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카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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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1. 개요
2. 역사
2.1. 배경
2.2. 출시 및 생산
2.2.1. 연식별 변경 사항
3. 둘러보기


SIMCA / Talbot 1100

1. 개요[편집]


프랑스생카(탈보)가 1967년부터 1982년까지 크라이슬러푸조-시트로엥 그룹 산하에서 생산한 소형차[1]으로 이다. 당시 생카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로, 앞엔진 앞바퀴굴림 구성+해치백 구성을 적용한 선진적인 구성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참고 자료1 참고 자료2


2. 역사[편집]



2.1. 배경[편집]


생카 1100의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62년 후반으로, 당시 유럽에서는 앞엔진 앞바퀴굴림 구성이 조금씩 자동차 시장 내에 퍼져가고 있었다. 생카에서는 앞바퀴굴림 구성의 시험차 2대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엔진의 앞뒤를 뒤집어서 배치하는 방식이였고, 다른 하나는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963년 여름에 최종 승인을 받았을 때는 가로배치 설계가 채택되었다. 한편, 1963년에는 크라이슬러가 유럽 진출을 위해 생카를 인수했고, 프로젝트를 새로 담당한 엔지니어인 Philippe Grundeler와 Charles Scales는 크라이슬러의 지원을 받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에 앞바퀴굴림 소형차를 만드는 곳이 BMC와 아우토비안키뿐임을 알게 된 크라이슬러는 유럽 시장에서의 성공을 예견하고, 1964년 초에 개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승인을 내렸다.

이때 정해진 출시 목표기한은 1967년 7월, 즉 1967년 파리모터쇼가 열리는 시점이었다. 당시 중요한 요점은 3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차체와 변속기를 갖춘 완전신차를 개발하는 것이였는데, 그나마도 생카 1000에서 쓰던 엔진의 배기량을 손봐 얹기로 해서 시간을 줄일 만한 여건은 별로 없었다. 일정이 빡빡하다보니, 아바스(Abarth)와 손을 잡고 1000의 스포티 버전을 만들려는 계획이 취소되기도 했다.[2] 한편, 당시 생카의 신임 회장이었던 조지 헤레일(George Hereil)은 1100의 개발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Pierre Nadot에게 맡기는데, Nadot는 1965년부터 신차 개발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을 해 주고 Claude de Forcrand와 François Paget 등의 푸조 출신 엔지니어들을 개발팀에 영입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출시가 예정된 해인 1967년에는 6월에 노르망디에서 최종 테스트를 끝냈으며, 크라이슬러의 대표인사들을 불러다가 시승회에 경쟁차와의 비교분석 프레젠테이션까지 진행했다. 포아시(Poissy)에 위치한 생카 공장에서는 신차의 생산 준비를 위해 7월 중 2주 동안 가동이 중지되었고, 1967년 7월에 생카 1100LS 45대와 1100GL 2대를 시험생산하는 데 성공했으며, GLS 트림의 첫 차가 9월 초에 생산되었다. 또한 1100의 출시 기념 행사가 있었던 9월 한달 동안은, 자동차 매체와 저널리스트들이 1100을 시승하기 위해 이탈리아 사르데나 섬의 낡은 도로에서 실시하는 시승기에 참여했다.


2.2. 출시 및 생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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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 5일에 파리 오토살롱이 개체되었을 때, 새 준중형차는 "생카 1100"이라는 이름 하에 공개되었으며, 다음 날에는 헤레일 회장과 Nadot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던 샤를 드 골을 포함한 약 7천명의 관객들을 12000제곱미터 규모의 대규모 프레젠테이션에 초청했다. 당시로써 매우 선진적인 디자인, 4단 수동변속기 외에도 자동변속기와 3단 반자동변속기를 포함한 다양한 선택사양까지 갖추면서 사람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기술적으로는 디스크 브레이크와 랙 앤드 피니언 스티어링, 크라이슬러식 토션바를 이용한 앞/뒤 독립식 서스펜션이 같이 적용되어 있었다. 출시 당시 라인업은 944cc나 1118cc 4기통 생카 엔진이 적용되었다.

  • 기본형인 LS는 오버라이드[3]와 창문을 감싼 크롬 몰딩이 없었으며, 해치백과 웨건을 선택할 수 있되 해치백 모델은 뒷좌석 폴딩 시의 평바닥이 제공되지 않았고, 밴 모델과 공유하는 압축비 8.2:1의 53마력짜리 엔진이 제공되었다. 밴은 LS 웨건을 기반으로 후측면 창문과 뒷좌석을 제거한 사양이다.

