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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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313 충무공함은 충무공급 초계정 1번함으로 한국해군이 최초로 건조한 배이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및 그로부터 3년 뒤인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되었으나 해군에는 변변한 함정이 한 척도 없었다.[1]
이와중에 진해해군 공창에 건조중 일본의 항복으로 건조가 덜 된채 방치된 어뢰운반선 역의 잡역 경비정 한척을 해군이 진해기지를 인수받으면서 발견했다. 이 함은 본래 1944년 9월 14일 일본이 운영하던 진해 공창에서 착공돼 어뢰발사기 4문과 5톤짜리 기중기를 갖춘, 비행기 구조 겸 어뢰 발사 및 운반용 함정으로 설계됐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제작이 중단된 것이다.
이에 손원일 제독은 조선해안경비대[2] 기술진으로 꾸린 조함창은 1946년 7월 15일 다시 이 함정의 건조에 착수했다. 당시는 골격, 즉 용골 정도만 있을 뿐이어서 조함창으로서는 새로운 함정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함창 기술진은 밤낮을 잊은 채 구슬땀을 흘려 7개월 만에 건조를 완료했다. 이로써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군함이 탄생했다.
이렇게 완성된 것이 본 문서의 '충무공함'이다. 비록 배수톤수 287톤, 길이 46.6m, 폭 6.7m, 최고속력 13노트에 불과한 경비정이었지만, 손원일 총사령관은 이듬해 2월 7일 이 경비정을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에서 따와 '충무공정'이라 명명했고, 태극기를 게양, 초대 정장에 박홍철 중위, 부장에 함명수 소위를 임명했다. 이후 1947년 2월 7일 해군사관학교 1기 졸업식과 병행해 명명식을 개최함으로써 국민에게 첫선을 보였다.
충무공정은 다음 날 손원일 총사령관과 진해기지 장병을 태우고 진해에서 출발, 통영의 충렬사에서 참배하고 한산도에 돌아오는 기념적인 첫 항해를 했다.
공식적으로는 ‘정(艇)’급이었지만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양경비대’는 국내에서 건조한 첫 번째 함정이자 국내 최초의 기함(旗艦)인 만큼 지휘관 호칭을 ‘정장’이 아닌 ‘함장’으로 격상해 불렀다. 이 같은 호칭은 충무공정이 퇴역할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6.25 전쟁 중에는 기함 역할이 미제 PC-461급 구잠함인 백두산함과 동급인 PC-703 삼각산함으로 옮겨졌다.
1. 개요[편집]
PG-313 충무공함은 충무공급 초계정 1번함으로 한국해군이 최초로 건조한 배이다.
2. 설명[편집]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및 그로부터 3년 뒤인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되었으나 해군에는 변변한 함정이 한 척도 없었다.[1]
이와중에 진해해군 공창에 건조중 일본의 항복으로 건조가 덜 된채 방치된 어뢰운반선 역의 잡역 경비정 한척을 해군이 진해기지를 인수받으면서 발견했다. 이 함은 본래 1944년 9월 14일 일본이 운영하던 진해 공창에서 착공돼 어뢰발사기 4문과 5톤짜리 기중기를 갖춘, 비행기 구조 겸 어뢰 발사 및 운반용 함정으로 설계됐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제작이 중단된 것이다.
이에 손원일 제독은 조선해안경비대[2] 기술진으로 꾸린 조함창은 1946년 7월 15일 다시 이 함정의 건조에 착수했다. 당시는 골격, 즉 용골 정도만 있을 뿐이어서 조함창으로서는 새로운 함정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함창 기술진은 밤낮을 잊은 채 구슬땀을 흘려 7개월 만에 건조를 완료했다. 이로써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군함이 탄생했다.
이렇게 완성된 것이 본 문서의 '충무공함'이다. 비록 배수톤수 287톤, 길이 46.6m, 폭 6.7m, 최고속력 13노트에 불과한 경비정이었지만, 손원일 총사령관은 이듬해 2월 7일 이 경비정을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에서 따와 '충무공정'이라 명명했고, 태극기를 게양, 초대 정장에 박홍철 중위, 부장에 함명수 소위를 임명했다. 이후 1947년 2월 7일 해군사관학교 1기 졸업식과 병행해 명명식을 개최함으로써 국민에게 첫선을 보였다.
충무공정은 다음 날 손원일 총사령관과 진해기지 장병을 태우고 진해에서 출발, 통영의 충렬사에서 참배하고 한산도에 돌아오는 기념적인 첫 항해를 했다.
공식적으로는 ‘정(艇)’급이었지만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양경비대’는 국내에서 건조한 첫 번째 함정이자 국내 최초의 기함(旗艦)인 만큼 지휘관 호칭을 ‘정장’이 아닌 ‘함장’으로 격상해 불렀다. 이 같은 호칭은 충무공정이 퇴역할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6.25 전쟁 중에는 기함 역할이 미제 PC-461급 구잠함인 백두산함과 동급인 PC-703 삼각산함으로 옮겨졌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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