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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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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배우. 1978년 CBS 성우극회 당시 12기[4] 로 입사하였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KBS 성우극회 15기(1978년)로 분류되었다. 이후 1982년 KBS 특채 탤런트로 방향 전환을 하였으며, 1985년 MBC 특채로 다시 선발되었다.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으로 그의 집은 유복했다고 한다. 전주남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했다. 서라벌고 재학 당시 전통무술을 섭렵했으며 고교 졸업 후 서라벌예대(現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군복무를 마칠 무렵 연극무대에서 효과를 담당하는 그의 선배가 사전에 상의도 하지 않고 기독교방송 성우시험에 원서를 냈다. 성우로 활동하다가 1982년 탤런트가 됐지만 당시 방송가에서는 성우 출신을 박대하여 라디오 호출기호를 따 'KY 출신'이라며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한다. 출연 기회를 잡지 못해 3년간 촬영장소를 섭외하는 '헌팅맨'으로 활동했으며 그렇게 PD들과 일하면서 친분을 쌓아 주연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5] 그에게 주로 주어졌던 역할은 피아니스트, 실연남처럼 고민하는 지성인의 역할이었으며 시인이자 기자였던 기형도가 신문에 나한일을 'TV의 몽상가'라고 별명을 붙여줬다.
참고로 배우가 되기 전 고등학생때부터 무술을 익혀 검도 유단자가 되었었고, 성우 생활을 하면서도 스승에게 검도장을 물려받아 젊은 나이에 관장으로 운영해봤던 사람이다. 이후 TV배우가 된 뒤에도 새 검도장을 차리는 등 검도 지도자를 계속 겸하다가 나중에 해동검도 협회를 차린다. 참고로 그가 새 검도장을 차릴때 직접 도움을 주었고 생전에 나한일과 적잖은 친분이 있던 사람이 그 유명한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이다. 사실 최순실 게이트 때 나한일을 아는 사람들은 최태민과 젊을때부터 친했던 나한일도 무슨 연관이 있지 않겠냐고 추정했지만, 하필 그는 그 직전까지 금전관련 범죄로 감옥에서 살다가 딱 그때 출소를 한 사람이었기에 얽히지는 않았다.얽힐 일을 만들려면 2015년에 감옥에 안 갔어야 한다.
1988년 드라마 훠어이 훠어이에서 야심찬 젊은 기업가 원창호[6] 를 맡아 주인공급으로 발돋움했다. 나한일이 본인의 검도 실력을 처음 선보였던 드라마다. 당시 드라마 PD는 촬영장면으로 신선호 회장이 휴식중에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을 설정해놓았는데 나한일이 기타를 연주할 수 없어 그 대신 나한일 본인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검도 장면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이후 무풍지대의 주인공 유지광 역을 맡아 유명해졌으며 CF와 영화출연 제의가 쏟아졌다. 당시 날고 긴다는 건달들이 '유지광이 한 번 보고 싶다'고 제의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 드라마에서 이영숙으로 출연한 유혜영과 만나 결혼까지 이르렀고, 결혼 9년 만에 이혼했지만, 이후 다시 재결합을 하였고, 또 한 번 이혼하였다.
1980년대에는 임성민, 강석우 등과 함께 꽤 인기있던 미남 스타였다. 순수한 미청년 이미지가 강하던 강석우와 훤칠하고 섹시한 스타일의 임성민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었는데, 부드러운 외모에 검도가 특기라는 점을 어필하면서 멜로와 액션이 모두 가능한 미남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외꺼풀임에도 비교적 큰 반달형 눈매와 습관적으로 만들던 이마의 잔주름이 트레이드마크.
30대 이후에는 가정적인 가장의 이미지로 어필하여 양복 및 앨범 광고에 출연했다.[7] 이덕화에 이어 로얄디[8] 의 광고 모델을 장기간 맡으면서 아주 남성적인 이미지도 자주 보여주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액션이나 멜로, 1990년대 중반부터는 사극에 자주 등장했다. 용의 눈물의 민무질, 연개소문의 온사문[9] , 자명고의 왕굉,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유 대감 등 주로 무관 역을 맡았다. 드라마 영웅시대의 천태창, 영화 엑스트라의 김왕기 등 현대극이나 코믹영화로의 연기변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보통 무게감 있는 역으로 많이 출연했다. 또한 해동검도를 창시하여, 예능 프로그램에서 해동검도를 다룰 경우 대부분 출연하여 홍보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야인시대의 금강 역으로 출연하여 중년의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액션 연기를 보여주었다.
