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쾨이 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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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실바니아 공
퇴쾨이 임레
Thököly Im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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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퇴쾨이 임레
(Thököly Imre)
출생
1657년 9월 25일
헝가리 왕국 케슈마르크[1]
사망
1705년 9월 13일 (향년 47세)
오스만 제국 이즈미트
재위
상헝가리 공국의 공작
1682년 ~ 1685년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공작
1690년 9월 22일 ~ 1690년 10월 25일
배우자
옐레나 즈린스키 (1682년 결혼 / 1703년 사망)
자녀
에르제베트
아버지
퇴쾨이 이슈트반
어머니
줄러피 마리어
형제
커털린, 마리어, 에버
종교
루터교회
서명
파일:퇴쾨이 임레 서명.svg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트란실바니아 공국헝가리인 공작이자 헝가리의 독립 운동가.

2. 생애[편집]


부친이 레오폴트 1세에게 역모죄로 처형된 것에 반발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을 상대로 상 헝가리[2]에서 봉기를 일으켜 오스만 제국파디샤 메흐메트 4세에게 을 포위해 줄 것을 요청해 제2차 빈 공방전이 발발하게 만들었으며 크로아티아인 귀족인 옐레나 즈린스카(Jelena Zrinska 1643~1703)와 결혼해 크로아티아 왕국의 귀족 가문인 즈린스키 가문의 지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빈은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구원군에 의해 포위가 풀렸고 이후 대튀르크 전쟁이 일어나 오스만 제국군은 수세에 몰렸다. 1690년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공작으로 선출되었으나 오스트리아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이 체결되어 오스만 헝가리와 트란실바니아 공국은 합스부르크 제국에 병합되었다.

이후 헝가리 독립을 꾸준히 시도하다 실패로 돌아가자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했고 1705년 이즈미트에서 사망했다.

3. 기타[편집]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Hősök tere) 14인의 동상 위인 중 1명이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에 반발해 쿠루츠 봉기를 일으켰던 라코치 페렌츠 2세의 양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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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슬로바키아 케주마로크.[2] 현재의 슬로바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