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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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기와 학창 시절
2. 외교관 경력
3. 탈북
4. 연구기관인 및 정치인 경력
4.2. 21대 총선 당선 이후
4.2.1. 김정은 신변 이상설 관련 행보
4.4. 2020~2021년
4.5. 2022년
4.6. 2023년


1. 유년기와 학창 시절[편집]


1962년 평양시에서 태어났다.

망명 초기에는 그의 아버지가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라고 알려졌으나, 국가정보원에 의해 태병렬의 아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거기에 2016년 12월 27일 통일부 출입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태병렬 인민군 대장쪽 집안은 아니라고 부정한 바 있다. 태영호의 집안은 엘리트 가문이 아니지만[1], 부인은 엘리트 가문 출신이다.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오백룡의 집안이고, 아버지는 김일성정치대학 총장을 지낸 인민군 중장 오기수다. 하지만 오기수는 1990년대에 숙청되어 한직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태영호 자신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장남인 큰할아버지와 달리 땅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해 빈농으로 살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군이 북중국경으로 후퇴할 때 대부분의 마을 당원들은 같이 후퇴하지 않았지만 태영호의 할아버지는 후퇴하고 돌아와 핵심계층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항상 1-5등을 한 태영호는 출중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교관의 길을 걷는다.[2]

열심히 노력한 덕에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북경외대부속중학(北外附屬中學)에서[3]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고, 그 덕에 각종 외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5년제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얼마 후 그는 곧바로 김정일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통역으로 선발되어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그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전담통역 후보로 선발되었다는 이는 자신이 아니고 먼저 덴마크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김일성의 덴마크어 통역관이 된 하신국이라고 한다. 그 후 북경외대 영문학과 (北外英語系)[4]에서 4년간 재학 후, 졸업하여 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주간오도신문:"김정은을 배신한 나는 탈북민 태영호다"

이 즈음 평양국제학생축전임수경 방북 사건이 터져서 외교부에 근무하던 태영호도 차출되어 행사에 나갔다. 제대로 된 대학생이 부족해 외교부의 젊은 직원까지 동원한 것. 그때 외교부 동료[5]를 통해 같이 차출된 졸업반 여학생 하나를 소개받았는데, 그렇게 해서 만난게 지금의 아내라고.[6]


2. 외교관 경력[편집]


1996년부터 주 덴마크 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7]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덴마크 시절 영화 태백산맥을 보고 남로당을 다루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의 증언

이후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곧 귀국해 EU 담당 과장을 거쳐 2006년경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파견되었다.


영국 런던 방송채널 ITVX의 루크 한라한 기자가 취재한 북한대사관 내부. 영상 초에 자세히 보면 태영호 공사가 보인다.
국제 외교무대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그가 40세인 200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부터이다. 이때 그의 직책은 서구라파국(외무성 8국)에서 EU를 담당하는 과장 겸 구주국장 대리였다.

유럽런던 등지에서 북한의 상징체제와 김일성 · 김정일 우상화를 선전하는 등 북한의 홍보에 적극 앞장섰다.[8] 2015년 5월 김정철이 런던 에릭 클랩튼의 공연장을 찾았을 당시 수행하기도 했다.


3. 탈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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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대한민국 만세!"

2016년 12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 2017년 태영호가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김정일 말기 때부터 북한 정권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정은이 승계하자 뭔가 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가졌지만 크게 실망했다고 증언했다. 몇년 간 탈북 준비를 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김정은이 승계하고 1~2년 정도 뒤에 탈북을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영호는 가족들을 데리고 2016년 7월 망명길에 올랐으며, 제3국 망명 신청을 하고 2016년 8월 17일 한국에 입국했다. 원래는 10년 간의 영국 공사 활동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귀순 소식이 보도되자 정부는 8월 17일 오전까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미 입국했지만 안전과 안보를 위해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외신과 몇몇 기자들의 잘못된 기사로 인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급하게 발표를 했다고 한다. 박근혜가 태영호의 탈북을 미리 알고 있어서 광복절 축사 때 주민 말고도 북한 당국 간부도 따로 언급했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태영호가 주재하였던 영국UN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북한과 상호 대사·국방무관을 파견한 유일한 국가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영국이 미국의 최우방국 중 하나인 것을 감안하여, 미국의 대북정책을 가늠할 때에도 영국의 반응을 가장 먼저 살핀다. 북한의 1차 핵실험 당시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또한 영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했을 정도. 또 영국은 625 당시 UN군으로 참전했던 만큼 미국 다음으로 한국에게는 소중한 우방국들 중 한 곳이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가장 신뢰할 만한 외교관을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 주 영국 북한 공사로 근무하였던 태영호가 탈북한 것이다.

