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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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장점
2.1. 엘리트 이력
2.2. 법무부장관 시절 정책
2.3. 비권위적 면모
2.4. 윤심과 당심의 지지
2.5. 타 대권주자 대비 호감도 조사에서의 우위
3. 복합적
3.1. SNS를 통한 마케팅 부재
3.2. 화술 및 화법
3.3. 선출직 경력 부재
4. 단점
4.1. 부정적인 여론조사 지표
4.2.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
5. 기타 변수
5.2. 더불어민주당과의 갈등



1. 개요[편집]


한동훈의 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을 정리한 문서다.


2. 장점[편집]



2.1. 엘리트 이력[편집]


강남 8학군[1]-서울대 법대-아이비 리그[2] 학력을 가졌다. 심지어 서울대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 진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병역도 군법무관 출신으로 깨끗하고[3], 검사 생활 내내 단연 두각을 드러낸 선두주자로서 법무부-대검-서울중앙지검의 '골든 트라이앵글' 내에서 근무하였고[4], 여러 정재계 거물들을 완벽하게 수사하고 죄값을 치르게 하여 특수통으로서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검찰 내의 헤게모니를 다루는 주요 정책 직위[5]에서 기획 능력까지 인정받으며 최연소 검사장 타이틀의 주인공이 되었다.[6]


2.2. 법무부장관 시절 정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동훈/정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시행령을 통한 검수완박 보완[7]추미애 장관 재임 중에 폐지됐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 부활 및 정식 직제화 ▲ 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 및 보이스피싱합동수사단 신설 ▲ 반부패·강력부를 반부패부와 마약·조직범죄부로 분리 등 검찰의 범죄대응 역량을 최대한으로 강화하고 있다.

또한 검찰 업무 이외에도 ▲ 교정직 공무원 처우 개선 ▲ 변호사시험 CBT 도입 및 장애인 응시자 편의지원 확대 ▲ 현대사 관련 문제 해결[8]국가배상 남성차별 철폐 ▲ 투자이민제 기준 상향 등 ▲ 스토킹처벌법 및 전자장치부착법 개정[9]사형 집행시효 30년 폐지 등 비검찰 업무에도 세심하게 신경써서 법무부 안팎에서 크게 호평받고 있다.

다만 어떤 정책들은 정부 단독으로 하기 어렵고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동훈 장관이 추진하는 정책들 자체가 논란이 심하지는 않지만, 여야 간 대립이 심할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한동훈에 대한 반감도 심하기 때문에 한 장관이 추진하는 정책들 중 일부는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2.3. 비권위적 면모[편집]


평소에 권위나 의전에 집착하지 않고, 주변인들과 아랫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언행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 장관은 취임 이후 법무부 직원이 장관의 관용차 문을 열어주는 의전을 없애고, 장관'님' 호칭을 하지 말고 공문서에도 '님'자를 뺄 것을 지시했다. 또한 미국 연방수사국 방문을 앞두고는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던 관례를 따르지 않고 급을 낮춰 비즈니스 클래스를 선택하기도 했다. #

법무부의 한 직원은 "한 장관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직원들에게 타라고 버튼을 눌러주는데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라며 "복도에서 마주치면 소속이랑 이름 물어보고 외워서 다음번에 먼저 인사해 주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우리 과 대부분이 한동훈 장관의 팬"이라는 글을 블라인드에 올리기도 했다. #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의원이 한 장관을 발언대로 부르자, 한동훈 장관은 "의원님, 한동훈 법무부장관 나와있습니다"라고 자신이 연단에 섰음을 알렸다. 이에 김 의원은 "네, 장관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질문을 이어갔다. #

또한 비 오는 날 국회 출근 중에 본인이 직접 우산을 들고 보좌진에게도 씌워주는 것도 화제가 되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기의 강성국 법무부차관이 받은 황제 의전이나,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입수보행하는 가운데 보좌진이 추 장관에게 우산을 씌워준 경우와도 대조된다는 평을 받았다. #


2.4. 윤심과 당심의 지지[편집]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만큼 국민의힘 주류인 친윤계의 암묵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여권 지지층 사이에서는 압도적 1위[10]를 기록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여러 차례 나왔다.

