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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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야구 관련
2.1. 성실성과 근성
2.2. 각오왕 손아섭
3. 야구 외
3.1. 자기관리(워크에씩)
3.1.1. 고기 사랑
3.2. 개명
3.3. 외모 및 성격
3.4. 예능 프로그램 출연
3.5. 야구계 인물들과의 이야깃거리
3.5.1. 강정호와의 관계
3.5.2. 노시환과의 관계
3.5.3. 이동욱 감독과의 인연
3.5.4. 후배 사랑
3.6. 기부 및 선행
3.7. 말말말
3.8. 기타



1. 개요[편집]


NC 다이노스 소속 야구선수 손아섭의 기타 사항들을 설명하는 문서.


2. 야구 관련[편집]


  • KBO 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이나 그동안 의외로 타격왕[1]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가, NC 이적 2년차인 2023 시즌, 만 35세 시즌에 드디어 타이틀을 차지했다. 반면 최다안타상은 2023 시즌을 포함해 4번이나 수상했다.(2012, 2013, 2017, 2023 시즌)

  • 2021 시즌 종료 기준 역대 외야수 통산 보살 순위 1위이다.#

  • 타격에 들어가기 전 배트를 단 한번도 돌리지 않는다. 야구 게임 이사만루 2021 유튜브에서 본인의 나무위키를 읽고는 배트를 잡다가 본인이 마음에 드는 그립을 잡으면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전 동료였던 황재균의 말로는 손아섭은 마음에 드는 배트 그립을 찾으면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타석에 들어갈때 그 그립 그대로 입장한다고 하는데, 배트를 돌리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타자들은 타석에서 투/포수가 사인을 교환할 때 투수를 바라보며 루틴처럼 배트를 빙빙 돌리지만 손아섭은 그것조차 하지 않고 야구공을 타격하는 순간 딱 한번 돌린다.

  • 초등학생 시절 왼손으로 3이닝, 오른손으로 3이닝을 던져본 적이 있다고 한다. 원래 왼손잡이[2]라 농구나 배구같은 큰 공으로 하는 운동은 왼손으로 했지만 야구는 오른손이 편하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피구를 하는 장면을 우연히 야구부 감독이 보고 우투좌타 선수로 알고 있던 손아섭이 왼손으로 빠르게 공을 던지고 있는 걸 발견, 이후 감독의 권유로 스위치 피처가 됐다. 손아섭은 이에 대해 "주로 오른손으로 던지다 팔이 아프면 왼손으로 바꿔 던졌다"라고 회상했다.

  • 통산 성적을 보면 키움 히어로즈와 구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가장 약했다.[3] 다만 SSG 랜더스를 상대로는 OPS 0.899로 성적이 나쁘지 않고, 키움의 전신인 넥센 히어로즈 상대로도 OPS가 0.9를 넘는다. 반면 2021년까지 통산 상대전적에서 가장 강했던 팀은 OPS로는 LG 트윈스(0.954), 타율로는 kt wiz(0.372)이다.

  • 글러브 한 개를 몇 년 동안 쓰고 있다.


2.1. 성실성과 근성[편집]


  • 손아섭의 플레이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마치 양준혁을 연상시키는 전력질주와, 롯데 팬들에게 박정태의 향수를 자극하는 근성있는 플레이를 동시에 갖춘 선수로 자타공인 엄청난 노력파이다. 끝없는 그의 노력과 연습량은 야구 팬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있으며[4] 이런 노력 덕분에 타격 면에서 꾸준한 발전을 거두었다. 따라서 슬럼프를 겪더라도 팬들이 크게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덕아웃과 팬들 모두에게 큰 신뢰를 받고 있다.

  • 손아섭의 근성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바로 2017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의 연타석 홈런 장면이다.[5] 손아섭은 홈런을 예상하지 못한 채 전력질주하면서 "제발 제발"을 외친 것이 카메라에 잡혀 야구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는데,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손아섭은 "제발, 제발 이라고 했다. 정규시즌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오늘 경기에 임하는 간절함이 컸다. 마지막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제발 펜스라도 맞기를 마음으로 외쳤다"고 말했다.



