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필(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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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극중 행적



1. 개요[편집]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강인덕.[1]


2. 극중 행적[편집]


본래 강비의 아버지인 강 장자의 휘하에 있던 장수였으나, 송악에 궁예의 황궁을 건설하는 일로 인해 왕건과 자주 접촉하다가 인품에 감화돼 결국 형제의결의와 더불어 왕건의 부장이 되었다. 강 장자가 무력과 지략이 없고 국구(왕의 장인)의 지위에 안주하는 정도의 그릇밖에 안되는 인물인지라 유금필이 가진 출중한 능력을 활용할 생각조차 안 했고, 유금필이 왕건에게 합류하는 데도 그걸 막기는커녕 그냥 자네 사람이 다 되었다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에 유금필이 자연스럽게 왕건의 휘하로 들어갈 수 있었다.[2] 이후 전장에서 활약하고 나주 공방전, 상주 전투내에서 왕건과 함께 공을 세우자 점점 장군으로 승진하게 된다.

성문을 닫아라! 저건 괴물이다. 사람이 아니야!! (중략) 태자마마! 소장이 전투에 나선 이래 저런 괴물은 처음 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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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삼년산성 전투 中 애술


작중 최강자 중 한 명으로 왕건 휘하에선 가히 독보적인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홍문연을 모티브로 한 환선길과의 칼춤 대결에서 비기는 것을 시작으로 양길과의 전투에서 왕건의 부장으로 출전해 양길의 아우 명길에게 부상을 입히고 낙마시키며, 삼년산성에서 벌인 애술과의 한판 승부(164화, 위에 나온 대사가 애술이 내뱉은 대사)에서 당시 후백제 최강의 맹장이라 할 수 있는 애술을 몰아붙여 도주하게끔 하고 부장들을 상대로 무쌍난무를 펼치는 모습은 지금봐도 명장면으로, 분명히 진지한 전투 장면인데도 은근히 개그 요소가 많다. 그 용맹하고 포악한 맹장인 애술이 "저건 괴물이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야! 성문을 닫아라!!!"는 대사를 외치게 만들었다. 그 다음 애술을 구하기 위해 나온 부장들을 쌍검으로 줄줄이 다 베어버리고 홀로 성문을 돌파한다. 이후 "저자는 유금필이 아닌가!" "유금필입니다!! 유금필이 이쪽으로 오고 있사옵니다! 어서 피하시오소서!" "유금필이다! 유금필이다!" 등은 후반부 전 백제군 공통의 간판 대사가 되고 말았다. 일단 이 대사만 터지면 백제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화려한 학살극이 펼쳐진다. 호로관 여포합비 장료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삼년산성에서의 전투는 굉장히 중요했는데, 이미 근방 호족들의 배신으로 본군이 전멸하고 죽을 위기에 처한 왕건이 오직 삼년산성에서 기다릴 유금필만 바라보고 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미 삼년산성마저 애술와 양검, 용검이 차지한 상태라 유금필이 삼년산성을 얻지 못했다면 왕건은 필시 그대로 백제군에 의해 저승길 행이었을 것이며 유금필의 활약이 왕건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후백제내에서 이 사람에 맞설 수 있는 자는 견훤 본인과 수달,[3] 추허조, 최필 정도밖에 없다.[4][5]

고창 전투 때는 불과 3천의 군사로 신검의 1만 군사를 기어이 막아내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이때 다시 한 번 굉장한 무력을 선보이는데 애술과 박술희의 일기토에 난입한 부달, 소달을 그 어렵다는 마상쌍검술을 구사하며 한꺼번에 상대하여 베어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신검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견훤이 고려군의 포위망에 완벽하게 포위되자 박술희에게 신검 저지를 맡기고 공격군에 합류해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왕건이 평양으로 시찰을 나갔을 때(171화) 여진 오랑캐들에게 황제만이 받을 수 있는 만세를 받은 일이 발생한다.[6] 왕건은 여진 오랑캐들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문제 삼지 않는데, 그 동안의 공적이 상당히 대단하여 왕건의 지속적인 총애를 받는 것을 껄끄러워하며 유금필을 시기하던 홍유, 배현경, 왕식렴[7][8] 등은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리고, 이에 왕건은 격노하기에 이른다. 이때, 최응[9]은 "유금필 장군은 죄 없으나, 모든 신하들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고, 유금필만을 너무 띄운 폐하께서 이번 일의 원인을 만드신 것입니다."라며 조언하였고 덧붙여서 "신하들이 원하는 삭탈관직만으로는 부족하니, 유배형까지 내려야 한다."며 계책을 낸다. 왕건은 이를 수락하여 유금필에게 삭탈관직과 더불어 곡도 유배형을 내린다.