본선에 가서는 전체 민심의 결과가 중요하지만, 국민의힘 당내 경선은 당원투표 50% : 여론조사 50%로 치러져 당심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한동훈 장관이 현 상황처럼 당심에서 우위가 지속된다면, 나중에 공직선거에 출마할 때 당내 경선을 안정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2.5. 타 대권주자 대비 호감도 조사에서의 우위[편집]


정치인 호감도 1위 오세훈…2위 한동훈, 3위 홍준표 順

정치인 호감도 '톱3' 오세훈·한동훈·홍준표…비호감 안철수·이재명

한국갤럽이 2023년 9월 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상대로 9월 2주 차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15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정치인 호감 여부 조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호감도 33%, 비호감도 50%로 조사 대상 중 2위를 기록하였다.[11] 특기할 점은 이재명 비호감도 61%, 안철수 69%, 홍준표 55% 등 각 정당[12] 주요 대권주자에 비해 50%라는 매우 낮은 비호감도를 보였으며 호감도 또한 홍준표 30%, 이재명 29%, 안철수 20%에 비해 33%라는 매우 높은 호감도 결과가 나왔다.

3. 복합적[편집]



3.1. SNS를 통한 마케팅 부재[편집]


여야의 주요 대권주자들 중 유일하게 SNS를 활용하지 않는 인물이다. 페이스북은 그냥 계정만 있는 수준이고,[13] 인스타그램, 트위터[14] 등 타 SNS는 아예 계정조차 없다.

물론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도 있듯이 유명인들이 SNS로 논란이나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굉장히 많다. 정치권만 하더라도 조국처럼 자신이 트위터에 쓴 글과 모순되는 언행을 해 조롱거리가 되거나, 이준석처럼 페이스북에 당내 갈등을 생중계하고 타인을 저격하는 게시물을 자주 게시하는 갈등과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정치를 하며 안티와 비호감만 생성하는 등의 사례가 있는데,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SNS를 안 하는 게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정치인이나 윤석열 정부의 타 장관, 국무총리처럼 정부 정책이나 개인적 일정/행보 같은 내용을 담은 홍보 게시물조차도 아예 올리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한덕수 총리의 경우는 총리 임명 이후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해 정책, 일정 같은 홍보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SNS를 통해 부동산 및 교통 현안과 관련해 굵직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그의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선 인지도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적정한 마케팅이 매우 중요하며, 특히 30대 이하에선 인터넷 소통이 더욱 더 중요하고 60대 이상조차도 인터넷 이용률이 상승하면서 SNS 마케팅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SNS 홍보를 안 해도 되지만, 정치권에 진출한 후로는 SNS를 하는 것이 낫다. 괜히 홍준표, 이재명 등 대권주자들이 인터넷 소통을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보수 언론에서 윤석열의 후계자로서 한동훈을 자리매김하려는 입장을 견지하다보니 알아서 언론에서 띄워주면서 SNS 자체가 필요없는 상황이 됐단 점도 있다. 이는 윤석열에 대한 적대적 환경이 되면 마케팅의 부재로 이어지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법무부장관인 한동훈이 이를 위해 움직일 필요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3.2. 화술 및 화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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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장관의 발언이 온오프라인상에서 반복적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으며 <한동훈 스피치>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또한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질의응답을 할 때마다 매번 이슈에 오르며 지지층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친조국 성향 처럼회 소속 의원들의 공세에도 아주 침착하게 답하는 모습을 보였고, 법무부장관 취임 이후에도 대정부질문이나 법사위 회의 등에서 야당 의원들의 지속적인 강경한 질문에도 밀리지 않고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지자들이 평가하고 있다. 이에 화술이 뛰어나다거나 사이다 같다는 평을 받는다.



아주 유치한 논법을 계속 쓰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도개선을 물으려고 그랬더니 '문재인 정부 때 사과했나요?' 이렇게 한다든지.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패널로 참여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언 중


반대로 부정적 평가 측에서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화법이라고 주장한다. 간단히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사안에도 '말씀하십시오.'로 대답하며 국민의힘 안에서도 '너무 직설적'이라거나, '싸우러 국회 나온다는 느낌을 준다'는 평이 있다. 이재오 상임고문은 "한 장관이 정부의 무게를 실어 점잖게 답변해야 한다",“장관 자리에서 할 수준의 말들은 아니고 정치 패널로 나와서 할 만한 수준"이라고 평가 하기도 했다. # 현재 법사위에서 한동훈과 대립이 많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라디오에 나와 한동훈에게 유치한 논법을 쓴다고 개인적인 평가를 한 적이 있다.#

3.3. 선출직 경력 부재[편집]


검사, 법무부장관 등 공무원으로서 활동 경력은 충분하지만, 선출직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 없다. 따라서 경제, 외교안보 등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정치적/정책적 역량이 검증되지 않았다.

