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계 아르헨티나인

덤프버전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 펼치기 · 접기 ]
상징
국가
역사
역사 전반 · 포클랜드 전쟁아르헨티나 연합국
정치·치안·사법
정치 전반 · 아르헨티나 대통령 · 행정구역
외교
외교 전반 · 아르헨티나 공화국 여권 ·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 TIAR
경제
경제 전반 · 아르헨티나 페소 · G20 · 아우스트랄
국방
아르헨티나군 · 아르헨티나 해군
교통
미니스트로 피스타리니 국제공항 · 부에노스아이레스 지하철 · 철도 환경
문화
문화 전반 · 탱고 · 가우초 · 요리 · 축구 국가대표팀 · 포도주 · 스페인어 · 야간어
인물
호세 데 산 마르틴 · 마누엘 벨그라노 · 에바 페론 · 후안 페론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체 게바라 · 마리오 켐페스 · 디에고 마라도나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 리오넬 메시
지리
부에노스아이레스 · 파타고니아 · 팜파스 · 티에라델푸에고
민족
아르헨티나인(스페인계 아르헨티나인 ·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 · 프랑스계 아르헨티나인 · 독일계 아르헨티나인 · 폴란드계 아르헨티나인 · 아일랜드계 아르헨티나인 · 러시아계 아르헨티나인 · 우크라이나계 아르헨티나인 · 크로아티아계 아르헨티나인 · 그리스계 아르헨티나인 · 헝가리계 아르헨티나인 · 포르투갈계 아르헨티나인 · 슬로베니아계 아르헨티나인 · 오스트리아계 아르헨티나인 · 스위스계 아르헨티나인 · 아랍계 아르헨티나인 · 아르헨티나 유대인 · 일본계 아르헨티나인 · 한국계 아르헨티나인 · 네덜란드계 아르헨티나인 · 덴마크계 아르헨티나인) 아르헨티나계 미국인




1. 개요
2. 이민사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오스트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은 아르헨티나에 이주, 정착한 오스트리아인 이민자 후손을 의미한다. 이들은 같은 독일어권 이민자들인 독일계 아르헨티나인 또는 스위스계 아르헨티나인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2. 이민사[편집]


오스트리아인의 아르헨티나로 이주 역사는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시절 신성 로마 제국 출신 예수회 사제들이 파견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예수회 사제들은 독신이었고, 이들은 현지에서 후손을 낳은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로 이민 붐이 불 당시에는 오스트리아인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갑 입장이었기 때문에, 해외 이주가 드문 편이었다. 비교하자면 20세기 초반 러시아 제국 여권을 들고 남미로 이주한 사람들이 대부분 유대인 혹은 폴란드계 가톨릭교도, 독일계 개신교도였던 것이나 오스만 제국 여권을 들고 이민 온 사람들이 대부분 레바논/시리아 일대의 아랍계 기독교인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여권을 들고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사람들은 대개 현지 사회의 소수자였던 것이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인들의 아르헨티나 이주는 전간기부터 본격화되었다. 특히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혼란상 와중에 아르헨티나로 이민한 오스트리아인들이 적지 않았다. 전간기 당시 1930년대 초반 기준 아르헨티나 내 독일어를 사용하는 인구 수는 24만여 명이었는데, 이 중 오스트리아 출신은 9천여 명 정도였다. 아르헨티나와 오스트리아 모두 문화적으로 가톨릭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데다가, 아르헨티나에서 유럽계 백인 이민을 장려했던 영향으로 아르헨티나로 이민한 오스트리아인들은 현지 사회에 빠른 속도로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오스트리아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3.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9 11:51:36에 나무위키 오스트리아계 아르헨티나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