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겐 마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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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독일 국방군의 공수대장.
2. 초기 행적[편집]
오이겐 마인들은 바덴 대공국 도나우에싱겐(Donaueschingen)에서 태어났다.
1912년 7월 27일에 독일 제국군에 육군 포병 장교가 됐고, 제1차 세계 대전 때 소대장, 후에 중대장이 되어 제67포병연대 부관, 제52군단 포병지휘부관으로 근무했다. 마인들은 육군의 여러 포병부대를 전전하면서 1924년 8월 1일에 대위로 승진하여 1926년 9월에 국방성에 소령으로 진급 후 이적했다.
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39년 11월 10일에 마인들은 제112 산악포병연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대령으로 곧 승진한 그는 <마인들 그룹>을 이끌면서 나르비크에 처음으로 낙하산으로 침투했다. 마인들이 공군으로 전속한 것은 1940년 11월 28일이었지만 그는 강하수렵병의 마인들 돌격연대를 8월 9일부터 지휘했었다. 크레타 섬으로의 공수작전인 메르쿨 작전에서 마인들은 플라타니아스 다리 부근에서 낙하 중 총검이 가슴을 찌르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 에드거 슈텐츨러 소령이 대신 연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1942년 2월 26일에 마인들은 소장으로 진급해 동부전선에서 새로 편성된 마인들 전투단의 지휘관이 되어 9월 26일에 제12 항공공수군단[1] 의 지휘를 담당했다. 마인들은 동부전선의 겨울전투에서 명성을 쌓아 독일군의 군보에 실릴 정도였는데 1943년 11월 5일에 제2 강하수렵병 군단의 지휘관으로 승진하여 서부전선으로 이동해 연합군의 대륙침공 최전선인 크레페와 라이히스발트에서 싸웠다.
4. 전후 행적[편집]
마인들의 군단은 고흐와 베젤의 교두보에서 분전했지만 결국 연합군에게 패배해 마인들은 포로로 잡혀 수감되었다. 1947년 9월 29일에 풀려난 마인들은 1951년에 뮌헨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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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에 제1 강하수렵병 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