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본
항목은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의
서울특별시 지역구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항목이다.
선거구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순서로 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쓰는 공식 발표법이기 때문이다.
종로구·중구
|
종로구, 중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권종우(權鍾佑)
| 1,236
| 6위
|
| 0.50%
| 낙선
|
2
| 정대철(鄭大哲)
| 70,859
| 3위
|
[[민주한국당| ]]
| 27.10%
| 낙선
|
3
| 한상필(韓相弼)
| 1,763
| 5위
|
[include(틀:민권당)]
| 0.67%
| 낙선
|
4
| 이종찬(李鍾贊)
| 84,258
| 1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1981~1987))]
| 32.23%
| 당선
|
5
| 이상윤(李相允)
| 1,440
| 7위
|
| 0.55%
| 낙선
|
6
| 이민우(李敏雨)
| 82,687
| 2위
|
[include(틀:신한민주당)]
| 31.63%
| 당선
|
7
| 오제도(吳制道)
| 19,780
| 4위
|
[include(틀:무소속)]
| 7.29%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318,330
| 투표율 83.21%
|
투표 수
| 264,876
|
무효표 수
| 3,465
|
| [[민주한국당| ]]
|
|
|
정대철
| 이종찬
| 이민우
|
결과
| 27.10%
| 32.23%(당선)
| 31.63%(당선)
|
종로구
| 26.55%
| 31.82%(2위)
| 32.71%(1위)
|
중구
| 27.83%
| 32.76%(1위)
| 30.19%(2위)
|
말이 필요 없는 2.12 총선 최대의 이변지.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마포구·용산구
|
마포구, 용산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노승환(盧承煥)
| 207,778
| 1위
|
| 52.41%
| 당선
|
2
| 김재영(金在暎)
| 66,587
| 3위
|
[[민주한국당| ]]
| 16.79%
| 낙선
|
3
| 봉두완(奉斗玩)
| 109,226
| 2위
|
| 27.55%
| 당선
|
4
| 고명관(高明觀)
| 8,126
| 4위
|
[[한국국민당(1981년)| ]]
| 2.04%
| 낙선
|
5
| 박대성(朴大成)
| 4,708
| 5위
|
| 1.18%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497,547
| 투표율 80.75%
|
투표 수
| 401,763
|
무효표 수
| 5,338
|
|
| [[민주한국당| ]]
|
|
노승환
| 김재영
| 봉두완
|
결과
| 52.41%(당선)
| 16.49%
| 27.55%(당선)
|
마포구
| 54.46%(1위)
| 14.51%
| 27.87%(2위)
|
용산구
| 49.45%(1위)
| 20.08%
| 27.09%(2위)
|
84년 11월 3차 해금으로 복권된
노승환 후보가 자신의 지역기반인 마포구는 물론, 당시 두 현역 의원인
봉두완,
김재영 후보의 기반인 용산구에서도 과반에 가까운 득표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성동구
|
성동구 일원[1]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박용만(朴容萬)
| 94,488
| 2위
|
| 26.18%
| 당선
|
2
| 이세기(李世基)
| 103,205
| 1위
|
| 28.60%
| 당선
|
3
| 전대수(全大洙)
| 7,771
| 5위
|
| 2.15%
| 낙선
|
4
| 조세형(趙世衡)
| 88,204
| 3위
|
[[민주한국당| ]]
| 24.44%
| 낙선
|
5
| 김도현(金道鉉)
| 67,142
| 4위
|
[[무소속|
무소속
]]
| 18.60%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459,544
| 투표율 79.66%
|
투표 수
| 366,061
|
무효표 수
| 5,251
|
|
|
|
| 무소속
|
박용만
| 이세기
| 조세형
| 김도현
|
결과
| 26.18%(당선)
| 28.60%(당선)
| 24.44%
| 18.60%
|
성동구 갑[2] 왕십리1동, 도선동, 마장동, 사근동, 용두동, 왕십리2동, 행당1동, 행당2동, 응봉동, 금호1가동, 금호2가동, 금호3가동, 금호4가동, 옥수동
| 23.83%
| 32.19%(1위)
| 24.40%(2위)
| 17.51%
|
성동구 을[3] 성수1가동, 성수2가1동, 성수2가2동, 성수2가3동, 화양동, 송정동, 군자동, 능동, 자양1동, 자양2동, 중곡1동, 중곡2동, 중곡3동, 중곡4동, 구의동, 광장동
| 27.98%(1위)
| 25.86%(2위)
| 24.47%
| 19.44%
|
종로∙중구와 함께 서울에서 민정당 후보가 1위로 당선된 유이한 지역구. 11대 총선에서 민한당 공천을 받았던 김도현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야권표가 세 갈래로 분산되었다.
