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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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벌
權橃

시호
충정(忠定)
본관
안동 권씨[1]

중허(仲虛)

충재(冲齋), 훤정(萱亭), 송정(松亭)
출생
1478년(성종 9) 11월 6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북후면 도촌리 도계촌
(現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 도계촌마을)[2]
사망
1548년(명종 3) 3월 26일 (향년 69세)
평안도 삭주도호부
(現 평안북도 삭주군)

1. 개요
2. 생애
3. 후손
3.1. 독립유공자
3.2. 현대 인물



1. 개요[편집]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중종사림파의 일원이었다.

2. 생애[편집]


1478년(성종 9)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북후면 도촌리 도계촌(現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 도계촌마을)에서 아버지 오선정(五先亭) 권사빈(權士彬, 1449. 9. 12 ~ 1535. 9. 23)[3]과 어머니 파평 윤씨[4] 사이에서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권사빈은 1472년(성종 3) 식년 생원시에 3등 48위로 급제했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9세 되던 1496년(연산군 2) 식년 진사시에 2등 15위로 급제했고, 30세 되던 1507년(중종 2)엔 증광 문과에 병과 2위로 급제했다. 이듬해인 1508년부터 예문관 검열(檢閱, 정9품), 춘추관 기사관(記事官, 정9품), 승정원 주서(注書, 정7품), 홍문관 부수찬(副修撰, 종6품), 경연청 검토관(經筵廳檢討官, 정6품), 사간원 정언(正言, 정6품), 경연청 시독관(侍讀官, 정5품), 홍문관 부교리(副敎理, 종5품)·교리(校理, 정5품), 사헌부 지평(持平, 정5품)·장령(掌令, 정4품), 경연청 참찬관(參贊官, 정3품), 승정원 도승지(정3품) 등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승진을 거듭하다 1519년(중종 14) 2월 13일 예조 참판(종2품)에 올랐다.

그러나 1519년 11월,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직첩을 빼앗기자, 안동대도호부 내성면 유곡리(現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로 낙향해 이곳에서 15년 동안 은거했다. 1533년(중종 28) 3월 27일 직첩을 돌려받았고, 같은 해 6월 15일 밀양도호부사(密陽都護府使, 종3품)에 임명되면서 조정에 복귀했다. 이후 한성부 좌윤(左尹, 종2품), 경상도 관찰사(종2품), 형조 참판(종2품), 경연청 특진관(特進官), 병조 참판(종2품), 한성부 판윤(判尹, 정2품), 병조판서(정2품),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정2품),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정2품), 의정부 좌참찬(左參贊, 정2품), 예조판서(정2품), 비변사 당상(堂上), 의정부 좌찬성(左贊成, 종1품),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정2품), 지경연사(知經筵事, 정2품) 등을 역임했다.

1544년 12월 9일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자 이듬해 5월 5일에 의정부 우찬성(右贊成, 종1품)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명종이 즉위한 뒤에도 빈전도감 제조(殯殿都監提調), 병조판서(정2품)에 임명되면서 중용되었다. 특히 을사사화 당시 윤임 일파를 숙청하는 데에 공을 세워 추성위사홍제보익공신(推誠衛社弘濟保翼功臣) 2등에 녹훈되고, 길원군(吉原君)에 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1547년(명종 2),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당했다. 이때 장남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 1518 ~ 1592. 4. 23)[5]가 사섬시 직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기에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고, 처음에는 낮은 품계의 관직이고 스스로는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며 윤허되지 않았으나, 여러 차례 탄핵 끝에 파직되었다.

그 뒤 1548년 3월 26일 유배지이던 평안도 삭주도호부(現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사망했다.

3. 후손[편집]



3.1. 독립유공자[편집]


  • 10대손 권재호(權載昊)는 권벌의 장손자 석천(石泉) 권래(權來, 1562 ~ 1617. 9. 28)의 3남 석계(石溪) 권석충(權碩忠, 1606 ~ 1694)의 7대손이다.
  • 12대손 권세연(權世淵)은 권벌의 장손자 석천 권래의 3남 석계 권석충의 9대손이다.
  • 12대손 권옥연(權玉淵)은 권벌의 장증손자 월곡(月谷) 권상충(權尙忠, 1593 ~ 1643. 12. 22)의 3남 선암(仙巖) 권홍(權霐, 1626 ~ 1699)의 8대손이다.
  • 13대손 권상경은 권벌의 장손자 석천 권래의 차남 운구(雲衢) 권세충(權世忠, 1594 ~ 1644)의 10대손이다.
  • 13대손 권태규는 권벌의 장손자 석천 권래의 3남 석계 권석충의 10대손이다.
  • 13대손 권상원(權相元)은 권벌의 장증손자 월곡 권상충의 3남 선암 권홍의 9대손이다.
  • 13대손 권상위(權相瑋)는 권벌의 장손자 석천 권래의 차남 운구 권세충의 10대손이다.
  • 13대손 권상익(權相翊)은 권벌의 장증손자 월곡 권상충의 3남 선암 권홍의 9대손이다.
  • 13대손 권차응(權次應)은 권벌의 5대 종손 하당(荷塘) 권두인(權斗寅, 1643 ~ 1719)의 넷째 아들인 삼정(三亭) 권빈(權薲, 1685 ~ 1753. 3. 8)의 7대손이다. 권효섭의 9촌 삼종숙(三從叔)이다.
  • 14대손 권경섭(權景燮)은 권벌의 장손자 석천 권래의 3남 석계 권석충의 11대손이다. 권세연의 손자이기도 하다.
  • 14대손 권명섭(權命燮)은 권벌의 4대 종손 권목(權霂, 1614 ~ 1671. 2. 3)의 여섯째 아들 설송(雪松) 권두응(權斗應, 1656 ~ 1732. 4. 5)[6]의 10대손이다.
  • 14대손 권영섭(權寧燮)은 권벌의 5대 종손 하당 권두인의 넷째 아들인 삼정 권빈의 8대손이다.
  • 14대손 권우섭(權宇燮)은 권벌의 5대 종손 하당 권두인의 넷째 아들인 삼정 권빈의 8대손이다. 권영섭의 맏형이다.
  • 15대손 권호기(權鎬基)는 권벌의 차남 석정(石亭) 권동미(權東美, 1525. 7. 15 ~ 1585. 3. 27)의 14대손이다.

3.2. 현대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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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야공파(僕射公派) 20세 木변 항렬.[2] 안동 권씨 복야공파(僕射公派) 집성촌이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바로 권벌의 아버지 오선정(五先亭) 권사빈(權士彬, 1449. 9. 12 ~ 1535. 9. 23)으로, 본래 안동대도호부 서후면 송파동(現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해 마을을 개척했다고 전한다.[3] 자는 자야(子野).[4] 윤당(尹塘)의 딸이다.[5] 자는 진경(震卿) 또는 공부(公溥).[6] 또다른 호는 대졸자(大拙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