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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에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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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파일:활화산 사장님.jpg
前 스모 선수, 前 전일본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 NOAH 소속 프로레슬러.
2. 경력[편집]
2.1. 스모 시절[편집]
사이타마현 치치부시에서 건설 노동자의 장남으로 태어난 타우에는, 청소년 시절을 높이뛰기, 투포환, 야구, 유도 등 온갖 스포츠를 경험하며 보냈다.
고등학생이 된 타우에는 치치부 농공고교(현 치치부 농공과학고교)에 재학하며 자동차 정비를 배웠지만 스모부 고문 선생의 꾸준한 권유와, '야구라면 강호가 아니면 전국대회에 못 나가지만, 스모로는 전국 대회에 나갈 가능성이 높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1학년 때부터 스모를 시작, 1학년 가을에 오시오가와베야의 권유를 받고, 2학년 때 전국 스모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시작이 늦었음에도 상당한 활약을 보였다.
1학년 때는 고등학교를 마치기 위해 베야 입문 권유를 거절했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3학년 3학기 때 오시오가와베야에 입문하였고, 1980년 1월에 본명인 타우에를 시코나로 데뷔했다. 1986년 5월부터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 백업 급인 쥬료로 승격되며 타마키린 야스마사(玉麒麟 安正)[5] 라는 시코나를 쓰기 시작하였고, 한번 마쿠시타로 미끄러지기도 했으나 쥬료 하위권에 정착하여 괜찮은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하지만 1987년 스승과의 불화를 겪고 1, 3, 5월 3바쇼 연속으로 오버패를 기록하자 그대로 폐업(은퇴)하며 스모와의 인연을 마무리지었다.
2.2. 전일본 프로레슬링[편집]
이후 오시오가와베야가 갈라져 나오기 전인 니쇼노베야 소속이었던 선배이자 베야 내규 끝에 오시오가와베야 이적에 실패하며 프로레슬러로 이미 전향한 텐류 겐이치로의 동창이자, 자이언트 바바와도 친분이 있었던 라쿠고가 산유테이 라쿠타로[6] 의 권유로 프로레슬러로 전업했으며, 재팬 프로레슬링에 일시 입단한 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하는 식으로 전일본 소속 선수가 되었다.
체격적으로도 자이언트 바바와 가장 비슷했고, 말끔한 얼굴에 큰 몸집, 신체능력까지 갖춘 타우에를 총애한 바바는 데뷔전부터 자신이 직접 태그팀 파트너를 맡고 타우에가 핀을 따며 직접 데뷔전을 승리하게 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해 주었다.
이후 타우에는 전일본의 태그팀 전선에서 주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전일본의 많은 선수들이 텐류 겐이치로의 단체, SWS로 이적 할때 타우에는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등과 스테이블을 이뤄 초세대군을 결성하였으나 초대세군이 결성된 직후 타우에는 점보 츠루타의 츠루타군으로 이적했다.
이에 따른 초세대군과 츠루타군간의 경쟁은 여러 태그팀 명경기를 뽑아냈으며, 그 와중인 1992년 3월 4일 점보 츠루타와 팀을 이뤄 세계 태그팀 챔피언 벨트를 처음으로 획득하였다.
1992년 말부터 점보가 부상으로 장기 결장에 들어가며 츠루타 없는 츠루타군은 넘버 투였던 타우에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와중 1993년 4월 미사와를 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카와다 토시아키가 초세대군을 탈퇴하고 츠루타군에 들어갔고, 츠루타를 제외한 모든 츠루타군 멤버들도 타우에와 카와다 쪽에 붙으며 '성귀군(聖鬼軍)'이 결성되었다.[7] 이후 타우에는 카와다 토시아키와 함께 전일본 최고의 태그팀으로 활약하며, 6번이나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하였다.
타우에가 2000년 8월 미사와 미츠하루의 프로레슬링 NOAH로 이적하며 전일본를 떠나고 카와다가 전일본에 잔류하며 팀은 분열됐고,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성귀군은 막을 내렸다.
2.3. 프로레슬링 NOAH[편집]
노아에서 타우에는 주로 사노 타쿠마와 팀을 이루며 태그팀 전선에서 활약을 하엿다. 이후 2005년 11월 5일, 리키오 타케시와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매치를 치러 오랜만에 오레가 타우에로 핀을 따내며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획득하였으나, 2006년 1월 22일 아키야마 쥰에게 패하여 타이틀을 빼앗겼다.
2.4. 은퇴[편집]
노아의 사장이였던 미사와 미츠하루가 6월 13일 링 위에서의 사고로 사망한 2주 후인 2009년 6월 27일, 타우에 아키라가 프로레슬링 노아의 신임 회장에 임명되었다. 한동안 사장직과 선수를 겸하던 타우에는 2013년 5월 12일, 12월에 링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3년 12월 7일,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열린 은퇴 매치에서 모리시마 타케시, 스기우라 타카시, 히라야나기 겐바와 태그로 텐류 겐이치로, 후지나미 타츠미, 이노우에 마사오, 시가 켄타로를 상대해서 이노우에에게 오레가 타우에로 직접 핀을 따내고 은퇴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커리어를 매듭지었다.
타우에는 2016년 11월 1일까지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노아가 IT 개발 회사인 에스트비에 매각 된 후 사장직에서 사퇴했고, 얼마 후인 2017년 2월에는 고문역에서까지 물러나며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3. 여담[편집]
- 선수 시절 굉장히 게을렀다. 바바는 '코바시 반만이라도 연습했으면'이라고 했고 후배 터치 안하기로 유명했던 점보 츠루타가 싸대기를 때리고 훈계할 정도였다. 또 한번은 바바가 의외로 열심히 연습하는 타우에를 보고 감탄해했다가 타우에의 어린 아들이 "아빠가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는건 처음이에요."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 전일본 프로레슬링 4천왕[8] 의 일원으로서 활동을 하였지만 미사와, 카와다, 코바시 에게 밀려 인기가 없었다.