  • 그의 근성을 알 수 있는 또다른 일화로 2014년 4월 11일 경기에서 9회초에 3점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와서 그곳에서 타격폼 연습을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다. 아마 감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것인 듯.[6] 손아섭은 경기가 끝나고 <베이스볼S>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승부가 기울어도 손아섭은 야구를 헛으로 하지 않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김성근은 올스타전 특집 <베이스볼S>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의 대부분의 탑 레벨 선수들이 돈만 많이 받지 프로로서의 마음가짐이 없다고 꼬집었는데 유일하게 손아섭만큼은 진정한 프로라며 칭찬했다.

  • 어릴때부터 손아섭의 목표는 물론 야구를 잘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는 맞지만 더 길게 봤을 때는 부상없이 롱런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목표에는 변함이 없으며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사랑받는 선수가 될 수 있을까' 라는 끊임없는 고민 속에서 몸에 안 좋은 것, 운동과 경기력에 방해되는 것들을 절제를 한다면 같은 경쟁선상에 있는 선수들보다는 더 앞서나갈 수 있다고 판단을 했고 그런 부분들을 조금씩 지키다보니까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 시즌 중 루틴이 꽤 많다. 2021년 12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밝힌 바 있다.





2.2. 각오왕 손아섭[편집]


손아섭은 2009년부터 시즌이 끝난 후 매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각오를 다졌는데, 내용과 결과는 다음과 같다.

  • 2009 시즌 후 - 주전 좌익수
08년에 눈에 띌 만한 신인으로 나타났으나 09년 크게 말아먹고 난 뒤라서 대부분의 롯데 팬들은 그저 한 두 번 있는 백업들의 인터뷰 정도라 생각했지만, 손아섭은 2010년 주전 좌익수로 출장하면서 첫 규정 타석 3할을 치른 시즌이 되었다.

손아섭은 시즌 초반에 수비에 대한 비판이 흐르면서 타율도 그저 그랬으나 이후 무섭게 치고 올라오더니 결국 2011시즌 골든글러브 외야 부문을 수상하였다.

  • 2011 시즌 후 - 더 많은 안타
손아섭은 2012시즌 최다안타왕을 수상하였다. 다만 이땐 11년의 장타가 줄어든 모습이 보여서 아쉬운 부분도 있다.

  • 2012 시즌 후 - 0.340, 170안타
타율 0.345에 172안타로 2013시즌을 마무리했다. 2년 연속 최다 안타 1위는 덤. 다만 손아섭 본인은 타격 2위를 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 2013 시즌 후 - 최고의 3번타자, 15~20홈런, 수위타자, 180안타(!)[7],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최다 연속 수상 [8]
타율 0.362, 18홈런, 175안타를 기록했다. 0.362는 다른 시즌 같았으면 충분히 수위타자에 오를만한 성적이었으나 2014년의 미친듯한 타고투저가 겹치며 타율 3위에 올랐고, 안타는 아쉽게 단 5개가 모자랐지만 홈런 개수는 지켰다. 골든글러브 역시 무난하게 수상하며 4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가져갔다. 거기다 2014년의 기록으로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다시 한 번 뛰어넘었다. 180안타는 결국 2016년에 성공했다.