사실, 이것은 유금필의 죄를 따져 진짜로 유배시킨 것이 아니라, 유금필을 시기하여 모함한 신료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즉, 신하들이 생각한 벌보다 더 과한 처벌을 내려서 그들이 제 발을 저리게 만든 것이다. 더불어 유배지를 곡도로 한 것도 취약 지구인 곡도를 유금필로 하여금 보강하도록 하기 위한, 이름만 유배인 일종의 파견 조치였다. 최응이 계책을 내면서 노린 바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어쨋든, 유배 생활을 하던 도중 신검과 최승우,백제의 장수들 지휘하에 고려의 황도를 기습해 온 후백제군을 정식 수군도 아닌 추장들의 고깃배들을 이용해 대파해버리는 쾌거를 이룬다. 물론, 이건 최승우의 지시를 무시한 신검의 형편없는 지휘 능력[10] 때문이었지만 다시 자신에게 만세를 하는 여진 부족장들에게 황제에게만 만세를 할수 있다 다그쳤지만, 오히러 "장군은 우리의 대추장입니다. 대추장께서도 만 년을 사셔야 합니다!"는 부족장의 말에 당황하면서 만세를 계속해서 외치는 오랑캐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울화통이 터질 뿐이었다.(179화)

이 공로로 다시 유배에서 풀려 복직하였고,[11] 이후에 '정남대장군'에 봉해지면서 운주성 전투에서도 참전해 전의성주 이치와 함께 큰 공을 세웠고, 신검에게 쫓겨난 후 금산사에 갇혀 있다가 나주로 탈출하는 견훤을 호위하는 중책을 박술희와 염상, 윤신달, 박수문 형제와 맡게 되었다. 견훤의 호위대장의 임무를 띄고 갔던 197, 198회에서는 평소의 유금필 답지 않게 엄청나게 긴장하고 애태우는 모습을 보인다. 무리가 아닌 것이 일반적인 망명자도 아닌 왕건의 라이벌이자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무사히 고려로 망명할 수 있게 지켜내는 임무의 대장 역할을 맡았으니 긴장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견훤 앞에서는 한 치의 흔들림 없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으로 무사히 송악까지 호위한다. 이 때, 견훤의 호령만으로 후백제 군사들이 우왕좌왕하는걸 보고 감탄하였고, 일리천 전투에서도 자신이 선봉에 설 것을 자청하던 견훤을 왕건이 말리자, 견훤을 지지하여 함께 선봉에 섰다. 여기서 상귀를 베고, 이후 기병들을 몰고 황산벌로 퇴각한 신검의 본대를 포위해 항복하게 만들었다.

이런 그도 초창기에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다. 왕건이 아직 궁예 휘하에 있던 시절 나주를 재탈환하려다 실패하고 회군하는 견훤을 무모하게 쫓다가 최승우의 계략인 매복에 걸려 참패를 당한다. 정확히는 최승우가 혹시나 모를 추격군에 대비하기 위해 일종의 보험으로서 일부 병력을 매복시킨 것인데, 유금필이 거기에 걸린 것이다.[12]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최필과 일기토를 벌이다 힘이 떨어져 죽을 뻔했는데 맞춰 도착한 신숭겸 덕분에 겨우 목숨만 건진다. 군법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왕건이 유금필을 문책하는 수준에서 끝났고, 나중에 보고를 받은 궁예도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이는지라 유야무야 넘어갔다.[13] 물론 이 이후로는 그런 실수 없이 불패의 명장으로 거듭난다.

여담으로, 세계관 최강자급인 유금필도 기겁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궁예의 순행 중 북원부인(양길의 딸 미향)의 49재로 인해 금주령을 내릴 당시, 충주에 있던 동료[14]들과 회식을 할 때, 박술희가 뱀고기를 맛있게 먹는 걸 볼 때다.[15]

본 드라마에서 왕건과 세 장수가 형제의 연을 맺는 장면은 삼국지연의 도원결의의 오마주이며, 여기서 유금필은 조운 포지션인 가운데[16] 삼국지에서는 장비가 조운보다 연장자이자 상관인 것과 달리 태조 왕건에서는 장비 포지션인 박술희보다 형이다.