연예계 후배들에게 해동검도를 지도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제자가 강지환.[10]
실제 성은 '라'씨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라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라씨를 나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나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나씨로 살았다고 한다.[11]
2009년 4월 20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로부터 100억 원대의 불법대출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불법 대출을 위해 전 금융감독원 간부와 상호저축은행 대표에게 성접대까지 한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성 접대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원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됐으며, 의정부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이 사건으로 출연정지 처분을 받으며 자명고 이후에는 지상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대법원 상고 역시 기각되었다. 복역 도중에는 모친상까지 당했으며, 단 하루 장례만 볼 수 있었지만 모친의 장지까지 가지 못하고 호송차에 실려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015년 5월에 그의 형과 함께 사기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고, 2016년 2월에 열린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최종 선고받아 또 다시 옥살이를 했다.# 이 때 2015년, 유혜영과 두 번째 이혼했다.[12]
2016년 11월 11일에 출소했다. 출소 후 소회에서 그는 "내 욕심이 지나쳤다"고 말했다.
2018년 11월 대선배 배우 신성일의 장례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구애 끝에 1989년 배우 유혜영[13] 과 결혼에 성공했고 슬하에 딸[14] 도 얻었으나 결혼 9년 만인 1998년 합의 이혼했다.
그러나 이혼 4년 만에 다시 재결합하여 잘 사는가 싶었지만 유혜영과 또 다시 이혼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계속되는 옥중 생활 도중 둘은 또 다시 이혼에 합의했고, 나한일은 감옥에 면회를 온 과거 연인 정은숙과 2016년 4월 옥중 혼인신고를 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재혼 과정을 밝혔는데, 유혜영과 결혼하기 전 나한일은 정은숙과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가지고 있었고, 나한일이 유혜영을 좋아하게 되며 정은숙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고 한다. 이후 나한일은 유혜영과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을 했고, 정은숙 역시 다른 남자와 결혼생활을 한 후 이혼하고 나한일과 재혼하게 된다. 출소한 후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4년간의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2020년 10월 이혼으로 재혼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기사
2022년 4월 8일 전전부인 유혜영과 우리 이혼했어요 시즌2에 출연한다.기사 통영시 욕지도, 강원도 속초시, 그리고 무풍지대 촬영장 등 여러 장소를 같이 여행하면서 서로 마음을 열었고 2022년 6월 24일 방송분이었던 우이혼2 제11화에서 은혼식 장면(세 번째 결합)이 나왔다.
유혜영은 2022년 10월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나한일과의 근황을 밝히길 서로 집이 작아서 아직 합치지는 못하고 주말마다 만나 같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배우. 1978년 CBS 성우극회 당시 12기[4] 로 입사하였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KBS 성우극회 15기(1978년)로 분류되었다. 이후 1982년 KBS 특채 탤런트로 방향 전환을 하였으며, 1985년 MBC 특채로 다시 선발되었다.
2. 배우 데뷔 전[편집]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으로 그의 집은 유복했다고 한다. 전주남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했다. 서라벌고 재학 당시 전통무술을 섭렵했으며 고교 졸업 후 서라벌예대(現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군복무를 마칠 무렵 연극무대에서 효과를 담당하는 그의 선배가 사전에 상의도 하지 않고 기독교방송 성우시험에 원서를 냈다. 성우로 활동하다가 1982년 탤런트가 됐지만 당시 방송가에서는 성우 출신을 박대하여 라디오 호출기호를 따 'KY 출신'이라며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한다. 출연 기회를 잡지 못해 3년간 촬영장소를 섭외하는 '헌팅맨'으로 활동했으며 그렇게 PD들과 일하면서 친분을 쌓아 주연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5] 그에게 주로 주어졌던 역할은 피아니스트, 실연남처럼 고민하는 지성인의 역할이었으며 시인이자 기자였던 기형도가 신문에 나한일을 'TV의 몽상가'라고 별명을 붙여줬다.
참고로 배우가 되기 전 고등학생때부터 무술을 익혀 검도 유단자가 되었었고, 성우 생활을 하면서도 스승에게 검도장을 물려받아 젊은 나이에 관장으로 운영해봤던 사람이다. 이후 TV배우가 된 뒤에도 새 검도장을 차리는 등 검도 지도자를 계속 겸하다가 나중에 해동검도 협회를 차린다. 참고로 그가 새 검도장을 차릴때 직접 도움을 주었고 생전에 나한일과 적잖은 친분이 있던 사람이 그 유명한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이다. 사실 최순실 게이트 때 나한일을 아는 사람들은 최태민과 젊을때부터 친했던 나한일도 무슨 연관이 있지 않겠냐고 추정했지만, 하필 그는 그 직전까지 금전관련 범죄로 감옥에서 살다가 딱 그때 출소를 한 사람이었기에 얽히지는 않았다.
