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그라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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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러시아의 군인이다.
2. 생애[편집]
기계 공장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5년 랴잔 고등공수지휘학교에 입학해 우등으로 졸업한 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리투아니아에 위치했던 제7근위공수사단 독립정찰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2.1.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편집]
1981년 프룬제 군사대학을 졸업한 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됐다. 1985년 제103근위공수사단장 역임 중 요충지를 성공적으로 점령해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2.2. 전후[편집]
1990년 12월부터 1991년 8월까지 공수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라초프는 총 647번의 낙하산 공중강하, 8번의 포탄 피해를 경험했다. 1991년 8월 19일 국가비상사태위원회 법령에 따라 제106근위공수사단의 사단장에 부임했고, 모스크바의 주요 시설 보호를 담당했다.
2.3. 8월 쿠데타[편집]
1991년 8월 20일 오후, 보리스 옐친 측에 합류하며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출했다. 이후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령에 의해 상장으로 진급한 뒤 소련 국방부 제1차관으로 임명됐다.
3. 사망[편집]
2012년 9월 12일 밤, 그라초프는 심각한 상태로 비시넵스키 중앙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고혈압과 뇌 관련 질환이 드러났는데, 의료진들은 마약 투여 여부를 고려했다. 동월 23일, 비시넵스키 제3중앙군병원에서 65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됐다.
4. 평가[편집]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시절 한정 훌륭한 사령관이었다. 그라초프는 옐친을 지지했기 때문에 요직에 앉은 것뿐이다.
이고르 로디오노프 대장
제1차 체첸 전쟁 당시 그라초프는 3개 사단급 무기와 장비를 전장에 내버려두고 부대를 후퇴시켰다. 손실로만 따지자면 군사 범죄급이다. 이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드미트리 야조프 원수
5. 진급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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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rachov, Grachyov로 표기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