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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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불법 분묘 조성, 행정명령 불이행, 위장 전입, 불법 농지 매입 의혹
3. HDC현대산업개발의 각종 부실 시공 논란
4. 축구 행정가로서의 비판 및 논란
4.2. 클린스만호의 부실 성적으로 인한 비판
4.3. 대한축구협회 사재 출연 규모 논란
4.4. 2023 AFC 아시안컵 유치 실패 및 각종 선거 낙선 비판
4.5. 파주 NFC 계약 미연장 및 천안 NFC 늑장 준공 비판
4.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귀국길 노쇼 논란



1. 개요[편집]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대한축구협회 회장,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 국제축구연맹 평의원, 아시아 축구 연맹 부회장 겸 심판위원장인 정몽규와 관련된 비판 및 논란을 다루는 문서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역임할 때만 해도 정몽규는 흔들리던 K리그의 운영 시스템을 개편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주도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에 올라선 이후에는 이용수, 황보관 등의 구시대적인 인물들을 다시 중용하고[1] 선수 시절 활약에 비해 최근 감독 경력이 하락세를 타고 있는 인물[2]에게 U-23과 성인 대표팀의 지휘봉을 맡기면서 민심을 역행하는 무능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장으로써도, 부산 아이파크 회장으로써도 여러 사건사고로 인하여 평판이 매우 나쁘다. 2023년 현재는 기업과 축협을 막론하고 잦은 실책과 오판을 저지르며 국내의 재벌 3세, 기업인들 중 능력 면에서 금호아시아나박삼구와 비슷할 정도로 독보적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인물이 되었다.[3] 축협 회장으로써도 평가가 극도로 나쁜데, HDC현대산업개발과 부산 아이파크 역시 문제를 밥 먹듯이 일으키고 있어서 더욱 평판이 나빠진 것이다.

게다가 HDC현대산업개발에서나 대한축구협회에서나 사고가 터지면 본인은 책임이 없고 아래에서 잘못했다면서 무책임한 태도로 책임을 미루면서 전가하고, 아랫 사람들만 전원 사퇴시키고 본인은 계속 자리를 유지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말 그대로 조직의 수장이란 자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조직의 미래를 냅다 팔아버리면서 추악한 노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최악의 행보만을 밟고 있다. 그저 운 좋게 집안빨 하나 잘 타고 태어나서, 턱 없이 모자란 능력과 비전에 비해서 욕심만 가득한 폐급인 자가 사회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를 몸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2. 불법 분묘 조성, 행정명령 불이행, 위장 전입, 불법 농지 매입 의혹[편집]




2005년 5월 상수원보호구역에 불법적으로 선친 정세영 분묘를 대규모로 조성한 사실이 발각되어 묘지를 옮기라는 행정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정몽규는 무려 18년째 이러한 행정명령을 불이행하고 있는 상황. #

양평군은 분묘 조성 당시인 2005년부터 이를 경찰에 고발하여 수차례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정몽규 측이 불응하여 수차례 벌금을 부과했다.

2015년 10주기를 맞아 정몽규 측은 대대적으로 분묘를 확장하고 주변에 시설물을 설치하고 공원화했다. 이에 양평군은 2015년 12월 정몽규를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정씨를 약식기소했고, 이장하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2023년 현재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 양평군은 매년 약500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있다.

한편 정몽규는 선친 분묘를 조성한지 몇달 후인 2005년 7월 서울특별시 성북1동에서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로 주소를 변경했다. 이후 정몽규가 아버지 묘 관리를 위해 위장 전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정몽규의 주소지는 현재도 양평군으로 되어 있다. 한 매체는 현지에 정몽규가 거주하고 있지 않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회장님(정몽규)이 문호리 별장(주소지)에서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HDC현대산업개발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위장 전입한 주소지 인근 농지를 불법 매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


3. HDC현대산업개발의 각종 부실 시공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HDC현대산업개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축구 행정가로서의 비판 및 논란[편집]



4.1. 승부 조작 축구인 기습 사면 후 번복[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23년 대한축구협회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및 번복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클린스만호의 부실 성적으로 인한 비판[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위르겐 클린스만 근무태만 논란