2019년의 부진 이후 손아섭다운 야구로 회귀를 천명했으며, 타격 2위, 최다안타 3위 등을 기록했고, 홈런 개수는 줄었지만 2014년 이후 커리어 통산 두번째로 볼넷/삼진 비율이 1을 넘었다. 또한 뜬공/땅볼 비율이 0.72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3. 야구 외[편집]



3.1. 자기관리(워크에씩)[편집]


  • 자기 관리가 매우 철저하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9] 담배는 전혀 하지 않으며 탄산음료 역시 전혀 마시지 않는다.# 또 단 음식을 아예 싫어해서 민트초코도 좋아하지 않았었다.[10] # 취미는 맛집 찾아다니기와 (비시즌에는) 여행다니기로, 인터뷰에서 이러한 삶이 남들은 지루해보일지 모르지만 본인에겐 나름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커피 마시는 취미도 생겼는데, 과거에는 손아섭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에는 커피가 몸에 좋지 않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커피에 설탕 같은 것이 들어가서 좋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콜드브루 등을 마시는 것 같다.[11]

  • 식단관리에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기사에 따르면 주로 소고기를 먹고[12], 단백질 보충을 위해 민물장어로 만든 장어즙을 매일 마신다고 한다. 남은 부분은 고지방으로 메우고 종합비타민과 오메가, 루테인 등 영양제를 순서대로 먹는 것도 루틴. 손아섭은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내면서 뛰려면 한 가지를 얻으면서도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지 않나, 열심히 고생해서 달려왔고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데 놓치고 싶지 않다. 나중에 유니폼을 벗더라도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야구를 하는 것도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싶다”고 말했다.


3.1.1. 고기 사랑[편집]


고기에 진심인 NC 손아섭 "선별부터 굽기까지, 누구보다 잘해"

  • 시즌 중 소고기로 체력을 보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SNS를 통해 종종 '고기 인증사진'을 남기곤 한다.

  • 손아섭은 스테이크 전문점에 가면 주로 '레어'를 주문하는데, 핏기가 있어야 고기가 살아있는 걸 느낄 수 있고, 너무 익으면 좋은 고기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후배들과 함께 고깃집을 가도 집게와 가위는 손아섭 몫이라고 한다.

  • 2023 시즌 KBO 미디어데이에서 주장으로서 우승 공약을 묻자 "팬들을 구장으로 초청해 고기를 구워 드리고, 복면가왕 출신 가수가 노래 공연까지 해드리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3.2. 개명[편집]


  • 개명한 야구선수 중 가장 성공한 선수이다.# 2008년 시즌을 마치고 '손아섭'으로 개명을 했는데, 개명을 한 이유는 어머니가 부산 시내 유명 작명소에서 '야구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고, 부상을 입지 않게 하는 이름' 을 받았다며 개명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개명한 후 맞은 첫 시즌인 2009년에는 약간 부진했으나, 이후에는 좋은 활약으로 개명을 한 효과를 보고 있다. 손아섭의 성공 사례 이후 야구계에 개명 열풍이 불어 너도나도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늘어났다.[13]

  • 손아섭은 처음 개명 제안을 받았을 때 '과연 내 어머니보다 내가 잘되기를 바라기를 바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라 생각했고, 어머니 뜻에 따랐다. 개명을 하고 난 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결과가 좋아서 지금은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개명한 이름은 '땅 위 최고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3.3. 외모 및 성격[편집]


  • 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묘하게 추성훈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14] 목소리는 외모에 맞지 않게 가늘다. 인터뷰 이 때문인지 노래 실력이 꽤 좋아 한동근그대라는 사치[15]를 여유롭게 부르기도 할 정도.

  • 잘 부각되지는 않지만 노안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20대 시절에는 김광현, 양현종과 동갑인데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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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민 시절, 19세 때 사진이다. 본인이 해명하길 저 당시 사자머리펌이 유행이었고 집업 브랜드는 겐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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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AG 직후 모습. 개명하고 잘 나가면서 많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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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 하필 이대형 옆에 앉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의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 2013년 비오템 옴므 뷰티화보를 찍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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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C 이적 후 인터뷰에서 팀내 본인의 외모 순위가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고 패기있게 말했다. 본인피셜 얼굴보다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 전형적인 부산경남 아재 성격으로, 동료들에게 장난을 스스럼없이 치며 언행도 시원시원하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자기 일상을 올릴 때도 부산 사투리를 스스럼없이 쓴다. 과거에 롯데 선수들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는 ( ) 다. 그 이유는 ( ) 이기 때문이다.'라는 설문지를 작성하게 한 적이 있는데, 당당하게 '롯데는 (최고)다. 내가 입단했기 때문'이라고 적어냈다는 일화도 있다.# 2010년 1월 4일 새벽, 어떤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유저가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는데 친절하게 대답을 해 준 적도 있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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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예능 프로그램 출연[편집]