  • 중간급 트림인 GL은 창문에 크롬 몰딩을 두르고 범퍼에는 고무를 덧댄 오버라이더가 추가되었으며, 뒷좌석이 평평하게 접히는 대신 웨건 모델이 여기서는 제공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장착되는 엔진은 압축비 9.6:1에 56마력을 내면서, LS와 밴보다 나은 성능을 냈다.

  • 가장 최상급 트림인 GLS는 해치백과 웨건 모두 적용되었으며, 휠 아치에도 크롬장식을 두르고, 풀사이즈 크기의 크롬 휠커버도 같이 달았다. 인테리어로 넘어가자면; 뒤로 젖혀지는 앞좌석 등받이, aéralon[4]이나 천 재질로 된 시트커버, 카펫으로 된 매트,[5] 뚜껑이 있는 글로브 박스(수납장), 수온계, 전자시계, 담배 라이터, 방현식 미러가 장착된, 아무튼 소형차 및 준중형차로써는 호화로운 구성이었다.

출시 이후인 1971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잘 팔리는 차로 등극했고, 1971년과 1972년, 1973년에는 20만대가 넘는 1100이 생산되었으며 특히 1973년에는 무려 29만 6984대로 절정을 찍으면서 당대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차종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2.2.1. 연식별 변경 사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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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각각 1972년식과 1973년식 생카 1100 스페시알.
1969년 9월부터 1970년식 사이에는 3도어와 웨건형 LS가 단종되는 동시에 GL 웨건이 추가되었고, 엔진 성능도 보강을 해 944cc 엔진이 45마력에서 48마력으로, 1118cc 엔진이 56마력에서 60마력으로, 밴 모델이 53마력에서 54마력으로 성능이 개선되었다. 인테리어상으로는 도난방지용 스티어링 잠금 장치, 새로 디자인된 좌석과 대시보드가 적용되었다. 계기판의 경우, LS 모델에 2개로 구성된 다이얼이, GL과 GLS에는 4개의 다이얼이 적용되었다. 밴과 LS를 제외한 라인업 전반에는 외장 색상에 맞춘 인테리어 트림도 적용되었다. 참고로 외장 색상은 메탈릭(금속성) 도장 7가지를 포함한 14가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1970년에는 방음장치가 된 발전기를 적용하고, 케이블로 연결되었던 이전의 변속기를 로드 시스템으로 바꾼 뒤 강도가 높은 싱크로메시를 변속기에 장착했다. 1970년 6월에 추가된 1204 스페시알(Special)라는 고사양 버전은 미국시장용 1100과 1200S에서 가져온 1204cc 75마력 엔진, 2중 쵸크가 장착된 웨버 카뷰레터, 알루미늄 섬프와 서보 어시스트 브레이크, 장거리 주행용 보조등이 적용되었으며, 인테리어상으로는 모조 우드그레인과 검은색 aéralon 시트가 적용었고 차체 색상은 청록색 하나만 제공되었다. 그 외에도 스페시알에는 뒷창문 열선과 3스포크 스티어링 휠, 전자 타코미터와 전자 워셔같은 고급 장비들도 장착되었고, 최고시속 160km/h를 기록했다.

1971년, 프랑스 내수에서는 GL 5도어와 GLS 3도어가 라인업에서 삭제되었다. 내수시장용 1100 전반에는 레디얼 타이어와 대시보드 아래에 설치된 글로브박스가 장착되는 등 나름 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었고, 스페셜 트림을 제외하고는 모두 2스포크 스티어링 휠을 장착했다. 944cc 엔진의 압축비도 8.1:1에서 9.4:1로 늘리고 밴과 GLS 트림에는 서보 어시스트 브레이크를 설치했다. 스페시알 트림에서는 소음이 심하다는 불만에 대응해 방음제를 추가 적용했다. 영국 시장에서는 1118LS 3도어, GLS 5도어,웨건과 1204 스페셜만 판매되어 선택권이 제한되었는데, 1204 스페시알은 MG 미제트트라이엄프 스핏파이어를 비롯한 소형 스포츠카보다 성능이 더 좋다는 식으로 홍보되었다.

1972년에는 뒷창문을 키우면서 해치게이트를 손보았고, 또한 모든 라인업에 3스포크식의 안전 스티어링 휠이 추가되었으며, 새로 추가된 전자식 페인트 도장을 시험 가동하고자 새로운 도색이 추가되었다. 스페시알은 인테리어만 변경된 게 아니라 보어를 74mm에서 76.4mm으로 늘린 1294cc 엔진을 얻었으며, 성능상으로는 이전과 차이가 없었지만 이중 카뷰레터 대신 단일 카뷰레터를 장착해 구조가 간결해졌고 튜닝하기도 쉬워졌다. 영국에서는 프랑스와는 달리 1100 LS의 3도어 버전을 구할 수 있었다.