  • 북한을 떠나겠다는 생각이 든 후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처음 접촉한 뒤, 미국 요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남한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후 7월 어느날 새벽 영국 공군기지를 떠나 독일의 미군 기지인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한국행 A330 여객기를 타고 들어왔다.

  • 태영호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탈북의 가장 직접적 동기는 아들들의 강제귀국이었다. 북한의 해외파견근무자들은 자녀가 둘이면 하나는 반드시 북한에 두고 가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는데, [9]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이 제도가 완화되었으나, 얼마 뒤 김정은의 변덕으로 다시 큰아들과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게 되자 탈북을 결심했다고 술회하였다. 동년 12월 국회 정보위에서도 "체제에 대한 환멸감이 커져 귀순 결심을 굳혔다"고 밝혀 한 번 더 귀순동기가 확인되었다.[10] #


  • 2016년 12월 23일부터 조사가 끝나고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내에서의 사회 활동에 나서게 된다. 2016년 12월 국방위 의원들과의 회견에서 그는 북한의 지속적인 신변 위협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하여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천명했다. 그리고 "북한에서 자기 자신을 두고 자금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이 무서워 도주했다고 비난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의 망명에 북한 측이 그런 말을 할 것을 대비하여 미리 대사관 내 자금 현황을 문서로 정리하고 그걸 사진까지 촬영해 놨다"고 말했다.#

  • 촛불시위에 대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과 청문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 #2

  • 2016년 12월 29일 주성하 기자와 이만갑 측과의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만세는 노예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에서 취한 제스처이며, 원래 공항에서 하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없었고 주변에서도 말려서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연설단이 없어서 못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기자 간담회가 있어서 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만세 이후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환영 댓글보다는 공개 장소에서 만세를 한 것이 누군가가 시켜서 한 거냐는 내용 일색이라는 것에 제법 놀랐다고 한다.#


4. 연구기관인 및 정치인 경력[편집]


2017년부터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영 대사가 교체되어 최일 외무성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최일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북한 김씨왕조가 핵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는 유고 내전 때 미군이 폭격하는 것을 보고 북한의 급변상황시 이처럼 미국이나 한국의 군사적 개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그런거고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 구조상 암살이나 군사쿠데타는 거의 불가능하고 내부 봉기가 현실성있다고 했다.[11]# 그리고 1994년 북핵위기를 벗어나는 데 결정적으로 맺은 제네바 합의에 대해서 빌 클린턴과 김정일의 사기 합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태영호의 가족들은 북한의 선전에 이용되었다.# 그리고 탈북 이후 첫 공식 방미에서 미 하원 외교위원회서 김정은 정권의 목표는 핵 개발 완료한 다음 미국과 협상을 벌어서 협상 대상 중 주한미군이 철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CNN에 출연했다.#

2018년 5월 자유한국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이 태영호를 국회로 초청해 강연을 했으며 이 강연을 문제삼아 북한에서는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했다. # 그리고 김정은을 비판하는 내용의 저서를 낸 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사직하였다.# #

저서에서도 언급한, 전쟁 당시 월남했던 5촌 친척과도 만났다고 한다.#


2018년 8월 15일, 보수진영 건국절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탈북 직후 기자회견에서의 만세를 또 보여주었다.

2019년 남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 "북한은 지난 30년간 동일한 대화 패턴을 거듭해왔다", "지금으로선 비핵화 의사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2019년 6월부터 국민통일방송에 태영호의 북한매체 읽기를 주마다 내보내고 있다. 이전 2018년 7월 ~ 11월 칼럼을 내던 것의 연장. 2019년 말일까지 기고하였고 2020년부터는 후술할 정치활동으로 중단되었다.

2019년 9월 현재에는 탈북자들과 함께 '남북함께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하여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주로 대학교, 보수단체, 교회 및 미국, 영국, 호주 등 영미 국가 등을 돌면서 강연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강연활동도 하면서 틈틈이 3층 서기실의 암호의 후속작의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며, 북한의 주체사상기독교 등 종교와의 공통점을 드러내는 저서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19년 9월 19일, 태영호 前 주영 공사가 대만 타이베이를 찾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관련하여 미국 타임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여기에서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에서도 20년 내에 홍콩과 비슷한 시위가 일어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기사

2020년 1월 3일, 유튜브에 태영호TV 채널을 개설했다.