  • 2019년 1월 나 혼자 산다 황재균 편에 출연했다. 노래방에서 황재균의 노래 실력에 썩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2019년 12월에도 황재균과 함께 재출연했다.#

  • 2020년 12월 송승준, 심수창도시어부에 출연했다. 부산 사나이라며 허세를 부리다 배멀미를 심하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17]

  • 2021년 1월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출연했다. 1R에서 가시를 불렀고,# 20:1로 광탈했다.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할 때는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을 불렀다.# 손아섭에 대한 장단점으로 힌트를 준 지인으로는 안보현, 구자철[18], 이시언이 있었다. 구자철은 손아섭의 장점을 '야구는 잘한다.'라고 평했고, 단점은 '축구를 못한다.'라고 평했으며, 이시언은 손아섭의 단점을 '자기가 잘생긴줄 안다.'라고 평했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이유로는 황재균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는 걸 인정받기 위해 출연했다고 하는데, 방송이 나간 뒤 먼저 출연했던 황재균에게 놀림받는 굴욕을 겪었다.#

  • 여담으로 NC 이적 후 경기 전 훈련시간 중 야구장에 '가시' 가 흘러나오자 즉석으로 열창하기도 했다는 사연이 전해져 팬들을 즐겁게 했는데,# 채종범 NC 타격코치는 "(손)아섭이가 사기 진작을 위해서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해준 것 같다. 역시 노래도 타격과 같이 매우 진지하고 열심히 하는 게 보였다. 기분 좋게 들었다"며 칭찬했다.

  • 직접 출연한 것은 아니나,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13회 방송분인 ‘오빠를 잃고 슬픔 속에 사는 아이’ 편을 본 후, 자신의 팬이었던 금쪽이 오빠를 위해 가족과 직접 연락해 조문하러 간 사연이 전해졌다.#

  • 롯데 시절 구단 유튜브인 자이언츠 TV에 자주 출연했다. 베테랑 선수임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많은 자체 컨텐츠에 출연해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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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C 이적 후 엔튜브에서 박건우와 함께 씬스틸러로 활약하고 있다. 아래 영상 이외에도 2022 엔튜브 무물 편, 맛집 편 등에서 적극적인 모습으로 팬들을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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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야구계 인물들과의 이야깃거리[편집]



3.5.1. 강정호와의 관계[편집]



  • 2014년 5월 16일 일명 '열애설'로 불리는 사건[19] 강정호가 자극하고 손아섭이 정색하는 모습 때문에 둘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최상위권을 휩쓸었고, 이에 야구팬들이 "둘이 열애설이라도 났느냐"며 놀린 것. 다음 날 두 선수가 당시 상황에 대해 해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후 한때 강정호와 엮이는 일이 잦았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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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해 12월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에는 '정호 형을 안 챙기면 한 달씩 전화를 안 받아서 꼭 챙겨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이 때 이후로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 2023 시즌을 앞두고선 LA에서 허일과 함께 사설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중인 강정호에게 찾아가 체계적으로 시즌을 준비했으며 결과도 좋았다.#


3.5.2. 노시환과의 관계[편집]


