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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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환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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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우승반지

1985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2.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02
2005
200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결번

양일환
(1983~1989)


김우현
(199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0번
결번

양일환
(1990~1995)


백인천
(199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8번
결번

양일환
(1996~1998)


하나마스
(2004~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2번
김성근
(2000)

양일환
(2001~2008)


결번
결번

양일환
(2010~2016)


이윤효
(2017~2022)
KIA 타이거즈 등번호 82번
타케시
(2015~2018)

양일환
(2019~2020)


방석호
(2021~)




파일:EE4FB926-C50C-4AFC-951F-D7EE16EA025B.png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
양일환
梁日煥 | Il-Whan Yang

출생
1961년 6월 10일 (62세)
대구광역시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학력
대구초 - 대구중 - 대구상고 - 건국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1]
프로입단
1983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3~1989)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1990~1998)
영남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1999~2000)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2001~2008)[2]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08)[3]
경복중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 (2009)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2010~2016)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대행 (2011)
KIA 타이거즈 잔류군 투수코치 (2019)[4]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19~2020)[5]
프런트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 (2023~)[6]
병역
예술체육요원[7]
가족
사촌동생 양준혁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연도별 성적
3. 지도자 경력
4. 프런트 경력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야구인.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던 투수이자, 前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투수코치.[8]


2. 선수 경력[편집]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219182042375.jpg

(출처 : 포토로)

선수 시절의 등번호는 9번[9], 코치로서의 등번호는 80번 - 72번을 달았다. 선수로서는 통산 1군 139경기에 등판, 31승 32패 5세이브에 평균자책점 4.09를 기록했다.


2.1.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3
삼성
32
176⅓
9
7
1
0.563
3.22
155
12
74
63
82
63
1.24
1984
20
64
2
5
1
0.286
4.64
57
7
37
20
34
33
1.41
1985
19
61⅔
3
5
1
0.375
5.11
62
10
31
17
37
35
1.46
1986
22
96⅔
6
3
1
0.667
3.72
62
5
53
33
44
40
1.31
1987
18
86
8
4
1
0.667
1.88
62
4
40
35
23
18
1.12
1988
10
29⅓
1
2
0
0.333
8.90
36
4
23
10
30
29
1.74
1989
18
52⅔
2
6
0
0.250
6.79
77
6
25
13
48
39
1.84
KBO 통산
(7시즌)
139
565⅔
31
32
5
0.492
4.09
529
48
283
191
298
257
1.36


3. 지도자 경력[편집]



3.1. 삼성 라이온즈[편집]


은퇴 후 바로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로 활동하다가 1998 시즌을 마치고 삼성과 재계약에 실패했다. 1999년과 2000년에는 각각 일본 연수와 영남대학교 야구부에서 코치를 하며 삼성을 잠시 떠났었지만, 2001년 삼성에 복귀해 1군 투수코치를 맡으며 팀의 3회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2008년 5월에 갑자기 조계현 당시 2군 투수코치와 보직을 맞바꾸게 되었다.#[10] 그리고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삼성에서 나온 후 여기저기 노린 팀도 많았을 법했는데 2009년 한 해동안 야인으로 지내면서 대구 지역의 아마추어 선수들을 가르쳤으며, 특히 원민구[11] 감독의 요청으로 경복중학교 야구부에서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반드시 프로 팀 코치로 현장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안 되면 다시 해외 연수를 떠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9년 시즌이 끝나고 다시 삼성의 2군 투수코치로 복귀했다.

2011 시즌에는 암으로 입원하여 끝내 생을 마감한 장효조 2군 감독을 대신하여 2군 감독 대행을 겸임했다.

선수로서는 김시진, 김일융 등에 밀려 명성을 날리지 못했지만 김시진이 못다한 투수코치로서의 역할을 책임졌으며, 공백기를 빼면 한 팀에서 코치로서의 오랜 시간 동안 봉직 중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삼성 마운드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

팬들의 평가는 꽤 좋았던 편. 우선 삼성의 2005년 한국시리즈, 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 시절 투수코치였고 이 당시 막강한 불펜진을 보유했던 데다 그만큼 잘 운영했기 때문에 이 때만 해도 평가가 좋았다. 이후 1차 지명 폐지와 고순위로 인한 낮은 지명 순서 등으로 포텐셜 자체가 그리 높지 않다고 평가되는 삼성 2군 투수진에서도 괜찮은 투수들을 적잖게 키워냈다는 평가와 함께 일환매직으로도 통했다.