3. 배우 활동[편집]
1988년 드라마 훠어이 훠어이에서 야심찬 젊은 기업가 원창호[6] 를 맡아 주인공급으로 발돋움했다. 나한일이 본인의 검도 실력을 처음 선보였던 드라마다. 당시 드라마 PD는 촬영장면으로 신선호 회장이 휴식중에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을 설정해놓았는데 나한일이 기타를 연주할 수 없어 그 대신 나한일 본인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검도 장면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이후 무풍지대의 주인공 유지광 역을 맡아 유명해졌으며 CF와 영화출연 제의가 쏟아졌다. 당시 날고 긴다는 건달들이 '유지광이 한 번 보고 싶다'고 제의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 드라마에서 이영숙으로 출연한 유혜영과 만나 결혼까지 이르렀고, 결혼 9년 만에 이혼했지만, 이후 다시 재결합을 하였고, 또 한 번 이혼하였다.
1980년대에는 임성민, 강석우 등과 함께 꽤 인기있던 미남 스타였다. 순수한 미청년 이미지가 강하던 강석우와 훤칠하고 섹시한 스타일의 임성민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었는데, 부드러운 외모에 검도가 특기라는 점을 어필하면서 멜로와 액션이 모두 가능한 미남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외꺼풀임에도 비교적 큰 반달형 눈매와 습관적으로 만들던 이마의 잔주름이 트레이드마크.
30대 이후에는 가정적인 가장의 이미지로 어필하여 양복 및 앨범 광고에 출연했다.[7] 이덕화에 이어 로얄디[8] 의 광고 모델을 장기간 맡으면서 아주 남성적인 이미지도 자주 보여주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액션이나 멜로, 1990년대 중반부터는 사극에 자주 등장했다. 용의 눈물의 민무질, 연개소문의 온사문[9] , 자명고의 왕굉,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유 대감 등 주로 무관 역을 맡았다. 드라마 영웅시대의 천태창, 영화 엑스트라의 김왕기 등 현대극이나 코믹영화로의 연기변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보통 무게감 있는 역으로 많이 출연했다. 또한 해동검도를 창시하여, 예능 프로그램에서 해동검도를 다룰 경우 대부분 출연하여 홍보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야인시대의 금강 역으로 출연하여 중년의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액션 연기를 보여주었다.
연예계 후배들에게 해동검도를 지도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제자가 강지환.[10]
4. 성씨[편집]
실제 성은 '라'씨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라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라씨를 나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나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나씨로 살았다고 한다.[11]
5. 사건사고[편집]
2009년 4월 20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로부터 100억 원대의 불법대출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불법 대출을 위해 전 금융감독원 간부와 상호저축은행 대표에게 성접대까지 한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성 접대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원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됐으며, 의정부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이 사건으로 출연정지 처분을 받으며 자명고 이후에는 지상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대법원 상고 역시 기각되었다. 복역 도중에는 모친상까지 당했으며, 단 하루 장례만 볼 수 있었지만 모친의 장지까지 가지 못하고 호송차에 실려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015년 5월에 그의 형과 함께 사기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고, 2016년 2월에 열린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최종 선고받아 또 다시 옥살이를 했다.# 이 때 2015년, 유혜영과 두 번째 이혼했다.[12]
2016년 11월 11일에 출소했다. 출소 후 소회에서 그는 "내 욕심이 지나쳤다"고 말했다.
2018년 11월 대선배 배우 신성일의 장례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6. 가정사[편집]
오랜 구애 끝에 1989년 배우 유혜영[13] 과 결혼에 성공했고 슬하에 딸[14] 도 얻었으나 결혼 9년 만인 1998년 합의 이혼했다.
