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니누스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 258년 아버지 갈리에누스에 의해 카이사르에 지명되어 라인 전선으로 보내졌으나 260년 포스투무스의 난으로 피살당했다.
2. 행적[편집]
갈리에누스와 코르넬리아 살로니나의 차남으로, 형 발레리아누스 2세와 동생 마리니아누스가 있었다. 258년 먼저 카이사르에 선임되어 도나우 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형 발레리아누스 2세가 의문사하자, 갈리에누스는 그를 카이사르로 선임하여 갈리아를 관리하게 한 뒤 자신은 잉게누우스의 반란으로 혼란에 빠진 발칸 반도를 수습하고자 출진했다. 이때 그는 근위대장 실바누스의 보좌를 받았다.
260년 여름,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사령관 포스투무스와 실바누스는 약탈을 한껏 벌인 뒤 본거지로 귀환하던 유퉁기족(Juthungi)을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고 전리품을 확보했다. 두 사람은 곧 리품 분배 문제를 놓고 다투었다. 포스투무스는 부하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바누스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원칙이라며, 일단 갈리에누스의 차남 살로니누스에게 넘긴 뒤 살로니누스가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책무를 수행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병사들은 목숨 걸고 싸워서 쟁취한 전리품을 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들은 곧 반란을 일으켰고 포스투무스를 지휘관으로 추대했다. 실바누스는 아직까지 자신을 따르는 몇몇 병사들과 함께 살로니누스를 모시고 쾰른으로 피신했다. 실바누스는 그곳에서 살로니누스를 아우구스투스로 추대했는데, 이는 갈리아 방면 로마군을 회유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포스투무스를 받든 병사들은 이를 무시하고 쾰른을 포위 공격했고, 쾰른 시민들은 얼마 안가 백기를 들고 살로니누스와 실바누스를 포스투무스에게 넘겼다. 포스투무스는 두 사람을 곧바로 사형에 처한 뒤, 갈리아 제국의 건국을 선포하고 황위에 올랐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2 14:15:53에 나무위키 살로니누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