물론 정치 경력이 없어도 윤석열처럼 당선되는 것이 가능하지만, 당시 여러 상황이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15] 대통령에 당선된 케이스이다.

한편 법무부 장관으로 법무행정에 있어서 1년간 보여준 행정력과 국회의원들 대응에서 보여준 정무감각이 이미 행정가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 점은 여의도 국회에서 정당 활동 외엔 능력이나 경력이 전무한 속칭 정치낭인들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때문에 아예 국회 입성으로 정치질 등 나쁜 물 들지 말고 법무부 장관으로서 일하다 출마해주기를 바라는 국민 여론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본인의 의견이 아닌데다, 무엇보다 2027년 대선까지 3년이 남은 바 한동훈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정치 선언도 한 바 없으니 속단은 이르다는 평이 있다.


4. 단점[편집]



4.1. 부정적인 여론조사 지표[편집]




이 문서는 나무위키의 이 토론에서 본 문단을 존치하되 그 문단명을 '부정적인 여론조사'로 하는 것(으)로 합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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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에서 한동훈 장관에 대한 당대표 차출론이 나왔고, 이에 따라 당대표 출마 관련 여론조사가 시행되었다. 대권주자로서 당대표 취임은 선호도를 끌어올릴 중요한 기회이지만,[16][17]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힘 지지층에서 오차범위 내 부정적 여론과 나머지 모든 지지층에서 당대표 출마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

동일하게 한동훈 장관에 대한 2024 총선 마포을 차출론이 있었고, 이에 따라 마포을 출마에 대한 여론조사가 있었다. 대권주자로서 지역구 출마시 패배는 큰 흠이다. [18] 여론조사 결과 오차범위 내에 마포 을에서 8.3% 격차로 패배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2024 총선에 한동훈이 나온다면 뽑아줄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여론조사가 있었고,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국에서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가 우세했으며 연령별로도 7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이 높았다.[19] 위 문단과 마찬가지로 대권주자로서 총선 출마 후 패배는 큰 흠이 되며[20],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과 더불어 한동훈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대선 승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

4.2.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편집]


정계에서 활동하는 검사 출신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부정적으로 기울었다. 검사 출신들이 윤석열 정부 요직에 등용되는 비중이 증가하고, 거기에 국민의힘 총선 후보로 대거 공천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는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난을 하고 있으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 출신들이 너무 많이 나서서 국민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 #

윤석열이 취임 초기 여러 논란을 통해 지지율 급락 사태를 겪은 바 있다. 그나마 2022년 12월 이후 지지율이 어느정도 반등하긴 했지만 2023년 5~6월 현재도 긍정 평가가 30%대 초반~40%대 초반, 부정 평가가 50%대 중반~60%대 중반 사이를 왔다갔다 할 만큼[21] 윤석열 정부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높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최측근으로 볼 수 있는 한동훈도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17% 넘는 격차로 대패를 당하면서, 선거에서도 높은 정권심판 여론이 확인되었다.


5. 기타 변수[편집]



5.1. 22대 총선9회 지선[편집]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현재도 '소통령' 이미지를 갖고 있고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한동훈을 왕장관이라 칭하고 있으며 여론조사에서도 한동훈이 윤석열 정부의 최고 실세로 뽑히는 등 한동훈은 자타가 공인하는 윤석열 정부의 2인자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2023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 청년최고위원까지 친윤이 들고 가면서, 국민의힘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윤석열 정부의 중간평가인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갈릴 공산이 크다.

만약 해당 선거에서 선방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이긴다면 친윤 후보의 대표격인 한동훈이 비윤 후보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으나, 만약 직전 국회의원 선거마냥 참패를 한다면 직전 대통령 경선홍준표, 황교안처럼 [22] 비윤 후보들 보다 불리한 정국에서 시작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민주당도 문재인 정부 자체의 지지율은 높았으나[23],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대패하는 바람에 이낙연에서 이재명으로 주류 보스가 교체된 걸 감안하면[24] 이쪽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5.2. 더불어민주당과의 갈등[편집]


  •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장관이었던 추미애, 박범계채널A 사건을 명분으로 당시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연수원 등으로 수차례 좌천시키고 헌정 사상 이례적으로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했지만, 이동재 기자는 무죄가 확정되고 한동훈 검사장은 나온 게 없어 기소조차 실패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팀의 12번에 걸친 무혐의 의견에도 의도적으로 결재를 미루며 비판받다가 뒤늦게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