4.1. 21대 총선 출마[편집]


2020년 2월 10일 자유한국당 입당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권이 탈북 선원을 강제로 송환한 것을 보고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 입당 다음날 그는 총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21대 총선에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사 그는 자신이 그동안 여러 대외 활동을 통해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알려주려고 했지만, 현 정부의 대북정책의 방향은 여전히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그의 출마선언문에서 밝혔다. 또한 한국 사회에 남북통일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하다는 것이 대한민국에 정착하면서 관찰한 것 중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출마가 북한에 자유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라는 대안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태영호 출마선언문

북한에서 암살을 위해 사람을 보낼 수도 있기 때문에 유세 때는 경찰의 호위를 받았다. 주민등록상 이름인 '태구민'으로 출마한다고 밝혔다. 기사 신변 문제로 이름을 태구민으로 하였으며 구원할 구(救)에 백성 민(民)자를 써서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구원해보겠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새터민들이 자신의 주민등록상 이름을 분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건, '북한 정권이 사주한 보복범죄 내지 친지를 이용한 협박 위협' 때문이다. 이한영 암살 사건이나 황장엽에 대한 지속적인 암살 시도라든지 간혹 새터민들이 북한 정권으로부터 재입북 회유 내지 협박을 받는 사례를 다룬 뉴스들을 보면 이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2020년 2월 26일, 북한 매체에서는 "대결광신자들의 쓰레기 영입 놀음"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러한 인간쓰레기들을 북남대결의 돌격대로 내몰려는 것은 민족의 통일지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 "우리 공화국에서 국가자금 횡령죄, 미성년 강간죄와 같은 온갖 더러운 범죄를 다 저지르고 법의 준엄한 심판을 피해 도망친 천하의 속물, 도저히 인간 부류에 넣을 수 없는 쓰레기"라고 미래통합당에 영입된 태영호를 맹비난했다. 같은 탈북민 출신으로 미래통합당에 영입된 지성호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된 건 덤. #

2020년 2월 26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강남구 갑 지역구로 전략공천되었다.

이후 지역구 현역 의원인 이종구 의원[12]에게 부동산, 세금 등 강남의 현안에 대해 듣고 시, 구의원들에게 강남의 현 상황과 코로나 사태 대처방안 등에 대해 보고를 받고 상의하는 등 본격적인 지역구 활동에 나섰다. 더불어 강남스타일로 대표되는 한국의 자유시장경제의 우수성에 대해 역설하며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교과서와 매스컴을 통해 간접적으로 밖에 경험하지 못한 사회주의 국가기획경제에 대한 허구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살았다. 대한민국의 자유시장경제체제가 북한식 기획경제체제로 변질되는 것을 막겠다"고 말하여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

또한 맨큐의 경제학 번역자로 미래통합당 + 미래한국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꼽히는 김종석 미래한국당 의원이 그의 경제고문을 맡기도 했다. 김종석 의원이 자신이 번역한 맨큐의 경제학 도서를 태구민 후보에게 직접 증정했다. #

한편, 김종인 전 의원이 미래통합당의 선대위원장직을 맡는 조건으로 강남구 갑의 태영호 공천 철회를 요구하면서 논란이 됐다. 김 전 의원은 인터뷰를 통해 태영호 공천은 국가적인 망신이며 태영호가 강남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면서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으며,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로 출마하는게 더 정상적이라고 비판했다. # 이에 태영호는 3월 13일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본인은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인데 선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고, 막말을 한 적도 없고, 뇌물 수수로 실형을 받은 적도 없다며 강남 갑 공천이 잘못된 이유를 국민적 눈높이에서 밝히지도 못하면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뇌물 수수로 실형을 받은 적도 없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이유는 김종인 전 의원이 지난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뇌물수수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었던 전력을 일종의 돌려까기 형식으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종인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에 임명되고 태영호와 화해했으며 서로 협력하기로 다짐하였다. #

2020년 3월 28일 박진 강남구 을 후보자, 유경준 강남구 병 후보자와 함께 강남 어벤져스를 결성했다. 태구민은 통일·북한인권전문가, 박진은 외교·안보전문가, 유경준은 경제전문가라고 한다. #

