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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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패왕 도르갈루아의 통일 이전
3. 패왕 도르갈루아의 서거
4.1. 바크람-발레리아 왕국
4.2. 갈가스탄 왕국
4.3. 월스터 해방군
5. 통일 전쟁
6. 통일 전쟁 이후



1. 개요[편집]


오우거 배틀 사가에 등장하는 가상의 국가. 수도는 왕도 하임이며 국교는 필라하 교.

오베로 해 중앙에 위치해 있는 섬나라. 크고 작은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지형으로 북쪽의 갈리시아 대륙, 동쪽의 제테기네아 대륙, 남쪽의 발바우데 대륙을 잇는 중계지로서 해양 무역을 주 수입원으로 삼아 번영해왔다. 그러나 예로부터 갈가스탄, 월스터, 바크람 세 민족간의 민족 분쟁이 매우 격한 곳이기도 하다.

이 분쟁을 끝내고 섬을 통일한 것이 패왕 도르갈루아였으며, 이를 기초로 발레리아 왕국을 세우고 국왕에 즉위한다. 도르갈루와 왕은 민족간의 분쟁을 완화시켜 하나의 발레리아 인으로 집결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실시했다. 먼저 발레리아 왕국의 국교를 태양신 필라하를 주신으로 하는 필라하 교로 통일하여 종교간 마찰의 여지를 없앴다.[1] 또, 타 민족간의 결혼을 장려하는 등의 민족 융화 정책을 펼쳤다.[2]

그러나 도르갈루아 왕의 왕자와 왕비가 연달아 사망하면서 발레리아 왕국에도 암운이 감돈다.


2. 패왕 도르갈루아의 통일 이전[편집]


발레리아가 통일되기까지 약 15년에 걸쳐 벌어진 전쟁을 "통일 전쟁"이라고 한다. 통일 이전의 발레리아는 바니시아, 피도크, 아르모리카, 코리타니, 브리간테스라는 5개의 국가로 나뉘어 있었다. 각국은 자국의 영토를 늘릴 생각을 가지고 있어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통일 전쟁은 바니시아의 군주인 크레몬트 후작이 정권 탈취를 꾀하는 무장파 게릴라에게 암살되자 시작됐다. 이 사건 때문네 각국의 균형이 무너져 군국주의 색채가 강한 피도크가 바니시아와 아르모리카에게 선전 포고를 하고, 아르모리카를 지원하는 형태로 코리타니가 참전해 전쟁이 격화되었다.

전쟁은 약 8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결국 바니시아와 아르모리카는 피도크에게 점령되었고, 괴뢰 정부가 세워졌다. 피도크의 군주인 레모니카왕은 바크람인, 월스터인을 탄압했다.(이 일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민족 분쟁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겪은 수 많은 반체제파 게릴라가 레모니카왕에게 저항했다. 피도크는 코리타니를 침공했지만, 그동안 중립을 유지하던 브리간테스가 코리타니의 요청으로 참전하면서 이 전쟁은 발레리아 전토를 뒤덮는 전판으로 발전했다.

전쟁 자체는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비밀리에 브리간테스가 반체제파 게릴라를 지원하면서 게릴라는 반란군으로 조직화되었다.

이후 코리타니의 군주 올란두 백작이 전사하자 코리타니는 사실상 브리간테스의 통치하에 놓였고, 바니시아의 반란군은 피도크를 상태로 공격을 시작했다.

이 반란군을 이끈 것이 후일 발레리아의 왕이 되는 도르갈루아였다. 브리간테스와 반란군의 공격을 동시에 받은 피도크는 결국 함락되었고, 전쟁이 끝났다.

브리간테스의 군주 로드릭왕과 도르갈루아는 종전 협정을 맺었지만 그 내용이 과하게 불평등했기 때문에 협정은 한 달 만에 파기되어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그 후, 약 1년에 걸쳐 로드릭왕과 도르갈루아 간의 전쟁이 이어졌으며 결국 도르갈루아의 승리로 막을 내리며 발레리아가 통일되었다.

