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자습 바바자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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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의 군인.
2. 생애[편집]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농장 노동자로 일했다. 1925년 9월 노농적군에 징집됐으며, 먀스니코프 제병협동사령부 학교에 재학했다. 1926년 9월 폐교 때문에 자캅카스 보병사관학교로 전학갔다.
2.1.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41년 8월 제127소총사단 제395소총연대장으로서 스몰렌스크 전투에 참전했다. 1942년 6월 초 프룬제 군사대학에서 속성 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제3기계화여단장을 역임해 화성 작전에 참전했다. 이후 병력 정비 후 쿠르스크 전투를 지휘했다. 1944년 4월 26일, 소련 최고회의 법령에 따라 레닌훈장, 소비에트 연방 영웅 훈장을 수여받았다.
1944년 8월 25일, 비스와-오데르 대공세에 참전한 제11근위전차군단장으로 임명됐다. 독일 국방군이 점령한 여러 도시들을 탈환하며 보인 바바자니얀의 용기는 적기훈장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후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쟁취했기에 수보로프 훈장 1, 2등급을 수여받았다.[3] 베를린 공방전 당시 제11근위전차군단은 총 103대의 전차와 자주포, 262문의 야포, 62문의 박격포를 파괴하고 8450명의 장교와 병사들을 처치 및 포로로 잡았다. 베를린 작전 전까지 이오시프 스탈린은 바바자니얀의 부대를 약 15번 언급했다고 한다.
2.2. 전후[편집]
1945년 7월, 제11근위전차군단은 제11근위전차사단으로 감축됐으며, 1947년 1월 바바자니얀은 보로실로프 고등사관학교에서 공부한 뒤 1950년 9월 제2근위기계화군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1967년 9월부터 오데사 군관구 사령관을 역임한 뒤 로디온 말리놉스키 기갑사관학교 총장으로 임명됐다.
3. 사망[편집]
1977년 11월 1일 표트르 만드리카 병원에서 사망한 뒤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됐다.
4. 평가[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최고의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원수 4인방 중 하나로 꼽힌다.
5. 진급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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