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슈 리키

덤프버전 :

파일:Tmain.jpg
<革命戦士(かくめいせん し / Revolution Warrior>
長州 力(ちょうしゅう りき / Riki Choshu



링네임
초슈 리키(長州 力(ちょうしゅう りき)[1]
본명
한국명 : 곽광웅(郭光雄)
일본명 : 카쿠 코유 → 요시다 미츠오
(郭 光雄(かく こうゆう) → (吉田 光雄(よし だ みつ お)
생년월일
1951. 12. 3 (72세)
신장
184cm
체중
120kg
출생지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야마구치현 슈난시[2]
학력
센슈대학 (상학부/학사, 레슬링부)[3]
유형
파워하우스 + 브롤러
피니쉬 무브
전갈 굳히기(サソリ(がため)
리키((りき) 래리어트
별명
혁명전사(革命戦士(かくめいせん し)
테마곡
Power Hall - 히라사와 스스무[4]
(1980 - 2019.6)
데뷔
1974년 8월 8일 (22세)
도쿄도 스미다구 니혼대학강당
신일본 실력세계제일결정전
vs 칼 그레코
은퇴
(1차) 1998년 1월 4일 (46세)
도쿄도 분쿄구 도쿄 돔
신일본 FINAL POWER HALL in 도쿄돔(闘強導夢(とうきょうどうむ)[5]
초슈 리키 은퇴시합~RIKI FINAL MESSAGE5~
vs 후지타 카즈유키, 요시에 유타카, 타카이와 타츠히토,
이이즈카 타카시, 수신 선더 라이거[6]

(2차) 2019년 6월 26일 (66세,커리어 44년)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POWER HALL 2019 -New Journey Begins-
THE FINAL RHAPSODY
vs 후지나미 타츠미 & 무토 케이지 & 마카베 토우기
(w/코시나카 시로 & 이시이 토모히로)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주요 커리어
PWF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 1회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3회
IWGP 태그팀 챔피언십 3회
WWF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IWGP 태그팀 챔피언십 1회

1. 개요
2. 커리어
3. 여담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053-400x600.jpg
일본프로레슬러로, 한국계 일본인이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중심으로 여러 단체에서 전설적인 커리어를 펼쳤다.


2. 커리어[편집]


성장 과정에서 재일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학생 시절에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훈련을 받아 센슈대학 재학 중 1972 뮌헨 올림픽에 자유형 레슬링 90kg 이상 급에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한 적 있다. 올림픽 대표선발전 결과를 다룬 1972년 4월 24일자 중앙일보 기사. 그레코로만 라이트헤비급 대표 곽광웅이 실려 있다. 예선은 그레코로만형으로 통과했지만 본선에서는 자유형에 출전했다.[7] 그래서 프로레슬링 심판 출신의 미스터 타카하시의 책에 따르면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카구치 세이지,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야츠 요시아키와 함께 실전에서도 강한 사람이라고 언급된다.

대학 졸업 이후 1974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한다. 올림픽 국대 출신 인재인만큼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점보 츠루타의 대항마로 초슈 리키를 지목했을 정도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미국, 멕시코 등에서 무사 수행을 하고 왔지만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1980년대 초까지 미드카더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1982년 10월 8일에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사하던 후지나미 타츠미와의 대립으로 반등한다. 3살 연하였지만 초슈 리키에 비해 훨씬 창창한 커리어를 보내던 후지나미 타츠미에게 "나는 너의 들러리(噛ませ犬[* 카마세이누, 직역하면 '물리는 개'. 투견장에서 젊은 투견에게 물어뜯는 훈련을 시키는 목적으로 마루타 역할의 개를 배치시키는데, 주로 은퇴한 늙은 개를 맞붙였다고 한다. 이후 격투기 용어로 '특정 선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대진시키는 악한 선수'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다.])가 아니야!"라고 일갈함으로써 전설적인 대립이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종종 회자된다.[8] 이를 통해 반역의 아이콘, 혹은 "혁명전사"로서의 정체성이 자리잡게 되었다. 후지나미 타츠미와의 경기들은 '명승부 풀이 노래'라고 일컬어지며, 본인의 위상이 크게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1983년 4월 3일에는 후지나미 타츠미를 이기고 WWF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는 등 서로에게 윈윈이 된 대립이었다.