동대문구
|
동대문구 일원[4]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송원영(宋元英)
| 226,678
| 1위
|
| 48.85%
| 당선
|
2
| 김태환(金太煥)
| 25,329
| 4위
|
| 5.45%
| 낙선
|
3
| 김덕규(金德圭)
| 54,224
| 3위
|
| 11.68%
| 낙선
|
4
| 강병진(姜秉珍)
| 13,242
| 5위
|
| 2.85%
| 낙선
|
5
| 권영우(權寧禹)
| 137,970
| 2위
|
| 29.73%
| 당선
|
6
| 고기효(高紀孝)
| 6,519
| 6위
|
| 1.40%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576,315
| 투표율 81.63%
|
투표 수
| 470,447
|
무효표 수
| 6,485
|
|
|
|
|
송원영
| 김덕규
| 권영우
|
결과
| 48.85%(당선)
| 11.68%
| 29.73%(당선)
|
동대문구 갑[5]
| 48.69%(1위)
| 11.75%
| 30.70%(2위)
|
동대문구 을[6]
| 49.06%(1위)
| 11.59%
| 28.45%(2위)
|
성북구
|
성북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김병남(金炳楠)
| 3,659
| 6위
|
| 1.22%
| 낙선
|
2
| 이철(李哲)
| 121,004
| 1위
|
| 40.55%
| 당선
|
3
| 조윤형(趙尹衡)
| 79,991
| 3위
|
| 26.81%
| 낙선
|
4
| 김유(金裕)
| 7,995
| 4위
|
| 2.67%
| 낙선
|
5
| 김정례(金正禮)
| 81,014
| 2위
|
| 27.15%
| 당선
|
6
| 임태백(林太伯)
| 4,695
| 5위
|
| 1.57%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371,316
| 투표율 81.46%
|
투표 수
| 302,468
|
무효표 수
| 4,110
|
|
|
|
|
이철
| 조윤형
| 김정례
|
결과
| 40.55%(당선)
| 26.81%
| 27.15%(당선)
|
성북구 갑[7] 성북1동, 성북2동, 동소문동, 삼선1동, 삼선2동, 동선1동, 동선2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길음2동, 길음3동
| 38.83%(1위)
| 28.18%
| 28.31%(2위)
|
성북구 을[8] 돈암1동, 종암1동, 종암2동, 하월곡1동, 하월곡2동, 하월곡3동, 하월곡4동, 상월곡동, 장위1동, 장위2동, 장위3동, 석관1동, 석관2동
| 42.71%(1위)
| 25.08%
| 25.69%(2위)
|
2.12 총선 최대의 이변 2. 당시 성북구에서 탄탄한 기반을 자랑하던
민주정의당의
김정례,
민주한국당의
조윤형 후보에
신한민주당의
이철 후보가 '돌아온 정치사형수'
[9]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사면되었다.
라는 구호로 맞섰는데, 개표 결과 신민당 바람에 힘 입어 이철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1위 당선을 기록했고, 김정례-조윤형 두 후보가 다음날까지 시소게임을 벌이다가 김 후보가 불과 1,023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2위로 당선되었다.
낙선한 조윤형 후보는 이후 민한당 총재로 선출되지만, 5일 만에 소속 의원들이 집단 탈당하면서 본인도 머지않아 신민당행을 선택한다.