태영호(태구민[13]) 후보는 앞서 언급한 보수 일각의 회의론의 가능성을 감안하면 당선을 위해 이방인과 5선 도전 정치인[14]의 대결이 아닌, 양당의 대결로 선거 판세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필요했다. '자유를 향한 용기'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미래통합당의 검증을 받았음을 강조하여 보수 유권자의 신뢰를 얻고자 했다. 여기에 지역 주민의 연락을 받고 직접 찾아가 민원을 듣는 활동을 하는 등 소통에도 힘썼다.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후보도 인정한 만큼 지역구에 관한 경제 공약은 비슷했는데, 김성곤 후보는 지역의 민심을 반영하고자 1주택 종합부동산세 감면과 같은, 더불어민주당의 입장과 다르게 볼 여지도 있는 공약을 내세웠다. 태영호 후보는 이에 맞서 김성곤 후보의 공약은 정부 여당의 당론에 위배되며, 따라서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게다가 스스로 김성곤 후보와 경제 공약이 비슷함을 강조하여, 지역구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김성곤 후보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여기에 경제가 선거 승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지역 현안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하였다.

대북 문제에 있어서는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본다.'는 보수 유권자에 맞는 대북관을 내세웠다. 탈북 직후부터 꾸준히 보수 유권자에 맞는 대북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 경력은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 자신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 자신이 선거 운동 이전에 만든 '태영호의 남북동행포럼'이라는 블로그나 '태영호 TV'라는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의 내부 정보를 잘 아는 자신이 합리적인 대북 정책을 세울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후술하였듯 선거 과정 중 상대 후보의 네거티브 공세가 있었으나, 보수 유권자의 마음을 돌릴 정도로 정교하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켰다는 의견도 있다.[15]

당선이 유력해지자 MBC 선택 2020에서 탈북민을 위해 어떤 입법 활동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30대 후반에 북한에서 내려오신 분들이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등록금을 면제해주는 법안을 발의하고 싶다'고 밝혔다. 현행법령[16]상 새터민은 만 35세 이전에 대학에 입학하면 국립대의 경우 등록금을 전액, 사립대의 경우 반액 지원받을 수 있다. 이 지원 범위를 30대 후반까지 넓히겠다는 뜻이다. '잔류를 희망하는 새터민들의 강제 북송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내용의 입법을 하겠다'고도 밝혔다. #

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후보를 더블스코어급[17]으로 크게 꺾고 당선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새터민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조명철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새터민 국회의원 그리고 유일 평양 출신 제21대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18] 더불어 강남 어벤져스 팀도 모두 당선되었다.

당선이 확실시되자 태 후보는 선거사무실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태 후보는 "2016년 제가 대한민국으로 올 때 남은 생을 대한민국을 위해 바치겠다고 다짐했다"며 "대한민국은 제 조국이고 강남이 제 고향"이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

제21대 국회에서 희망 상임위로 외교통일위원회를 밝혔다. #


4.2. 21대 총선 당선 이후[편집]


탈북민들 중 최초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태영호 전 공사에 대해 서방의 주요 외신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더불어 북한의 입장이 어떨지도 궁금하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 보도 BBC 보도 북한에서는 이를 불쾌하게 여기고 있으며, 대북 정보통에 따르면 북한 내에서 태영호의 이름이 금지어가 된 상황이고 동명이인인 경우에는 아예 개명까지 강요당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

다만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초의 탈북자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은 대한민국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의의가 크다. 태영호와 정반대의 위치의 인물로 새정치국민회의 고문 출신 오익제[19]가 있는데, 그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었다지만 어디까지나 일당제 국가의 거수기에 불과했다.[20] 대한민국은 북한처럼 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해보기 위해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의를 반영하기 위해 선거를 하며, 정부와 대립하는 당의 인물도 당선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자유민주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북한에 알려주려는 것이 그의 총선 출마 의도 중 하나였다.

