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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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9대 국가안보보좌관
즈비그니에프 카지미에시 브레진스키
Zbigniew Kazimierz Brzeziński


출생
1928년 3월 28일
폴란드 공화국 바르샤바
사망
2017년 5월 26일 (향년 89세)
미국 버지니아 주 폴스 처치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합중국
직업
공무원, 정치인
재임기간
제9대 국가안보보좌관
1977년 1월 20일 ~ 1981년 1월 20일
정당


학력
맥길 대학교 (국제관계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국제관계학 / 박사)
약력
제9대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저서
거대한 체스판 (1997)
전략적 비전 (2012)

1. 개요
2. 생애
3. 어록
4. 기타



1. 개요[편집]


미국정치인이자 공무원이다. 폴란드계 미국인이며 지미 카터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헨리 키신저와 더불어 냉전 시기 미국을 대표하는 3대 안보보좌관의 일원으로 불리며,[1] 브레진스키는 그들 중에서도 특히 개입주의의 성향이 강력했던 인물로 꼽힌다.[2]

대표적인 자유주의적 매파 중 한명으로, 현대 민주당의 전반적인 국제주의 외교 기조를 완성한 인물로 꼽힌다.[3]

2. 생애[편집]


1928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타데우시 브제진스키 (Tadeusz Brzeziński)는 폴란드의 외교관이었다. 아버지가 외교관으로서 1931년부터 1935년까지 독일에 파견되어 나치 독일의 성장을 보며 자랐고,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소련에 파견되어 소련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대숙청을 목격한다.[4] 1938년 아버지가 캐나다 몬트리올에 총영사로 파견되자 브레진스키 일가도 캐나다로 이주한다.[5] 이후 나치 독일폴란드 침공 등으로 인해 일가족이 완전히 캐나다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이루어진 독일소련독소 불가침조약, 그로 인한 독일의 폴란드 침공, 독소 불가침 조약의 '폴란드를 반으로 분할한다'는 내용, 어린 시절 보았던 스탈린의 대숙청 등의 영향으로 즈비그니에프는 반공적이며 소련에 적대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1945년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에서 문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석사 논문은 소련 내의 다양한 민족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원래 캐나다에서 외교관 경력을 준비하기 위해 영국에서 유학을 준비하려 했으나 영국인에게만 열려있는 장학금 때문에 유학은 포기하고 1953년 미국으로 넘어와 하버드 대학교에 다녔고 메를 파인소드와 함께 소련과 10월 혁명, 블라디미르 레닌의 국가, 이오시프 스탈린의 행동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학자로써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초기의 편찬한 저서로써 1956년 독일의 정치학자 칼 프리드리히와 같이 공저한 <<전체주의적 독재와 전제정치>>를 펴내기도 했다. 이후 1953년부터 1960년까지 하버드 대학교 교수를 지내고 1960년부터 1972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산당 문제 연구소장을 맡았다. 그는 워싱턴 D.C.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Paul H. Nitze 고등 국제학원의 국제 관계 수석 연구 교수이기도 했다.

이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하면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유도해 소련 붕괴에 일조했다. 이 때 당시 대통령인 지미 카터에게 '소련은 자신들의 베트남 전쟁으로 발을 내딛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련이 아프간 국경을 넘었던 그 날, 나는 카터 대통령에게 이렇게 썼다.

'우리는 지금 소련을 베트남 전쟁으로 몰아세우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 브레진스키, 프랑스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튀르」와의 인터뷰에서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 American Primacy and Its Geostrategic Imperatives, 1997), 전략적 비전(Strategic Vision: America and the Crisis of Global Power, 2012) 등의 저서를 남겼다. 주로 대륙세력(Heartland) 이론에 기반을 둔 유라시아(Eurasia) 지정학을 강조했고, 이를 중심으로 미국의 패권 강화, 특히 러시아 견제 방안을 역설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우크라이나를 서방 진영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레진스키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없이 제국이 될 수 없고,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면 자연스럽게 제국이 된다"고 말하여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였다.[6]


3. 어록[편집]


과거 스탈린주의에 대한 러시아의 모호한 태도 또한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에 상당한 걸림돌이다. 나치 시절의 과거와 완전히 단절한 독일과 달리 러시아는 겉으로는 스탈린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역사상 가장 잔인한 범죄에 직접 책임이 있는 자들을 여전히 숭배한다. 방부 처리된 레닌의 시신은 모스크바 붉은 광장을 굽어보는 웅장한 무덤에 모셔져 있고, 스탈린의 유골은 크렘린 궁의 벽에 안치돼 있다. 만약 히틀러의 유해를 이런식으로 안장했다면 독일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과거 역사에 대한 러시아의 이런 모호한 태도는 역사 교과서에서 레닌과 스탈린 정권을 분명하게 비난하지 않은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이 문제에 관한 푸틴의 애매한 발언과 옛 소련의 영광을 향한 그의 향수는 추악한 소련의 과거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러시아 정부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러시아의 이런 태도는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에 부담을 주는 한편, 러시아의 민주화에도 걸림돌이 된다.

