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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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의 여자 프로 배구단.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홈구장은 부평구 삼산동에 위치한 인천삼산월드체육관.
모기업은 태광그룹의 흥국생명이며 구단주는 흥국생명 대표이사인 임형준이다.
대통령배-슈퍼리그 시절 중위권을 유지하던 팀이었으나 프로 출범 이후 황연주와 김연경[8] 을 중심으로 3번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한동안 암흑기를 거치다 2019년 4번째 우승에 성공, 총 4개의 별을 달았다.
마스코트는 분홍색 타란툴라 거미로 블로킹을 잘 잡아내는 선수를 일컫는 '거미손'에서 유래했다.[9]
핑크스파이더스는 "분홍색 거미"를 뜻하며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유비무환의 자세로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하는 팀을 의미한다. 소재가 된 열대/아열대 지방에 분포하는 "타란튤라(Tarantula)"라는 거미는 과학적 분석력과 빠른 결단력으로 어떤 돌발 상황에도 순간적인 판단력을 통해 재빨리 행동할 수 있는 특징을 지녔다. 출처
팀 약칭은 흥국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별명이기도 하다. 그 외의 별명은 보험, 코털생명 등이 있다. 한 글자로 줄여 부를 때는 대부분 흥이라 부른다. 현대건설의 '현건'이나 기업은행의 '기은', 그리고 도로공사의 '도공'처럼 앞자들만 따서 이 팀도 '흥생'이라는 약칭을 쓸 법도 하지만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 V.리그의 자매구단은 JT 마블러스이다.[10]
흥국생명의 공식 창단은 1971년 태광산업 여자 배구단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전신팀이라 할 수 있는 동양방직 남녀 배구단[13] 이 창단한 1963년으로 볼 수 있다. 태광산업은 1971년 인천에 있다가 해체하는 동일방직 여자 배구단을 그대로 인수해 창단했기 때문에 동양방직-동일방직 여자 배구단까지 역사를 치면 여자 배구 팀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팀들 중 하나이다.[14] 1991년에 흥국생명이 구단 운영을 하기 시작해 흥국생명 여자 배구단으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
여자 배구단 중에 오래된 구단이라는 것과는 관계없이 2005년 V-리그가 출범하기 전까지 존재감이 없는 구단이었다. 대통령배-슈퍼리그에서 가장 좋았던 성적이 1994 시즌 3위일 정도. 다만 효성이나 후지필름처럼 참가의 의의를 둔 곳 정도까진 아니였던 게, 전국체육대회나 종별선수권대회에서 간간히 뜬금 우승을 할 정도의 전력은 유지했다. 참고로 과거 실업 시절 전국체전에 출전할 때는 과거 태광산업의 본사가 부산광역시에 있었다는 이유로[15] 부산광역시 대표로 출전했다.
어쨌든 모기업 태광그룹이 넉넉치는 않지만 꾸준하게 지원을 했고, 몇 번의 해체설이 나도는 가운데서도 IMF를 지나서도 현재까지 별 탈 없이 구단을 운영했다. 1990년대 후반에 그리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 팀의 간판 남순옥(센터), 정은선(레프트), 황명화(센터), 강미선(세터)[16] , 양숙경(레프트-라이트), 구기란(리베로)이 가끔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17] 그리고 인터넷 초창기인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한 팬클럽이 가장 활성화된 팀이기도 했다. 그렇게 실업시대가 흘러갔다.
V-리그 출범 이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대한 내용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V-리그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미 위에서 상술한 내용이지만 감독 교체가 유난히 잦은 팀이다. 특히 황현주 감독은 이 팀에서만 두 번이나 교체를 당했다. 05-06 시즌에 황현주/김철용, 06-07 시즌 전에 김철용/황현주 교체가 일어났고, 거기에 더해 08-09, 09-10 두 시즌 동안 5명의 감독/대행을 거치며 흥국생명은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다. 09-10 시즌을 저조하게 보낸 이후 10-11 시즌에는 반다이라 감독이 계속 자리를 지키며 코칭스탭 안정을 찾고 준우승을 했지만 다시 가족문제로 사임한다. 이후 2012-13 시즌에는 차해원 감독 교통사고로 수석코치로 있던 신동연 코치가 대행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성적도 부진했던 차해원 감독은 계약을 연장하지 못해 퇴원후에도 벤치에 복귀하지 못했다. 이후 총감독으로 있던 류화석 감독이 직접 한 시즌을 맡으며 계속 저조한 성적을 이어가다가 새로 섭외한 박미희 감독이 오랫동안 팀을 맡는다. 박미희 감독의 임기 8년은 90년대의 이임 감독과 함께 흥국생명 50년이 넘는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기록이다.
