벱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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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러시아 국장.svg 러시아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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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여담


1. 개요[편집]


벱스인은 라도가 호수카렐리야 일대에 중세 초부터 거주하던 우랄계 민족이다. 2021년 통계 기준 러시아 내 4,534명이 거주하고 있다. 우랄어족발트핀어군 언어에 속하는 벱스어는 핀란드어 화자와 통역 없이도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다. 오늘날 벱스인 중에서도 벱스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며,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벱스어를 보존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2. 역사[편집]


파일:9세기 동유럽 민족 분포 지도.png

키예프 루스에서 편찬한 연대기인 《원초 연대기》에는 루스 카간국을 구성한 네 민족으로 크라비치족, 일멘의 슬라브족, 벱스족 그리고 바이킹족을 꼽고 있다. 네 민족 중 크라바치족과 일멘의 슬라브족은 슬라브계, 바이킹은 북게르만계 그리고 벱스인들은 우랄어족으로, 벱스인들은 러시아 역사 초창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키예프 루스는 블라디미르 1세 치세에 정교회로 공식적으로 개종한 이후, 키예프 루스 각지의 농촌에서는 명목상으로는 기독교를 믿되 일상생활에서는 기독교 이전부터 믿던 토속신앙을 그대로 믿는 이중신앙이 만연하였다. 벱스인 역시 서기 10세기 공식적으로 정교회로 개종했으나, 일상생활에서는 마을에 장승 같은 토템을 세우고 나무와 숲에 사는 정령들을 믿는 전통 신앙을 유지하였다.

여타 발트핀어군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벱스인들 역시 외세에 의한 동화 등을 거치며 세력이 크게 축소되었던 바 있다. 키예프 루스의 연대기에 언급되는 민족 중 츄디-에스티인들은 중세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의 식민 지배 등 고통스러운 중세사를 거치며 오늘날 에스토니아인들의 기원이 되었고, 이조라인보디인들은 인구 규모가 수백수십여 명 규모 정도로 급감하였다. 13세기 키예프 루스가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는 과정에서 루스 난민 상당수가 북부 삼림 지대로 이주하는 와중에, 동슬라브인들과 인접해 있던 여러 우랄계 민족들은 슬라브 난민들과 급속도로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 벱스어가 사용되는 지역은 이후 수백여 년간 우랄어족 민족들이 러시아인들에 동화되는 과정을 통해 점차 축소되어갔다.

벱스인들의 거주 구역만 축소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표트르 스톨리핀시베리아 이주 지원 과정에서 많은 당시 러시아 제국 북서부에 거주하는 많은 소수민족 집단들이 시베리아로 이주했는데 이들 중 벱스인들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라트비아인 상당수가 시베리아로 이주 후 원래 라트비아어 및 라트비아 민족 정체성를 잊어버린 경우가 있었는데, 라트비아인들보다 더 규모도 적고 민족주의도 약했던 벱스인들은 새로 이민 간 지역 내에서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러시아인들과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

파일:veps-2.jpg
  • 벱스 민속 축제(Древо жизни)를 준비하는 벱스인들. 라트비아인들이 자수 무늬에 토속신앙 관련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 유사하게 벱스인들 역시 자수를 통해 소원이 이루어지고, 부정이 타지 않기를 바랬다.

소련 시대 들어서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것을 벱스인들의 고향 근교의 대도시 레닌그라드로 상경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얼마 남아있지 않던 벱스인 인구 역시 러시아인으로 급속히 동화되었다. 벱스인 인구는 1940년대에 30,000~40,000명 정도로 집계되었으나 이후 1989년 인구 조사에서는 12,501명으로 집계되었다. 오늘날에도 벱스인 인구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데 2010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5,936명이던 벱스인 인구는 2021년 인구 조사에서 4,534명으로 10여 년의 기간동안 25%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3. 여담[편집]


벱스어는 핀란드어 및 카렐리야어와 문법 이외에도 기초 어휘 상당부분이 무척 유사한 편으로, 핀란드에서도 벱스인 및 벱스어 관련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 상당수의 벱스어 어휘는 핀란드어 어휘에서 단어 마지막 부분 모음을 제거한 형태라서, 벱스어 화자가 일부 규칙만 이해하면 핀란드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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