  • 2023 시즌에는 한화와의 경기 전에 손아섭을 향해 노시환이 춤을 추는 모습이 여러 차례 야구팬들에게 포착되어 이유를 궁금하게 했다. 이글스티비를 통해 전말이 알려졌는데, 스프링캠프 당시 야구계에서 화제가 된 노시환의 춤 영상을 본 손아섭이 노시환에게 춤을 시켰고 그 날 하필 맹타를 휘두르면서 이후 경기 전에 노시환의 춤을 보는 것이 루틴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노시환은 선배의 루틴이니 같은 야구선수로서 존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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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으로 손아섭이 노시환에게 유행하는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해당 캡쳐는 2023년 7월 21일 대전 한화전 경기 전 포착된 장면인데, 이른바 '04년생 클럽춤'을 노시환에게 춰 주는 모습이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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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는 두 사람이 많이 친해서 벌어진 일이다.[22] 노시환은 평소 손아섭이 같은 부산 출신이라 잘 챙겨준다면서, 2023년 9월 2일 시즌 30홈런을 치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카톡으로 자꾸 놀리는 손아섭 선배 때문에 아홉수가 길어졌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2023년 9월 9일에는 손아섭이 KBO 최초 8년 연속 150안타 대기록을 달성했는데, 경기후 인터뷰에서 "노시환의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안 왔다"면서 노시환에게 아홉수 이야기를 한 건 "본인이 먼저 너무 자신감 있게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징크스도 없고, 아홉수 이런 거 모른다고 하길래 제가 일부러 장난 삼아 말한 게 정말 아홉수가 되더라"며 해명아닌 해명을 했다. 또 2022 시즌부터 노시환의 제안으로 시즌 타율 내기를 해 약속한 신발을 사줬다며 이번 시즌에는 끝까지 방심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 이렇듯 손아섭이 항상 짖궂게 대하지만은 않는 것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차출된 노시환이 출국 인터뷰에서 '잘 갔다 오고, 꼭 잘해서 금메달을 따오라'는 응원을 받고 감동받았다며 손아섭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적도 있다.


3.5.3. 이동욱 감독과의 인연[편집]



  • NC 이적 발표 후 이동욱 감독과의 인연을 기술한 2018년 기사가 다시 조명되었다.

  • 이동욱 감독은 손아섭의 타격을 일깨워준 사람이다. 손아섭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수비 교육을 하러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를 찾은 이동욱 감독과 만났는데, 2학년으로 진학하면서 알루미늄 배트에서 나무 배트를 사용하게 된 손아섭은 당시 새 배트에 대한 적응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손아섭은 이동욱을 보자마자 “어떻게 쳐야하는 것인가” 끈질기게 물어보았고 이동욱은 도움을 줬다. 이동욱은 당시 내야수였던 손아섭에게 수비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켜줬다고 한다.

  • 또 같은 아파트에 살며 이웃인 적도 있었다. 덕분에 손아섭은 이 감독에게 명절마다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인연을 이어나갔고, 이동욱이 NC 감독이 되었을 때에도 손아섭이 "축하드린다"고 먼저 연락을 드렸다. 손아섭은 "(이동욱 감독과) 참 신기한 인연"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 손아섭의 NC 이적 이후 이동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계약 후 통화를 했죠. 구체적인 건 만나서 얼굴보고 이야기 하자고 했어요. 일단 잘 쉬고 롯데를 떠나기 전에 해야할 일도 많겠지만 앞으로 해야할 것들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딱 하나 부탁한 건 후배들에게 행동으로 본을 보일 수 있는 선배가 돼달라고 했죠. 워낙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선수니까요." 라며 믿음을 보였다.#


3.5.4. 후배 사랑[편집]


  • 후배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롯데 시절 각별한 우애를 나눈 후배로 최준용과 나승엽이 꼽히는데, 두 선수는 손아섭이 NC로 이적하면서 제주도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던 손아섭을 찾아오기도 했다.#

  • 이들을 포함해 김원중, 김유영 등이 롯데 팬들과 손아섭 본인에게 '아섭 아카데미' 혹은 '아섭스쿨' 졸업생들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인연이 이어져 최준용과는 시즌 성적으로 선물 내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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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기부 및 선행[편집]









3.7. 말말말[편집]


욕심이 없는 선수는 프로의 자격이 없다.