1983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탈단한 채 프리로서 신일본에 참전하다가 1984년 안토니오 이노키의 단체 운영방식에 불만을 품은 선수들과 같이 이탈하여 저팬 프로레슬링[9]을 창설한 후 실질적으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하여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때 스탠 핸슨, 텐류 겐이치로, 점보 츠루타 등과 경기를 가지며 활약한다. 그러다 1986년 1월 28일에 야츠 요시아키와의 태그로 학용 콤비(점보 츠루타 & 텐류 겐이치로)에게 도전한 NWA 인터내셔널 태그팀 타이틀 매치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1986년 올해의 경기 2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데이브 멜처에게서 5성 만점을 받았다. 1987년에 전일본 프로레슬링 측과 참전 문제를 두고 충돌이 생겼고, 당시 소속이던 재팬 프로레슬링 안에서도 내분이 생긴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는 선수와 은퇴를 결정하는 선수, 제3의 길을 가는 선수들과 다르게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재입단해서 안토니오 이노키와 성공적으로 대립한다. 그러다 마에다 안면축격사건의 피해자가 되면서 신 UWF의 탄생에 엮이게 된다. 그래도 후지나미 타츠미와의 대립으로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1988년 올해의 경기 8위에 이름을 올리고,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세 번 차지하는 등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는 동시에 1990년대에는 신일본의 현장감독으로서 활동하며 G1 클라이맥스 등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1998년 1월 4일에 도쿄돔에서 은퇴를 하게 되는데, 이때 등장한 마에다 아키라와 화해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오니타 아츠시와 대립하면서 2000년 7월 30일에 전류폭파 데스 매치를 통해 선수로 복귀한다.

2002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나와 WJ(World Japan) 프로레슬링을 설립했지만 대차게 망하는데, 당시 제자로 받아주길 요청하는 이시이 토모히로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복귀한 후 레전드 군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2010년대부터는 올드 프로레슬러들 중심의 프로레슬링 흥행에 간간이 참전한다. 한편 용과 같이 극2에서 본인의 모델링으로 등장하거나, NHK 대하드라마 세고돈에서 조슈 번의 키지마 마타베 역으로 특별 출연하는 등 예능계에서도 활동한다.

2019년 6월 26일 "POWER HALL 2019 ~New Journey Begins" 흥행을 마지막으로 두 번째로 "링 슈즈를 벗었다."[10] 후지나미 타츠미 & 무토 케이지 & 마카베 토우기를 상대로 코시나카 시로 & 이시이 토모히로와 함께 팀을 맺은 6인 태그 매치를 가졌으며, 마카베 토우기의 킹콩 니 드랍에 핀을 당함으로써 커리어를 마감했다.

은퇴 이후 한때 프로레슬링 NOAH의 모기업이던 리딧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로 있으며 프론트에서 활약하다가 2020년 NOAH를 DDT 프로레슬링의 모기업 사이버 에이전트에게 단체를 매각하였다. 이후 GLEAT라는 단체를 창설한다.



3. 여담[편집]


  • 2016년에 일본으로 귀화했는데, 스스로에게 있어선 여권 색이 바뀌는 일에 불과하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 동시기에 같이 활동했던 '니시무라 오사무' 와는 그야말로 견원지간을 넘어서 서로가 너무나도 극혐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 타케우치 리키의 러브 머신 뮤직비디오에 참여하였다. 같은 리키가 들어가서 초청된 듯.


  • 링네임의 '초슈'는 야마구치 현의 과거 이름인 조슈 번(長州藩)에서 따온 것인데, 그래서인지 2018년 NHK 대하드라마 세고돈에서 조슈 번의 키지마 마타베에(来島又兵衛) 역으로 특별출연을 했다.

  • 오와라이 콤비 치도리아사히 방송 테레비에서 진행하는 예능 합석식당(相席食堂)에서 게스트로 출연했다. 게스트가 리포터로서 일본 각지를 방문해 탐방하는 모습을 MC인 치도리가 관찰하면서, 탐방 도중 그냥 지나가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면 재생되던 VTR을 잠시 멈추고 츳코미를 거는 포맷이다. 초슈 리키는 사루후츠무라에서 리포트하다가 항구에서 만난 어부 가족과 함께 특산품인 가리비를 먹었는데, 신칸센에서 먹던 에키벤과는 전혀 다르다는 평을 남긴다음 "먹어봐, 날아간다고. (食ってみな、飛ぶぞ)"라는 명대사로 스튜디오를 빵 터지게 했다. 마약한 다음에 주로 쓰이는 은어인 '날아간다[11]'를 식후의 평으로 썼기 때문. 이후 가리비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애들에게 어눌한 말투로 칭찬하거나, 인사해도 마을 주민들에게 무시당하는 등, 여러 명장면들을 남긴 뒤 인기인이 되었다.

  • 이후 이 '날아간다고'가 엄청난 유행어가 되어버려서 스낵 광고도 찍었고, 다른 예능에서도 게스트로 출연해 '날아간다고'를 날리거나 유튜브 채널을 신설하는 등,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는 중.


  • 2022년부터는 시즈오카현 아타미시에 거주 중이다. 건강 문제도 있고, 아타미시가 고향인 야마구치현 슈난시와 비슷하고 해서 일이 있을 때만 도쿄로 올라오는 생활을 하는 중. 후지TV의 <내일의 우치무라>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집과 같은 건물에 온천이 있어서[12] 온천에 자주 가며 집과 가까운 중화요리집에서 종종 식사를 한다고 한다.

  • 1987년 패미컴 게임인 '신인류'의 게임 캐릭터로 인용 하였으며[13] 광고까지도 촬영했었다.