지역구 관리와 관련해서는, 아무리 이종구 의원에게 코칭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지역을 잘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도 많다. 보수 내에서도 회의론이 나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즉 태영호의 정치적 처지와 위상은 인정한다 해도, 과연 그것이 지역구인 강남구 갑 지역의 이익 및 성향, 나아가 대한민국 국정 전반에 얼만큼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태영호의 총선 기간 토론 영상을 보면 민생당 정동희 후보가 강남 갑 지역 현안 관련 질문을 하는데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 월간조선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국회에 가면 종부세 개정을 위해 일차적으로 미래통합당의 강남갑 당협과 ‘숨은 보수’를 조직해서 광화문광장과 서울시청 앞으로 가서 드러누울 거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이에 보수 성향인 홍성걸 교수는 표현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한편 "그렇게 하면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고 그만큼 자기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얘기한 거일 거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선거를 거치면서 강남구 갑 주민들은 점차 태영호 후보에게 마음을 연 듯하다. 진보 성향이 강한 언론인 오마이뉴스의 취재에 따르면, 압구정 한양아파트의 한 60대 유권자는 "맨 처음 통합당 태구민 후보를 보고 왜 저런 사람을 공천했나 불만이 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강남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잘 알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보여 반감이 줄어들었다"라고 말했다. # 실제로 태영호가 지역구의 학동공원이나 도산공원 같은 데 가면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1 #2 #3

태 당선인은 4월 20일 월요일 압구정5지구 재건축 추진위로 갔고, 전 강남구청장인 권문용 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재건축 관계자들 앞에서 향후 의정 활동 방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이 자리에서 "재건축은 민원 거리가 아닌 경제 성장의 동인으로 봐야 한다"며 "단순히 집을 헐고 짓는 차원을 넘어 4차산업혁명과 스마트시티 연계 추진을 통해 대한민국 건축에 신성장 동력을 제공할 핵심 키워드"라고 밝혔다. #

탈북민 사회에서는 탈북민 사회 전체의 쾌거로 여기며 기뻐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남북에서 모두 엘리트로서의 삶을 살았던 태 당선인이 대다수 탈북민의 삶을 알지 못할 거라는 회의론도 있다고 한다. #


4.2.1. 김정은 신변 이상설 관련 행보[편집]


4월 21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에 대해 "김씨 일가의 신변인 북한에서 국가적 극비 사안으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은 물론이고 최고위 간부들도 거의 알 수 없기 때문에 외국 언론이 정확히 보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다만 북한 측이 해당 의혹에 대해서 1주일째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4월 23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지도체제 가능성에 대해 “(현 체제를) 받들고 있는 세력은 다 60·70대로 그들의 눈으로 보는 김여정은 완전히 애송이”라며 “김여정 체제가 김정은 체제처럼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다른 하나의 옵션으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김평일이란 존재”라며 동생 김여정이 아닌 숙부 김평일이 지도자에 오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대해 주성하, 고영환 등 다른 탈북민 출신 활동가들과 해외 전문가들 및 정세현 前통일부장관은 김평일이 김정은을 대체할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4월 26일부터 국가정보원 출신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태영호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각자의 페이스북 상에서 설전을 주고 받았다. # 4월 26일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강 이상설에 휩싸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의견을 말한 태 당선인을 향해 판단의 전제는 신중해야한다면서 "그분이 무슨 정보가 있는가. 있으면 스파이"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 이에 대해 태 당선인은 4월 28일 자신은 국익을 위해 북한에 대한 질문에 답했을 뿐이며, "'(북한 핵심)정보가 있으면 스파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저를 비방하는 일부 정치인의 행태를 보면서 ‘이게 정치인가’라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 이에 김 의원은 '제가 태 당선자를 믿지 않는 것은 정치 때문이 아니라 근거도 없이 혼란을 가중시키는 언행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태 당선인은 "탈북 정치인은 입 닫고 살아야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과연 이것이 제가 아는 자유민주주의가 맞는지 모르겠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 상황에 대한 여러 주장과 분석에 귀 기울이면서 급변하는 한반도와 이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에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도 이런 취지에서 나름의 분석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4월 27일에는 CNN과 인터뷰를 가졌다. 기사의 제목은 '전직 북한 외교관이 김정은을 둘러싼 루머는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다고 말하다.'[21]이다.CNN 원문 기사 이 인터뷰의 내용은 김정은의 최측근만이 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김 위원장이 수술이나 무언가를 받았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날 수 없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38노스의 김정은 전용열차가 찍힌 원산의 위성사진은 위장전술일 수 있다는 주장도 하였다. # CNN의 기사에서는 태 당선인이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날 수 없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는 해설[22]을 하였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의 태양절(김일성 생일) 참배엔 무조건 나와야 한다. 김씨 일가가 김일성 참배를 안 한다는 건 크리스천이 크리스마스를 그냥 지나치는 것과 같다. 사진 한 장 찍는 건 일도 아닌데 그것도 못 했다는 건 일어설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라는 근거를 들었다.