프로배구 구단, 아니 모든 프로 스포츠 구단 중에서 손 꼽히는 역대급 사건사고를 자랑한다. 약물도핑부터 승부조작, 이적갈등, 방역위반, 거짓언플, 선수갑질, 학폭사태, 부당개입 등 별도 사건사고 문서 뿐 아니라 워낙 굵직한 논란이 많아서 하위 문서도 줄줄히 생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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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V-리그의 여자 프로 배구단.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홈구장은 부평구 삼산동에 위치한 인천삼산월드체육관.
모기업은 태광그룹의 흥국생명이며 구단주는 흥국생명 대표이사인 임형준이다.
대통령배-슈퍼리그 시절 중위권을 유지하던 팀이었으나 프로 출범 이후 황연주와 김연경[8] 을 중심으로 3번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한동안 암흑기를 거치다 2019년 4번째 우승에 성공, 총 4개의 별을 달았다.
2. 상세[편집]
마스코트는 분홍색 타란툴라 거미로 블로킹을 잘 잡아내는 선수를 일컫는 '거미손'에서 유래했다.[9]
핑크스파이더스는 "분홍색 거미"를 뜻하며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유비무환의 자세로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하는 팀을 의미한다. 소재가 된 열대/아열대 지방에 분포하는 "타란튤라(Tarantula)"라는 거미는 과학적 분석력과 빠른 결단력으로 어떤 돌발 상황에도 순간적인 판단력을 통해 재빨리 행동할 수 있는 특징을 지녔다. 출처
팀 약칭은 흥국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별명이기도 하다. 그 외의 별명은 보험, 코털생명 등이 있다. 한 글자로 줄여 부를 때는 대부분 흥이라 부른다. 현대건설의 '현건'이나 기업은행의 '기은', 그리고 도로공사의 '도공'처럼 앞자들만 따서 이 팀도 '흥생'이라는 약칭을 쓸 법도 하지만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 V.리그의 자매구단은 JT 마블러스이다.[10]
2.1. 역대 로고와 엠블럼[편집]
2.2. 역대 마스코트[편집]
위의 핑크색 타란튤라 거미는 프로배구 출범 이후부터 구단 엠블렘에 존재했으나 2007-08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유니폼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위치는 주로 바지의 뒷면(...) 시즌마다 그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으나 꾸준히 존재감을 알렸다. 2013년부턴 캐릭터보다는 단순화된 작은 거미 아이콘으로 변경하더니 2018년부턴 아예 그 자취를 감췄다. [11]
3. 역사[편집]
3.1. 창단부터 실업 시절까지[편집]
흥국생명의 공식 창단은 1971년 태광산업 여자 배구단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전신팀이라 할 수 있는 동양방직 남녀 배구단[13] 이 창단한 1963년으로 볼 수 있다. 태광산업은 1971년 인천에 있다가 해체하는 동일방직 여자 배구단을 그대로 인수해 창단했기 때문에 동양방직-동일방직 여자 배구단까지 역사를 치면 여자 배구 팀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팀들 중 하나이다.[14] 1991년에 흥국생명이 구단 운영을 하기 시작해 흥국생명 여자 배구단으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
여자 배구단 중에 오래된 구단이라는 것과는 관계없이 2005년 V-리그가 출범하기 전까지 존재감이 없는 구단이었다. 대통령배-슈퍼리그에서 가장 좋았던 성적이 1994 시즌 3위일 정도. 다만 효성이나 후지필름처럼 참가의 의의를 둔 곳 정도까진 아니였던 게, 전국체육대회나 종별선수권대회에서 간간히 뜬금 우승을 할 정도의 전력은 유지했다. 참고로 과거 실업 시절 전국체전에 출전할 때는 과거 태광산업의 본사가 부산광역시에 있었다는 이유로[15] 부산광역시 대표로 출전했다.