- 평소에는 게으른 모습과 형편없는 경기력 때문에 휴화산으로 불리지만 타이틀 매치나 타 단체 선수와의 시합이 되면 갑자기 활약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타우에 화산 혹은 활화산이라고 불린다.
- 스모 역사 시절 시코나였던 타마키린 야스마사의 맨 앞글자인 타마(玉)만을 따와서 타마씨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코바시는 타우에를 「A・T」라고 부른다.
- 취미는 낚시로 노아 시절 낚시를 좋아하는 선수들을 모아 노아 낚시 클럽을 만들 정도로 낚시를 좋아한다. 이후 NOAH 사장에 취임 후 낚시를 그만두고 이후 사적으로 한국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파일:EM3DC3kUcAA_8T4.jpg
- 1999년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결승전에서 자이언트 바바가 직접 그린 붓 유화가 전면에 그려져 있는 특제 가운을 입고 등장했다. 그 후에는 집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지만, 2005년 12월 4일 흥행에서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첫 방어전에서 6년 만에 착용하고 등장하였다. 이 가운은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결승전과 GHC 첫 방어전 경기 딱 두 번만 사용했다.
4. 둘러보기[편집]
4.1. 스모 커리어[편집]
4.2. 프로레슬링 커리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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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싯아웃 파워밤[2] 파일:성귀군 스페셜 95 (1).gif 파일:성귀군 스페셜 95 (2).gif
타우에의 노도와오토시와 카와다의 데인져러스 백드롭을 동시에 시전하는 기술.[3] 1975년 9월, 니쇼노베야(역도산, 텐류 겐이치로 등의 베야였다.) 상속 다툼에서 패배한 17대 오시오가와가 독립해서 세운 베야로, 오시오가와를 존경하던 16명의 역사가 니쇼노베야에서 오시오가와베야로 이적을 요구했으나(오시오가와의 난) 조정 과정 중 16명 중 6명뿐인 마쿠시타 이하의 역사들만 이적을 인정받는 바람에 마쿠우치 계급 중 하나인 마에가시라였던 텐류가 이적에 실패하여 폐업하고 프로레슬러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탄생부터 내규로 인해 탄생하였고 이후로도 계속 내규에 시달려 2005년에 결국 내규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지만, 17년만인 2022년에 부활하여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4] 9월 바쇼는 은퇴를 선언하고 통째로 휴장했기 때문에 이전 바쇼인 7월 바쇼 마지막 경기가 은퇴전이 되었다.[5] '야스마사' 부분은 자신의 고교시절 스승의 이름에서 따왔다.[6] 이후 6대째 산유테이 엔라쿠(三遊亭圓楽)가 되었다. 프로레슬링계와 굉장히 많은 관계가 있어, 현 신일본 해설자 밀라노 콜렉션 A.T.가 선수 데뷔 직후 가난했을 때 4개월 정도 아예 거둬먹이고, 드래곤 게이트 퇴단 이후 드래곤 게이트의 창시자 울티모 드래곤과 밀라노의 사이가 멀어지자 사이를 중개해 주는 등 프로레슬링계의 숨은 공신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22년 10월 별세.[7] 군단 이름은 팬 공모로 정해졌다.[8]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 훗날 아키야마 준을 포함해 오강(五強)으로 불린다.[9] 마에가시라 이하가 요코즈나에게 승리.[★]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타우에의 노도와오토시와 카와다의 데인져러스 백드롭을 동시에 시전하는 기술.[3] 1975년 9월, 니쇼노베야(역도산, 텐류 겐이치로 등의 베야였다.) 상속 다툼에서 패배한 17대 오시오가와가 독립해서 세운 베야로, 오시오가와를 존경하던 16명의 역사가 니쇼노베야에서 오시오가와베야로 이적을 요구했으나(오시오가와의 난) 조정 과정 중 16명 중 6명뿐인 마쿠시타 이하의 역사들만 이적을 인정받는 바람에 마쿠우치 계급 중 하나인 마에가시라였던 텐류가 이적에 실패하여 폐업하고 프로레슬러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탄생부터 내규로 인해 탄생하였고 이후로도 계속 내규에 시달려 2005년에 결국 내규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지만, 17년만인 2022년에 부활하여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4] 9월 바쇼는 은퇴를 선언하고 통째로 휴장했기 때문에 이전 바쇼인 7월 바쇼 마지막 경기가 은퇴전이 되었다.[5] '야스마사' 부분은 자신의 고교시절 스승의 이름에서 따왔다.[6] 이후 6대째 산유테이 엔라쿠(三遊亭圓楽)가 되었다. 프로레슬링계와 굉장히 많은 관계가 있어, 현 신일본 해설자 밀라노 콜렉션 A.T.가 선수 데뷔 직후 가난했을 때 4개월 정도 아예 거둬먹이고, 드래곤 게이트 퇴단 이후 드래곤 게이트의 창시자 울티모 드래곤과 밀라노의 사이가 멀어지자 사이를 중개해 주는 등 프로레슬링계의 숨은 공신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22년 10월 별세.[7] 군단 이름은 팬 공모로 정해졌다.[8]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 훗날 아키야마 준을 포함해 오강(五強)으로 불린다.[9] 마에가시라 이하가 요코즈나에게 승리.[★]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