2020년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낸 사진이 5월 2일자 조선중앙방송에 공개되며 지성호 당선자 등 신변 이상을 지지한 사람들과 함께 비판받았고, 사과했다. 자세한 내용은 태영호/논란 문서 참조.


4.3. 21대 국회의원[편집]



4.4. 2020~2021년[편집]


의원 임기를 시작한 후에는 국무총리급에 준하는 최고 수준 경호를 받고 있다. 총기를 소지한 경찰들이 교대로 24시간 경호하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식사 때는 물잔까지 검사한다고. 정확한 경호 규모는 국가 보안 사항이라고 한다. 의원실을 의원회관 꼭대기층에 배정받았는데, 이 역시 높은 곳일수록 안전하기 때문이다. 회의장에 참석할 때도 밖에서 늘 경호원들이 대기하고, 이동할 때도 여러대의 차량을 한꺼번에 움직여 태영호가 정확히 어느 차에 탔는지 모르게 한다. #

'태영호와 함께하는 입법 프로그램'(태입프)을 개설해 지역 청년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1 #2 #3 21대 총선에서 60대 이상에선 확고한 지지를 받았지만, 젊은 층에선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를 받았기에, 의정활동의 최우선순위를 2030에 다가가는 것으로 정했다고 한다. 태 의원은 "젊은이들이 의원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은 단연 입법 아니겠나. 입법활동을 같이 해보자고 SNS에 공지했더니 상당한 청년들이 모였다"며 "태입프는 참여 청년들을 5개조로 운영한다. 1조가 머리를 맞댄 결과가 1호 법안"이고 설명했다. 이후 태입프가 법안 발의 등의 의정활동과 관련해 태 의원의 꾀주머니 역할을 하고 있다. #

2020년 6월 5일, 1호 법안으로 1세대 1주택자 종부세 제외 법안을 내놓았다. 태 의원은 "1가구 1주택이나 납세의무자가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택은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처분하지 않는 이상 미실현 이익에 불과하고 투기 등 가격안정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볼 수 없기에 종부세 과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안은 태입프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후 종부세 법안을 더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

2020년 6월 12일, 교복 선정과 학교 급식 평가 시에 학생들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

2020년 6월 15일, 매크로 등을 악용해 암표를 판매하는 일명 '플미충'들을 막는 공연법 개정안 및 사기 전과자들이 대중문화 예술기획업을 통해 연습생이나 소속 연예인에게 사기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막는 내용의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

같은 날, 상임위 배정에서 자신의 희망대로 외교통일위원회에 배정되었다. 옆 지역구의 박진 의원과 같은 상임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2020년 6월 18일,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을 기존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1주택자에 대해선 기존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종부세 관련 2호 법안이다. #

같은 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에 대해 미래통합당이 북한에 손해배상을 청구키로 하고 법안 마련에 들어갔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세금 700억 원을 들여서 만든 국유재산이기 때문이다. 태영호 의원이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할 예정으로, 태 의원은 국회입법조사처에 입법화 방안을 의뢰했다. 과거 오토 웜비어 사건처럼 김정은의 은닉재산을 찾아내 압류하는 방식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

24일에는 의원회관 2층에서 청년들과 함께 6.25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에는 무작위 신청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시작 전에 양 옆 학생들[23]과 피스트 범프를 하는 등 밝게 토론을 이끌어갔다고 호평을 받으며 본인도 상당히 만족한 듯 보인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GTX-A노선이 자신의 지역구의 청담동을 지나가는데, 주민들이 시민 안전과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이에 6월 24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에게 편지까지 보냈다. 또한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주민의견 수렴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

2020년 7월 15일, 자동차 교환환불제도(이른바 '한국형 레몬법')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국형 레몬법은 고객에게 인도된 지 1년 이내이며 주행거리가 2만 km를 넘지 않은 새 차에서 고장이 반복되면 제작사가 이를 교환, 환불하도록 하는 제도로,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되었지만 강제성이 없어서 '제조사가 안 하면 그만'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24] 이에 따라 해당 내용을 삭제하고 '국내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는 즉시 적용'으로 문구를 수정해, 대한민국 시장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면 무조건 이 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

2020년 8월 5일 폭우 사태로 피해를 입은 충북 충주시단양군을 방문해 복구 봉사활동을 했는데,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봉사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봉사활동에 참여한 통합당 당원들 중 통합당 지도부에 속하지 않은 의원은 태영호가 유일했다. 수해 복구 봉사활동을 했는데 옷이 깨끗해 구설에 오른 심상정과 대조된다는 평. #