  • 법무부장관 취임 이후에도 민주당에서는 한동훈을 지속적으로 공격했지만, 오히려 민주당이 역풍을 맞은 적이 있다. 김의겸 의원이 제기한 술자리 의혹이 허위로 드러나는가 하면, 권인숙 의원이 비동의간음죄와 관련해 한동훈 장관에게 지속적으로 큰 소리로 화를 내면서 말을 끊고 "성범죄 수사는 해보셨냐"는 어이없는 항의를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25]

  • 한동훈 본인을 탄압했던 추미애[26]박범계는 자멸해버렸다. 그리고 이재명, 설훈 등 여러 민주당 정치인들이 검찰을 강력하게 비판했지만 온갖 혐의로 수사 중이거나 기소된 상태이다. 임은정과 같은 친민주당 성향의 법조인은 지방으로 좌천되어 버렸다.

  •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검수완박 법안의 처리 과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면서 법무부장관 명의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지만 각하되었다. 헌법재판소는 검수완박 법안이 법무부 장관의 법률상 권한을 제한하진 않는 만큼 한동훈 장관의 청구인 자격은 없다고 판단했다. # [27]

  •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한동훈에 대해 "자기 똑똑하고 자기 말 자랑하는 게 아니라 국회의원들 마음 상하지 않게, 민주당하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며 "답변할 때 '나는 사실대로 말한다'며 마치 잘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런 생각 갖고는 정치를 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 원로 정치인들의 한동훈에 대한 여러 평가에 대해 한 장관은 "정치적 처세술에 대한 이야기 같다"며 "그런 것 생각하지 않고 할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김남국 의원이 본인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한동훈 장관을 걸고 넘어지며 "개인의 민감한 금융 정보와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린 것은 윤석열 라인의 한동훈 검찰 작품"이라며 "윤석열의 실정을 덮으려는 아주 얄팍한 술수"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한동훈은 누가 코인 사다 걸리라고 협박했냐고 말했다.

  • 강경파 + 친조국 성향 민주당 초선들끼리 결성해 만든 처럼회 소속 의원들[28]과는 관계가 매우 험악하고 처럼회 멤버들과는 단 한번도 부드럽게 지나간 적이 없다. 23년 9월 1일에 열린 민형배 의원은 2017년[29] 특활비 집행자료가 비어있는데 없으면 무단폐기 아니냐며 법무부를 질책하기 위해 운을 띄웠지만 한동훈 장관에게 "이미 그건 이전부터 법사위에서 거론되었던거고 2017년 초반에 발생한 일이니 문재인 정부 당시 일인데 그때 부임한 자에게 물어야한다."고 역공을 당했다. 당연히 민형배측은 무례하고 자신의 질의를 방해한 행위라며 날을 세웠다. ‘처럼회’는 소속 의원들이 잇따라 범죄혐의에 대해 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받아 불명예 퇴진을 하고 있다.#

  • 2023년 11월 법사위에서는 그동안 한동훈 장관과 매번 충돌하던 박범계 의원, 김영배 의원과 한 장관이 서로를 격려해주자,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이 “왜 갑자기 분위기가 좋아졌나”라며 웃기도 했다. #

