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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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奭林
1922년 10월 5일 ~ 1974년 12월 21일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1].

2. 생애[편집]


1922년 10월 5일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수산중앙회 상무이사, 대한어민회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에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김기용에 밀려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고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현오봉 등과 자유당에 복당하였다. 이후 자유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일부 청년들이 3.15 부정선거의 원흉이라고 개표에서 난동을 부려서 뒤늦게 개표를 통해 당선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대법원에서 일부 선거 무효 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고성군-충무시-통영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5년 한국권투위원회 회장과 동양권투연맹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6년 세계권투연맹 부회장과 대한전매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로 1970년 5월 2일 대법원에서 통영군 32개 투표구 및 고성군 45개 투표구에 대해 선거무효 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의원직이 상실되었으나, 같은 달 22일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다시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을 앞두고 최재구와의 민주공화당 공천 경합에서 탈락하였다. 이에 민주공화당을 탈당하여 국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고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최재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2년에는 경상남도 김해군에 있던 삼흥수산 사장을 역임하였다.

그 뒤 1974년 12월 21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만리동2가[2]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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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1975년 10월 1일 중구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