대한축구협회는 2023년에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활약했던 파울루 벤투에 이어 차기 국가 대표 사령탑으로 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문제는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과정에서 그 어떠한 프로세스도 작동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이미 잘 구축된 감독 선임 프로세스를 정 회장이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감독을 점찍으면서 있는 프로세스마저 망가트렸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이후 김판곤 국가대표선임위원회 위원장이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으로 주먹구구식으로 뽑았던 감독 선임 가이드라인를 비롯한 프로세스를 새로 구축했다. 그러나 김판곤 위원장이 2022년 2월 사임한 이후 해당 자리를 다시금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로 돌리면서 2022년 5월부터 이용수 부회장 체제로 갔으며, 이용수가 축협에 복귀한 이후부터 이런 가이드라인이 다시 백지화되었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가 드러났다.[4]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이 끝난 이후 이용수가 감독을 선임한다는 말이 나오며 여론이 험악해지자 2023년 1월에 미하엘 뮐러를 위원장으로 급하게 임명했는데, 여기서 뮐러 위원장은 사실상 영향력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뮐러는 기존 프로세스대로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했으나 윗선에서 그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판단을 내렸고, 이것이 바로 클린스만 감독 졸속 선임이다.

애초에 클린스만은 3년 가까이 야인으로 지냈기 때문에 자기 사단을 가지고 있을 리도 만무했고, 벤투와는 다르게 기술적으로 뚜렷한 축구 철학이 있는 감독도 아니었다. 거기다 감독을 역임할 때마다 펼쳤던 각종 기행이 너무나 유명했던 상황이어서 3년간 그 날고 긴다던 각종 유럽 축구판에서 그 누구도 부르지 않았던 사람이다. 이미 독일에서 친절하게 재활용 불가 딱지까지 붙여서 버린 매물인데 그걸 기어이 주워와 선임을 했고, 2023년 대표팀 경기는 너무나 나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7월부터는 이 사람의 기행이 다시금 시작되면서 그야말로 나쁜 모습이란 나쁜 모습은 다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했던 뮐러 위원장은 사실상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며 이 과정에서 회장 픽으로 내려온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나왔고 그를 정몽규 스스로가 인정하기도 했다. 또한 클린스만의 기행에 대해 협회가 제지를 전혀 못하고 있으며 대표 선수 선발에 있어서도 그 어떠한 프로세스가 작동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결국 정몽규 스스로가 기존에 잘 돌아가던 체계를 무너뜨리고 독단적으로 일처리를 하면서 한국 축구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클린스만호가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정몽규에 대한 여론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애초에 평가전에서 클린스만호가 대승을 할 때도 약팀 상대로 스코어만 앞선다 좋아할 게 아니라 밀집 수비에 대응하는 공격 전술, 맞불 놓는 상대에 맞서는 수비 전술을 봐야 한단 여론이 적지 않았는데, 아시안컵 조별 리그에 와서 그런 걸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민낯이 드러나며 3경기 내내 끔찍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역사상 최다실점이라는 불명예 기록도 세웠다. 상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선임 이전부터 악명이 자자했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감독에게 벤투보다 더 높은 연봉을 주고 제대로된 절차도 없이 데려온 정몽규도 당연히 클린스만 못지 않게 무병장수할 정도로 욕을 퍼먹고 있다.

준결승 전 훈련 참관 도중 "클린스만은 토트넘 회장과 통화하는 사이니 손흥민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등 문제발언을 하기도 했다. #[5]

어찌 되었든 클린스만호가 준결승까지 꾸역꾸역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슈틸리케도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고 전임자인 벤투는 8강에서 탈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호평받을 만한 경기력은 아니더라도 과하게 비판할 만하진 않다는 의견도 생기며 여론이 반전되고 있으나... 준결승전에서 피파랭킹 87위인 요르단에게 완패하여 옹호 의견은 쏙 들어갔다. 애당초 그 스쿼드를 가지고 준결승에 진출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일이 아닐 뿐더러, 16강과 8강 모두 사실상 무전술 경기 끝에 선수들의 해 줘상대팀들의 극악의 결정력이 맞물려 꾸역꾸역 준결승까지 간 것이었다. 한 번의 요행을 더 바라기엔 조별리그 3경기와 토너먼트 연장 2경기를 모두 소화한 손흥민, 이강인과 두 선수 못지않게 혹사당한 황인범, 설영우를 비롯한 선수단은 더이상 해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클린스만호는 준결승 요르단 전에서 유효슈팅 0개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기고 0:2로 패했고, 그마저도 조현우의 온 몸을 바친 선방으로 겨우 이뤄낸 것이다. 역대 최고의 선수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무색하게 6경기 10실점, 클린 시트 0경기라는 역대 최악의 기록을 남긴채[6] 짐을 싸게 되었다. 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이 클린스만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아몰랑, 해줘 식 무전술 축구였고[7], 그 감독을 밀어준 것이 본인이니만큼 참사의 근본적 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정몽규에게 비판적이던 네티즌들은 아예 클린스만과 손잡고 나갈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이와중에 클린스만은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 뉴스 링크