그러나 이혼 4년 만에 다시 재결합하여 잘 사는가 싶었지만 유혜영과 또 다시 이혼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계속되는 옥중 생활 도중 둘은 또 다시 이혼에 합의했고, 나한일은 감옥에 면회를 온 과거 연인 정은숙과 2016년 4월 옥중 혼인신고를 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재혼 과정을 밝혔는데, 유혜영과 결혼하기 전 나한일은 정은숙과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가지고 있었고, 나한일이 유혜영을 좋아하게 되며 정은숙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고 한다. 이후 나한일은 유혜영과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을 했고, 정은숙 역시 다른 남자와 결혼생활을 한 후 이혼하고 나한일과 재혼하게 된다. 출소한 후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4년간의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2020년 10월 이혼으로 재혼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기사
2022년 4월 8일 전전부인 유혜영과 우리 이혼했어요 시즌2에 출연한다.기사 통영시 욕지도, 강원도 속초시, 그리고 무풍지대 촬영장 등 여러 장소를 같이 여행하면서 서로 마음을 열었고 2022년 6월 24일 방송분이었던 우이혼2 제11화에서 은혼식 장면(세 번째 결합)이 나왔다.
유혜영은 2022년 10월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나한일과의 근황을 밝히길 서로 집이 작아서 아직 합치지는 못하고 주말마다 만나 같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7. 주요 출연작[편집]
7.1. 드라마[편집]
- 내일 또 내일 - 진우
- 토지
- 훠어이 훠어이 - 원창호
-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 무풍지대 - 유지광
- 바람과 구름과 비 - 연치성
- 꽃피고 새울면 - 백희태
- 백번 선 본 여자
- 금잔화 - 임문일
- 비 오는 날 오후
- 남자는 외로워
- 깽이바다 - 검군
- 행복하고 싶어요
- 바람의 아들
- 야인시대 - 금강
- 연개소문 - 온사문
1, 2화 한정으로 2부부터는 박영록으로 교체.
- 영웅시대 - 천태창
- 결혼의 법칙 - 황달기
- 왕초 - 상하이 박
- 용의 눈물 - 민무질
-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 오 선생
- 자명고 - 왕굉
- 창공 - 차인철
- 첫사랑 - 나성일
- 태조 왕건 - 변 사부
- 명랑소녀 성공기 - 오명근
- 자매바다 - 장호식
7.2. 영화[편집]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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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아버지와 같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의 1990년생 배우[3] 아무리 신인이라도 대사 몇 줄 있는 단역은 받는 게 보통인데 몇 개월이 지나도 뒤에서 수군거리만 하는 군중 역할만 맡아서 몹시 괴로워했다는 얘기가 있다.[4] 12기(1982년)와 별개. 언론통폐합과 성우들의 은퇴로 소멸해버렸다.[5] 참고로 TV데뷔가 늦어졌던 만큼 영화데뷔는 더 늦어져서인지 과거 그보다 어린 배우인 조형기가 방송에서 나한일에게 "형 그래도 영화쪽은 제가 선배입니다"라고 말했다가, 나한일이 노려봐서 겁먹는 장면을 예능에서 연출한 적이 있다. 바로 일밤의 대단한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나한일은 당시 연예인 자격이 아니라 해동검도 총재 자격으로 나와서 조형기, 이경규, 김용만 등에게 검도를 가르치다가 갔다. 그날 기믹은 조형기가 나한일에게 검도 못한다고 지적받을때마다 영화데뷔는 자기가 선배라고 말하는 것이었는데, 노려보던 나한일이 아예 다가가자 쫄았다가, 다시 아니 뭔 말도 못하게 하냐고 화를 냈다.[6] 율산그룹 신선호 회장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7] 그런데 양복이랑 앨범 광고에 뜬금없이 해동검도가 등장.[8] 운지천의 모델 최민식이 막판까지 고민하다가 운지천 측의 눈물 어린 호소에 로얄디 대신 라이벌 제품인 운지천의 광고 모델이 되었다.[9] 정작 이건 하이라이트로 나온 분량에서의 출연(1~3화 초반부)이다.[10] 그러나 훗날 스승과 제자는 나란히 범죄자 딱지를 붙이게 되는데 스승인 나한일은 불법대출혐의로 징역을 살게 되고 제자인 강지환은 성폭행 혐의로 연예계에서 완전히 매장되고 만다.[11] 실제로 한국에는 많은 라씨들이 행정상 나씨로 살고 있다. 라미란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나미란''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씨(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라'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라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라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라미란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나미란이 아닌 라미란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한 사항은 나 문서 내에 관계된 내용을 찾아 보면 알 수 있다.[12] 징역형을 살고 있는 중에 통보받았다고 밝혔다.[13] 1956년 2월 21일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출생. 1980년대에 활동했으며 여러 드라마와 CF모델로도 활동했다.[14] 1990년 4월 7일생의 배우인 나혜진이 그의 딸이며 2013년에 영화 롤러코스터로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