파일:2020외통위국감.jpg

2020년 10월 8일,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통일부 국정감사에 대해 기자들한테서 별점 5점 만점에 5점으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25] 무연고 탈북 청소년들의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는 실태를 지적하며 이인영 통일부장관에게 "탈북 청소년들에게 냉면 사주시라"고 했고, 이 장관은 "신년 떡국이라도 사겠다"며 제도개선을 약속했다. 또 북측이 우리나라를 '남조선'으로 표기하는 것을 남북협의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고, 이 장관은 "남북 명칭 통일 문제로 확대할 수 있겠다"고 답했다. #

2020년 12월 1일, 본인이 예전에 발의했던 'n번방 사회복무요원 처벌법'(병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사회복무요원이 복무 중 취득한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해당 정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정서적·성적 폭력행위나 가혹행위를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 다음날에는 공연법 개정안[26]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

2020년 12월 13일에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 반대를 위하여 2020년 국회 필리버스터에 참여하였다. 무려 10시간 동안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본인이 직접 만든 242장 분량의 PPT를 가지고 북한의 실상을 설명했다.영상 태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거의 북한학 강의 수준이어서 북한학 1타 강사 같다는 평가도 나왔다. #


4.5. 2022년[편집]


2022년 1월 6일, 이준석 당대표의 탄핵 결의를 두고 벌어진 의원총회에서 무기명 투표로 정하자는 발언을 했다.[27] # 당시 지역 조직 당원들로부터 이준석 탄핵시키라는 문자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2022년 1월 11일, 북한6일만에 또다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것에 대해 '문재인 정권의 안보 참사'라며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이북 출신인지라 극초음속 미사일을 '극초음속미싸일'로 발음 하는 것이 포인트. #

2021년 1월 28일, 새로운 부캐 태각수를 선보였다. #

2월 10일, 국민의힘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인강이 올라온 가운데, 2강 강사를 맡았다. #

2월 16일, 유세차에서 아침 인사를 전하는 가운데 안철수 유세버스 사망사고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

최근 태영호 의원실 명의로 랜섬웨어 악성코드가 첨부된 스팸메일이 발송되고 있는데, 북한 해커조직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

12월, 국회 직원들과 체력단련실에서 탁구를 치다가 회전근 부상을 당했다. #


4.6. 2023년[편집]


리용호 숙청설에 대해, 사실이면 북한 내 대미 협상파가 위축될 것이고 처형까지 사실이라면 북한 엘리트층의 동요가 상당할것이라고 평했다. 리용호는 영국에서 함께 수 년간 근무한 사이였기 때문에 처형설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밝혔다.

2023년 난방비 대란에 대해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일류이던 원전 기술과 원자력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한국전력 누적 적자가 30조원에 이르게 만들고도 강추위가 몰려오니 국민의 난방비가 걱정된다고 하니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책포럼 ‘사의재(四宜齋)’는 탈원전으로 난방비 폭탄? 근거 없는 책임 떠넘기기”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3차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새터민 최초로 교섭단체 최고위원, 집권여당 최고위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당선 수락 인터뷰에서 감동하여 큰 절을 올렸다. 이후 인터뷰에서 김정은도 놀랐을 것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또한 당 운영 방향에 있어 개혁보다는 당정일치와 안정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

2023년 5월 태영호 녹취록 파문이 터졌다.