어쨌든 모기업 태광그룹이 넉넉치는 않지만 꾸준하게 지원을 했고, 몇 번의 해체설이 나도는 가운데서도 IMF를 지나서도 현재까지 별 탈 없이 구단을 운영했다. 1990년대 후반에 그리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 팀의 간판 남순옥(센터), 정은선(레프트), 황명화(센터), 강미선(세터)[16] , 양숙경(레프트-라이트), 구기란(리베로)이 가끔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17] 그리고 인터넷 초창기인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한 팬클럽이 가장 활성화된 팀이기도 했다. 그렇게 실업시대가 흘러갔다.
3.2. V-리그 출범 이후[편집]
V-리그 출범 이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대한 내용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V-리그 문서 참고하십시오.
4. 선수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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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응원단[편집]
6. 역대 성적[편집]
7. 역대 스쿼드[편집]
8. 역대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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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위에서 상술한 내용이지만 감독 교체가 유난히 잦은 팀이다. 특히 황현주 감독은 이 팀에서만 두 번이나 교체를 당했다. 05-06 시즌에 황현주/김철용, 06-07 시즌 전에 김철용/황현주 교체가 일어났고, 거기에 더해 08-09, 09-10 두 시즌 동안 5명의 감독/대행을 거치며 흥국생명은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다. 09-10 시즌을 저조하게 보낸 이후 10-11 시즌에는 반다이라 감독이 계속 자리를 지키며 코칭스탭 안정을 찾고 준우승을 했지만 다시 가족문제로 사임한다. 이후 2012-13 시즌에는 차해원 감독 교통사고로 수석코치로 있던 신동연 코치가 대행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성적도 부진했던 차해원 감독은 계약을 연장하지 못해 퇴원후에도 벤치에 복귀하지 못했다. 이후 총감독으로 있던 류화석 감독이 직접 한 시즌을 맡으며 계속 저조한 성적을 이어가다가 새로 섭외한 박미희 감독이 오랫동안 팀을 맡는다. 박미희 감독의 임기 8년은 90년대의 이임 감독과 함께 흥국생명 50년이 넘는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기록이다.
9. 역대 주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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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역대 외국인 선수[편집]
11. 역대 수상[편집]
11.1. V-리그 챔피언 결정전[편집]
11.2. V-리그[편집]
11.3. V-리그 올스타전[편집]
11.4. KOVO컵[편집]
11.5. 한·일 V리그 TOP매치[편집]
12. 역대 등번호[편집]
- 프로화 이후만 기재한다.
- 2020년 기준으로 프로 출범 이후 구단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 배정된 번호는 7번이다. 2007년 입단한 김나희가 13시즌째 7번을 달고 있다.
- 김연경이 2009년 JT 마블러스로 해외 진출을 하게 되자, 구단에서 그의 등번호 10번을 임시 결번 처리했다. 그래서 그가 2020년 흥국생명으로 복귀할 때까지 10번은 쭉 공석이었다.[29]
13. 역대 트리플 크라운[편집]
14. 역대 유니폼[편집]
15. 역대 홈구장[편집]
- 천안 유관순체육관 (2005~2009)
남자부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홈구장을 같이 썼지만 경기 입장수익을 현대캐피탈 측이 싹쓸이하는 바람에 갈등이 깊어졌고[30] 결국 국민은행 여자농구단과 함께 천안에서 쫓겨났다.
- 인천 도원체육관 (2009~2013)
천안에서 퇴거 조치된 후 인천광역시로 연고지를 이전했고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 홈구장을 같이 쓰게 됐다. 인천에 와서도 남자부 구단과 동거하게 됐지만 입장수익 부분에서는 대승적 합의를 본 모양인지[31] 큰 갈등 없이 동거를 이어갔다.
- 인천 계양체육관 (2013~2021)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건립된 새 경기장으로 옮겼다. 다만 계양체육관에 입주할 때도 경기장 사용 우선권은 대한항공이 쥐고 있었다.
