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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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成傑
(? ~ ?)
1. 개요[편집]
고려의 인물.
2. 생애[편집]
제2차 여요전쟁 때 남행하던 현종을 호종했다. 정종 5년(1039) 도병마부사를 지내다 동로(東路) 정변진(靜邊鎭)에 성을 쌓을 것을 아뢨다.
문종 4년(1050)에는 동북로병마부사로서 전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포상을 내릴지 여부를 조정에 아뢨다. 문종 3년(1049) 10월 여진족 해적들이 진명(鎭溟, 원산)에서 군선 2척을 나포해갔는데, 병마녹사 문양렬과 원흥도부서판관 송제한 두 군인이 해적의 본거지에 침입해 20여명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박성걸은 문종의 명에 따라 둘에게 포상을 지급했다.
문종 7년(1053) 김정준과 함께 참지정사에 임명됐다. 문종 8년(1054)에는 왕훈의 왕태자 책봉례가 있었는데, 박성걸은 왕총지와 함께 문종이 보내는 책봉사로서 책봉례에 참여했다. 왕총지는 정사, 박성걸은 부사였고, 당시 박성걸은 사도 상서우복야 관직을 겸했다. 문종 9년(1055) 내사시랑평장사 상주국으로 승진했다. 이즈음 왕명을 받고 칠장사(漆長寺)로 떠나는 혜소국사를 전송했다.
문종 17년(1063) 검교태위 문하시중이 더해지고 임종일과 함께 은퇴했다. 사후 선종 원년(1084)에 현종을 호종한 점이 조명돼 삼한후벽상공신 양규 등의 녹권에 공신으로 함께 기록됐다.
3. 가족관계[편집]
- 아들: 박양단
- 손자: 박경온
- 증손자: 박황
- 손자: 박경온
아들 박양단은 형부상서 중추원사를, 손자 박경온은 금오위장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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