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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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축구 코치.
2. 선수 경력[편집]
2.1. 포항 스틸러스[편집]
전주대학교 시절까지는 특별한 이력이 없는 평범한 선수였었는데, 1997년 포항에 입단했을 때도 이로 인해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포항이 때마침 주전 골키퍼 이명열이 군 입대를 하면서 공백이 생겼고, 김이섭은 많은 출장 기회를 부여받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때문에 초기에는 신인왕 후보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결국 신진원이 수상했지만.
포항은 김이섭에게 기대를 걸며 이후로도 계속 스쿼드에 포함시켰으나, 첫 시즌만큼의 임팩트가 나오지 않았고 새로 등장한 조준호 골키퍼가 대단한 폼을 보여주면서 2순위로 밀렸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에는 무려 김병지가 포항으로 이적, 완전히 자리를 잃고 계약 해지를 당했다.
2.2.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1년 동안 여러 팀의 테스트를 받던 김이섭은 마침내 2002년 중반 모교 대학 소재지였던 전북 현대에 입단하며 다시 프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이용발의 백업으로 영입된 만큼 당연히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두 번째 해에는
2.3. 인천 유나이티드[편집]
FA 자격을 얻은 김이섭은 2004년 새롭게 리그에 참여하게 된 인천 유나이티드의 제안을 받고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첫 시즌 인천에는 권찬수, 신범철 등의 경쟁자가 있었고 실제로 이들과 계속 돌아가면서 출장했지만, 결국 가장 많은 기회를 받은 것은 김이섭이었다. 2005년에는 신범철이 떠나고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안정감과 반사 신경이 있지만 골킥 면에서는 아쉬움이 보였다. 전형적인 2000년대 골키퍼의 장단점을 지녔던 셈. 하지만 동시대에 이운재와 김병지라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들 때문에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없었다.
4.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이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스 팀인 대건고 축구부에서 GK코치를 맡았고 2015년부턴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 팀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후계자로 불려지는 대표적인 선수로는 이태희가 있다.
2016년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 명단에 등록된 것으로 확인되어 갑작스런(...) 현역 복귀를 하게 되는 듯 보였지만, 원래 골키퍼 코치를 골키퍼 공백에 대비하여 선수 명단에 등록하는 것은 몇 차례 있던 일이었다. 실제로 권찬수도 성남 시절 등록되었다가 골키퍼 진이 전멸하며 서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2016 시즌 종료 후 인천을 떠나 행방이 묘연했으나 2018년 전북 이리고등학교의 코치로 재직중인것으로 확인됐다. 전북 U-15팀에 속한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함으로 보인다.
2019 시즌을 앞두고 권찬수 코치가 제주로 떠나고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2년 만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팬들 역시 레전드의 귀환을 반가워하는 분위기.
김이섭의 복귀 후 이태희의 기량이 급상승했고, 엄청난 선방을 보여주고 있다.
2022 시즌에는 김이섭의 또 다른 제자인 김동헌의 잠재력이 제대로 만개하며 이태희마저 밀어내고 주전으로 올라섰고, 리그 정상급 골키퍼로 인정받는 등 김이섭의 엄청난 지도력에 힘입어 인천은 2023 시즌에 창단 최초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게 됐다.
5. 여담[편집]
- 아들 김준홍도 축구선수이며, 포지션은 역시 골키퍼다. 인천 유나이티드 U-12 시스템을 거쳐 김이섭이 잠시 인천을 떠날 당시 전북 U-15팀인 김제금산중학교로 옮겨갔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지 2학년임에도 전북 U-18팀 전주영생고등학교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으며 2019 FIFA U-17 월드컵 브라질, 2023 FIFA U-20 월드컵 아르헨티나 최종 명단에 포함될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 받는 유망주다.[2] 아버지가 선수 시절 내내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연령별 대표팀부터 꾸준히 주전 골키퍼로 뛰고 있다.
- 김병지가 헤딩 골을 넣었을 때 실점했던 골키퍼였다.
- 좋아하는 선수로 올리버 칸을 꼽았다.
- 외모만 보면 진중하거나 조용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유쾌한 성격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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