- 인천 삼산월드체육관(2021~ )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가 전자랜드 농구단을 인수한 후 연고지를 대구광역시로 옮기면서 삼산체육관이 공실이 되어, 계양체육관보다 교통편이 좋다고 생각한 흥국생명 구단 측이 스스로 홈구장을 옮기게 됐다.
16. 비판 및 사건 사고[편집]
프로배구 구단, 아니 모든 프로 스포츠 구단 중에서 손 꼽히는 역대급 사건사고를 자랑한다. 약물도핑부터 승부조작, 이적갈등, 방역위반, 거짓언플, 선수갑질, 학폭사태, 부당개입 등 별도 사건사고 문서 뿐 아니라 워낙 굵직한 논란이 많아서 하위 문서도 줄줄히 생성되어 있다.
17. 여담[편집]
- 대통령배-슈퍼리그 실업시절 동안 중하위권을 전전하고 특히 2005년 바닥까지 찍다보니 붙여진 별명이 미녀군단이였다. 선수들의 출중한 외모에 비해 실력이 너무 딸린다는(...) 점을 비꼬아서 붙여진 별명. 그러나 2005-06 시즌 슈퍼루키 김연경의 가세로 바로 통합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강팀으로 거듭난 후에는 긍정적인 별명으로 바뀌었다. 구단 팀컬러를 핑크색으로 정하고 이름도 '핑크스파이더스'로 바꾸면서, 여성스러운 팀 이미지와 맞아떨어져 아예 구단 차원에서 밀었던 슬로건이 최강 미녀군단 흥국생명일 정도. 7공주 기믹도 이때 시작되었는데, 구기란, 이영주, 진혜지, 윤수현,
전민정, 황연주, 김연경을 합치면 7공주가 된다. 그래서인지 프로 출범 이후 지금처럼 여배 인기가 올라가기 전부터 화장에 가장 신경을 쓰고 나오는 전통(?)이 있다.
- 프로 출범 초창기에는 호성적과 공격적인 마케팅 등이 맞물려 자타공인 V-리그 여자부 최고 인기 구단이었다. 그러다보니 팬 수가 많아 타 구단 팬들과 마찰도 심했는데 2005-06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던 도로공사와[32] , 2007-08, 2008-09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번갈아가면서 우승한 GS칼텍스와 라이벌리가 극심했다.[33] 이후 이러한 갈등의 감정이 옅어지나 싶었지만 2018년에 들어서 이재영 vs 박정아 라이벌 구도와 이재영 vs 이소영/강소휘 구도로 반복되는 양상.
- 무능 프런트 아니랄까봐 마케팅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똑같이 철밥통 소리듣는 인삼공사는 모기업 홍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의외로 마케팅은 열심히 하는 편이고, 도로공사도 연고지 팬들에게는 충실한데 여기는 성적만 잘 내면 장땡이라고 보는지 정말 최소한의 홍보만 한다. 이는 20-21시즌에 인기선수를 대거 영입해놓고도 변함없어서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하지만 불화 사건이 터지면서 안할 만했다고 재평가가 되기도 했다
- 코미디언 이휘재가 팬이었다. 실제로 2007-08 ~ 2008-09 시즌에 경기장을 찾은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포착되었다. 2009년 기사에 따르면 김연경과도 친분이 있던것으로 보인다. # 현재까지도 팬인지는 불명.
[[파일:이휘재 흥국생명.jpg|width=400]
- 구단 버스로 이동하다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
-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은 김연경과 이보라를 친히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에 펌을 넣어주었다(2008년).
- 반다이라 마모루가 감독을 맡은 건 이유가 있었다.
김연경의 해외 이적에는 대중들이 모르는 얘기도 있다. 당시 흥국생명이 접촉했던 일본 JT 마블러스는 김연경을 선택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자기 팀 소속의 반다이라 마모루 코치를 흥국생명에서 지도자로 써달라고 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반다이라가 사실상 흥국생명의 감독으로 재직했던 숨겨진 이유였다. 김연경의 출발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했다. JT에 가자마자 서툰 일본어를 써가며 동료들과 놀라운 친화력을 보여줬고 실력으로 텃새를 잠재우자 상황은 역전됐다. 25연승의 대기록과 팀의 첫 리그 우승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김연경이었다. 그들이 김연경을 더 오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할 정도였다. 첫 번째 해외 무대인 일본에서 성공한 김연경은 2시즌 만에 유럽의 빅리그로 영전하며 성공 시대를 열었다.