근성의 사나이 손아섭의 승부욕을 상징하는 명언

손아섭 "기적을 이루고 싶다"


딱 두가지죠. 하나는 아무래도 우승이죠. 제가 정말로 야구 인생의 마지막 목표는 우승이고, 그것은 우승을 하는 날까지 변함이 없을 것 같구요. 두 번째 목표라고 하면 평범한 것일수도 있지만 건강하게, 롱런할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어서 대한민국에 손아섭이라는 이름 석 자를 KBO의 맨 위에 하나쯤은 새기고 싶은, 그 두 가지가 가장 큰 목표입니다.

NC 이적 직후 한 전화인터뷰에서. 야구선수 손아섭의 목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직격인터뷰] NC행 손아섭이 직접 밝힌 이적 비하인드


단언컨대,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치면 진다. 하지만 미치면 이긴다. 오늘의 우리는 미친다.

2023년 6월 15일 두산과의 홈 경기를 앞두고 NC 선수단에게[25]


더 큰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세요. 현실에 안주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2024년 신인들을 환영하는 메시지 카드에 NC 주장으로서 적어준 문구 中


그냥 지금처럼, 원팀으로 싸우면 못 이길 팀은 없다. 우리는 지금 하나다.

2023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무슨 말이 필요하겠노, 이렇게 완벽한데.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뭔가를 보여주자.

2023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두고[26]


NC 이적 이듬해인 2023 시즌 팀의 주장을 맡게 되면서 손아섭은 시즌 개막부터 경기 직전 선수단 미팅에서 더그아웃 앞에 선수들이 둘러서면, 그날의 '당번'이 준비한 명언을 말한 뒤 모두가 함께 파이팅을 외친 뒤 그라운드로 달려 나가기로 정했다. 이는 긍정적인 기분으로 경기를 시작하자는 의도였다고 한다.

하루는 해당 경기의 명언 담당이었던 박석민이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손아섭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명언을 쏟아내면서 NC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시즌 초부터 주장으로서 인터뷰를 통해 "NC는 더 잘할 수 있다. 선수단이 똘똘 뭉쳐서, 하위권을 전망했던 야구 관계자들과 언론의 눈이 틀렸단 걸 보여주고 싶다" 라던지, "야구는 슈퍼스타 한두 명이 좌지우지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우리 후배들이 조금 더 편한 상황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부담감은 나를 포함한 베테랑이 다 짊어지겠다. 욕도 내가 다 먹겠다" 등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명언들로 호평받고 있던 차에 해당 경기에서 점을 찍은 것.

