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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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
2. 생애[편집]
토리노에서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와 스페인의 카탈리나 미카엘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인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궁정으로 보내져 1598년에 펠리페 2세가 사망할 때까지 스페인에서 자랐다. 1605년 형 필리포 에마누엘레의 사망으로 부친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의 후계자가 되었다. 1619년에 프랑스 왕국 앙리 4세의 딸 프랑스의 크리스틴 마리와 결혼했다.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의 외교정책은 사보이아 공국의 대외관계에 불안정성을 불러왔다. 공국을 방어하기에 더이상 징병할 남성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용병을 쓸 돈도 없어서 스페인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고 프랑스에게는 토리노로 향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피네롤로(Pinerolo)를 양도해야 했다. 이후 사보이아 가문의 통치자들은 이 땅을 되찾기 위하여 수 십년을 허비했다. 결과적으로 사보이아 공국은 프랑스 영향력 하에 들어갔고 리슐리외 추기경이 주도하는 반 스페인 동맹에 가담했다.
1637년 9월 25일, 크레키 공작의 저녁식사에 초대되어 갔으나 여기서 병에 걸렸고 며칠 만에 사망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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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