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륭(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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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왕륭.jpg

1. 개요
2. 캐스팅
3. 극중 행적



1. 개요[편집]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신구.


2. 캐스팅[편집]


배우 신구는 1998년 KBS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양녕대군 역을 맡았는데, 우연히도 양녕대군이 왕륭과 묘호가 같은 조선 세조계유정난을 지지한 인물이라서 "왕륭이 세조(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지지한 건 본인이 전생에 세조(왕륭)였기 때문이다."라는 배우 개그가 성립한다. 노인 캐릭터치고는 말끝이 조금 느끼하고 능글능글한 느낌이 있는데 왕건을 제왕에 올리기 위해 큰그림을 철두철미하게 그린 인물임을 묘사하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신구는 왕건을 구하며 자기 목숨을 희생한 신숭겸후손[1]이기에 선조가 모시던 군주의 아버지를 그 후손이 연기한 셈이다.[2]


3. 극중 행적[편집]


에게 천하를 물려주기 위해서 이 송악도 버리려 하고있다, 이놈아! 계집 하나가 그리도 소중하더냐! 이미 궁예가 이리로 다가오고 있어! 얼마후면 이 송악도 사라진다, 계집 일은 잊어버려라![3]


조상 누대에 걸친 왕씨 천하의 대망을 도선의 예언으로 점지된 아들 왕건에게 건다. 자신의 앞가림에 급급한 다른 패서 지역 호족들과는 달리 앞을 길게 내다볼 줄 아는 인물로 묘사되며 패서 호족들 가운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4]

작중 설정상 궁예의 은인이기도 한데 어린 궁예가 유모를 따라 세달사로 가던 중 힘이 다한 유모는 송악 나루터에서 쓰러졌는데 때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왕륭은 궁예와 유모를 거두어 집에 데려간다. 잠시 후 신라군이 궁예를 찾아 왕륭의 집에 갔으나 왕륭이 송악 일대의 유력한 호족이었던데다 신라의 실세인 김위홍과 친분이 있다보니 신라군은 문전박대를 당하고 물러난다. 작중 설정상 권력다툼 때문에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몰락하는 가문들이 많았는데 왕륭은 궁예 역시 권력다툼의 희생양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그를 보호한 것.

왕건에게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교육을 철저하게 시켜 왕재(王材)로 길러내는데 왕건은 어릴 적부터 당나라, 발해, 일본 등 인근 각국에 장사하러 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았으며 어린 왕건과 궁예의 대화를 통해서 왕륭이 특히나 왕건에게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5]

사람 보는 눈과 시세를 읽는 능력도 뛰어난 편인데 아직 왕이 되기 이전의 견훤을 서라벌에서 만났을 때 은근히 견훤을 마음에 들어했는지 자신과 함께 할 것을 넌지시 청하기도 했는데 견훤이 이를 완곡하게 거절하자 내심 아쉬워 하기도 했다. 다만 이후 견훤이 서남해 세력을 다지고 대왕이 되었다는 소식에 자신이 실수할 뻔 했다며 아찔해 하기도 했다. 왕륭이 견훤을 영입하려 했던 것은 훌륭한 장수로서 왕건을 보필하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는데[6] 하마터면 범을 방 안에 불러들일뻔 했으니 그럴 만 했다.[7]

궁예가 철원을 함락하고 호족들이 앞다투어 궁예에게 투항할 때 짐짓 투항을 늦추었는데 여러 호족들 사이에 섞여 흐지부지 빛이 바래는 것보다 가장 마지막까지 간을 보고 버티며 궁예의 시선이 집중될 때 앞으로 중히 쓰일 조상 대대로 갈고 닦은 자신의 해양 세력과 그 기반인 송악을 바쳐 궁예의 환심을 사고서 후일을 기약한다는 것.