1973년에는 배기가스 규제가 강해짐에 따라 모든 라인업에 촉매 변환장치가 적용되었으며, 스페시알에는 뒷범퍼 밑에 위치한 후진등과 크라이이슬러 180의 듀얼 혼(경적)이 장착되었다. 또한 VF2라는 이름의 특장차가 라인업에 추가되었으며, 화물칸의 지붕을 높여 적재용량을 70세제곱피트(약 1982.2리터)까지, 최대 적재중량을 1100파운드(약 499kg)까지 확대했다. 옵션으로는 양 옆에 설치되는 창문, 화물칸과 탑승공간을 나누는 격벽이 제공되었으며, 밴(VF1)과 마찬가지로 서보 어시스트 브레이크가 설치되었고 전조등 높이 조절장치, 보강된 휠이 적용되었다. 그해 6월 28일에는 100만번째 생카 1100(스페셜 트림)이 공장에서 출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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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생카 1100Ti. 르노 5 알핀(Alpine) 및 폭스바겐 골프 GTI와 함께 핫해치의 선조로 알려져 있다.
1974년에는 기술상으로는 직경이 더 큰 구동축을 설치하고 변속기와 앞 서스펜션을 손보았으며, 라인업상으로는 944cc LS 트림이 3도어 스페셜 모델과 같이 라인업에서 삭제되는 대신 스페셜 웨건이 라인업에 새로 추가되었다. 하지만 스페셜 웨건은 많은 적재용량과 성능을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실적이 좋지 못했다. 1974년 1월은 석유파동에 대비하고자 LS의 48마력짜리 944cc 엔진을 경제형 라인업인 LE와 GLE가 추가되었다. 2달 후에는 1100ES (Economique Special)라는 트림도 내놓는데, 이쪽은 스페시알에다가 GLS의 휠을 장착하고 1118cc 6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

반면 이때 등장한 1100Ti는 핫해치의 선구자 중 하나로서, 스포츠카인 생카-마트라 바게라와 공유하는 1294cc 82마력 엔진을 장착해 최고시속이 약 105mph(약 169km/h)에다가, 0-100km/h까지 약 12초를 기록했다. 외장상으로는 TI 로고와 전용 휠, 앞뒤 스포일러, 범퍼 밑에 달린 보조등으로 구분할 수 있었으며, 기술적으로는 강화된 클러치와 끝이 뽀족한 쇼크 업쇼버, 생카 1000 랠리 2 에 적용된 직경이 큰 디스크 브레이크가 적용되었으며, 실내에는 계기판 6개가 적용되는 대시보드, 가죽 커버와 금속 스포크가 적용된 스티어링 휠이 적용되었다.

1975년에는 크라이슬러 알파인/생카 1308을 개발한 경험을 반영한 새 대시보드가 적용되었으며, 예전 대시보드에 비해 훨씬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다. 외장상으로는 방향등과 후진등이 들어가면서 커진 후미등과 도어 핸들(손잡이)의 디자인 변경에서 마무리지었으며, 기술적으로는 그동안 지적받던 변속기와 소음 문제를 해결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1100Ti는 고장 경고등과 6스포크 알로이 휠을 기본장비로 얻었다. 라인업상으로는 라인업상으로는 GLE를 라인업에서 삭제하는 대신 Elix[6]라는 트림을 프랑스 내수용으로 판매했는데, 3도어에 1118cc 54마력 엔진을 얹고 검은색 그릴과 와이퍼, 휠커버, 스포티 스티어링 휠로 스포티한 맛을 내고 C필러와 사이드라인을 지나가는 데칼로 외관을 마무리했다. 편의장비로는 방현식 미러와 헤드레스트, 카펫과 안개등, 후진등이 기본 장비로 있었으며 서보 어시스트 브레이크는 옵션이였고, 천으로 꾸며진 인테리어에다가 색상도 노랑, 주황, 갈색이 제공되었다. 당시 영국 시장의 라인업은 LS 2종, GLS 2종, 스페시알 2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해 3월, 944cc짜리 웨건 모델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9월에는 프랑스 내수에서 1976년식을 맞이하면서 LS , 944cc 웨건, GLS 해치백, TI 3도어와 스페시알 웨건이 라인업에서 사라졌고, 엔진 라인업은 944cc 47마력과 1118cc이 50마력 경제형과 58마력 고출력 버전, 1294cc짜리 75마력이나 82마력짜리 엔진이 제공되었다. 새 라인업으로는 LX/Elix의 5도어판인 GLX로, 몰딩을 뺀 뒤, LX의 그것과 같은 배기량인 1118cc짜리 58마력 엔진이나 50마력 엔진을 추가했다. LX는 54마력 엔진이 50마력으로 출력이 떨어졌고 데칼 대신 크롬 트림을 달 수도 있었으며, LX와 GLX 모두가 서보 어시스트 브레이크를 기본 장비로 얻었다. 1100GLX, EX, S, VF2(VF2는 58마력 엔진만)은 반자동변속기 옵션이 추가되었으며, 범퍼에 달린 오버라이더도 금속에 고무를 덧댄 것 대신에 완전히 고무로 된 부속으로 바뀌었다.