Strategic Vision: America and the Crisis of Global Power. New York: Basic Books, 2012.[7]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러시아보다 먼저 서방에 접근한다면, 러시아가 서방을 향해 문호를 열고 유럽의 밝은 미래에 기여할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서방과 단절되고 러시아에 정치상 종속될 경우 러시아는 제국주의의 부활이라는 헛된 꿈에 사로집힐 가능성이 있다.

Strategic Vision: America and the Crisis of Global Power. New York: Basic Books, 2012.[8]


향후 20여 년간 서방과 러시아가 진정성 있게 협력하고 결속력 있는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 예상하는 것 또한 허무맹랑한 생각이 아니다. 러시아가 EU와 NATO의 기준에 맞춰 법에 기반을 둔 광범한 민주화에 착수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다면 러시아가 EU와 NATO, 양쪽 모두에 가입할 수도 있다.

Strategic Vision: America and the Crisis of Global Power. New York: Basic Books, 2012.[9]



4. 기타[편집]


삼극위원회의 창설 멤버 3인 중 한 명이다.

한국에서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나, 미국에서 이 사람의 이름은 폴란드어 발음을 존중해주어 '즈비그니에프'(/zbɪɡnjɛf/)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성인 Brzeziński는 폴란드어식인 브제진스키(/bʐɛˈʑij̃skʲi/)가 아니라 영어화된 발음인 브레진스키(/brəˈzɪnski/)라고 발음한다.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다.

첫째 아들인 이안 브레진스키는 외교 전문가이자 공화당원으로 조지 W. 부시 1기 행정부의 국방부차관을 역임하였다. 둘째 아들인 마크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외교관으로 현재 주 폴란드 미국 대사로 재직중이다.

막내딸 미카는 MSNBC의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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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무장관을 비롯한 일반 외교관을 기준으로는 조지 케넌, 존 포스터 덜레스, 딘 러스크 등도 포함된다.[2] 또한 키신저, 스코크로프트 두 사람이 공화당(닉슨,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재직했던 반면, 브레진스키는 민주당(카터)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 재직하였다.[3] 브레진스키 이전부터 민주당은 개입주의 성향을 띄었지만 현재와 같은 적극적인 개입 성향으로 기운 것은 브레진스키의 영향력 때문이다. 특히 코소보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드러나는 민주당의 반러시아 기조가 브레진스키의 영향이라는 평가가 많다.[4] Zbigniew Brzezinski was born in Warsaw, Poland, on March 28, 1928 into an aristocratic Roman Catholic family originally from Brzeżany, Tarnopol Voivodeship (then part of Poland, currently in Ukraine). The town of Brzeżany is thought to be the source of the family name. Brzezinski's parents were Leonia (née Roman) Brzezińska and Tadeusz Brzeziński, a Polish diplomat who was posted to Germany from 1931 to 1935; Zbigniew Brzezinski thus spent some of his earliest years witnessing the rise of the Nazis. From 1936 to 1938, Tadeusz Brzeziński was posted to the Soviet Union during Joseph Stalin's Great Purge, and was later praised by Israel for his work helping Jews escape from the Nazis. # [5] In 1938, Tadeusz Brzeziński was posted to Montreal as a consul general. The Brzezinski family lived proximate to the Polish Consulate-General, on Stanley Street. # [6] 미국의 격월간 잡지 <포린 어페어스>의 1994년 3-4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유래한 내용이다. 원문은 "Without Ukraine, Russia ceases to be an empire, but with Ukraine suborned and then subordinated, Russia automatically becomes an empire."라고 나온다.[7] 전략적 비전, 아산정책연구원, 2016, 황선돈 옮김, 177페이지.[8] 전략적 비전, 아산정책연구원, 2016, 황선돈 옮김, 185페이지.[9] 전략적 비전, 아산정책연구원, 2016, 황선돈 옮김, 187페이지.[10] 2006년 패리스 힐튼이 저지르던 기행으로 뉴스가 도배되던 시절, 생방송 뉴스에서 패리스 힐튼 소식이 적힌 뉴스 원고를 읽으려다가 이따위 소식을 전하는게 신물이 난다며 그자리에서 원고를 라이터로 불태우려다 옆에서 말리는 바람에 실패했는데, 이후 기어이 파쇄기에 원고를 갈아버리는데 성공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패리스 힐튼 소식으로 해외 연예 토픽란이 도배되다시피하던 시절이었기에 미카 브레진스키의 행동을 속시원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