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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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東寬
1929년 5월 28일[1] ~ 2018년 10월 13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청남(靑南). 종교불교이다.


2. 생애[편집]


1929년 경상남도 남해군 서면 중현리 도산마을[2]#에서 아버지 신세철과 어머니 정태생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중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조선전기공업학교[3]를 졸업한 후 군인이 되기 위해 육군종합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대한민국 육군 장교에 임관되어 근무하면서 국민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이어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또 미국 육군보병학교와 일본 교토대학에서 2년간 연수를 받기도 했다.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선임되자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과장에 임명되어 곧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경호과장에서 경호차장으로 승진하여 대통령을 수행하며 해외 10개국을 순방하였다. 1964년 7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청해대에서 여름 휴가를 보낼 때 장지수 장군 등 군 수뇌부가 자리를 함께 하게 되면서 신동관 당시 경호과장의 건의사항을 들어주기로 했었는데, 이때 남해대교 건설의 중요성을 박 전 대통령에 피력하여 1966년 9월 국무회의에서 남해대교 건설이 확정되고 1968년 5월 착공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최치환 대신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아 경상남도 남해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최고득표율이었다. 1972년 한국발명협회 회장이 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엄기표와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아 경상남도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본인과 신민당 문부식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1974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에 임명되었다. 1978년 초 제2무임소장관에 임명되어 대한민국 국회의원직을 사임한 고재필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건설위원회 위원장 직무대리가 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최치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이후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레저업체를 운영하던 중 1984년 해금되었다.

2018년 10월 13일 지병에 시달리다가 숙환으로 사망했다. 장지는 용인공원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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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월 3일생이라는 기록도 있다.[2] 평산 신씨 집성촌이다.[3] 이후 수송전기공업고등학교, 중동전기공업고등학교 등으로 교명이 변경되었다가 1978년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