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테즈
덤프버전 :
1. 프로필[편집]
2. 개요[편집]
미국 미시간 주 배넷 태생의 프로레슬러.
3. 커리어[편집]
1932년에 프로레슬링 업계에 입문했으며 원조 '네이쳐 보이' 버디 로저스와 함께 북미 프로레슬링의 조상 격으로 칭송받는 대 선수로, 프로레슬링의 아버지, 프로레슬링의 대부, 프로레슬링의 황제 등 많은 영예로운 이명을 지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그를 대표하는 이명은 역시 철인 루 테즈. 프로레슬링에서 철인이라 하면 그건 곧 루 테즈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쓰일 정도다.
신장 188cm, 체중은 약 100~102kg으로, 헐크 호건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근대 ~ 현대 프로레슬링의 기틀을 마련한 선수이자, 당대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링 스타였으며[6] , 아마추어 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뛰어난 기량과 거친 카리스마, 그리고 시멘트 매치를 즐겨 치르던 군기반장(일명 '폴리스맨')으로서의 행보, 무려 8년간 챔피언을 유지하면서 936연승 기록을 세우는 등 대단한 실전 능력을 겸비한 싸움꾼으로도 알려진 선수이다.[7] 60세가 넘어서도 활발히 현역 생활을 했을 정도로 자기관리 역시 비범했다. 73세가 돼서야 현역에서 물러났을 정도.[8]
1990년에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참고로 루 테즈의 마지막 경기 상대는 쵸노 마사히로였다. 경기 결과는 쵸노의 서브미션 승리.
루 테즈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기의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예로 들자면, 1970년대 중반 안토니오 이노키가 실질적인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은 뒤 집필한 그의 자서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노키가 젊은 시절 미국에서 원정 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대기실에서 쉬고 있는 이노키에게 루 테즈가 메인 이벤트를 치르기 직전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서 수고했다며 "Hey." 하고 어깨를 한번 툭 쳐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이노키는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신인에 불과했던 자신에게 루 테즈 같은 거물 중의 거물이 격려 차 해준 그 행동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어안이 벙벙했다고.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당시 업계에서 빈번했던 풋내기 선수들에 대한 베테랑 선수들의 텃새와 똥군기, 파벌, 기싸움 등이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어중간한 선수들은 스타급 선수들에겐 감히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분위기가 팍팍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루 테즈의 입장에선 그냥 사소한 행동이었겠지만 '나에겐 절대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라고 적기도 했다.
루 테즈를 대표하는 기술이자 피니쉬 무브인 백 드랍[9] & 루 테즈 프레스 핀.[10]
프로레슬링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비웃는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들을 직접 응징할 정도로, 프로레슬러로서의 자부심도 엄청났고[11] 시멘트 매치를 즐겨 하는 등# 실전적인 경기도 마다하지 않는 프로레슬러로 유명했으며, 상대방의 옆구리에 팔을 둘러 뒤로 넘기는 백 드랍을 피니쉬 무브로 사용했다. 여기에 백 드랍 직후 상대의 배 위에 올라타 짓눌러서 핀을 하는 동작을 연계기로 사용했는데 이게 그 유명한 루 테즈 프레스.[12][13] 역도산이 루 테즈의 백 드랍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이를 봉쇄하기 위해 다리를 걸고 넘어지는 러시안 레그스윕을 개발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로 그의 백 드롭은 당시 최강급의 기술이었다.
이 밖에도 재빠른 체인 그래플링과 각종 관절기, 파워 밤[14] , 드롭킥, 백 브레이커, 페이스락, 에어플레인 스핀[15] 등을 주 기술로 사용했다.
선수 활동 말고도 스승으로서 많은 제자들을 키워 내기도 했는데, 그의 대표적인 제자로 트리플 H의 스승으로 유명한 '킬러 코왈스키'가 있다. 트리플 H 특유의 정통파주의[16] , 귀족주의, 엘리트주의적 사고가 여기서 설명이 되는데, 이런 전설적인 선수에게서 프로레슬링을 전수받은 자부심에서 나온 것 때문일 듯 하다.[17]
2002년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4. 함께 보기[편집]
5. 둘러보기[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00:37:16에 나무위키 루 테즈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각본 상 출신지는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2]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과는 다른 타이틀이다.[3] National Wrestling Alliance. 흔히 알려져 있는 그 NWA다.[4] 전국 복싱 협회(NBA)의 레슬링 부문인 National Wrestling Association의 타이틀이다. 1949년까지 존재했으며 이후엔 위의 타이틀과 병합됐다. 루 테즈가 획득할 때 까진 별개의 타이틀이었으니 본 문서에선 위의 타이틀과 나누어 작성한다.[5] 쇼와 28년.[6] 당대의 프로레슬링 스타 중에선 일본에서 활약한 역도산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일본 지역의 챔피언이었을 뿐 세계적으로는 루 테즈의 아성에 미치지 못하였다.[7] 그의 폴리스맨 시절 일화를 서술한 자서전인 후커(Hooker)에 따르면, 1964년 경 김일과의 경기 도중 김일이 그에게 슛(각본을 어기고 진짜 싸움을 거는 것)을 걸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런 김일의 머리를 주먹으로 찢어서 47바늘이나 꿰매게 만드는 중상을 입혔다고 적혀 있다. 참고로 이 때 김일은 35세, 루 테즈는 48세로 50을 바라보는 노장 중의 노장이었다.[8] 50대가 된 이후에도, 자신을 실전으로 이긴 녀석에게 벨트를 넘겨주겠다며 공언했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9]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의 수플렉스를 참고하여 만든 기술이다. 참고로 그는 아마추어 레슬러 출신이다.[10] 참고로 짤 속 피폭자는 역도산.(...)[11] 근데 정작 본인도 아마레슬러 출신이다.[12] 점보 츠루타와 스티브 오스틴이 즐겨 사용하는 그 기술이다. 오스틴은 루 테즈 프레스 직후 펀치를 수차례 날리는 것이 특징.[13] 다만 루 테즈의 루 테즈 프레스는 그냥 상대방 위에 마운트 자세로 올라타 손가락을 깍지끼고 하는 핀폴용 기술이고 스티브 오스틴의 루 테즈 프레스는 말 그대로 보디 프레스와 결합한 공격용 기술이다.[14] Reverse Slam(리버스 슬램)으로 약간 파일드라이버 형태로 시전해 현재의 파워 밤의 모습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현대의 파워 밤을 정립한 레슬러는 후대의 테리 고디다.[15] 파이어맨즈 캐리 자세에서 그대로 빙글빙글 회전해서 상대방을 어지럽게 만든 다음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기술로, 직접적인 타격보다는 팬들의 호응을 얻어내는 것이 주 목적인 쇼맨십용 기술.[16] 트리플 H는 한동안 정식 프로레슬링 도장 출신이 아니면, 선수 취급도 안 했다.[17] 무협지로 치면 달마대사나 장삼봉의 직계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루 테즈는 2대 NWA 세계 챔피언인데 초대 챔피언인 오빌 브라운이 심각한 부상으로 얼마 못 가 은퇴했으므로 사실상 초대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데 이는 WWE의 초대 챔피언 버디 로저스와 2대 브루노 삼마르티노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또, 챔피언이 된 후 거의 10년 간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 위상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