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베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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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왕
Charibert I | 카리베르 1세
파일:카리베르 1세.jpg
제호
한국어
카리베르 1세
프랑스어
Charibert I
생몰 년도
521년 ~ 567년 12월
재위 기간
파리의 왕
561년 ~ 567년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파리 프랑크 왕국의 왕.


2. 행적[편집]


521년경 클로타르 1세와 인군트의 아들로 출생했다. 동복 형제로 콘티에르, 군트람, 시게베르 1세, 칼데리크, 클로신드가 있었고, 이복형제로 킬페리크 1세, 크람이 있었다. 558년, 오를레앙킬데베르 1세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킨 크람을 토벌하라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군트람과 함께 진격했다. 두 사람은 리모주에서 크람을 포위했지만, 크람이 클로타르 1세가 색슨족과의 전투 도중 전사했다는 거짓 소문을 탈영병을 통해 퍼트리자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크람은 그 틈에 잃어버린 영토를 확보하고자 노력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뒤늦게 아버지가 건재하다는 걸 알게 된 그는 회군하여 크람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러던 558년, 킬데베르 1세가 상속인 없이 사망하면서 파리-오를레앙 일대마저 클로타르 1세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로써 프랑크 왕국 전역이 클로타르 1세에게 귀속되었다. 이리하여 동맹을 잃은 크람은 브르타뉴로 피신한 뒤 항전을 이어갔으나 560년 끝내 진압되어 체포된 후 아버지의 명령으로 피살되었다.

561년 11월 29일 클로타르 1세가 사망했다. 그의 아들들은 수아송에 안장하고자 떠났다. 그러던 중 킬페리크 1세가 국고를 서둘러 확보한 뒤 병사들에게 금을 나눠줘서 자신에게 충성 맹세를 하도록 했다. 이후 파리에 무혈 입성한 뒤 프랑크 왕을 자처하려 했다. 이에 그는 군트람, 시게베르 1세와 함께 힘을 합쳐 파리로 진군했다. 결국 킬페리크 1세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과 협상한 끝에 수아송에서 왕국을 조용히 이끌기로 했다.

이리하여 이복동생을 멀리 쫓아낸 뒤, 군트람, 시게베르 1세와 함께 왕국을 분할했다. 이때 그는 아키텐과 프로방스의 많은 영역을 더한 파리 일대를 맡았고, 이 외에도 산리스, 샤르트르, 투르, 푸아티에, 생트, 보르도, 그리고 피레네의 여러 도시들을 확보했다. 또한 프랑크 왕국의 시조인 클로비스 1세의 무덤의 수호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왕국은 남부, 특히 아키텐에서 독립을 꾀하는 공작들의 연이은 음모에 시달렸다.

당시 그는 잉고베르가와 결혼하여 딸을 하나 두었지만 수녀였던 마르코베파와 양모를 돌보는 노동자의 딸 메로플레다를 정부로 두었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잉고베르가는 이들이 왕의 사랑을 받는 것을 질투한 끝에, 두 여인의 아버지에게 양모를 짜는 일을 맡긴 뒤 왕을 불러서 이 장면을 보게 했다. 그녀는 이걸 본 남편은 저런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의 딸과 교제한 것을 후회하고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이런 장면을 일부러 보게 한 잉고베르가에게 격분해 그녀와 이혼하고 메로플레다와 결혼했다. 그러다 몇년 후에 메로플레다가 죽었거나 왕의 총애를 잃었고, 그는 다시 그녀의 여동생 마르코베파와 결혼했다. 그는 양치기의 딸인 테오도길트라는 또다른 소녀를 정부로 두었다. 그녀에게는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사망한 아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수녀였던 여자와 결혼한 일로 주교들의 반감을 사자, 그는 567년 11월 18일 투르에서 공의회를 개최해 그들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기회에 왕에게 일격을 가하기로 하고, 하나는 수녀들의 결혼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교회법을 상기하는 법령을 결의하면서, 이를 위반한 자는 파문에 처하기로 했다. 파리 주교 헤르만은 그에게 마르코베파와의 결혼을 취소하라고 요구했지만, 그가 거절하자 그와 메르코베파를 파문에 처했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그는 이 일로 신의 저주를 받아 567년 11월이나 12월에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영토는 형제 군트람, 시게베르, 칼페리크 1세에 의해 분할되었고 파리는 공유지로 남겨졌다.

카리베르 1세가 정부로 삼았던 테오도길트는 왕이 죽자 국고를 장악한 뒤 군트람에게 사절을 보내 자신을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군트람은 동의했지만, 테오도길트가 모든 국고를 그에게 넘겨주자 곧바로 아를의 수녀원으로 보내버렸다. 테오도길트는 수녀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서고트 왕국에 사절을 보내 자신을 꺼내주고 결혼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 탄로났고, 군트람은 그녀를 심하게 구타하고 독방에 감금했다. 결국 그녀는 수녀원 내부의 독방에 갇힌 채 여생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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