검은색 와이퍼가 기존의 LX와 GLX를 포함한 여러 라인업에 적용되었고, 자동 조절장치가 설치된(Inertia-reel) 안전벨트가 옵션으로 제공되었다. 기술적으로는 벽 두께를 늘린 실린더 블록과 개선된 캠샤프트, 수압을 높인 워터펌프가 적용된 엔진을 얻었고, 1976년에는 듀얼 서킷 브레이크 시스템, 이전보다 조용하고 변속이 부드러운 새 변속기가 추가되었고 TI와 스페셜에는 전조등 와이퍼가 옵션으로 추가되었다. 영국에서는 LE 3도어와 5도어, LX 3도어와 5도어, GLS 5도어와 웨건, 스페시알 2종[7]으로 구성되었으며, 영국 시장용은 상업용 특장차를 제외하면 모두 1118cc 60마력 엔진만 적용되었다.

1977년에는 1100을 기반으로 만든 신차, 생카 호라이즌이 출시되면서 1100의 라인업도 서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선 1100의 라인업에서 TI를 뺀 1294cc 라인업과 944cc 라인업 전반이 사라졌으며, 스페시알은 1974년부터 판매가 기울던 판이라 프랑스에서는 1976년 7월에 단종되어 있었다. 당시 라인업은 50마력자리 LE 5도어, 50마력이나 58마력짜리 GLX, 58마력짜리 ES, TI, 그리고 50마력짜리 LX 3도어와 58마력짜리 LE와 GLE 웨건, 라이트밴과 픽업트럭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영국 시장에서는 LE 2종류, 60마력 엔진이 적용되는 LX 3도어와 GLX 5도어, GLS 웨건 등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ES 트림이 영국에도 상륙했으며 스페시알 트림 2종은 아직 영국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인테리어상으로는 GLX가 인테리어 트림이 좀 더 추가되는 정도의 변화에 그치던 반면 LX에는 생카 1308에서 쓰인 싱글 스포크 타입의 스티어링 휠과 기어레버가 적용되었다. 자동변속기는 TI와 상업용차를 제외하면 옵션으로, 반자동변속기는 GLX와 ES, 웨건 2종에 옵션으로 남아 있었으며 열선 뒷유리가 모든 라인업에 기본으로 제공되었다. 뒷창문 워셔와 뒷창문 와이퍼, 썬팅한 창문, 헤드렘프 워셔/와이퍼는 1100Ti 이외의 라인업에선 옵션으로 제공되었다. 라디오가 적용되는 사양은 안테나와 싱글 스피커, 소음원 억제장치를 포함하는 공장 장착 옵션이었다. 밴 모델에는 자동조절식 안전벨트가 아닌 '전통적인' 벨트가 적용되었다.

단종이 코앞에 보이는 시점임에도, 생카와 크라이슬러에서는 1100의 라인업에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1976년 12윌에 출시된 3도어 버전에서 뒷좌석을 빼면서 세율을 33%에서 20%로 낮춘 승용밴 AS와 LX의 사양을 고급화한 한정판인 LX 스페셜이 등장했고, 1977년 중반에는 1100 픽업을 기반으로 마트라와 같이 제작한 생카-마트라 란쵸가 만들어졌다.[8] 하지만 생카 1100의 판매는 가면 갈수록 크게 꺾이기 시작했는데, 1976년에 생카 1308과 르노 14의 출시로 판매가 한풀 꺾인 데다가 1977년에 후속차종인 크라이슬러-생카 호라이즌이 출시되면서 1년 뒤에는 판매량이 반토막났고 그 이후에도 판매는 계속 하향세를 보였다.[9]

