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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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基培
1921년 8월 1일 ~ 2003년 3월 20일 (향년 81세)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여양(驪陽)[1], 호는 포공(包空), 종교는 불교이다.

2. 생애[편집]


1921년 8월 1일 강원도 울진군(現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태어났다. 베이징대학을 졸업하고 8.15 광복해인대학(現 경남대학교), 국민대학교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다.

8.15 광복국민회에 가입해 중앙위원을 역임한 것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불교청년단장을 지내면서 청년운동에 종사하기도 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울진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무소속 김광준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전만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자유당에 입당해 울진군 지역구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의원이었던 전만중에 밀려 탈락하였다.

이후 충청남도 대전시 소재 보문중학교·보문고등학교 재단의 상무이사를 역임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울진군 선거구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광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추풍회에 입당해 기획위원이 되었으나,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에 입당해 경상북도지부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그해 치러진 제6대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양군·울진군 지역구에 출마해 민주공화당 김광준 후보에게 설욕하고 마침내 당선되었는데, 당시 경상북도 내의 유일한 야당 국회의원이었다. 6대 국회에서 농업협동조합법 중 개정법률안 및 잠업진흥조합법안 등을 제출했다. 이후 민중당으로 당적을 옮긴 뒤 경상북도 영양군·울진군 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오준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를 은퇴하고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통일당에 입당해 영덕군·청송군·울진군 지역구 공천을 받았으나 최종적으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2003년 3월 20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분당제생병원에서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50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울진군)

[[무소속|
무소속
]]

4,113표 (10.74%)
낙선 (4위)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울진군)
3,229 (8.53%)
낙선 (3위)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울진군)
7,892 (18.56%)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양군·울진군)

[[민정당|
]]

22,652 (44.36%)
당선 (1위)
초선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양군·울진군)

[[신민당(1967년)|
파일:신민당 벽보글씨.svg
]]

12,398 (17.10%)
낙선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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