도봉구
|
도봉구 일원[10]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전대열(全大烈)
| -
| 등록무효
|
| -
|
2
| 조순형(趙舜衡)
| 174,124
| 1위
|
| 42.35%
| 당선
|
3
| 경인호(慶仁浩)
| 17,126
| 5위
|
| 4.16%
| 낙선
|
4
| 홍성우(洪性宇)
| 99,245
| 2위
|
| 24.14%
| 당선
|
5
| 김태수(金泰洙)
| 53,344
| 4위
|
| 12.97%
| 낙선
|
6
| 구판홍(具判弘)
| 7,038
| 6위
|
| 1.71%
| 낙선
|
7
| 신오철(申五澈)
| 58,527
| 3위
|
| 14.23%
| 낙선
|
8
| 이수춘(李守春)
| 1,675
| 7위
|
| 0.40%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512,069
| 투표율 82.47%
|
투표 수
| 422,293
|
무효표 수
| 11,214
|
|
|
|
| 무소속
|
조순형
| 홍성우
| 김태수
| 신오철
|
결과
| 42.35%(당선)
| 24.14%(당선)
| 12.97%
| 14.23%
|
도봉구 갑[11] 미아1동, 미아2동, 미아3동, 미아4동, 미아5동, 미아6동, 미아7동, 미아8동, 번1동, 번2동, 수유1동, 수유2동, 수유3동, 수유4동, 수유5동, 창1동, 창2동, 창3동, 월계1동, 월계2동
| 45.58%(1위)
| 22.86%(2위)
| 12.80%
| 12.31%
|
도봉구 을[12] 쌍문1동, 쌍문2동, 쌍문3동, 공릉1동, 공릉2동, 하계동, 상계1동, 상계2동, 상계3동, 상계4동, 중계동, 도봉1동, 도봉2동, 방학1동, 방학2동
| 38.01%(1위)
| 25.86%(2위)
| 13.20%
| 16.83%
|
11대 총선에서 성북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던
조순형 의원이 형
조윤형 후보의 출마에 따라 지역구를 옮겨 1위로 당선되었다. 한편
신정사회당 후보로 출마한
전대열 후보가 선거 이틀 전 자신이 받았던 형의 효력이 상실되지 않아 뒤늦게 등록무효 처리되었고, 그 바람에 서울 14개 지역구 중 무효표가 유독 많이 나오게 되었다.
서대문구·은평구
|
서대문구, 은평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윤길중(尹吉重)
| 119,480
| 2위
|
| 28.22%
| 당선
|
2
| 김재광(金在光)
| 205,370
| 1위
|
| 48.51%
| 당선
|
3
| 김명주(金明珠)
| 4,626
| 6위
|
| 1.09%
| 낙선
|
4
| 이용만(李鎔萬)
| 5,226
| 5위
|
| 1.23%
| 낙선
|
5
| 손세일(孫世一)
| 80,400
| 3위
|
| 18.99%
| 낙선
|
6
| 이춘우(李春雨)
| 8,173
| 4위
|
| 1.93%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530,570
| 투표율 80.84%
|
투표 수
| 428,908
|
무효표 수
| 5,633
|
|
|
|
|
윤길중
| 김재광
| 손세일
|
결과
| 28.22%(당선)
| 48.51%(당선)
| 18.99%
|
서대문구
| 30.67%(2위)
| 47.75%(1위)
| 17.11%
|
은평구
| 25.72%(2위)
| 49.29%(1위)
| 20.91%
|
강서구
|
강서구 일원[13]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고병현(高炳鉉)
| 55,834
| 3위
|
| 16.86%
| 낙선
|
2
| 남재희(南載熙)
| 75,132
| 2위
|
| 22.69%
| 당선
|
3
| 이경표(李敬表)
| 9,996
| 5위
|
| 3.01%
| 낙선
|
4
| 최후집(崔厚集)
| 16,871
| 4위
|
| 5.09%
| 낙선
|
5
| 김영배(金令培)
| 166,973
| 1위
|
| 50.44%
| 당선
|
6
| 우철남(禹鐵男)
| 6,220
| 6위
|
| 1.87%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418,205
| 투표율 80.26%
|
투표 수
| 335,639
|
무효표 수
| 4,613
|
당초 민정당 측은
남재희 의원의 개인적 인물론과 강서구가 서울시에서 개발이 덜된
[14] 당시는 목동신시가지아파트 단지와 가양동 지구가 개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발된 지역이 화곡동과 신정동, 방화동 등 일부에 불과했다.
지역임을 감안해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지만, 막상 개표가 시작되니 예상보다 큰 격차로 밀리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15] 심지어 개표초반에는 남재희 후보가 민주한국당 고병현 후보에 밀려 당선 순위권 밖인 3위로 밀려나는 일도 있었다.
구로구
|
구로구 일원[16]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조연하(趙淵夏)
| 127,225
| 1위
|
| 38.83%
| 당선
|
2
| 김기배(金杞培)
| 96,690
| 2위
|
| 29.51%
| 당선
|
3
| 권대복(權大福)
| 29,977
| 4위
|
| 9.15%
| 낙선
|
4
| 김병오(金炳午)[17] 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에는 낮 오(午) 자가 소 우(牛) 자로 잘못 기입되어 있다.