- 2023년 제78회 전국종별배구선수권에서 흥국생명 선수와 이름이 같은 세 고등부 선수들이 있었다. 이들이 훗날 흥국생명 구단에 영입된다면, 선배 선수들(미들블로커 이주아와 김채연, 아포짓 스파이커 김다은)의 2세가 될 예정이다. 아포짓 스파이커 김다은 선수가 세터 김다은의 토스를 받아서 득점을 기록한다면, 이는 꽤 아름다운 장면으로 회자될 것이다. 이어 두 명의 이주아와 두 명의 김채연이 한 코트에 나타난다면 재미있는 반응이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 여섯 명은 한 코트에 등장할 수 있다: 세터, 아포짓 스파이커, 미들 블로커 2명, 윙 스파이커 2명
경남여고 1학년 아웃사이드 히터 김채연(172cm), 목포여상 2학년 아웃사이드 히터 이주아(182cm), 세터 김다은(179cm)
- 의천도룡기의 은리(殷離)는 주아(蛛兒, 어린 거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공교롭게도 미들 블로커 이주아(2000) 선수가 뛰는 흥국생명 구단의 이명은 '핑크 스파이더스'이다. 의천도룡기를 읽어본 사람은 흥국생명의 이주아를 보고 이런 걸 떠올릴 수 있었다.
- 흥국생명 구단의 1인당 식대가 2만 원 중반대여서 최상급 식사를 제공한다(@pinkspiders_food).
1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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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단 측이 밀어주는 이름이자 경기장에 설치된 각종 설치물에 표기된 구단명은 흥국생명배구단 핑크스파이더스이다. 현재는 잘 볼 수 없는 구단명 구조이지만 과거에는 두산프로야구단 OB 베어스나 럭키금성프로야구단 LG 트윈스 등의 형태로 구단명이 등장했던 시절이 있었다.[2] 하지만 한국배구연맹에 등록한 구단명과 중계 방송에서 캐스터들이 언급하는 구단명은 연고지명인 인천을 포함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맞다. 다만 여전히 구단 측이 제작한 공식 홍보물 어디에도 '인천'이라는 표기는 없다. 더군다나 같이 인천이 연고지인 대한항공이 구단명부터 경기장 설치물 그리고 작전역에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프로배구단”이라고 크게 표기해 홍보해서 비교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선수들 마저 SNS 자기소개에 영어로 인천까지 포함시켜 등록해놨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다. 다른 인천 연고지 구단이 인천을 강조하는 응원, 홍보를 잘해서 더 비교된다. 그럼 제발 고쳐 다른 여자부 6개 구단들을 포함해 대한항공에 비교해서 흥국생명 프런트가 연고지에 관심이 없다는걸 알려주는 대목.[3] 전신인 동양방직 남녀 배구단의 창단 연도 포함 시[4] 별도의 독립 법인화 없이 실업팀으로서 모기업 법인에서 직접 운영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서는 그러한 형태의 구단을 '부서형 구단'으로 분류한다.[5] 별도의 독립 법인화 없이 모기업 법인에서 직접 운영한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서는 그러한 형태의 구단을 '부서형 구단'으로 분류한다.[6] 인스타그램에 비해 업데이트 속도가 더디다. 시즌 초반에만 조금 올리고 없는 편이다.[7] 역대 최고 성적 - 3위 : 2회(1994, 1998) [8] 2023년 국내 활동 기준 흥국생명 '원클럽맨'이다. 2005년 데뷔 시즌을 시작으로 튀르키예, 중국 등 국외 리그 활동을 제외하면 모두 흥국생명에서 뛰는 중이다. #[9] 다만 2017년을 마지막으로 타란튤라 거미는 유니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팀 로고에도 이름으로만 남아있을뿐.