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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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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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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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
?위
?위
?위
: 우승: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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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O 리그 1989 시즌 {{{#FFFFFF }}} 삼성 라이온즈 }}}
순위



승차
승률
4 / 7
57
5
58
13.0
0.496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1.2. 롯데와의 6:5 트레이드
1.3. 신인 선수
1.4. 기타 사항
2. 전지훈련
3. 정규 시즌
3.1. 선수 이동
4. 포스트시즌
4.1. 준플레이오프
5. 선수별 개인 성적
5.1. 투수
5.2. 타자
6. 수상 및 기록



1. 스토브리그[편집]


1988년 플레이오프에서 3연패로 광속탈락하면서, 그룹 최초로 구단 감사까지 벌이며 팀내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그래서 구단 감사에 따라 포스트시즌에 약한 팀의 체질을 바꾸고자 했는데...


1.1. 코칭스태프 이동[편집]


팀 쇄신 차원에서 박영길 감독이 임기를 1년 남겨두고 실질적으로 경질되면서 선수단 관리담당 이사로 옮겼고, 정동진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됐다.

애써서 2군 투수코치로 영입했던 장명부하라는 선수 지도는 안하고 늘상 1군 투수 운용에 사사건건 간섭해서 해임됐다. 대신 김명성을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또한 미국 세미프로 코치 출신인 김광웅을 2군 타격코치로 영입했다.


1.2. 롯데와의 6:5 트레이드[편집]


1988년 11월 23일에 김시진, 오대석, 전용권, 허규옥롯데 자이언츠김성현, 오명록, 최동원을 상대로 트레이드됐다. 이 트레이드가 나온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12월 20일에는 장태수(투수), 장효조롯데 자이언츠김용철, 이문한을 상대로 트레이드됐다.

구단 입장에서는 삼성으로써는 에이스 김시진이 포스트시즌만 되면 죽을 쒔기에 포스트시즌에서 확실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최동원 같은 선수가 필요했다. 장효조KBO 포스트시즌만 되면 정규시즌에 비해 부진했고 연봉협상에 마찰을 빚어 구단에 밉보인 상태였다. 오대석의 경우엔 유격수에는 류중일이, 3루수에는 김용국이 자리를 잡았고 2루수 김성래가 전년도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지만 강기웅이 입단할 예정이라 오대석의 자리가 없었다. 또한 이만수의 수비 부담을 줄여줄 백업포수가 필요했기에 김성현의 포함은 삼성으로서는 환영할만한 트레이드였다.

롯데로써는 당시 최동원이 매년 연초에 연봉 협상을 시작해 시즌이 진행 중인 6월 말이 돼서야 끝낼 정도로 늘상 구단과 마찰이 있었던 데다 선수협을 창설하려 하며 구단에 '찍힌' 상태였다. 김용철 역시 선수협 관련 구단의 각서 제출 요구를 거부해 구단과 불편한 관계였다. 한편 롯데는 계약만료로 귀국하는 홍문종을 대신할 중견수를 찾고 있었기에, 허규옥의 포함은 롯데로서는 환영할만한 트레이드였다.

구단간의 이러한 이해관계를 떠나서 팬들에게는 두 말할 것 없이 최악의 트레이드였다.


1.3. 신인 선수[편집]


  • 1차 지명 : 강영수(한국화장품 외야수), 최해명(前 세일통상 내야수), 하용석(한양대 포수)
  • 2차 지명 : 박용준[1](광주일고 투수, 1라운드), 이종옥(건국대 내야수, 2라운드), 나광남(단국대 외야수, 5라운드)
  • 기지명 : 강기웅(한국화장품 내야수, 1987년 1차 지명), 류명선(前 세일통상 투수, 1988년 1차 지명)
  • 고졸 연고 : 권봉석(경북고 투수), 김상엽(대구고 투수), 김성준(대구고 투수), 박정은(성광고 투수)
  • 연습생 : 강종필(계명대 외야수), 안민석(영남대 내야수), 정존수(경기고 포수)


1.4. 기타 사항[편집]


1988년 시즌 후 권기홍, 손상득, 정용생, 최진영 등이 방출돼 은퇴했다. 손상득은 구단 직원이 됐다.

1988년 12월 20일에는 김동재MBC 청룡으로, 26일에는 박동경이 롯데 자이언츠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원래 투수였지만 아마추어 시절 투타 양면에 재능을 보며 프로에서도 이따금 타석에 들어서던 이현택이 본격적으로 타자로 전향했다. 다만 이 해에 투수로 1경기 등판했다.


2. 전지훈련[편집]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일본 노베오카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투수력 강화가 목적으로 세이부 라이온즈 투수코치이자 1962년 사와무라상 수상자인 코야마 마사아키와 긴테쓰 버팔로즈 투수코치로 있었던 곤도 히로시를 투수 인스트럭터로 초빙했다. 류명선김상엽의 기량이 성장해, 류명선의 경우엔 긴테쓰 구단 관계자들이 일본에서도 10승을 올릴 수 있는 투수라고 극찬을 했을 정도였다[2]. 일본 기온이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 투수들이 훈련하는데 곤혹스러워 하면서 이후로 한동안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오지 않았다.