| 73,702
| 3위
|
| 22.49%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406,269
| 투표율 81.73%
|
투표 수
| 332,044
|
무효표 수
| 4,450
|
|
|
|
|
조연하
| 김기배
| 김병오
|
결과
| 38.83%(당선)
| 29.51%(당선)
| 22.49%
|
구로구 갑[18] 신도림동, 구로1동, 구로2동, 구로3동, 구로4동, 구로5동, 구로6동, 고척1동, 고척2동, 개봉1동, 개봉2동, 개봉3동, 오류1동, 오류2동
| 37.50%(1위)
| 31.54%(2위)
| 23.14%
|
구로구 을[19] 가리봉1동, 가리봉2동, 가리봉3동, 독산1동, 독산2동, 독산3동, 독산4동, 시흥1동, 시흥2동, 시흥3동, 시흥4동, 시흥본동
| 40.26%(1위)
| 27.33%(2위)
| 21.80%
|
영등포구
|
영등포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이찬혁(李贊赫)
| 53,485
| 2위
|
| 23.90%
| 당선
|
2
| 박한상(朴漢相)
| 82,335
| 1위
|
| 36.79%
| 당선
|
3
| 윤선일(尹善一)
| 13,031
| 5위
|
| 5.82%
| 낙선
|
4
| 김수일(金秀一)
| 17,965
| 4위
|
| 8.02%
| 낙선
|
5
| 이원범(李元範)
| 45,161
| 3위
|
| 20.18%
| 낙선
|
6
| 백철(白喆)
| 11,782
| 6위
|
| 5.26%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277,625
| 투표율 81.67%
|
투표 수
| 226,733
|
무효표 수
| 2,974
|
동작구
|
동작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박실(朴實)
| 89,665
| 1위
|
| 42.42%
| 당선
|
2
| 허청일(許淸一)
| 71,882
| 2위
|
| 34.01%
| 당선
|
3
| 정영섭(鄭榮涉)
| 3,242
| 5위
|
| 1.53%
| 낙선
|
4
| 서청원(徐淸源)
| 41,623
| 3위
|
| 19.69%
| 낙선
|
5
| 정정대(鄭政代)
| 4,918
| 4위
|
| 2.32%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258,011
| 투표율 83.01%
|
투표 수
| 214,181
|
무효표 수
| 2,851
|
이 선거구에서도 신한민주당 박실 후보가 1위로 당선되었으나, 선거 운동기간 중 민정당
허청일 후보가 합동연설회에서 대학생에게 암모니아 테러를 당하는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한 동정표인지 서울의 민정당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당선되었다.
관악구
|
관악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임철순(任哲淳)
| 81,371
| 2위
|
| 29.34%
| 당선
|
2
| 한광옥(韓光玉)
| 64,475
| 3위
|
| 23.25%
| 낙선
|
3
| 이영희(李英姬)
| 12,249
| 4위
|
| 4.41%
| 낙선
|
4
| 김수한(金守漢)
| 119,158
| 1위
|
| 42.97%
| 당선
|
계
| 선거인 수
| 344,165
| 투표율 81.61%
|
투표 수
| 280,866
|
무효표 수
| 3,613
|
강남구
|
강남구 일원[20]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김형래(金炯來)
| 131,559
| 1위
|
| 35.80%
| 당선
|
2
| 이태섭(李台燮)
| 90,287
| 3위
|
| 24.57%
| 낙선
|
3
| 이중재(李重載)
| 109,218
| 2위
|
| 29.72%
| 당선
|
4
| 고정훈(高貞勳)
| 36,404
| 4위
|
| 9.90%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460,307
| 투표율 80.67%
|
투표 수
| 371,324
|
무효표 수
| 3,856
|
2.12 총선 최대의 이변 3. 무려 현직 장관이었던 여당 후보가 민한당 후보에도 밀려 3위로 낙선했고, 신민-민한 두 민주당계 야당 후보가 나란히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서울 강남은
1990년대 말 보수화되기 전까지 '신 정치1번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지난 총선에서 주요 야당의 공천이 배제되는 '정책지구'의 특혜를 누렸던 신정사회당 고정훈 후보는 이번에는 4명 중 최하위로 낙선했다.
강동구
|
강동구 일원[21]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김동규(金東圭)
| 227,598[22]
| 1위
|
| 55.56%
| 당선
|
2
| 정남(鄭男)
| 99,869
| 2위
|
| 24.38%
| 당선
|
3
| 정정휴(鄭正休)
| 11,319
| 4위
|
| 2.76%
| 낙선
|
4
| 정진길(鄭鎭吉)
| 70,832
| 3위
|
| 17.29%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526,140
| 투표율 78.77%
|
투표 수
| 414,436
|
무효표 수
| 4,818
|
기업인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한지 2달도 되지 않은 김동규 신한민주당 후보가 전국 최다득표 기록으로 당선되면서 서울 지역 신당 바람의 결정타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