4. 둘러보기[편집]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G1 클라이맥스 우승자
1995

1996

1997
무토 케이지

쵸슈 리키

사사키 켄스케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월드 태그 리그 우승자
1991

1992

1993,1994
후지나미 타츠미 & 빅 밴 베이더

하시모토 신야 & 초슈 리키

하세 히로시 & 무토 케이지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레슬러
릭 플레어
(1986)


초슈 리키
(1987)


마에다 아키라
(1988)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부커
바바 쇼헤이
(전일본 프로레슬링)
(1991)


초슈 리키
(신일본 프로레슬링)
(1992)


짐 코넷
(SMW)
(1993)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프로모터
바바 쇼헤이
(전일본 프로레슬링)
(1990 ~ 1994)


초슈 리키
신일본 프로레슬링
(1995 ~ 1997)


빈스 맥마흔
(WWF)
(1998 ~ 2000)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레슬링 옵저버 선정 5성 경기
1986년
1월 28일
재팬 프로레슬링
NWA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십
_학용 콤비 (텐류 겐이치로(O) & 점보 츠루타)_ vs 이신 군단 (야츠 요시아키(X) & 초슈 리키)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감투상
김덕
(1978)

초슈 리키
(1979)


애니멀 하마구치
(1980)
타이거 마스크 II
(1985)

초슈 리키
(1986)


후지와라 요시아키
(1987)
후지와라 요시아키
(1987)

초슈 리키
(1988, 1989)


후나키 마사카츠
(1990)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기능상
키무라 켄고
(1980)

아슈라 하라
초슈 리키
(1981)


타이거 마스크
(1982)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연간 최고 시합상 (베스트 바웃) [★]
1983년
4월 3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WWF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후지나미 타츠미(C) vs _초슈 리키_
1984년
8월 2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서머 파이트 시리즈 최종일
특별 시합
_안토니오 이노키_ vs 초슈 리키
1985년
11월 4일
재팬 프로레슬링
뉴 웨이브 인 재팬
특별 시합[14]
점보 츠루타 vs 초슈 리키
1993년
1월 4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FANTASTIC STORY IN 도쿄돔(闘強導夢(とうきょうどうむ)
더 크라이시스 오브 레슬링
싱글 매치
_텐류 겐이치로_ vs 초슈 리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8 23:45:38에 나무위키 초슈 리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안토니오 이노키가 지어준 링 네임으로, 초슈(長州)는 출생지 야마구치현의 과거 별칭인 초슈 번에서, "리키(力)"역도산의 "역(力)"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2] 예전에는 이름이 토쿠야마시였는데, 슈난시로 합병되었다.[3] 프로레슬링계 최대 파벌 중 하나인 센슈대학 파벌의 대사조이다. 이 곳 출신으로는 대신(한국의 장관급)까지 간 하세 히로시, 나카니시 마나부, 아키야마 쥰 등이 있다.[4] 일본의 전자음악 밴드 P-MODEL의 리더 히라사와 스스무가 외주활동을 하던 시절 작곡한 곡이다. 다만 히라사와의 이름이 아닌 가명으로 크레딧되었고, 판권 등이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쵸슈 리키 본인의 회사에 있는 탓에 히라사와는 이 곡으로 인한 수익을 일절 받지 못한다고.[5] '투강도몽'이라고 쓰고 음독으로 '도쿄 돔(토우쿄우도-무)'이라고 끼워맞췄다.[6] 5번 연속 경기를 치러 이이즈카 타카시에게만 아킬레스건 굳히기로 패배하고 나머지 4명에게 모두 승리했다.(타카이와만 전갈굳히기로 승리, 나머지는 모두 리키 래리어트.) 이 중 마지막 경기는 수신 선더 라이거와의 경기였다.[7] 점보 츠루타도 동 올림픽에 일본 대표 레슬러로 출전했다.[8] 사실 "들러리" 발언을 한 것은 초슈 리키 본인이 아닌 링 아나운서였다고 한다. 다만 이 발언 자체는 쵸슈가 이미 인터뷰를 통해서 발언을 했고 이것을 링 아나운서가 인용을 해서 사용했다고 한다.[9] 1984년에는 저팬 프로레슬링을 창설하기 몇달 전에는 마에다 아키라를 중심으로 신일본을 탈단하고 UWF가 창설되었다. UWF와 저팬 프로레슬링은 경기 스타일은 다르지만 신일본 탈퇴세력이 창설했다는 공통점이 있다.[10] 본인은 이게 "은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미 1998년에 "은퇴"했기 때문.[11] 굳이 한국어로 비슷한 뉘앙스를 찾자면 '숑간다' 정도가 되겠다.[12] 실제로 아타미시에는 온천이 딸린 맨션이 많은 편이다.[13] 참고로 기본 캐릭터가 아닌 숨겨진 슈퍼캐릭터로 적용하였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14] 60분 시간초과 무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