손아섭은 2023년 6월 15일 홈 두산전 승리 후 인터뷰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명언 타임'에 대해 묻자 "어떻게 보면 후배들을 가스라이팅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세뇌가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세뇌가 되면, 경기가 좀 안 풀린다 싶어도 경기 전 나온 말을 생각하면서 멘탈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아섭 자신도 책을 읽고, 좋은 글귀를 찾으며 스스로 세뇌를 하고 있다며 시즌 마지막까지 '명언 타임'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3.8.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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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타율 1위.[2] 하지만 필기는 오른손으로 한다.[3] 키움 상대 OPS는 0.638, SK 상대 타율은 0.284에 불과하다.[4] 2010 시즌 자율을 중시하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저러다 몸 상하겠다며 특타장을 임시 폐쇄시켰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니 그의 연습량을 짐작할 만 하다.[5] 움짤이 포함된 기사 큰 화면 버전 영상[6] 영상. 홈런을 친 9회초 타석은 3:48:28, 타격폼을 잡던 장면은 3:52:42에 나온다.[7] 2014년 이전까지 180안타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이종범, 이병규, 마해영 세 명뿐이었다. 이후 리그가 10구단으로 확장되면서 우후죽순 늘어났지만.[8] 외야수 부문 최다연속은 장효조가 83~87년 받은 5연속 수상, 포지션 구별 없이는 1루수 부문의 이승엽이 97~03년 받은 7연속 수상.[9] 술은 원래 잘 못해서 안 마시는 것도 있지만, 1년동안 먹는 술의 양이 소주 1병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10] 하지만 NC로 이적 후 엔튜브에서는 시원한 맛이 괜찮았었다고 해서 불호에서 호로 바뀌었다.[11] 그와 똑같이 자기관리가 철저한 김혜성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으로 문서에 적혀 있다.[12] 소고기는 실제로 손아섭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SNS에 인증까지 할 정도.[13] 유명한 사례로 한유섬, 나균안 등이 있으며 NC에도 전사민, 김수윤, 최우재 등이 바꾼 이름을 가지고 있다.[14] 롯데 시절 팬의 "잘 키운 손아섭 하나, 열 추성훈 안 부럽다"는 응원 문구가 보이기도 했다.[15] 최고음이 2옥타브 시나 되고 2옥타브 시가 자주 나와서 난도가 꽤 높은 축에 드는 곡이다.[16] 원래 목적은 선수협 관련 질문인데 전화 건 사람이 떨어서 응원 정도로 끝난 듯.[17] 사실 붙이는 멀미약 같은 약물은 도핑 테스트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사용하지 못한다.[18] 안보현과는 친구이고, 구자철 과는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19] 손아섭은 당일 경기 5회말 1사 만루에서 적시타를 때려냈다. 3루 주자 홈인 후 2루 주자가 홈에서 아쉽게 죽자 당시 넥센 유격수였던 강정호가 2루를 밟은 손아섭에게 장난을 거는 장면이 포착되었는데, 이에 손아섭은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20]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2014121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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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영상의 40초경에 나온다.[22] 둘은 노시환의 경남고 1년 후배 최준용을 매개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손아섭은 부산고 졸업생이다.[23] 오영수는 이 소식을 듣고 감사함을 표했다.#[24] 이 이야기를 들은 김주원은 "항상 선배님이 미국에 데려간다고 얘기를 하셨다. 영광스럽고 엄청난 기회다. 최근에 기회가 되면 함께 미국에 가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꼭 함께 개인 훈련을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25] 정작 이 당시 선수단은 비장하기보단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 말을 들었고, 듣는 선수들은 이 말이 모두 오글거려서였는지 그 중에서도 박민우윤형준은 웃참을 시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박석민은 "그럼 나는 칠게"라고 아재개그를 시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손아섭의 말대로 NC는 이날 10:3 승리를 거뒀다.[26] 2차전 당시 포스트시즌은 항상 주장이 말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박민우가 제안을 해서 3경기 모두 손아섭이 말을 했다고 한다.[27] 당시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단정한 가르마를 하고 나왔다.[28] 사이판 전훈지에서 연봉 협상에 대한 불만의 표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팀 로고를 가린 사진이 찍히면서# 별명이 붙었다.