실제 행적을 참고했는지 궁예 정권에게 의도적으로 송악을 바치면서 금성(지금의 강원도 김화군)태수로 좌천되어도 묵묵히 궁예를 따랐고 송악이 고려의 수도가 되고 수도를 짓는데 전 재산을 탕진하는데도 오히려 자기 뜻대로 되어간다고(왕건이 훗날 큰 뜻을 이루게 되는 발판이 되는 것) 만족한다. 허나 그 때문에 강비를 향한 왕건의 첫사랑을 파토내는 냉혹한 일면도 있다. 사실 연화인 인물 자체는 별다른 하자가 없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문제였던 것. 설정상 왕씨 가문과 신천강 장자 집안은 잦은 교류를 했고, 왕건과 연화의 사랑은 패서 지역 일대가 다 알고 있었는데 왕륭은 강 장자를 "장사치나 하면 족할 소인배"로 평가하였고 때문에 연화를 며느리로 들이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파기해버린다. 강 장자의 정치적 행각과 나중에 나오는 왕건의 장인들을 보자면 왕륭의 판단이 옳기는 했으나 왕건은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나게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고 20대 후반에 접어들도록 연애나 결혼에는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군인의 업무에만 전념하였다. 왕건이 훗날 신혜왕후가 되는 정주 호족 유천궁의 딸인 부용을 술에 취한 채 바라보며 연화로 착각하고 그렇게 부르는 모습에서 이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그리고 장화왕후가 되는 오도영과 혼례를 먼저 치를때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심정도 마찬가지.[8]

왕륭이 죽은 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왕건 가문은 장삿길을 복구하여 또다시 큰 재산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으니 왕륭이 재산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9] 왕륭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세달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궁예는 왕륭과 왕건 부자에게 은근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훗날 왕건이 양길과의 싸움에서 공을 세우자 아예 왕건을 의형제로 들인다.[10] 이후 제25화에서 병으로 사망하는데 왕건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유언으로 "왕씨의 천하가 올 것이다.왕씨의 천하가."라는 말을 남긴다.
[1] 실제로 신구는 평산 신씨 34세손 순(淳)자 항렬이다[2] 다만 작중에서는 왕륭이 금성 태수로 좌천된 이후 신숭겸과 왕건이 만났기에 작중 내에서 왕륭과 신숭겸의 직접적인 접점은 없었다.[3] 당시 왕건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못 만나게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겠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정말 이 행동은 왕륭에게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렇다고 왕륭 입장에서도 연화가 왕건에게 제왕의 배필로 모자란 여자는 아니었었다. 다만 당시 상황과 훗날의 일,훌륭한 딸에 못 미치는 그녀의 아버지 그릇됨이 문제가 된 것이다.[4] 송악의 사병은 500명을 조금 웃도는 정도로 1,000명의 병력을 거느린 평주 다음이었다. 여기에 누대에 걸쳐 해상 무역을 하며 키워온 안목과 정치적 경륜이 있어 세력 이상의 발언권을 갖고 있었다.[5] 다만 오냐오냐해준 건 아니라서 경주(서라벌)로 갈 때 왕건이 선장의 지휘권을 사실상 빼앗으며 함선을 통제하자 남의 지휘를 빼앗아 능력 자랑하는 건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며 이를 꾸짖기도 했다.[6] 왕륭은 호족으로 만족하지 않고 천하를 쥐겠다는 야심을 가졌던 인물인데 측근이라고 할만한 인재가 마사부, 변사부 정도에 이들도 나이가 많아 왕건을 보좌할 만한 차세대 인재가 필요하던 형편이었다. 이런 왕륭의 계획은 훗날에 왕건이 유금필, 신숭겸, 박술희를 영입해 믿을만한 인재진을 완성하면서 달성된다.[7] 다만 이 당시 견훤은 야심은 없었고 신라 왕실에 대한 충정을 지닌 우직한 군인였다. 그러다가 위홍의 사망과 진성여왕의 실정, 자신의 뒤를 봐준 장군 영기의 사망과 부임지의 실태를 보고 각성해 왕이 될 야심을 품게 된다. 즉 왕륭이 처음 만났을 때 견훤은 전도유망한 청년 장교였으며 그만큼 견훤에 필적할 재주를 지닌 왕건이라면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위치였다.[8] 전근대에 왕건급의 인물이 20대 후반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이래저래 뒷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9] 그리고 작중의 모든 행동은 다 아들인 왕건이 훗날 이용할 기반이 될 거이었기에 모든 것을 거는 게 당연했다.[10] 정작 종간은 두 부자를 시종일관 경계했고(왕륭은 1화부터 늙은 살쾡이라고 헐듣었다.) 왕륭 사후에는 그 태도가 왕건에게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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