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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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信忠 / 金忠臣(?) / 金忠信(?)
통일신라 중대의 진골 귀족. 관등은 이찬.
2. 생애[편집]
726년 4월 김충신(金忠臣)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는데 이 김충신이 신충과 동일인물의 이름을 다르게 표기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734년에 당나라에서 숙위하며 머무르고 있다가 당나라 황제에게 본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한 김충신(金忠信)과도 신충이 동일인물이란 설도 있다.[1]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위에 오르기 전의 효성왕과 매우 가까운 관계로 바둑을 즐겨 두었다고 한다. 여기서 효성왕과 한 약속이 향가 중 하나인 원가의 배경이고 신충이 원가의 작사가이다.
경덕왕 시대 757년 전임 상대등 김사인이 병에 걸려 관직을 그만두었으므로 신충이 상대등을 역임했고 763년 8월 시중 김옹과 함께 사직했다.
그가 나이들어 은거한 후 경남 산청군의 지리산 자락에 사찰 단속사를 창건했다. 이 절은 조선시대까진 있었지만 조선 때 훼손됐고 지금도 단속사지 삼층석탑이 대한민국의 보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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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수태, 《신라중대 전제왕권과 진골귀족》, 서강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