2023년 5월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10시에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국민의힘 최고위원직을 자진 사퇴하기로 했다. 김기현 지도부가 출범한지 두달만에 한명이 공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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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2 08:30:39에 나무위키 태영호/생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버지 태형길은 원래 건설대학 교수로 핵심계층이었으나 친척의 월남이 확인되어 중앙과학기술보 건축기자로 좌천되고 계층도 기본계층으로 격하되었으며 로동당 입당권리도 박탈당했다고 한다. 월남한 사람은 태형길의 사촌형이었는데, 태영호가 탈북한 후인 2018년, 태영호의 자서전을 보고 국정원에 연락하여 그와 만남을 가졌다.[2]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중 발췌[3] 중국에서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전부 중학이라고 한다. 고등학교는 고급중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4] 대한민국에서 베이징외국어대학이라고도 불리나 오히려 학교측에서는 순수 한국식 한자 독음 북경외국어대학/북경외대를 공식 교명으로 사용하고 있다.[5]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아들이라고 한다.[6] 이만갑 531회에서 밝힌 내용. 주선자가 지금 옆의 옆 어느 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데 쳐다보면 티난다고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7] 태영호의 2020년 저서 《태영호의 서울생활》에 의하면 1996년에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저서 『태영호의 서울생활』19쪽에서 밝혔다. 태영호, 《태영호의 서울생활》, 기파랑, 2020, 19쪽.[8] 영국의 체제를 비판하고 러시아의 사회주의를 으뜸으로 내세우며 러시아 2차대전 군가를 우리말로 번역한 정의의 싸움이라는 노래를 영국 반제국주의 모임 강연에서 부르기도 하는 등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9] 명목상으로는 외국문물에 자국민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교관들이 탈북과 같은 딴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 정권이 만든 악법으로, 가족들을 인질로 잡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기인제도 같은 건데 이는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사용하였기에 중세, 근세 시대에 사용하던 악법을 현대까지 아직도 사용하는 것이 된다. 이는 남북한 아프리카 외교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 모가디슈에서도 언급된다.[10]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가게 된 어느 탈북민의 증언에 의하면 파견된 벌목공 상당수가 암암리에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김정은 비하를 서슴치 않고 할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북한의 재외공관은 한 나라의 외교기관임에도 경제가 파탄난 자국의 사정으로 인해 지원은 해주지 못할 망정 오히려 외화벌이와 자력갱생을 강요해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고 전한다.[11] 배급제가 무너지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처절한 생존투쟁에 들어간 북한주민들이 장마당을 시작함과 동시에 돈의 위력을 알게 되고 그 결과로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도가 예전같지 않다는 소식들이 간간히 전해지고 있다. 일부 대북매체들은 만약 북한정권이 장마당을 폐쇄하려 한다면 그땐 진짜 들고 일어난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이다.[12] 강남 갑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경기도 광주시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역구가 확정되지 않았을 때는 태영호와 함께 동행하며 이른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주었다고 알려졌다.[13] 투표용지에 적힐 이름은 '태구민'이므로,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태구민'이라는 주민등록상의 이름을 강조했다고 한다.[14] 더불어민주당 김성곤 후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이미 4선의 경력이 있었으며,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강남구 갑에서 약 45%의 득표를 얻은 전력이 있었다. 당시 당선인 이종구 의원은 약 55%의 득표를 얻었다. 이 다음 총선이 태영호가 출마할 선거가 되었다.[15]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제주도지사에 무소속 출마한 원희룡 지사와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 간의 네거티브 공세랑 은근 비슷한 면이 있다. 민주당 후보인 김성곤 측에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네거티브 공세를 한 것은 문대림 후보가 나무위키(…)를 1차 근거로 제시하며 네거티브 공세를 한 것과 매우 흡사하다.[16] 북한이탈주민법 시행령 제45조, 북한이탈주민법 시행령 제46조[17] 미래통합당의 안방인 경상도에서도 태영호보다 득표율이 높은 당선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18] 꽃제비 출신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초대된 것으로 유명한 북한인권운동가 지성호 씨도 미래한국당 비례대표에 당선되어 탈북민 출신의 국회의원이 한 번에 두 명이 나왔다.[19] 이에 새정치국민회의는 그를 당과 떼어 놓으려고 했다.#[20] 탈북했을 당시부터 그래왔지만, 북한 당국에서는 태구민의 대한민국 국회의원 당선에 위협을 느꼈는지, 태구민에 대한 근거없는 악의적인 비난과 거짓 루머를 더욱 퍼트리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종북주의자 재미교포 신은미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해 SNS 등을 통한 허위 사실 유포에 전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그 내용과 관련해서는 신은미 문서와 본 문서의 하단을 참조할 것.[21] Rumors surrounding Kim Jong Un not 'based on the facts' says former North Korean diplomat[22] Thae's comments, for which he did not provide any supporting evidence, ...[23] 대학생 한 명과 중학생 한 명[24] 특히 수입업체가 레몬법을 거부하고 있다.[25] 여담으로 태영호를 물어뜯던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영점을 못 잡았다'며 별점 1점으로 매우 안 좋은 평가를 받았다.[26] 상술하다시피 태 의원이 6월 15일 발의한, 암표 판매를 방지하는 법안이다.[27] 태영호가 탄핵을 찬성해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반대표를 던질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낼 기회를 주려 한 것이다. 원래는 진짜 조선로동당식으로 박수로 찬반 여부를 가려내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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