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하인리히 폰 슈튈프나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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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치 독일 국장(화이트).svg 독일 국방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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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급대장
한스 폰 젝트 | 쿠르트 폰하머슈타인에크보르트 | 게오르크 린데만 | 베르너 폰 프리치 | 루트비히 베크 |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 | 프리드리히 프롬 | 하인츠 구데리안 | 오이겐 리터 폰 쇼베르트 | 쿠르트 하제 | 에리히 회프너 | 프란츠 할더 | 헤르만 호트 | 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 | 고트하르트 하인리치 | 알프레트 요들 | 로타르 렌둘릭 | 에르하르트 라우스 | 에버하르트 폰 마켄젠 | 요하네스 프리스너 | 한스 위르겐 폰 아르님 | 에두아르트 디틀 | 카를 힐페르트 | 니콜라우스 폰 팔켄호르스트
공군
상급대장
쿠르트 슈투덴트 | 에른스트 우데트
해군
상급대장
알프레트 잘베히터 | 오스카 쿠메츠 | 한스 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 빌헬름 마르샬 | 발터 빌헬름 율리우스 바르체하
병과대장 OF-8
General der Waffengattung / Admi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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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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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대장
프란츠 마텐클로트 | 안톤 도슈틀러 | 프리드리히-빌헬름 뮐러 | 쿠르트 폰 티펠슈키르히 | 테오도어 부세 | -한스 크렙스 | 빌헬름 부르크도르프 |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 디트리히 폰 콜티츠 | 카를 에두아르트 | 카를-하인리히 폰 슈튈프나겔

명예 파울 폰 레토포어베크
기갑대장
핫소 폰 만토이펠 | 발터 벵크 | 빌헬름 리터 폰 토마 | 발터 네링
포병대장
발터 폰 자이틀리츠-쿠르츠바흐 | 헬무트 바이틀링 | 에두아르트 바그너 | 에리히 마르크스 | 에른스트에버하르트 헬
통신대장
에리히 펠기벨 | 알베르트 프라운
산악대장
카를 에글제어 | 프란츠 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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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병과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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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대장
빌헬름 카나리스 | 오토 칠리악스 | 귄터 뤼첸스
중장 OF-7
Generalleutnant / Vizeadmi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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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중장
히아친트 그라프 슈트라흐비츠 | 헬무트 폰 판비츠 | 한스 슈파이델 | 오스카 폰 힌덴부르크 | 아돌프 호이징거
아구스틴 무뇨스 그란데스 | 에밀리오 에스테반 인판테스
안드레이 블라소프 | 보리스 시테이폰
공군
중장
발터 베버 | 아돌프 갈란트 | 테오도어 오스터캄프
해군
중장
-
소장 OF-6
Generalmajor / Konteradmiral
파일:Si_6a.png / 파일:200px-WMacht_Lw_OF6_GenMaj01_h_1945.svg.png / 파일:AA-5A.png

육군
소장
발터 도른베르거 | 카를 게프하르트 | 카를 브란트 | 헤닝 폰 트레슈코프 | 하인리히 크라이페 | 한스 오스터 | 오토 에른스트 레머
미하일 스코로두모프 | 이반 코노노프 | 세르게이 부냐첸코
공군
소장
디트리히 펠츠
해군
소장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독일 국방군의 상급대장과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독일 국방군 해군, 즉 크릭스마리네에만 있는 준장 계급은 미군의 대령에 상응
※ 윗 첨자 :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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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슈츠슈타펠 문장.svg 슈츠슈타펠의 장성급 지휘관






파일:카를-하인리히 폰 슈튈프나겔.jpg

이름
Carl-Heinrich von Stülpnagel
카를하인리히 폰 슈튈프나겔
출생
1886년 1월 2일
독일 제국 베를린
사망
1944년 8월 30일
나치 독일 베를린
최종 계급
파일:Si_4b.png 육군 보병 대장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주요 서훈
기사십자 철십자장
1. 개요
2. 생애
4. 1944년 7월 20일
5. 전범 행위



1. 개요[편집]


카를하인리히 폰 슈튈프나겔(Karl-Heinrich von Stülpnagel)은 독일 제3제국의 보병대장이자, 히틀러에 대한 암살을 꾀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프로이센 융커 가문 태생으로 아버지 헤르만 폰 슈튈프나겔은 독일 제국군 중장이었고, 친척 오토 폰 슈튈프나겔 또한 독일 국방군 육군 장군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초급장교로 참전, 종전 시 육군 대위였으며 철십자 훈장을 2회 수훈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도 군에 남았으며 1937년에는 육군 중장으로 육군참모차장을 지냈고 1939년 4월 보병대장으로 진급했다.


3. 바르바로사 작전[편집]


제17군을 지휘하여 키예프 전투 등의 승전에 기여했다. 이후에는 프랑스로 이동하여 자신의 친척이기도 한 오토 폰 슈튈프나겔 보병대장의 후임으로 프랑스 군정청의 프랑스 주둔군 사령관(Militärbefehlshaber in Frankreich)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4. 1944년 7월 20일[편집]


이미 패색이 조금씩 짙어져 가는 상황에서도 전쟁을 계속하라는 압력을 받은 슈튈프나겔은 슈바르체 카펠레와 연합하여 총통의 암살을 꾀했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으로 슈바르체 카펠레 단원들이 베를린에서 발키리 작전을 발동함과 동시에, 프랑스 파리에 있던 슈튈프나겔도 자기 휘하 병력에게 파리의 SS와 게슈타포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파리에 있던 서부전선 해군 사령관 해군대장 테오도어 크란케(Theodor Krancke) 제독이 이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예하의 해군 병력 1천여명을 육전대로 동원하겠다며 대치했고, 보다못한 주 파리 대사의 중재로 슈튈프나겔 장군은 반란을 포기했다. 슈튈프나겔 장군은 "오해였다"며 상황을 무마한 뒤 수감자들을 석방하고 해군과 SS 지휘관들과 건배를 하며 훈훈한 분위기로 헤어졌다. 그 뒤 슈튈프나겔 장군은 베를린에서의 거사 실패 소식을 접하고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한쪽 눈만 실명한채로 자살에 실패했고, 이후 체포되어 8월 30일에 처형되었다.


5. 전범 행위[편집]


슈튈프나겔은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그 곳 유대인의 추방이나 레지스탕스 학살, 아인자츠그루펜과의 협력 등의 전범 혐의에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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