[1] 현대고등학교[2]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3] 공군 대위 전역. 소속 부대 영관급 간부를 혼자 인지수사하여 수뢰죄로 구속시킨 경력도 있다.[4] 경향교류 원칙(수도권-지방 근무 순환)에 따른 부산 근무, 조국 수사 이후 추미애, 박범계 장관에 의한 4연속 좌천을 제외하면, 골든 트라이앵글 내에서 단 1번도 벗어나지 않았다.[5] 법무부 검찰과 수석검사, 대검 정책기획과장[6] 한동훈 장관은 검사로서의 커리어 덕분에 '조선제일검(朝鮮第一檢)'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본인은 이런 주위의 평판에 겸손한 반응을 보인다.[7] 마약범죄, 위증죄 등 일부 범죄에 대한 검사의 수사개시권을 시행령으로 보장했다.[8] 인혁당 사건 피해자 과다배상금 이자 면제, 제주 4.3 사건 직권재심 확대, 장준하 사건 등 국가배상소송 상소 포기 등.[9] 스토킹범죄 반의사불벌죄 폐지, 온라인스토킹 관련 규정 신설, 스토킹 가해자 전자장치 부착 등[10] 반대로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는 유승민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해 전체적으로 합산을 하면 한 후보에 쏠리지는 않고 있다.[11] 파일:hogamdo.png[12] 안철수 : 단일화 및 합당, 이재명 : 민주당, 홍준표 : 국민의힘, 한동훈 : 무소속[13] 페이스북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면 항상 답장을 해줄 정도로 1:1 소통은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이는 홍보의 범주에는 들지 않는다.[14] 물론 트위터는 친민주당, 페미니즘 성향 유저들이 주류이며 이들이 인용 기능을 이용해 조리돌림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보수 계열 정치인들은 트위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15] 사회 갈등 유발, 부동산, 자영업자 손실보상 및 가계부채 등한시 등 각종 직면한 문제 개혁을 외면하고 본인 지지율만 챙기기, 자화자찬 등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비토 정서가 커져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정치 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16] 김무성의 경우 당대표 취임 전 통합 5위 정도에 머무른 선호도가 당대표 취임 후 28주간 1위가 되었다. # #[17] 대다수의 대권주자는 당대표의 이력이 있고 당대표는 공천권을 가지기 때문에 당 내 장악력을 키울 방법이기도 하다.[18] 황교안의 경우 그 이전 차기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한 결과가 있었으며 2020년 총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야권 1위, 통합 2위의 선호도를 보였으나 선거 패배 후 약 1/4로 줄어든 통합 5위가 되었다.##[19] 파일:result_han.png[20] 근거는 바로 윗 문단과 동일[21] 2023년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은 최고 43%, 최저 27%이고 부정평가는 최고 65%, 최저 52% 수준이다. 참고로 한국갤럽, 리얼미터, 여론조사 공정 등 정기적으로 대통령과 여야 지지율을 발표하는 여러 여론조사 기관의 지지율 발표를 모두 합쳐서 나온 결과이다.[22] 물론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인 경우는 탄핵 정국임을 감안하면 24%도 상당히 선방한 것이나, 부산,울산,강남3구에서 패하고, 경상남도도 서부경남 빨로 겨우겨우 이겼다는 건 엄연히 사실이였지만 그래도 대구경북은 지키고 안철수보다 앞섰기에 그나마 선방 이미지가 있었으나, 그 직후 지방선거에선 아예 서부경남 일부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선방했을 정도로 처참히 무너졌음으로써 그나마 가졌던 선방 이미지도 날렸다. 황교안인 경우는 그 이후 친황으로 세력이 교체되었을 때 한 때 자유한국당 당대표까지 할 정도였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태극기 부대와 손잡으며 X맨을 자처하고 그 이후 부정선거론까지 내세우면서 이미지가 엄청 깎였다.[23] 40%가 뭐가 높냐고 할 수 있는데, 정부 초중반이면 몰라도 정부 말기에 저 정도면 매우 높은 거나 다름없다. 임기 말 레임덕을 겪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부정평가도 55%로 매우 높았다. 거기에다 노무현 임기 말 지지율 27% 보다도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 끝난 정권이 이명박, 박근혜인데다, 문재인은 임기 말 지지율도 무려 40%나 됐었다.[24] 특히 당시 이낙연계의 경우는 피해호소인 등 망언들을 적립하면서 X맨을 자처한 것도 크다. 그 이후 이낙연이 이명박 박근혜 사면 발언까지 하고, 지지자들 중 일부는 트롤링도 함으로써, 완전히 비주류가 되었다. 또한 그외에도 김경수, 박원순, 안희정 등 쟁쟁한 다른 대권주자들이 알아서 고꾸라진 측면도 크다.[25] 반면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과는 비동의간음죄 관련하여 의견 차는 좁히지 못했으나 꽤 논리적인 논쟁을 이어가며 양 측 모두 반대 편에게도 호평을 들었다.[26] 근데 일각에서는 문재인이 추미애에게 훼방을 놨다는 시각도 있다.[27] 한동훈 장관과 별개로 검사, 국민의힘 의원도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검사의 청구에는 영장청구권이 침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 국민의힘 의원의 청구에는 법사위 통과 과정에서 일부 권한침해는 인정되지만 법사위, 본회의 가결은 일단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렸다.[28] 다만 이들도 2022년 국회의장 선거에서 김진표 의원을, 이듬해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이재명계인 박광온 의원을 지지한 거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29] 2017년이면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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