1978년부터 프랑스 내수의 모든 라인업은 압축비가 8.8:1로 통일된 1118cc 엔진만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TI와 LX, GLX ,ES 트림이 라인업에서 사라졌고, 표준형 트림으로 GLS 트림이 다시 만들어졌다. GLS는 웨건과 5도어 해치백으로 나왔으며, 58마력 엔진에다가 TI에서 가져온 시트, 뒷창문 와이퍼와 워셔, Super Confort버전에 적용되는 옵션사양인 벨로아 시트커버 등을 갖추었다. 상용차 라인으로는 VF3이 추가되었고, 승용차 라인에는 기본형으로 LE의 이름을 다시 되살렸으며 둘 다 배기가스 배출량을 낮춘 50마력 엔진을 사용했다. 승용 해치백 라인에는 슬라이드식 철제 썬루프가 옵션으로 추가되기도 했다.영국 시장에서도 내수와 마찬가지로 라인업이 대폭 축소되어 LE 3도어와 5도어, GLX, GLS 웨건과 GLS 스페시알. 그리고 최고사항인 1294cc 스페시알로 개편되었다.그 중 GLS 스페시알은 기존에 있던 1294cc 버전과 같은 사양이였지만 엔진은 1118cc짜리가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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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식 탈보 1100. 승용차는 1981년에 단종되나 상용차는 1985년까지 판매되었다.
1979년에는 크라이슬러가 유럽 지사를 매각하면서 푸조-시트로엥으로 경영권이 넘어갔고, 따라서 브랜드도 탈보로 바뀌었다. LE 3도어와 5도어, 상용차 라인이 50마력 엔진을, GLS 5도어와 웨건, LE 웨건이 58마력 엔진을 장착한 상태로 판매되었으며, 외관상으로는 LX와 GLX에만 적용되었던 검은색 그릴에다가 가로줄로 된 크롬바 2개가 추가되었다.

1980년에는 GLS 트림이 그릴에 박아넣은 할로젠 주행등을 얻은 걸 제외하면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며, AS 트림은 LE와 GLS 사이급의 트림으로 존속했다. 영국 시장에서는 LE 3도어와 5도어, GLE 스페셜과 GLE 웨건으로 라인업이 축소되었지만 이마져도 1979년 2월에 상용차 라인업만 남기고 모두 철수했으며, 상용차 라인은 1980년대 초반까지 판매되었다.

1980년 7월, 1981년식 라인업이 발표되었을 때는 기본형인 LE가 같은 사양에서 엔진을 58마력짜리로 바꾼 LS로 대체되었다. 그 이외에는 AS와 픽업트럭을 제외한 모든 라인업이 반자동변속기를 옵션으로 가지고 있었고 계기판이 5개에서 6개로 늘어났다.

1981년 7월에 1100의 승용차 라인이 단종되었고, 공장 라인의 여백은 푸조 기반의 탈보 삼바(Samba)가 메꾸었다. 1100의 상용차 라인은 1985년 봄까지 살아남았는데, VF1과 VF2는 LPG 엔진 옵션을 가지고 있었고, 1983년 7월부터는 합판으로 된 윈드실드, 호라이즌 LS에서 가져온 휠, 검은색 범퍼가 기본으로 장착되었다. 그때까지 승용차 라인은 무려 2,139,400대가, 상용차 라인은 39,608대가 생산되어 호라이즌이 기록한 893,846대와 생카 1000이 기록한 1,935,098대를 훌쩍 뛰어넘는 숫자를 기록했다. 영국에는 2015년 12월 기준으로 35대가 등록되어 있다.


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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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유럽 올해의 차/경합 후보 (1964~1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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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키백과 기준. 차량 크기와 후속 차종으로 판단할 경우에는 준중형차로 볼 여지가 있다.[2] 기막히게도 이때는 르노 8 고디니(Gordini: 르노의 튜너 업체)가 출시된 시기기도 했다.[3] 범퍼에 장착된 충격 완충제.[4] 공기가 통하는 비닐 재질.[5] LS와 GL에는 고무 매트가 적용되었다.[6] 공식적으로는 LX로 알려져 있다.[7] 스페시알은 당시 시점에선 프랑스 내수에서 단종된 라인업이었다.[8] 참고로 이 차의 후속으로 기획된 차가 르노 에스파스이다.[9] 다행히도 생카 호라이즌의 상업용 버전이나 웨건, 3도어 버전은 나오지 않았기에, 1100은 호라이즌의 염가 대체제로써 승용판이 1981년까지, 상업판이 1985년까지 존속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