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폰 마켄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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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나치 독일 독일 국방군의 군인. 최종계급은 상급대장이다.
2. 초기 행적[편집]
독일 제국의 영토였던 포젠 주 브롬베르크[3] 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쟁영웅인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원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군에 입대하였으며 기병 장교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종전 후 잠시 국가방위군에 남았으나 이후 자유군단에 가입하였다. 독일 국방군이 창설되면서 1 기병여단의 지휘관을 역임하였고 이후 빌헬름 리스트의 참모가 되었다.
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14군 참모로 폴란드 침공에 참전하였다. 프랑스 침공에서는 12군 참모를 맡았으며 기병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동부전선의 3군단[4] 의 지휘를 맡아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여하여 당시 소련과의 국경이었던 브워지미에시를 돌파하고 루츠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호린강을 넘어 스탈린 라인을 돌파, 지토미르를 점령하는 전공을 거두었다. 이때의 전공으로 기사십자 철십자훈장을 수훈받는다. 이후 1942년 5월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에 참여하였으며 소련 남부전선군의 6군과 57군을 포위섬멸하는 남쪽의 축을 맡아 소련 6군과 57군을 궤멸시키는 전공을 거뒀다.[5] 이후 클라이스트의 후임으로 1기갑군의 지휘를 맡아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 참여하였다. 2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의 전공으로 곡엽기사십자 철십자훈장을 수여받고 상급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이탈리아 전선의 14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탈리아 북부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몬테카시노 전투 이후 남부전선 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은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마켄젠을 해임하였고, 마켄젠은 1944년 퇴역한다.
4. 전후 전범재판과 최후[편집]
14군 사령관 시절에 로마 주둔군의 지휘관으로써 당시 공산주의 파르티잔에게 독일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아돌프 히틀러의 재가를 받은 보복명령이 내려졌다. OKW 지휘참모부장 알프레트 요들 상급대장, 남부전선 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의 지휘체계로 이어진 상부의 명령을 그대로 하달하였으며 이때의 일로 종전 후인 1946년 로마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이후 21년 형으로 감형[6] 되었으며 1952년에 석방된다.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1969년 서독 북부 노이뮌스터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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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마켄젠'으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現 폴란드 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 주 비드고슈치(Bydgoszcz)[3] 베르사유 조약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로 할양되고 나서 원래 이름인 비드고슈치로 돌아왔다.[4] 기계화 군단이었으며 2차 하르코프 공방전 이후 3기갑군단으로 재편성되었다.[5] 57군 사령관 쿠즈모 포들라스는 이 포위에서 퇴각하던 도중 전사했다.[6] 이때 연합국 측의 탄원도 있었고 비오 12세도 감형을 탄원하였다.