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디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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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서로마 제국의 카이사르. 455년 아버지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에 의해 카이사르에 선임되었지만 2달 후 목숨을 잃었다.
2. 생애[편집]
433년과 443년 집정관을 역임하고 이탈리아 대관구의 총독을 맡기도 하며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에 버금가는 서로마 제국의 권력자로 군림하던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와 루시나의 아들이다. 450년대에 근위대장을 역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455년 3월 17일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암살한 아버지가 황위에 오른 직후 카이사르에 선임되었다. 이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황후였던 리키니아 에우독시아와 결혼했고, 팔라디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딸 에우도키아와 결혼했다. 에우도키아는 본래 반달 왕국의 왕 가이세리크의 아들 후네리크와 약혼했지만, 막시무스는 이를 무시했다.
가이세리크는 이에 분노했고, 마침 에우독시아 황후가 막시무스에게 학대당하는 상황에 견디다 못해 구원을 요청하자 이를 빌미삼아 455년 5월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갔다. 이 소식이 로마에 들어오자, 많은 주민이 달아났다. 페트로니우스는 방어전을 펼쳐봐야 소용없다고 여기고 원로원에게 자신과 동행할 것을 촉구하면서 탈출 계획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의 경비병들과 수행원들은 죄다 도망쳐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455년 5월 31일, 페트로니우스는 홀로 도시를 떠나려고 바삐 움직였다. 이때 성난 군중들이 그를 발견하고 돌을 마구 던져댔고, 결국 페트로니우스는 돌에 맞아 죽었다. 그의 시신은 훼손되어 테베레 강에 던져졌다. 팔라디우스 역시 이때 처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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