[29] 이 유명한 사진은 NC 이적 이후 NC 팬들에 의해 패러디되기도 했다.#[30] 2021년 손아섭이 2차 FA가 되자 롯데 팬들은 걸그룹 aespa카리나와 합성을 하여 이런 패러디 짤을 만들기도 하였다. 덤으로 aespa 멤버들의 이름을 패러디해서 윈터(때마자지랄), 저질, 징징, 아예 에스파 그룹 명을 패러디한 에스찌파 등의 별명이 추가되었다.#[31] 손아섭이 로고를 가린 이유 갓리나 돈 달라는 대로 줘라[32] 2011 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의 초구 병살 때문에 생긴 별명.[33] 당시 이 타구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지만, 바로 다음 경기 첫 타석에서 손아섭은 또 초구를 쳤고, 이번에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한편으론 패넌트레이스에서 손아섭의 활약이 없었다면 롯데가 플레이오프에 직행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비난은 다소 억울한 측면도 있다. 손아섭은 1차전에서 그 병살을 치기 전까지 3안타를 치면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전까지 3안타를 친 선수의 타석이기에 그만큼 기대감이 컸고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도 커진 것이다. 그리고 1승 2패로 몰린 4차전에선 결승타를 치는 등 전체적으로 보면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1차전의 임팩트가 크긴 했지만 롯데가 당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 한 것을 비단 손아섭의 탓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3안타를 쳤었던 선수인 만큼 자신감 있게 타격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결국 야구는 결과론적임을 다시금 깨닫는 케이스다.[34] 2015년 4월 2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가 우천으로 인해 취소되자 상암동 모 극장 근처에서 한 꼴갤러에 의해 포착되어 꼴갤에서 밤에 돌아댕기냐는 비아냥과 동시에 심야 영화를 본 손아섭을 줄여서 심야섭으로 불렸다. 다음날 경기에서 5타수 무안타 4삼진을 기록하면서 더 까였다. 또한 5월 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1회 초에 보여준 병살이 경기를 말아먹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당일 저녁부터 5월 2일에 걸쳐서 손아섭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짐볼 사진의 댓글에서 난장판이 나자 짐볼 사진이 삭제되고 계정이 잠시 비공개가 되자 꼴갤에서 손정은란 별명을 얻었기도 했다.[35] 팀배팅보다 개인 성적에 집착한다고 생긴 별명으로, 별명에 맞지 않게 2019년부터 손아섭의 WPA는 항상 팀내 상위권이고 결승타도 매우 많다.[36] 2019년 시즌에 생긴 별명으로, 쳤다하면 이루수 앞 땅볼이라며 붙은 멸칭이다. 이것이 절정에 달했을 때가 5월 22일 기아전 후로, 한 갤러가 버스 정류장에 손아섭 유니폼을 걸고 절하는 모습을 올리자 이것이 발단이 되어 2땅, 12간 등에 대한 오만가지 드립이 나왔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손아섭 안타! 심지어 8월 29일에는 4타수 4이땅을 기록하기도 했다. 2땅 2땅 2땅 2땅의 기록지[37] 2015년 종료 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건으로 황재균과 함께 기사가 뜨다 보니 개나 소나 메이저리그를 가냐면서 추가된 안좋은 별명이다. 결국 무응찰이라는 굴욕을 겪었다.[38] 2011 시즌 보살 1위를 기록하는 등 가르시아마냥 어깨가 아주 절륜해서 붙여진 별명.[39] 2009 시즌을 마치고 박영태 수석 코치의 아들 싸이월드에 차기 감독의 아들이라는 댓글을 남기며 롯데 팬들을 숨넘어가게 만들었다. 당시 박영태 수석 코치는 팬들 사이에서 '능력 없는 철밥통 공무원의 표상', '은퇴하면 공무원 연금 나온다', '처세술의 달인' 등으로 불리며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당시 글[40] 롯데 자이언츠 투수인 구승민과 닮아서#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손아섭쪽이 인지도가 훨씬 높은 관계로 보통 구승민이 구아섭이라고 불리지 손아섭을 손승민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잘 없다.[41] 한창 부진하던 2019년 초반 타격폼을 이리저리 바꾸다 코디 벨린저와 흡사한 타격폼으로 스윙하자 반어법으로 붙여진 별명.[42] 역대 타석 수에서 +-200 타석 범위 정도에서 비슷한 선수는 박한이, 정성훈, 최형우, 장성호가 있는데, 이들은 각각 156, 216, 180, 166 병살을 기록했다.[43] ######[44] 시리즈 종료 후 퇴근길 엔튜브 영상에서 격한 세리머니의 이유를 물어봤는데, '언제 또 칠 수 있을 지 모르기 때문에 보여줬다'고 쿨하게 답했다.[45] 안타깝게도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승부조작으로 리그에서 제명된 마재윤이었다. 존경하는 스포츠 선수 이름에 야구선수가 아니라 그 선수를 써놓아서 선배들에게 한 소리 들었다고 한다.[46] 그래서 웬만한 부산 맛집에 가면 이대호나 손아섭 싸인은 찾아볼 수 있다.[47] 그전까지는 강민호의 육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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