결국 언론들도 일제히 정몽규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1990년대부터 대표팀월드컵 경기를 대부분 현장에서 직관했고[8] 축구선수 김영찬을 사위로 삼고 있을 정도로 축구에 열광하는 이경규는 대놓고 정몽규 회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된다는 비판을 했다.뉴스 그리고 대구 FC의 당연직 구단주를 겸직하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경우에도 클린스만의 사퇴를 강력히 주장했고 위약금에 관해서는 정몽규 자비로 내야 한다고 했다뉴스
한준희 축협 부회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선임 당시에도 축협 내부에서도 클린스만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셌으며, 아시안컵을 탈락한 지금은 사실상 회장인 정몽규와 그의 충견 몇을 제외하면 경질로 의견이 모아진 수순으로 보인다. 즉 이번에 클린스만이 경질되지 않는다면 그건 오롯이 정몽규의 고집이라는 것. 이 상황에서 클린스만은 대회 분석은 나몰라라 하고 또 미국으로 날아갔는데, 정몽규는 이걸 전혀 제지하지 못하며 도대체 누가 상전인지 의문이 드는 수준의 행보만 보이고 있다.

비판 기사 목록
[기자의 눈] 무능한 지도자·축협 연출의 예견된 실패…퇴보한 한국 축구
[김병윤의 축구생각] 클린스만 감독의 무능력 지도력 대참사...정몽규회장 커튼 뒤에 숨지 마라
"정몽규 물러나야·경기력 아쉬워"...누리꾼 '시끌'
[아시안컵] 정몽규 회장 책임질 차례…조작범 사면 시도+황금세대의 유효슈팅 ‘0’ 탈락

4.3. 대한축구협회 사재 출연 규모 논란[편집]


정몽규 회장 사재 출연 관련 자료

정몽규 회장은 지금까지 파울루 벤투 사단을 영입할 때 40억 원 사재를 출연했고,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성과급으로 29억 원 사재를 출연했다고 수많은 언론을 통해 홍보를 했다.

하지만, 실제로 대한축구협회의 공익 법인 결산을 확인해보니 벤투 사단에 고작 2천만 원을 출연했을 뿐이라고 나왔다. HDC현대산업개발이 40억 원을 출연하긴 했으나, 이걸 사재 출연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는 HDC현대산업개발이든 정몽규 본인이든 사재를 출연하지 않았다. 정몽규 회장 본인이 지금까지 사재 출연한 것을 근거로 삼아 "정몽규 회장이 해준 게 얼만데"라는 여론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해 준 것도 없는 것이다[9]. 참고로 HDC현대산업개발이 10년 동안 출연한 40억도 협회 1년 예산의 5%도 안된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한축구협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한축구협회/사건사고 및 문제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4. 2023 AFC 아시안컵 유치 실패 및 각종 선거 낙선 비판[편집]


2022년 5월 14일 중국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2023 AFC 아시안컵 개최권을 반납하자, 대체국으로 대한민국, 카타르 두 나라가 참여해 2파전으로 아시안컵 유치 경쟁을 펼치게 됐다. 그러나 세계적인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을 홍보용으로 내세우고도 카타르에게 참패하면서 아시안컵 개최가 물거품이 되었다.[10]

뿐만 아니라 2023년 2월 1일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제33차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총회에서 FIFA 평의회 위원 선거를 진행했는데, 입후보한 7명 중 5명을 뽑는 FIFA 평의회 위원 선거에서 6위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나 아시아권에서 축구 약체로 분류되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후보한테도 밀려 낙선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한 언론사는 외교참사라며 정몽규 회장을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낙선이 한 번이 아니라는 점인데, 2019년 4월 6일 FIFA 평의회 위원 및 AFC 부회장 연임에 실패하면서 낙선된 적도 있었다. #

최초로 낙선된 적은 아시아 FIFA 집행위원으로 2015년 4월 30일 아시아 FIFA 집행위원을 뽑는 제 26회 AFC 총회가 바레인 마나마에서 진행되었는데 텡쿠 압둘라 말레이시아축구협회 회장과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 회장한테 밀리면서 낙선되고 말았다. #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3연벙 급의 낙선을 당했다는 얘기다.