3. 정규 시즌[편집]


재일 한국인 김성길과 신인 류명선이 각각 14승씩을 기록했지만, 시즌 전 6:5 트레이드의 한 축이었던 최동원은 한동안 삼성 입단을 거절하다가 뒤늦게 입단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겨우 1승만을 기록했다. 결국 시즌 목표인 정규시즌 우승은 커녕, 57승 5무 58패로 4위를 차지하면서 턱걸이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올스타전 전까진 승패마진 +10을 찍으며 빙그레, 해태와 선두 경쟁을 벌였으나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1무 8패, 전반기 마지막 경기 포함 9연패를 기록하며[3] 우승경쟁에서 밀려나 포스트시즌을 위해 경쟁하는 위치까지 떨어졌다. 이후 5할 언저리에서 왔다갔다하며 태평양과 OB와의 경쟁 끝에 4위로 턱걸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3.1. 선수 이동[편집]


5월 13일 빙그레 이글스에서 강만식을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6월 17일 재일 한국인 투수 송광훈과 계약했다.


4. 포스트시즌[편집]



4.1. 준플레이오프[편집]


1989년 준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 VS 태평양 돌핀스

경기
일시
경기장
원정
경기 결과

중계방송사
1차전
10월 8일 (금) 18:00
숭의 야구장
X
삼성 0 : 3 태평양
O
MBC
2차전
10월 9일 (토) 14: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X
태평양 3 : 4 삼성
O
KBS1
3차전
10월 11일 (월) 18:00
숭의 야구장
X
삼성 1 : 2 태평양
O
KBS2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BO 준플레이오프/198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선수별 개인 성적[편집]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5.1. 투수[편집]


  • 우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7
김성길
34
29
233⅔
(3위)
14
(7위)
11
2
2.81
(8위)
219
71
97
(8위)
33
류명선
34
25
170⅔
(10위)
14
(7위)
8
1
3.85
152
93
102
(7위)
29
홍성연
27
11
92⅔
3
7
1
5.15
81
42
32
30
김상엽
24
8
57⅓
2
5
0
4.40
58
59
31
16
오명록
18
3
53⅓
2
3
2
4.05
47
32
28
9
양일환
18
9
52⅔
2
6
0
6.79
77
25
13
49
김훈기
10
7
50
6
1
0
4.14
48
27
14
13
진동한
18
5
43⅓
1
3
1
8.52
71
27
11
11
최동원
8
4
30
1
2
0
2.10
36
19
9
21
송광훈
9
1
17
1
1
0
10.59
22
20
15
12
강만식
5
0
11⅓
0
1
0
7.94
15
6
4
36
이주헌
3
1
6
0
1
0
13.50
11
5
4
41
박정은
2
0
2
0
0
0
0.00
2
0
1

  • 좌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7
권영호
42
(2위)
3
86⅔
4
5
19
(2위)
3.63
83
40
41
14
성준
13
7
58⅓
3
2
0
3.39
55
24
14
28
이문한
26
4
57
2
0
1
4.42
56
40
31
31
정윤수
22
1
38
2
1
0
7.34
51
24
20
47
박용준
1
1
8
0
1
0
9.00
9
6
2
39
이현택
1
0
1
0
0
0
0.00
1
0
0


5.2. 타자[편집]


  • 포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2
이만수
110
359
.284
102
11
0
20
(3위)
64
(4위)
55
(10위)
4
26
박정환
48
91
.220
20
3
0
2
13
9
1
23
김성현
48
80
.313
25
4
5
(4위)
2
21
13
7
55
정존수
4
5
.400
2
1
0
0
3
1
0
48
하용석
4
4
.250
1
0
0
0
1
1
1

  • 내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6
강기웅
95
351
.322
(2위)
113
(5위)
12
(8위)
4
1
33
48
26
(4위)
24
김용철
103
342
.304
(4위)
104
(9위)
18
0
11
(10위)
64
(4위)
60
(6위)
3
7
김용국
98
333
.288
(10위)
96
15
1
9
44
53
8
1
류중일
113
329
.246
81
15
3
5
38
39
14
3
박승호
96
299
.291
87
15
1
12
(8위)
49
41
3
2
최해명
68
174
.276
48
12
1
0
15
17
2
5
김성래
39
77
.247
19
3
0
2
13
7
0
42
안민석
29
40
.175
7
0
0
0
1
6
1
15
이종옥
15
25
.360
9
1
1
0
0
6
1
54
김선훈
2
3
.333
1
1
0
0
0
0
0

  • 외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0
이종두
110
333
.273
91
15
3
10
52
63
(4위)
26
(4위)
4
장태수
106
290
.303
88
10
1
5
34
39
24
(9위)
19
구윤
91
290
.286
83
19
(10위)
0
5
30
44
13
39
이현택
64
128
.281
36
7
0
2
15
18
7
8
강영수
57
117
.145
17
3
0
4
13
16
1
10
정성룡
44
91
.220
20
6
0
1
10
9
2
37
김종갑
37
74
.284
21
2
0
5
16
13
1
38
홍승규
25
47
.234
11
0
0
0
1
6
1
45
강종필
50
40
.125
5
1
0
0
3
5
6
20
김정수
36
33
.091
3
0
0
0
3
6
3
18
최무영
13
30
.067
2
0
0
0
1
1
1
35
나광남
33
24
.125
3
0
0
0
3
3
4
25
이홍식
16
15
.000
0
0
0
0
0
1
0


6. 수상 및 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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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8년 연습생으로 입단.[2] 실제로 1989년 류명선의 성적은 좋았지만, 이 해 성적이 커리어 하이가 되고 말았다.[3] 2004년 5월 10연패를 찍기 전까지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최다 연패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