[1] 공화국 시리즈에서 김두한, 용의 눈물에서 이지란, 왕의 여자에서 이원익 등을 맡은 배우이다.[2] 그래도 유금필이 왕건 휘하로 옮긴 일에 대해 왕건과 대화를 나누긴 했다.[3] 수달은 박술희, 배현경, 김락, 홍유는 확실하게 발라버렸고 박술희와 신숭겸의 협공을 여유있게 상대하다 유금필까지 가세해 3대 1이 되자 비로소 물러났다.[4] 추허조의 용맹에 수달이 크게 놀랐던 걸 보면 추허조도 유금필과 맞먹을 수 있는 무장으로 보인다. 수달이나 추허조가 유금필과 직접 일대일로 겨룬 적은 없어서(대신 유금필은 수달이 왕건의 세 장수를 혼자서 터는 건 목격했다.) 확실한 우열은 시청자들의 상상의 몫. 견훤은 왕이라는 신분 때문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제한적이고, 수달과 추허조는 일찌감치 전사했기 때문에 극 후반부에서는 유금필을 당해낼 수 있는 백제 장수는 없게 되었다. 97회에서 최필이 유금필과 일기토를 하면서 부상을 입혔으나 운주성 전투에서 고려의 중급 장군인 이치에게 단칼에 발리면서 무력 밸런스가 깨져버렸다. 그런 이치가 박영규와는 호각세였다. 한마디로 드라마에서의 밸런스 붕괴.[5] 단, 최필과의 전투에 앞서 유금필은 이미 화살에 맞아 낙마하는 등 부상을 입어 제대로 싸우기 힘든 상태였던 만큼 완전 벨붕이라 보긴 힘들다. 실제로 일기토 도중 부상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면서 잘 못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6]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유금필을 대추장으로 모셨기 때문이다.[7] 사실상 전자의 문제가 트리거가 되어 묵혀져 있던 후자의 문제가 제대로 터진 것이다. 때문인지 염상, 윤신달, 박수문 형제 같이 극중에서 공적 부분이 두드러지지 않는 중간급 장수들은 유금필의 처벌에 회의적이거나 중립적으로 나왔다. 특히 염상의 경우 처음 문제가 두드러졌을때, 윤신달은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 그를 명확히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8] 왕식렴은 북방의 여진족들이 서경 총관인 자신은 무시하고 유금필만 우러러하는 것에 반감이 컸고, 그 전에 서경 천도에 대해서 고려해볼 것을 왕건에게 제안했는데, 이를 강하게 반대해서 무산시킨 유금필에게 불만이 생겼다. 또한, 왕식렴으로서는 동생 왕신후백제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유금필이 박술희와 함께 왕식렴을 찾아가 후백제에서 온 볼모 진호를 죽일 것(= 왕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을 설득하였고, 결국 왕신이 백제 땅에서 죽음을 맞았으니 유금필에 대해 섭섭한 감정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9] 당시 병부령(현 국방부 장관)에 있었는데, 이 무렵 깊은 병이 들어서 병부령 직을 내놓고 내봉경으로 내려가긴 했으나, 끝내 예성강 전투 이후에 세상을 떠났다.[10] 신검의 실책이 치명적이었던 것이, 1차로 유금필이 여기 있다고 하자 눈이 뒤집힌 애술이 땡깡을 부리자 한창 자신감에 차 있던 신검은 애술의 한을 풀어주자며, 최승우와 종훈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갈 이유가 없는 곡도로 향하였다. 2차로 곡도 부근을 지나는 정탐선들이 정찰을 개판으로 하였다. 설렁설렁 대충 눈대중으로 훝어보고 지나가 섬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다. 3차로 바람과 물살이 지극히 불리한 와중에도 신검은 최승우의 만류를 무시하고 이동을 했다가 화공을 하자 그제서야 '아이고 난 망했다!' 견훤의 말마따나 신검의 전형적인 패망 테크인 '잘 하다가 막판에 다 말아먹는' 결과의 재탕인 것이다.[11] 시중 김행선은 물론, 그를 탄핵했던 왕식렴, 홍유, 배현경, 의형대령인 추언규까지 용서하기를 주장하였고, 왕건도 끝내 이를 승낙하였다.[12]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돌진만 한 건 아니고, 뒤늦게나마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척후를 보냈으나, 이미 때가 늦어 매복한 병력과 맞선다.[13] 여담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을 보인 직후 술에 취해 광증이 도져 술에 많이 취했으니 들어가서 쉬라고 간언하는 종간석총인 줄 알고 죽이려 들었고, 이에 놀란 종간이 부른 내관을 궁예가 또 죽여버리는 참상이 일어난다.[14] 동료라기보다는 상관급이라고 할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배현경, 홍유, 김락, 김언 등이 있다.[15] 다만 실제 촬영에 쓰인 것은 진짜 뱀이 아닌 꼼장어다.[16] 정확히는 조운 포지션이지만 관우 포지션도 어느 정도 겸하여 신숭겸과 나눠서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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