그러나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을 바꾼 2010년대 들어 평가가 나빠졌다. 일단 2군에서 육성되어 올라오는 투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없었고 2군에서 묵힌 유망주나 부상을 당한 선수가 2군만 갔다 오면 평균 구속이 눈에 띄게 하락하고 좀처럼 구속 회복이 되지 않는 등의 이유[12]로, 일각에서는 삼성 투수진이 망한 원인을 1군 투수코치 김태한이 아닌 2군 투수코치인 양일환에게서 찾을 정도로[13] 과거에 비해 평가가 많이 떨어졌다.

2016년 삼성 라이온즈의 부진과 함께 2군 육성문제가 부각되며 평가가 더더욱 급하락했다. 특히 최고 구속이 150km 가까이 나오던 1차 지명 유망주 최충연이 양일환에 의해 투구폼을 교정한 뒤 최고구속이 140km/h도 안 나오며 그동안 2군에서 대체 뭐했냐며 철밥통이라고 욕먹고 있다. 결국 시즌 후 감독 교체의 여파로 팀을 떠나게 됐다.


3.2. KIA 타이거즈[편집]


2019년 1월 7일 장태수와 함께 KIA 타이거즈의 코치로 부임하였다. 당초 보직은 잔류군 투수코치였으나 5월 17일 김기태 감독이 사퇴하며 코칭스태프 개편이 이뤄지자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예전부터 다른 건 다 괜찮으나 느린 구속이 문제였던 전상현이 2019 시즌 필승조로 자리잡게 된 건 5km/h 가량의 구속 증가가 큰 도움이 되었는데, 여기에 곽정철과 함께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2020 시즌 종료 후 KIA 코치에서 물러난 듯 하다.#


4. 프런트 경력[편집]


2023년 8월 5일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담당 스카우터가 되었다. 단기 계약으로, 내년에도 계약할지는 불명이다.


5. 여담[편집]


  • 양준혁의 사촌형이다. 양준혁의 큰아버지가 양일환의 아버지다. 양준혁의 자서전에 따르면 사촌형이 투수를 하는 것을 보고 야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웠으며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무시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것 역시 고향 대구 연고팀이라는 점 외에 사촌형이 있는 팀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둘은 한 팀에 있었지만 같은 선수 신분인 적은 없었다. 89년에 은퇴하고 2군 투수 코치를 하고있을 때 사촌동생이 93년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둘의 현역 시절 등번호는 숫자 1차이로 연속된다(9번-10번).


6. 관련 문서[편집]


[1] 언더핸드 스로 투수로 분류하지만 사이드암 스로 투수로 보기도 한다. 현역 시절 상하 릴리스 포인트의 위치가 언더와 사이드 사이였기 때문이다.[2] ~5월 3일[3] 5월 4일~[4] ~5월 16일[5] 5월 17일~[6] 8월 5일~[7] 197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준우승#[8] 삼성에서 선수와 코치로 재직한 기간이 무려 30년 이상이다.[9] 한 자리 수의 등번호 경우 1번을 제외한 번호를 투수가 단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OB 베어스박상열도 있다. 이후 2016년 양일환이 코치로 소속된 삼성 라이온즈의 새 외국인 투수 앨런 웹스터가, 2017년도엔 FA 이적한 우규민이 2번을, 양일환이 나갔지만 2020년에는 신인급 선수 아니면 별로 선호하지 않는 번호인 4번을 외국인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이 다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10] 이를 두고 선동열 감독의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게 대다수의 반응이었다.[11] 2019년 삼성의 1차 지명을 받은 원태인의 아버지다.[12] 대표적인 사례로는 허리 부상에서 복귀한 구속이 5km/h 이상 줄어든 김현우가 있다.[13] 특히나 2군은 육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코칭스태프 중에서 투수진의 성장이 더딘 원인을 찾는다면 2군 투수코치인 양일환의 책임이 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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