4.5. 파주 NFC 계약 미연장 및 천안 NFC 늑장 준공 비판[편집]


기부채납 조건으로 지난 22년간 파주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를 무상 사용했던 대한축구협회가 계약이 종료되는 2024년부터는 파주시에 연간 20억원이 넘는 비용을 내야만 사용이 가능해졌는데, 대한축구협회는 해당 비용이 부담스러웠는지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천안 NFC가 준공이 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목동종합운동장 에서 선수들이 훈련한다고 밝혀졌다.[11] 문제는 천안 NFC가 2024년 안에 준공 되는게 불가능하다는 공사 현장의 한 관계자의 답변이 나올 정도로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다는 점이다.#[12]

심지어, 대한축구협회가 준공일을 2025년 5월로 또 한 번 미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2025년 5월은 2026 FIFA 월드컵/지역예선/아시아/3차예선이 막바지로 끝나갈 무렵으로, 만약 준공일을 미룬 것이 사실이라면 대표팀에 소집된 선수들은 15개월 가까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훈련을 해야하는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추가로, 일각에서는 아시안컵에서 선수들 대다수가 좋지 못한 폼을 보인 원인이 파주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를 이용하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었는데, 대회 이후 실제로 국내에 소집된 선수단 대다수가 2주 동안 볼도 차지 못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13][14][15]

4.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귀국길 노쇼 논란[편집]


2024년 2월 8일 22시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클린스만호 사단을 비롯한 선수 13명이 함께 입국했는데 [16] 예외로 정몽규 혼자만 불타오르는 여론을 의식한건지 귀국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축구팬들의 분노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또한 정몽규는 예전에 조별리그 탈락했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이랑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때 귀국길에도 노쇼했으며 16강진출에 성공했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선 파울루 벤투 감독이랑 주장 손흥민 사이에 뻔뻔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나치게 과는 없애고, 공은 본인의 공으로 돌리려고 노력하는 정치적 행보가 아니냐는 평. 유사한 사례로 2023 하나원큐 FA컵 결승 우승팀인 포항 스틸러스의 트로피 세레모니 한가운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8분 22초)[17]

정확히는 아시아 축구 연맹 (AFC)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할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결승전을 참관하며 자기PR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관계자들 상당수는 정몽규가 직접 뽑은 위르겐 클린스만이 어떻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망쳐놓고 무슨 망나니 짓을 하는지 다 봤을터인데 거기서 친목질 좀 시도한다고 이렇게 무능한 사람을 뽑은 안목을 지닌 인물에게 표를 줄 지가 의문이다.[18]