[10] 프로 출범 초기에는 일본에서 훈련과 연습경기를 가지는 등 교류가 활발했다. 그리고 2009년 팀의 슈퍼스타였던 김연경의 첫 번째 해외 진출 구단도 이 팀이었다. 대외적으론 김연경의 이적과 자매구단 여부는 큰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김연경을 탐냈던 일본 리그의 4개 팀 중 굳이 최하위인 JT로 임대로 보내진건 자매구단이라서가 중론이다.[11] 2018-19 시즌 유니폼 바지 뒷면에 아이콘 프린팅으로 재등장했다.[12] [인천일보 연중기획] 38년만에 돌아온 '거미군단' 인천배구 도약 '강스파이크'[13] 훗날 동일방직으로 개명하며, 남자 배구단은 해체된다.[14] GS칼텍스는 1970년 창단하면서 1965년에 대전방직으로 창단해 경성방직으로 이어져 오던 구단을 인수했다. 비슷하게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도 1977년 창단하면서 1963년 창단해 1977년 해산한 한국산업은행 여자 배구단을 인수했다.[15] 현재도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태광산업 공장과 흥국금융플라자가 있다.[16] 현재 세화여자고등학교 배구부 총감독.[17] 그 중에서도 구기란은 '여자부의 이호'급의 선수로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리베로 부문 최고선수상을 받기도 했다.[18] 이범형 단장이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응원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한재권 응원단장이 대타로 나섰으나 23-24시즌부터는 이범형 단장이 현캐를 그만두면서 풀로 진행한다.[19] 코로나19로 인한 시즌 조기 종료 및 플레이오프 미개최로 인해 5라운드 순위 기준으로 3위를 확정지었다. 다만 시즌 우승팀은 없다.[20] 코로나19로 인한 시즌 조기 종료 및 플레이오프 미개최로 인해 5라운드 순위 기준으로 6위가 되었다.[21] 89-90 시즌 조배호감독 시절 코치로 임용되어 이임감독 시절까지 10년이상 재직. 성적부진으로 이임감독이 총감독으로 사실상 경질된 이후 대행으로 한시즌. [22] 같은 계열 재단 세화여고 감독으로 이동[23] 종교 갈등 등으로 인한 선수단 반발로 팀성적과 관계없이 해임[24] 시즌 후 현대건설 감독으로 선임[25] 같은 계열 재단 세화여고 감독이 시즌 중 선임되었으나 성적부진으로 2개월여만에 시즌도 끝내지 못하고 자진 사퇴. 한 시즌에 감독 2명이 바뀌고, 어창선 대행까지 3명의 감독이 있던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기록은 21-22 시즌 IBK 기업은행에 감독/대행이 4명 임명되면서 깨진다. [26] 04-05 시즌부터 코치로, 06-07 시즌부터 수석코치로 있다가 내부 승진.[27] 오랜 일본 실업팀 및 대표팀 코치경력 후 09-10 시즌 어창선 감독 체제의 수석코치로 부임했으나 어창선 감독의 갑작스런 사임 후 대행을 거쳐 시즌 후 감독으로 내부 승진. 10-11 시즌 후 2년간 별거했던 가족과 합치기 원한다며 사임. #. 계속 감독 대행이었다는 일부 오해가 있지만, 흥국생명 역사관에 정식 17대 감독으로 나와 있다. V-리그 최초의 외국인 감독[28] 2016-17 시즌까지는 개명 전 이름인 김도희.[29] 10번을 달라는 선수가 없지는 않았지만 구단이 못 쓰게 막았다. 2010년 오프시즌 KOVO컵 당시 김연경이 잠깐 귀국해 10번을 달고 뛴 것을 보면 김연경만 쓰게끔 봉인한 것이 맞다.[30] V리그 출범 당시 남녀 배구단의 연고지와 체육관이 같을 경우 남자 배구단이 입장수익을 가져간다는 원칙 조항이 있었다고 한다.[31] 흥국생명에 앞서 인천에 연고를 뒀던 GS칼텍스 배구단은 인천 홈경기 일부의 입장수익을 챙겨갔다고 한다.[32] 한송이-임유진 쌍포 vs 김연경-황연주 쌍포[33] 김민지-나혜원 쌍포 vs 김연경-황연주 쌍포. 그렇지만 정작 2007-08 GS칼텍스의 MVP는 정대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