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보 츠루타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일본의 프로레슬러.
2. 평가[편집]
1970년대 초중반, 혜성처럼 나타났던 프로레슬러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넘어 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최고의 에이스(エース)라고 평가 받았던 선수이다.
그의 위상은 왕도 프로레슬링의 상징이라고 불렸던 전일본 5강마저 미사와 미츠하루가 롤업으로 간신히 꺾었던 것이 전부일 정도로, 일본 프로레슬링계 무적 선역 기믹의 시초라 할 수 있다.[3]
3. 커리어[편집]
1972 뮌헨 올림픽 아마추어 레슬링 일본 국가대표[4] 였던 그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한 후 자이언트 바바에 이어 전일본의 무적 선역 기믹으로 오랜 기간 동안 군림하며 에이스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데뷔 초기엔 본명인 츠루타 토모미로 활동했다. 외국인 선수와의 싸움이 주된 콘텐츠이던 1970-1980년대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도 197cm라는 큰 체격을 바탕으로 전혀 밀리지 않았으며, 초슈 리키[5] 와 60분 시간 초과 무승부의 격렬한 경기를 펼친 뒤 지친 초슈와는 대조적이게 태연한 모습으로 술 한 잔 하러 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뛰어났다.
프로레슬러로 데뷔한 후 세번째 경기였던 1973년 10월 9일엔 자이언트 바바와의 태그로 더 펑크스(도리 펑크 주니어 & 테리 펑크)를 상대해 61분 시간 초과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면서 프로레슬링 센스도 타고났음을 증명했다. 래리어트[6] 같은 타격기와 각종 슈플렉스 기술을 구사하는 테크니컬한 선수였는데, 그 중에서도 더블 암 수플렉스에 능했다. 점보 츠루타가 주먹을 쥔 오른팔을 들어 '오'라고 외쳤을 때 관객들도 '오'라고 함께 외쳐주곤 했다.
NWA, AWA 등 당대 북미 메이저 프로레슬링 단체에도 출전했다. 루 테즈에게서 정통 백드롭을 전수받은 점보 츠루타는 인터네셔널 헤비급 타이틀에 이어 1984년 2월 23일에 닉 복윙클을 이기고 AWA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쟁취해서, 동년 5월 13일에 릭 마텔에게 패할 때까지 16번 타이틀을 방어했다. 1989년 4월 16일엔 스탠 핸슨을 이기고 인터내셔널 타이틀, UN 타이틀, PWF 타이틀을 통합해 초대 삼관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학용콤비로서 태그팀으로, 혹은 1대1 싱글 매치로 대립하면서 함께 명경기를 만들던 텐류 겐이치로에게 1989년 6월 5일에 패하며 삼관 헤비급 타이틀을 잃었다.
초세대의 기수로 떠오른 미사와 미츠하루에게 1990년 6월 8일에 롤업으로 패하는데, 큰 화제가 된 동시에 미사와에게 큰 의미의 승리가 되었을 정도로 점보 츠루타의 벽은 컸다. 하지만 이후 미사와 미츠하루가 그를 상대해 클린승을 얻지 못했을 정도로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를 위시한 전일본 4천왕에게 점보 츠루타는 무지막지한 적이었다. 1992년에 B형 간염 진단을 받고, 메인 전선에서 물러나서 점차 경기 출전을 줄이다가 1999년에 자이언트 바바가 사망한 직후 은퇴했다.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발생했을 때 처음엔 미사와 미츠하루를 비롯한 미사와 일파에게 실망했지만 이후 그들이 이탈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알고 이해해줬다. 은퇴 후 미국 오레건 주 포틀랜드 주립 대학에 객원 연구원으로 부임했는데, 간염 악화 때문에 필리핀에서 수술을 받는 중 의료 사고 쇼크로 인해 49세란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4. 여담[편집]
현피 실력이 상당했던 선수였다. 현역 시절 폴리스맨을 맡기도 했다. 현대의 종합격투기에서도 가장 우대받는게 아마추어 레슬링 출신인데 NCAA 올아메리칸 수준만 되도 먹히는 상황인데 츠루타는 아예 올림픽에 출전한 경력까지 있었을 정도니 커리어로 따지면 그깟 올아메리칸이라 할수 있는 커리어였고 거기에 체구까지 장대했으니 이런 조건을 가지고 싸움을 못한다는게 더 이상할만 하다. 물론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외국인 선수 중에서도 엄청난 주먹꾼이었던 할리 레이스가 있어서 둘의 현피를 내심 기대하는 팬들이 있기도 했다.
운동 선수로써 엘리트 코스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적 사고 방식을 가졌다고 한다. 후배를 부를땐 이름이나 키미(君)[7] 로 불렀으며 선배티를 내지 않고 그 시대상 흔한 똥군기도 없었다고 한다. 또 심부름꾼[8] 에게도 연습 외엔 터치가 없었다고 한다.[9] 이런 개인주의 때문에 '자이언트 바바가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장에서 내려오면 점보가 아닌 텐류가 사장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텐류는 아니지만 제자이자 후배였던 미사와가 사장이 되었으니 맞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적 사고 방식과는 별개로 상식과 금전 감각이 있어서 바바가 경영에서 물러 날려고 할때 항상 거론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본인이 고사해서 물거품이 되었지만 만약 점보가 사장이 되었으면 지금 상황보다 더 나았을거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5. 둘러보기[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06:26:59에 나무위키 점보 츠루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2] 21세기에도 코바시 켄타의 은퇴 흥행 등 상징적인 대회에서 이 테마가 나오면 '츠루타 오' 콜이 나올 정도로 점보 츠루타의 대표적인 테마곡이다.[3] 물론 신일본 프로레슬링에도 현역 시절 고작 10패만 한 안토니오 이노키나 거의 패한 적이 없는 타이거 마스크같은 경우가 있긴 하다.[4] 출전 종목은 그레코로만형 100kg 이상급.[5] 초슈 리키는 아마추어 레슬러 시절에 한국 대표로 뮌헨 올림픽에 출전한 경력이 있는 프로레슬러이다. 다만 츠루타 쪽이 더 큰 체급에 출전했다.[6] 일명 점보 래리어트로, 스탠 핸슨처럼 시전 직전에 한쪽 팔 보호대를 만지면서 타격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7] 같은 2인칭 대명사인 오마에(お前)보다 좀 더 부드러운 표현이다.[8] 거물급 선수들 주위에서 수발을 들어주는 연습생. 주로 그 선수의 제자들이 했으며 지금은 사라졌다.[9] 나태하기로 유명한 타우에 아키라를 패면서까지 훈계한 일화가 있다.[10] 점보 츠루타(鶴田)의 학(鶴)과 텐류(天龍)의 용(龍)을 합친 태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