓는다. 應知弟兄魂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은 夜夜相追遊 밤마다 서로 따르며 놀고 있을 테지. 縱有腹中孩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지만 安可冀長成 어찌 제대로 자라나기를 바라랴. 浪吟黃臺詞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血泣悲呑聲 피눈물 슬픈 울음을 속으로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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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와 김희윤의 모친
허난설헌은 자식들의 때 이른 죽음에 슬퍼서 시 <곡자>를 지었다.
#허경진이 옮긴 허난설헌 시집에 의하면 장녀 김씨와 김희윤이 죽었을 때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 경수마을 뒷동산의 안동 김씨 선영에 무덤을 썼으며, 허난설헌은 딸과 아들의 무덤 앞 산기슭인 모랏골에 거처를 옮겨서 살았다 한다. 모랏골이 김성립의 친가가 있는 한성부는 아니므로 김성립이 과거 시험 공부를 하려고 강가에 집을 지어서 지내고 있을 때 따로 살 곳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