- 워런 리포트 <통일전쟁>



3. 패왕 도르갈루아의 서거[편집]


제테기네아력 232년, 도르갈루아 왕의 어린 왕자가 사고사하고 그 뒤를 잇듯이 베르나타 왕비도 병으로 급사, 도르갈루아 왕은 실의에 잠긴다. 그리고 제테기네아력 250년에 도르갈루아 왕마저 서거하자 겨우 평화가 찾아왔던 발레리아 제도는 또다시 혼란에 빠진다.

도르갈루아 왕이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서거했기 때문에 그 후계자 자리를 놓고 대립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베르나타 왕비의 측근이었던 사제 브랜터가 곧바로 왕비의 가문인 엘티나하가의 적자를 군주로 옹립하여 바크람 발레리아 왕국의 건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섭정에 취임하였으며, 여기에 반발한 갈가스탄 인들의 지도자 발바토스 추기경이 코리타니 공을 옹립하여 갈가스탄 왕국이 성립, 아르모리카의 월스터 인들도 론웨 공작을 중심으로 집결하며 발레리아 제도는 또다시 삼분된다.


4. 민족 분쟁과 통일 전쟁 시기[편집]




4.1. 바크람-발레리아 왕국[편집]


파일:Bakram-Valerian_Kingdom.png
제테기네아력 251년 건국. 발레리아 제도의 바니시아 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패왕이 서거한 직후, 사제 브랜터가 교회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바크람 인들로 구성된 귀족이나 부유층의 지지를 얻는 형태로 후계자 분쟁을 매듭지었다. 명목상의 군주는 베르나타 왕비의 출신 가문인 엘티나하 가의 적자이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브랜터가 섭정을 맡고 있다.

다수파인 갈가스탄에 비해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북방의 군사 대국인 로디스 교국과 밀약을 맺고 암흑기사단 로스로리엔의 지원을 받고 있다.


4.2. 갈가스탄 왕국[편집]


파일:Kingdom_of_Galgastan.png
제테기네아력 251년 건국. 코리타니 지방의 갈가스탄 인들을 규합한 발바토스 추기경이 지도자가 되어, 옛 코리타니의 지배자의 후예인 코리타니공의 후견인이 되는 형태로 건국되었다.

민족정화 정책을 펼쳐 월스터 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격한 정책에 의해 급진파와 온건파의 양 세력으로 갈라져있으며 발바토스 추기경은 숙청을 통해 온건파를 억누르고 있다.


4.3. 월스터 해방군[편집]


파일:Walister_Resistance.png
구 아르모리카 왕국의 왕족 출신인 론웨 공작[3]을 구심점으로 집결하였으나 국가의 형태를 이루기 전에 갈가스탄에 의해 패배. 론웨 공작은 아르모리카 성에 유폐되었으며 월스터 인들은 몇몇 자치구로 몰아넣어져 가혹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5. 통일 전쟁[편집]


위와 같이 도루갈루아 왕 서거 이후 민족에 따라 3개로 갈라진 발레리아 제도의 전란은 골리앗의 젊은 영웅이라 불리게 된 데님 파웰과 그가 이끄는 신룡기사단의 활약에 의하여 종지부를 찍는다. 데님은 민족주의에 빠진 각 세력을 격파하였으며 필라하 교단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한다. 이후 도루갈루아 왕의 숨겨진 딸 베르사리아 오벨리스를 옹립하여 민족을 초월한 발레리아 왕국의 새로운 통일을 이끌어내었으며 암흑기사단이 노리던 패왕의 유산을 다시 봉인하는데 성공하였다.


6. 통일 전쟁 이후[편집]


발레리아 왕국은 먼훗날 히타이트 인들에 의하여 대륙이 통일 될 때까지 천년 동안 독립국가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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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해양무역의 중계로 번성해온 국가이니 만큼, 물의 신 그루자를 숭배하는 바스크 교의 영향력이 아직도 브리간테스 등 일부 지역에 잔존하고 있다.[2] 다만 바크람 귀족들이 노예 검투사를 부리고 다녔다는 서술이나, 바이스시스티나에게 한 과거 바크람인이 월스터인을 차별했다는 발언, 갈가스탄도 바크람때문에 요직에 앉지 못하고 소외당했다는 갈가스탄 장수의 말을 보면 은연중에 바크람쪽이 우세였던 것으로 보인다.[3] 통일 전쟁 과정에서 론웨 가는 아르모리카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였으나, 공작가로 남아 어느정도의 지위를 보장받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