[1] 단순히 한물 간 것을 떠나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행정으로 한국 축구를 암흑기에 몰아넣은 주역들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2] 감독으로서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황선홍포항 스틸러스FC 서울에서의 첫 시즌 포함 2번의 K리그 우승과 2년 연속 FA컵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클린스만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월드컵 3위,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1번의 골드컵 우승과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4강,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다만 둘 다 그러한 업적들이 퇴색될 만한 결함과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팬들로부터 반감이 많은 편이었다. 그나마 황선홍은 우려와 달리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화끈한 공격 축구를 보여주며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해 여론이 나아진 편이고 클린스만 역시 초기엔 적극적으로 미디어와 소통하는 모습과 나름 선수들과 끈끈한 관계를 보여주며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A매치 무승이 꽤 오래 지속됐고 전술적인 부분에서 의문을 보여 떨어질 것도 없는 정몽규의 평판은 제대로 하락했다. 게다가 당초 얘기했던 것과 달리 한국보다 해외에 거주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전 행보를 보고도 선임을 강행한 축협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고 봐야 한다. 결국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본선까지 말아먹으면서 망했다.[3] 손대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고 인스타그램에서의 정치적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정용진과도 비교가 안 된다는 평이다.[4] 정확하게는 정몽규의 축협 회장 3선이 성공한 뒤부터 김판곤 무시가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황선홍 올림픽 대표팀 감독 선임으로, 김판곤이 감독 후보들을 면접보고 있는데 정몽규가 황선홍을 내려꽂았다.[5] 게다가 "토너먼트에서는 다 크고 작은 부상은 안고 뛰는 거 아니겠나."라는 등 선수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발언까지 일삼아 더욱 큰 비판을 받고 있다.[6] 10실점은 대한민국 대표팀 역대 최다실점 2위 기록인데, 1위 기록은 1996년 UAE 아시안컵 당시 기록한 11점이다. 그러나 해당 기록은 이란에게 한 경기에서 6점을 실점하며 만들어진 기록이고, 매경기 꾸준히 수비가 불안했던 것은 이번 대표팀이 처음이다.[7] 특히 요르단전에서, 전반에 여러 차례 있었던 실점 위기와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후반에 2골을 헌납했다. 이는 하프타임동안 전술 변화를 통한 대처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8]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1998년, 2002년, 2006년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2010년, 2014년, 2022년 월드컵도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 직관했다.[9] 이는 정몽규가 축협 회장자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명분이 현대가 출신이란 점을 빼면 사실상 없다는 것과 같다.[10] 결과적으로 이는 다행이 되었다. 만약 정몽규의 뜻대로 아시안컵을 국내에서 개최하고 이런 경기력으로 탈락했다면, 해외축구마냥 분노한 팬들이 대규모로 폭동을 일으켜 경기장을 파손하고, 직관 온 정몽규를 찾아다니고, 버스를 막고 클린스만과 선수단을 협박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을 수 있다. 지금 국내의 여론을 보면 홈에서 이따위 경기력을 보였다면 그 여파는 더욱 참혹했을 수 있다.[11] 다만 해당 경기장 소유 구단이 서울 이랜드 FC라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사용하는거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중이다.[12] 선수들이 한창 아시안컵에서 뛰는 동안 협회 측에서 1월 23일 동부건설을 천안 NFC의 시공사로 임명하고 계약을 맺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동부건설이 인천 검단아파트 붕괴사고로 인해 서울시로부터 3월 동안 영업정지, 국토교통부로부터 4~11월 동안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몽규 회장의 환상적인 선구안이 소름 돋는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13] 긴 시간동안 간단한 훈련조차도 못하는 것이 선수들의 폼 저하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해당 사실이 밝혀진 이후로는 몇몇 부진했던 선수들을 향한 비난은 지양하자는 여론이 대다수이다.[14] 반론하는 측에서는 이재성의 "2주 동안 볼을 못 찼다"는 발언은 12월 19일에 있었던 소속팀 경기 이후 국내 소집 및 아부다비에서의 최종 소집까지의 기간을 갖고 얘기한 것이며, 당연히 조기 소집된 만큼 회복훈련을 할 수 있는데다 파주 NFC와의 계약은 1월 만료니 12월 조기 소집 때 안 쓴 게 말이 안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이미 국내 소집 기간 동안 호텔 헬스장에서 실내 훈련만 했다는 사실은 이미 기사로 나온 바 있으며, 회복 훈련이라는 것도 축구 분야의 스포츠과학과 동떨어진 방식이고, 이 때문에 2주 동안 공을 차지 못했다는 말 자체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15] 심지어 이번 아시안컵 공인구는 제작 경험이 많은 아디다스몰텐이 아니라 켈미에서 제작했는데, 화면으로만 봐도 공이 상당히 잘 튀고 잘 뜨는 것이 보일 정도로 반발력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평소에 선수들이 차는 공과 다른 재질인 만큼 이번 국내 조기 소집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협회의 안일한 행정 때문에 선수들이 공인구에 적응할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이다. 그나마 해외파 선수들은 회복 훈련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지, 시즌이 종료된 국내파 선수들은 아시안컵을 대비해 볼 감각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인데 이를 전혀 시행하지 못했으니 해외파 선수들보다도 경기력이 더 크게 떨어져버리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16] 나머지 13명의 해외파들은 원 소속팀으로 복귀[17] FA컵이 축구 협회 주관이기 때문에 협회장이 참여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에서도 협회장이 우승팀 트로피 세레모니에 참여하지는 않으며, 심지어 정몽규는 부산 아이파크의 구단주로도 역임되어있다. 조제 보싱와UEFA 챔피언스 리그/2011-12 시즌/결승전 우승 후 주장단을 제치고 빅 이어를 센터에서 들어올려 크게 논란이 된 바가 있지만, 적어도 보싱와는 선발 라인업으로 경기에 임했던 선수다. 협회장들은 트로피만 건네주고 퇴장해서 세리모니를 관람하며, 하물며 감독이나 구단주들조차 선수들이 오롯이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옆으로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치가 없고 명예욕이 매우 심하단게 보이는 대목.[18] 이전부터 정몽규는 아시아 축구 연맹 (AFC)에 얼씬도 안하다가 선거 타이밍에만 얼쩡거리며 친한 척을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행보인데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엔 본인 고집으로 대표팀을 망가뜨렸단게 만천하에 드러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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